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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용계리에 진주인 강영두(姜永斗)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와 비각. 강영두[1846~1907]의 자는 성구(性九)이고, 고구려 말 백마원수(白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 후손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용계리 달산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약주를 좋아했던 아버지를 위해 10리 길을 날마다 장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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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신방리의 효자. 강창언(姜昌彦)은 고구려 말 백마원수(白馬元帥) 강이식(姜以式)을 시조로 하는 진주 강씨 후손으로 1811년(순종 원년)에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강우석(姜遇錫), 어머니는 청도 김씨이다. 부인은 전주 이씨 이달주(李達周)의 딸로, 슬하에 네 아들이 있으니 강재정(姜在廷)·강재하(姜在夏)·강재익(姜在翊)·강재주(姜在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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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거곡 서당(巨谷書堂)은 대의리 거곡마을에 있다. 거곡마을은 국도 28호선을 따라 가다가 단포 초등학교와 고경 농협 중간에 주유소를 끼고 도로[거곡로]를 따라 고촌천의 대의교를 지나면 대의리가 나온다. 대의교에서 800여m 더 가면 대의리 마을회관이 나타나고 그 맞은편 소로를 따라 남쪽으로 가면 의곡천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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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 있는 김명삼(金命三)의 묘하(墓下) 재사(齋舍). 경모당은 영천댐 하류에 있는 자호천교를 지나 신방로를 따라 4.3㎞ 이동하면 우측에 간산재와 나란히 있는데, 이는 영천댐 상류에 있던 것을 영천댐 건설로 1978년 현재의 자리로 이건(移建) 하였다. 가로로 긴 장방형에 가까운 경모당의 일곽은 블록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사주문을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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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에 있는 존재(存齋) 곽준(郭䞭)을 모신 사당. 경모당은 조선 중기 문신인 곽준(郭䞭)[1551~1597]을 기리기 위해 곽씨 문중에서 건립한 사당으로, 곽준의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이다. 대구 복현동에 있던 것을 1874년(고종 11) 청통면 우천리로 이건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존재 곽준의 묘소는 대구광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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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사당. 조선 중기의 문신 곽순(郭珣)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사당이다. 곽순의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백유(伯瑜), 호는 경재(警齋)이며, 아버지는 사재감첨정 곽수녕(郭遂寧)이다. 1502년(연산군 8) 10월 18일 영천(永川) 창수리(蒼水里)에서 태어났다. 1542년에 전적(典籍), 형조정랑(刑曹正郞) 겸 춘추관기주관(春秋館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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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에 있는 서원. 고천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자인 전투, 영천성 전투 등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우고 경주성 전투에 참여했다가 순국했던 영천 지역 의병들을 제향하고 있다. 임고 서원이 있는 임고삼거리에서 동쪽으로 난 지방도 921호선을 따라 가다가 임고 중학교에서 맞은편 소로를 따라가면 임고천이 나온다. 임고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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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에 있는 정경치(鄭卿緇)와 정문영(鄭聞英)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 정경치는 조선 초기의 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외 인물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고천리에는 영일 정씨 사의공파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으며, 훈도 벼슬을 지낸 정세홍(鄭世弘)의 부 정문영(鄭聞英)과 조부 정경치의 선영(先塋)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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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에 있는 나주 정씨 신녕파 문중 재사(齋舍). 곽남재(郭南齋)는 조선 인조 때 학자인 정민도(丁敏道)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인 정남주가 문중산 아래에 초창을 하고 이후 후손들을 수호하기 위한 재사로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곽남재는 영천시 화산면 효정2리 마을 앞 산 아래 있는 곽산저수지 옆에 있다. 