항목 ID | GC02200731 |
---|---|
한자 | 延安金氏 |
영어의미역 | Yeonan Gim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태성 |
[정의]
김섬한을 시조로 하고 김경사를 입향조로 하는 창원시 세거 성씨.
[연원]
연안 김씨의 시조는 고려 명종 때 사문박사를 지낸 김섬한(金暹漢)이다. 신라 김알지의 후예인 두 왕자가 왕에게 직간하다가 형은 북빈경[강릉]에, 아우는 시염성[연안]으로 유배되었는데, 아우의 후손이 바로 김섬한이라고 한다. 조선에 들어 김섬한의 6세손 김자지(金自知)가 있었고, 4대 뒤 영의정 김근사(金謹思)에 이르렀는데, 그의 동생이 김경사(金敬思)로 관직이 광주목사였다.
[입향 경위]
연안 김씨의 창원 입향조는 김경사로, 영의정 김근사의 동생이다. 김경사는 집안이 지나치게 번성하는 것을 경계하여 서울에서 창원으로 이거(移居), 현재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에 집성을 이루었다. 이외에도 창원시 죽전, 대산면 무성리, 북면 북계리 등에 분포했다. 선조들의 비문이 다수 있으나 여기에는 두 비문만을 소개한다. 안붕언(安朋彦)이 찬(撰)한 ‘처사 김공휘 진수 묘비명(處士金公諱進秀墓碑銘)’에서는 연안김씨의 연원을 “공의 휘(諱)는 진수(進秀)이고, 자(字)는 태현(泰鉉)이며, 자호(自號)는 소호(小湖)이다. 성은 김씨이고 본관은 연안이며 고려 사문박사(四門博士)인 휘 김섬한이 시조이다.”라고 하였다.
재종손(再從孫) 김종원(金鍾源)이 찬한 ‘처사 김공휘 사찬 묘비명(處士金公諱思贊墓碑銘)’에는 연안 김씨가 영원과 창원으로 입향한 경위가 기록되어 있다. “다헌(茶軒) 김공의 휘는 사찬이고, 자는 경직(敬直)이며, 다헌은 호이다. 김사찬의 가계는 연안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의 사문박사 휘 김섬한이 시조이다. 조선에 들어서 휘는 자지(自知)이고 호는 일계(逸溪)이며 시호는 문정(文靖)인 분은 아들이 아홉 명이 있었는데 모두 벼슬에 올랐다. 여덟째 아들은 김수(金脩)이고 황해도 관찰사였다. 3대를 전하여 김경사는 광주 목사로 좌의정(左議政)에 증직되었다.
당시 연안 김씨 집안은 위세가 혁혁하여 지나치게 번성한 것을 경계하여 자취를 감추고 서울에서 남으로 내려와 창원 산남(山南)의 낙동강 기슭에 자리 잡아 자손들이 살게 되었다. 그 증손의 휘는 건(鍵)으로 임진왜란 이후 다호에 자리를 잡았는데 문장과 덕행이 있었다. 이분이 공의 9세이다. 고조의 휘는 재정(載鼎)이고, 호는 용강(龍岡)이며, 문장과 글씨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쳤다. 증조의 휘는 수(銖)로, 또한 문사(文詞)에 뛰어났고 조부의 휘는 호연(祜淵)이며, 고(考)의 휘는 진수이며 비(妣)는 김해김씨 만선(萬璿)의 딸이다.”고 하였다.
[현황]
연안 김씨의 일부는 창원시 의창구 동읍 다호리에서 반계동 죽전으로 옮겨 집성을 이루고 살았다. 죽전은 현재 창원 공단으로 인하여 팔룡동으로 이주하였으나, 다호리는 여전히 연안 김씨의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