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7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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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禮 |
영어의미역 | Funeral Rite |
이칭/별칭 | 장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평생 의례와 세시 풍속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한명희 |
[정의]
경기도 부천시에서 사람이 죽은 후 장사 지내는 예법.
[개설]
상례는 인간의 4대 통과의례의 하나로, 사람이 운명한 후 시신을 수습하고, 묘지를 만들어 매장하며, 유족들이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상복을 입고 근신하는 기간에 치러지는 여러 가지 과정인 상중에 행하는 모든 예절을 의미한다. 상례는 신종추원(愼終追遠:양친의 상사(喪事)에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에는 공경을 다함)의 효행 정신에 따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돌아가신 분에게 삼가 이별하는 예(禮)를 다하는 엄숙한 절차인 만큼 부천에서는 전통방식이 그대로 고수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부천 지역에서 행하는 장례 절차는 조선조 숙종 때에 도암 이재(李縡)가 쓴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따르기 때문에 표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의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1961년의 「의례준칙」과 1969년의 「가정의례준칙」을 계기로 상례규범이 간소화되었으며, 산업화·도시화된 사회적 여건도 상례의 변화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장의사와 장례식장, 병원(영안실), 사찰 등 전문 상장례 대행자가 등장하면서 ‘가가례(家家禮)’로 통칭되던 지역별·문중별 다양성을 지니던 방식이 규격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현재 부천에는 사찰(부속 장례식장)과 7~8개의 병원 영안실(부속 장례식장), 전문 장례식장이 있다.
[절차]
1. 초혼(招魂) : 죽은 이의 직계자손이 아닌 사람 중에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고인의 웃옷을 들고 나가 북쪽을 향해 고인의 주소·성명과 ‘복! 복! 복!’을 세 번 부른 후 그 옷을 가지고 들어와 죽은 이의 가슴에 덮는 것이다. 이는 고인의 몸을 떠난 영혼을 다시 불러들이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다.
2. 수시(收屍) : 옷을 입힌 채 허리띠로 손발을 묶고, 옷고름으로 무릎을, 대님으로 팔꿈치를 묶어서 칠성판 위에 시신을 반듯하게 하는 절차이다. 보통 운명한 후 1시간 정도 지난 후에 진행한다.
3. 사자밥 : 수시하는 동안 대문 앞에 저승사자를 대접하기 위해 상을 차리는데, 여기에는 밥·나물·짚신·돈 등을 올린다. 사자밥은 초혼을 부른 후에 준비하는 것인데 현대에는 거의 하지 않는다.
4. 장례절차 논의 : 시신 앞을 병풍으로 가리고 그 앞에 향상(香床)을 차려 향을 피우며 촛불을 양편에 마련한다. 맏상주가 술 한 잔을 올려놓고 그 옆에 서 있으며, 식사 때마다 상식(上食)을 올린다. 이때 친척들이 모여 발인일시(發靷日時)와 장지(葬地) 등에 대한 결정을 하고, 호상(護喪)과 연락방법을 의논한다. 호상은 상주의 친구 중에 인근 지역을 잘 알고 일처리 능력이 뛰어난 수완 있는 사람으로 정한다. 부고는 호상의 이름으로 글자를 반듯하게 써서 인편이나 전송으로 알린다.
5. 습렴(襲殮) : 시신을 목욕시키고 수의를 입혀 입관하는 절차이다. 목욕은 고인이 남자이면 남자 근친이, 여자이면 여자 근친이 시킨다. 상주와 복인들은 곡을 멈추고 방 밖에서 기다린다. 목욕은 위로부터 아래로 냉수로 씻긴 다음 향물로 한 번 더 씻긴다. 옷은 아래로부터 입혀 나간다. 수의를 다 입히면 반함(飯含)을 한다.
버드나무로 만든 수저로 불린 쌀을 입에 떠 넣으며, “천 석이요, 만 석이요, 십만 석이요.”라고 외친다. 이때 동전이나 구슬을 같이 넣기도 한다. 고인의 손톱과 발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모아서 버선과 함께 신기고 귀와 코는 솜으로 막는다. 얼굴을 덮기 전에 유족들은 고인과 친견(親見) 기회를 갖는다. 염이 다 되었으면 위로부터 장매로 감싸고 몸의 상·중·하로 세 번 허술하게 매고, 가도매 일곱 개로 아래부터 단단히 묶은 다음 시상판에 다시 놓는다.