효정2리 마을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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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 있는 능라군(綾羅君) 권덕신(權德臣)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광사재(廣思齋)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 권응수 장군의 아버지 능라군(綾羅君) 권덕신(權德臣)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17세기 초엽에 건립되었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1925년 경에 중건된 것으로 보이며, 1993년에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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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에 있는 양효지(楊孝智)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양곡(良谷) 양효지(楊孝智)[1414~1505]의 관향은 청주이며 조선 세종 때 참판(參判)을 지내다가 세조의 왕위 찬탈 시 한양에서 이곳 신녕현 대량리로 내려와 거처하던 곳에 ‘망미대’를 쌓아 매월 초 1일과 15일에 영월의 단종을 향하여 배향하고 애석한 서거를 사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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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 있는 정중주(鄭重周)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구성재(龜聖齋)는 학자 정중주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협력하여 세운 재사이다. 정중주는 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 외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자양면 삼귀리 중귀미마을에 구성재를 비롯한 6개의 재사 및 정자 건물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마을길 맨 끝자락에 구성재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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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강릉 유씨(江陵劉氏) 시조의 묘하(墓下) 재사(齋舍). 구인재는 1800년대 초기에 유홍렬(劉洪烈)이 선산군 인동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유씨(劉氏)는 영천 지역에서는 묘금도(卯金刀) 유씨라고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의 행정 구역인 녹전동의 석동·비석동·비석골이란 지명 또한 유씨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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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권목(權穆)의 본관은 안동. 자는 심중(深仲)으로 1643년 5월 21일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입암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통훈랑(通訓郞) 울산훈도(蔚山訓導) 권해(權楷)이며, 증조는 증(贈) 공조참판(工曹參判) 권극립(權克立), 조부는 수직(壽職) 절충호군(折衝護軍) 권봉(權崶)이다. 권목의 아버지는 권구민(權求敏),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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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권성필(權成弼)의 부인 열녀 이씨(李氏)는 연산군(燕山君) 때에 남편이 죽임을 당하자 몰락하여 관비(官婢)가 되었다. 이씨는 남편은 죄 없이 죽었다고 여겨 스스로 목을 매고자 하였지만 시어머니가 말려 뜻을 이루지 못 했다. 사람들이 그를 범하고자 하였으나 이씨는 늘 차고 다니던 작은 칼로 스스로를 찔러 죽음으로써 범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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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권익(權釴)의 본관은 안동. 1643년(인조 21)에 태어나 1689년(숙종 15)에 4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통사랑(通仕郞) 권덕온(權德溫)이며, 증조는 어모장군(禦侮將軍)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 권응기(權應箕),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권신립(權信立)이다. 아버지는 권시경(權是經)이며, 어머니는 경주 최씨(慶州崔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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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에 있는 의병장 권응수를 모시는 서원. 귀천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던 권응수와 조경온을 배향한 서원으로 1676년 건립되었다가 훼철된 후 1923년 복설하였다. 현재 경내에는 강당, 영정각을 비롯한 4동의 건물이 있다. 귀천 서원은 지방도 919호선에서 치산 관광길을 따라 치산 계곡 쪽으로 가다보면 치산 마을 맞은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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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2리에 있는 청주 한씨 정남공파 문중 재사(齋舍). 귀후재는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에 입향조인 노운공 한동(韓棟)과 후손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귀후재는 신녕면 소재지에서 신화로[신녕~화산 간 도로] 2km 지점에서 북쪽으로 천변을 따라 약 600m 들어가면 산 아래 평지에 있다. 귀후재는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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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김씨(金氏)는 김극례(金克禮)의 딸로서, 혼례 후 시댁에 가지 못하고 임진왜란을 만나 왜적에게 잡혔다. 적에게 강제로 안겨서 말에 올라 떠날 때, 김씨는 차고 다니던 작은 칼을 빼내 스스로를 찔러 죽었고,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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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김도원(金道源)은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는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후손이며, 18세(世) 김을초(金乙軺)를 파조(派祖)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로서, 김을초의 장남 호연당(浩然堂) 김자양(金自養)이 영천 입향조이다. 김도원의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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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김두황은 가야(加耶)의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절효공(節孝公) 김극일(金克一)과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등을 배출한 김해 김씨(金海 金氏) 삼현파(三賢派) 후예이다. 