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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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Gipeunguji|Gipeunguji Village |
이칭/별칭 | 깊은골,심곡동(深谷洞)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경인로194번길 83[심곡본동 60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만용 |
깊은구지 - 경기도 부천시 경인로194번길 83[심곡본동 605] | |
성격 | 마을 |
[정의]
경기도 부천시 심곡본1동에 있었던 자연 마을.
[명칭 유래]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1911]에는 석촌면에 속하는 깊은구지를 심곡리(深谷里)로 표기하고 있다.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깊은구지에서 ‘깊은’은 ‘깊다’는 우리말이고, ‘구지’는 ‘곶’이 그 원형으로 ‘곶’을 ‘고지·구지·꽃’으로 발음하였다. 그러므로 깊은구지는 골짜기에서 들판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형성 및 변천]
깊은구지는 지금의 부천시 경인로194번길 83[심곡본동 605]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천군 계남면 심곡리에 속했고, 1941년 부천군 소사읍이 되었다. 1973년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깊은구지는 심곡1동과 심곡2동으로 분동되었다. 1993년 소사구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심곡본동에 속하였고, 2019년 광역동제 실시로 대산동에 속한다.
[자연환경]
깊은구지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잡풀과 가시덤불이 무성한 오지였을 정도로 골이 깊은 마을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산등성이를 개간하여 복숭아 과수원을 일구기도 하였다.
[현황]
깊은구지 앞으로 경인전철과 경인고속국도,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가 지나며, 위쪽으로는 정명고등학교가 있다. 손자 느티나무가 있는 위쪽 깊은구지 일대, 정명공원 주변에 아파트와 빌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경인로194번길, 심곡로45번길, 심곡로46번길 주변으로 은총장로교회, 부천남중학교, 부천심곡e편한세상 아파트와 빌라, 상가들이 들어서 있다.
수정일 | 제목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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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2 | 깊은구지 | <소표제>[현황]</소표제> <문단><지명 검색='0' 검색어=''>부천남부역</지명>에서 바로 직진한다. <지명 검색='1' 검색어='심곡동'>심곡동</지명>을 돌아나가는 <지명 검색='0' 검색어=''>회주로</지명>인 <지명 검색='0' 검색어=''>성주로</지명>이다. <지명 검색='0' 검색어=''>성주로</지명>를 타고 가다 <지명 검색='0' 검색어=''>심곡로 사거리</지명>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튼다. <지명 검색='0' 검색어=''>심곡로</지명> 끝까지 가면 <지명 검색='1' 검색어='정명정보고등학교'>정명정보고등학교</지명>, <지명 검색='1' 검색어='정명고등학교'>정명고등학교</지명> 아래에 있는 주탁단지 일대가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 마을이 있던 곳이다.</문단> <참고문헌> <문헌><서명 검색어='부천시사'>『부천시사』</서명>(<출판사항>부천시사편찬위원회, 2002</출판사항>)</문헌> <문헌>한도훈, 부천의 땅이름 이야기(부천문화원, 2001)</문헌> <문헌>건설교통전자정보관(http://www.codil.or.kr)</문헌> <문헌>인천,부천역사(http://cafe.naver.com/bcmoonhwa.cafe)</문헌> |
2010.12.19 | 깊은구지 | 1) <소표제>[명칭유래]</소표제>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를 <지명 검색='0' 검색어=''>심곡(深谷)</지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에서 ‘깊은’은 ‘깊다’는 우리말이고, ‘구지’는 ‘곶’이 그 원형으로 ‘곶’을 ‘고지·구지·꽃’으로 발음하였다. 그러므로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는 골짜기에서 들판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문단> --> <문단><서명 검색='0' 검색어=''>『조선지지자료』</서명>에는 <지명 검색='0' 검색어=''>석촌면</지명> 속하는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를 <지명 검색='0' 검색어=''>심곡리(深谷里)</지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깊은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에서 ‘깊은’은 ‘깊다’는 우리말이고, ‘구지’는 ‘곶’이 그 원형으로 ‘곶’을 ‘고지·구지·꽃’으로 발음하였다. 그러므로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는 골짜기에서 들판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골짜기쪽으로 튀어나와 보인다고 해서 '곶'이 붙여진 것이다.</문단> 2) <소표제>[형성 및 변천]</소표제> <문단>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산등성이를 개간하여 복숭아밭을 일구기도 하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 앞으로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선'>경인선</지명>과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고속국도'>경인고속국도</지명>가 지나며, 위쪽으로는 <기관 검색='1' 검색어='정명고등학교'>정명고등학교</기관>와 <지명 검색='0' 검색어=''>심곡도서관</지명>이 자리 잡고 있다. 2006년까지도 국민주택 등과 무허가 건물이 있었으나 2008년 현재 대부분 철거되고 깨끗한 아파트 단지와 주택이 들어서 있다.</문단> --> <문단>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산등성이를 개간하여 복숭아밭을 일구기도 하였다.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 앞으로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선'>경인선</지명>과 <지명 검색='1' 검색어='경인고속국도'>경인고속국도</지명>가 지나며, 위쪽으로는 <기관 검색='1' 검색어='정명고등학교'>정명고등학교</기관>가 자리 잡고 있다. 1970년에 제작된 지도를 보면,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 집들이 두 군데 있었다. 고사한 느티나무가 있는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에는 몇 채의 집이 있었고, 손자 느티나무가 있는 위쪽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 일대에는 많은 집들이 있었다. 현재도 위쪽 <지명 검색='1' 검색어='깊은구지'>깊은구지</지명>는 <지명 검색='0' 검색어=''>정명공원</지명> 주변에 수많은 빌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문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