입관(入棺)할 때는 관 바닥에 한지를 보통 열한 장을 깔고 창호지를 두루마리로 말아 시신을 넣고 관의 남은 공간은 보공(補空)한다. 보공 때 고인이 생전에 입었던 비단옷을 넣기도 하며 결관이 끝나면 짚 침목 세 개 위에 받쳐 놓는다. 현대는 삼일장을 치르기 때문에 입관 후 보통 성복(成服)을 한다. 성복은 복인들이 정해진 상복을 입는 것을 말한다.
6. 치장(治葬) : 관을 방에서 내와 상여 위에 놓고 지내는 발인제부터 시신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여 납골하는 절차까지를 말한다. 장삿날이 되면 상두꾼이 상여를 꾸미고 일부는 산역을 한다. 상여가 꾸며지면 상주나 복인(服人)들이 방에 들어가 관을 들고 관머리를 네 귀퉁이에 ‘넘세’를 맞춘 다음 방문을 나온다. 방문을 나올 때 문지방을 한 번 걸치고 나오면서 마루 아래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밟아 깨뜨리면서 관을 상여 위에 모신다. 바가지를 깨뜨리는 것은 잡귀를 쫒아낸다는 의미가 있다.
발인제를 지내고 이 제물로 상두꾼과 조객을 대접한다. 상두꾼들은 상여를 멘 후 유족들과 세 번 맞절하고 묘지로 떠난다. 묘지까지 가는 도중 고인과 잘 아는 지인이나 친척집 부근에서 노제를 지내기도 하고, 개울이나 언덕에서는 상여를 멈추고 복인들이 상두꾼에게 노잣돈을 주기도 한다. 묘지까지 갈 때의 순서는 명정(銘旌)과 공포가 앞에 서고 혼백과 상여가 따르며 상주와 조객이 뒤따른다.
한편, 산역(山役)은 복인이 아닌 사람 가운데 시신을 보지 않은 사람이 술, 과일, 포를 가지고 산신제를 지낸 후 묘지를 판다. 상여가 묘지에 도착하면 관을 안치소에 모시고 하관할 때까지 조문객을 받는다. 대체로 오시(午時)인 오전 11시~오후 1시 사이에 매장한다.
내광은 외광의 중앙에 넓이 50㎝, 길이는 고인의 키보다 20㎝ 길게는 50㎝ 정도 깊이로 하며, 하관 후 내광을 석회로 채우고 명정을 덮은 다음 홍대를 홀수로 덮는다. 맏상주가 회를 섞은 흙을 떠서 먼저 세 번 넣고 복인들도 차례로 흙을 넣은 다음 산역들이 회다지를 하면서 봉분을 다져 나간다. 봉분이 완성되면 상주가 분토제(墳土祭)를 지내고 제물을 고생한 일꾼들에게 제공한다.
7. 반혼(返魂) : 시신을 매장하고 상여가 갔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서 반혼제(返魂祭)를 지낸 다음부터 탈상할 때까지를 말한다. 다른 말로 흉제(凶祭)라고도 한다. 발인 다음날 아침 제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오며, 식사 때마다 상식을 올린다. 삼우제 이후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마다 삭망식을 올린다. 고인이 돌아가신 지 100일째 되는 날 졸곡제(卒哭祭)를 지내며, 돌아가신 지 1년이 되면 밤 12시를 기해 소상(小祥)을 지내고, 2년째가 되면 대상(大祥)을 지낸 후 탈상을 하게 된다.
현대사회에 와서 반혼과정이 대폭 축소된 모습을 보인다. 유교·불교·기독교 등 종교와 무관하게 49일 탈상이 보편화되고 있다. 본래 49재는 불교의식인데 장례예식이 영안실 중심으로 간소하게 치러지는 만큼 삼우제를 지내고 49재 후 탈상으로 이어져 반혼과정을 마치는 경우가 많으며, 부천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제물의 진설방법은 대체로 어동육서(魚東肉西)·동두서미(東頭西尾)·좌포우혜(左脯右醯)에다 과일은 홍동백서(紅東白西)·근동엽서(根東葉西) 원칙을 지킨다. 기제사 순서도 분향·참신·강신(촛불 켜기)·진찬(제물 올리는 과정)·초헌·독축·아헌·종헌·유식(첨작)·납주·음복 등으로 이루어진다. 제사의 의미가 영신(迎神)·오신(娛神)·송신(送神)의 과정으로 나누어 진행된다고 보면 이해가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