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0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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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新村里 |
영어음역 | Sinchon-ri |
이칭/별칭 | 새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신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원경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과거의 기록에 의하면, 지금의 신촌리 지역에 초미흘(草未訖)이란 이름이 먼저 나온다. 초미흘의 ‘초(草)’는 동을 뜻하는 ‘~’의 변이형태 ‘새’를 표기하기 위한 차자(借字)일 것으로 생각된다. ‘초(草)’의 훈에 풀을 뜻하는 ‘새’가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이 차자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흘(未訖)’은 마을을 뜻하는 ‘말’의 변이형태 ‘밀’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일 것이다 ‘미(未)’가 자음으로 차자되어 ‘미’를, ‘흘(訖)’이 자음 ‘흘’로 차자되어 ‘ㄹ’을 표기하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미흘은 ‘동쪽에 있는 마을’을 뜻한다.
과거의 기록에 의하면, 신리와 신목리(新木里)가 합쳐져서 지금의 신촌리가 되었고, 이들 두 마을은 신촌리의 신리마을과 신목마을이 되었다. 한편, 신촌리의 ‘신(新)’은 신리와 신목리의 신(新)에다 마을을 뜻하는 ‘말’을 표기하기 위한 차자 ‘촌(村)’이 덧붙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형성 및 변천]
신촌리는 『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신목리(新目里)는 신목리(新木里)의 또 다른 표기일 것이다. 신리·신목리는 당시 북면(北面) 삼운(三運)에 속해 있었다. 그 후 창원군 북면 지역으로 1910년 마산부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리(新里)·신목리·하천리(下川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고 신촌리라 하여 창원군에 편입되었다. 1980년 4월 1일 의창군에 편입되었으며, 1991년 1월 1일 의창군이 창원군으로 개칭되고, 1995년 1월 1일 창원군이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창원시 북면 신촌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신촌리는 마금산(馬金山)과 천마산(天馬山)의 동쪽 사면이 신천천(新川川)의 범람원과 접하는 지대를 따라서 남북 방향으로 길게 발달해 있다. 마금산과 천마산의 경계는 신리에서 마금산 넘어 북쪽에 있는 상천리로 가는 문티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들 두 개의 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신천천을 임수(臨水)하여 입지하고 있다. 신천천의 범람원은 질펀한 경작지로 개간되어 신촌리에서 동쪽으로 넓은 경작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그 너머로 백월산의 산릉을 바라보게 된다.
[현황]
북면의 중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2008년 9월 현재 면적은 5.99㎢이며, 총 1,575세대에 4,533명(남 2,281, 여 2,252)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지 면적은 2.14㎢로 밭이 0.35㎢, 논이 1.79㎢, 과수원 0.13㎢, 임야는 2.47㎢ 등으로 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 쌀·콩·고추·감자 등이 재배되며, 맛과 품질이 좋은 단감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마금산과 천마산의 동사면(東斜面)을 따라 신리마을, 온천마을, 신목마을, 신기마을 등이 각각 떨어져서 분포하고 있다. 신리마을과 온천마을은 그 공간 규모가 비교적 넓은 산록완사면에서 괴촌(塊村)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데 비해, 신목마을과 신기마을은 신천천의 공격사면(攻擊斜面)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사가 가파르고 취락의 입지장소가 극히 제한되어 산록을 따라 길게 열촌(列村)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신촌리는 면소재지로서 촌락이라기보다는 아파트 등의 주택이 들어서 있어 도시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마금산의 동사면을 따라 온천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교육기관으로 온천초등학교와 창북중학교가 있고, 기관으로는 북면사무소, 북면치안센터, 북면우체국, 북면농업협동조합 등이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신촌리 도요지, 신촌리 신리 당목 등이 있다. 지방도 60호선이 지나고 있고, 이 외에도 북쪽 하천리에 연결된 도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