자는 원서(元瑞), 호는 성암(省菴)이며, 1817(순조 17) 5월 7일에 태어나 1869(고종 6) 3월 11일 53세를 일기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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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우천리에 있는 김상재 처 밀양 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김상재(金尙載)의 처 밀양 박씨는 가사가 빈곤했지만 시어머니와 남편이 동시에 병에 걸리자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펴 병을 완쾌시켰는데 이 사실을 조정에서 알고 후세에 본보기를 삼고자 숙부인(淑夫人)의 관작을 내리고 정려(旌閭)했다. 김상재 처 밀양 박씨 정효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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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김언태(金彦泰)는 김알지(金閼智)를 시조로 하고 경순왕(敬順王)의 셋째 아들 영분공(永芬公) 김명종(金鳴鍾)을 1세조(世祖)로 하는 경주 김씨(慶州金氏)의 후손이며, 18세(世) 김을초(金乙軺)를 파조(派祖)로 하는 규정공파(糾正公派)이다. 초명(初名)은 김종언(金鍾彦), 자는 응률(應律), 호는 우헌(愚軒)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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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이자희(李慈喜)는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집원(李集元)과 의성 김씨(義城金氏) 사이에서 1886년(고종 23) 12월 19일에 태어나 1963년 8월 24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은 김태곤(金台坤)으로, 아버지 종사랑(從仕郞) 김기호(金棋昊), 어머니 전주 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1886년 5월 10일에 태어나 1939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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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열부. 증(贈) 정부인(貞夫人) 월성 손씨(月城孫氏)는 손영덕(孫永德)의 딸이며, 1838년(헌종 4)에 태어났다. 남편은 김찬식(金燦植)의 아들 김현학(金顯學)이며, 어머니는 영양 최씨(永陽崔氏)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아우 김현인(金顯仁) 아들 증(贈) 조봉대부(朝奉大夫) 동몽교관(童蒙敎官) 김관배(金寬培)로 뒤를 이었다. 김현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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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당. 조선 중기의 문인 박인로(朴仁老)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박인로[1561~1642]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옹(德翁), 호는 노계(蘆溪) 또는 무하옹(無何翁)으로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영천군 북안면에서 태어났다. 박인로는 어려서부터 시재(詩才)가 뛰어나 13세에 「대승음(戴勝吟)」이라는 한시 칠언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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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선천리에 있는 모와(慕窩) 성적(成績)이 건립한 서당을 재실로 이용한 건물. 모와(慕窩) 성적(成績)은 조선 선조 때의 학자로 황준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우고 국자감의 관직을 제수 받았으나 사직하고, 늙은 부모에 효도를 다하면서 후학을 양성하였다. 단양재 좌측 편에는 성적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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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당. 전삼성(全三省)이 학문을 강론하던 건물이다. 전삼성(全三省)의 본관은 용궁. 자는 군면(君勉), 호는 서강(西岡)이며, 1572년(선조 5) 7월 19일에 태어나 1641년(인조 19) 9월 2일에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전삼성은 일찍이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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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 영천의 청주 양씨 입향조인 양효지(楊孝智)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양효지의 본관은 청주. 자는 이행(以行), 호는 양곡(良谷)이며, 1414년(태종 14)에 태어났다. 12세에 이미 문장이 능하여 1433년(세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관서안렴사(關西安廉使)에 이르렀고, 1437년 정헌대부(正憲大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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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천리에 있는 박인로(朴仁老)를 배향하는 서원. 도계 서원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자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대가인 박인로[1561~164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박인로의 자는 덕옹(德翁), 호 노계(蘆溪)·무하옹(無何翁)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참가하여 무공을 세웠으며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조라 포수군 만호 등으로 일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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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에 있는 조호익(曺好益)을 배향하는 서원. 조호익[1545~1609]은 이황(李滉)[1501~1570]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연구하였고, 최황(崔滉)[1529~1603]에게 반항한 죄로 평안남도 강동(江東)에 유배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모관이 되어 전공을 세웠다. 