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촌 동계장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93
한자 船村 洞契帳簿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940년연표보기 - 『선촌 동계장부』 기록 시작
소장처 선촌 마을회관 -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1길 14[원산도리 433-2]지도보기
성격 장부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에서 마을의 자산을 관리하거나 공동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기록한 동계장부.

[개설]

동계는 마을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상존하애(上尊下愛)의 전통과 마을의 미풍양속을 유지하는 역할을 담당해 온 중요한 조직이다.

[편찬/간행 경위]

원산도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에 속하는 섬이다. 원산도에서 동계를 언제부터 조직하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현존하는 동계장부는 1940년부터 기록되어 있다.

[구성/내용]

마을의 자산 중에는 장사를 치르기 위하여 마련된 상여와 전통 혼례에서 신부를 모시던 가마가 포함되어 있다. 장사와 혼례를 치르는 가정에 이를 대여해 주는 대가로 대여비를 수납하도록 하는 일도 동계의 역할이었다. 또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산림의 나무를 관리하는 일도 동계의 소관이었으며, 동산에서 산출되는 목재를 매각하여 얻는 수입도 동계의 관활에 속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가을철에 수확한 벼를 도정하던 정미소의 임대료가 동계의 수입원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정미소도 동계가 관활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동계장부에 의하면 마을을 돌며 풍물을 치고 각 가정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걸립(乞粒)[동네에 경비를 쓸 일이 있을 때, 여러 사람들이 패를 짜서 각처로 다니면서 풍물을 치고 재주를 부리며 돈이나 곡식을 구하는 일]의 조직도 동계가 주관하고, 쌀이나 현금으로 지불된 건립비를 동계 자산으로 활용하였다는 점도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동계기금을 계원이나 비계원에게 대출하여 이자를 받는 식리사업도 병행하였다. 식리사업에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동계성원에만 국한된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현재와 비교해 볼 때 상당히 높은 이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외에도 장부에는 마을의 부역에 사용한 비용이나 부역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당제를 주관하였던 예에 비추어 당주의 보수나 관리도 역시 동계의 역할이었다. 동계장은 마을총회에서 성원들의 추천에 따라 대개 거수로 선출되었으며, 동계는 마을에 이사 오는 것까지도 제한할 수 있었다고 한다. 5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마을의 망나니에 대해서는 멍석말이로 혼을 내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과거 동계의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원산도 주민의 경제생활과 사회조직의 일면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자료라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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