도잠 서원은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 마을에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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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삼포리에 있는 박세미(朴世美)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동계재는 조선 숙종 때의 학자로, 영조 때 호조참의로 추증된 박세미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수흥길을 따라 400여m 이동하면 길 끝자락에 있으며, 앞쪽으로 마을이 있다. 동계재는 산 아래 경사진 대지에 동남향하여 배치되고 일곽은 토석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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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에 있는 이순신과 김완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 이순신의 부장인 김완(金完)[1546~1607]의 본관은 경주, 자는 언수(彦粹), 호는 사성당(思誠堂)으로, 김응생(金應生)의 셋째 아들이다. 1577년 무과에 급제해 1589년 사도첨사(蛇島僉使)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한산도(閑山島)에서 적선을 격파한 공로로 절충 장군(折衝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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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정순돈(丁順敦)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 두곡재는 조선 명종 때 장사랑과 전연사 참봉을 지낸 정순돈(丁順敦)의 묘하 재실이다. 정순돈은 화산면 효정리 곽남재 정민도의 5대조이다. 두곡재는 영천시 화산면 화산마을 초입에서 신녕 방면으로 0.7㎞ 지점 못을 지나 서편 좌측 못 안길로 진입하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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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류근회(柳根晦)는 고려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을 시조로 하는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9세손으로, 1252년(고려 고종 39)에 문과에 급제하여 첨자광록대부(僉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참지정사(參知政事)로 서녕부원군(瑞寧府院君)에 봉해진 류성간(柳成澗)을 시조로 하는 서산 류씨(瑞山柳氏)로 분관(分貫)되었다. 류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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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매호 서당은 영천 이씨 울산군파 문중에서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당이다. 매호 서당은 지방도 69호선을 따라 매호리 정류소가 나타나고 그 뒤편에 있는 매호리 마을 뒤, 야산 허리에 있으며 도로에서 250m 정도 떨어져 있다. 매호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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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있는 구의헌(九宜軒) 권열(權栵)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 권열은 1429년(세종 11)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지평(持平), 광주 목사(牧使) 등을 지냈다. 모선재(慕先齋)는 가상마을 초입에서 도화원길로 1㎞ 지점에 있다. 모선재 상량문 편액에 ‘숭정기원후사계미2월신미19기미(崇禎紀元後四癸未二月辛未十九己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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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에 있는 손덕침(孫德沈)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모헌재는 모헌 손덕침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손덕침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영천 출신 의병장이다. 자는 사원(士源), 호는 모헌(募軒), 본관은 월성(月城), 참봉 손주(孫胄)의 아들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권응수(權應銖)와 함께 의병을 일으켜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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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왕산리에 있는 서원. 무원 서원은 문효공 경재 하연과 정경부인 성주 이씨의 부부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하연[1376~1453]은 본관이 진주(晉州)이며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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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박경립의 자는 도보(道甫), 호는 운남(雲南)이며, 1576년(선조 9)에 태어나 1661년(현종 2) 5월 25일 8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 박정(朴珽)이며, 증조는 의성교수(義城敎授) 박윤청(朴允淸), 조부는 승사랑승의부위(承仕郞承議副尉) 박석(朴碩)이다. 아버지는 만호(萬戶) 박인로(朴仁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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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박래효(朴來孝)는 향리(鄕吏) 박재신(朴在新)의 아들로, 아버지가 병이 들자 때 아닌 물오리와 토끼 고기를 원하기에 백방으로 찾아 구해 드렸으며, 남제(南齊)의 효자 유검루(庾黔婁)처럼 병의 깊이를 알기 위해 변(便)을 맛보았다. 아버지의 상처에서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며 하늘에 빌기를 “저를 대신 아프게 해주옵소서”라고 하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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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원조(元祖)로 하고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서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해진 박언침(朴彦忱)을 시조로 하고 본관(本貫)을 밀양(密陽)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영천에 세거하는 밀양 박씨는 고려 충목왕(忠穆王) 때 과거에 급제하여 재상에 오르고 순성보리공신(純誠輔理功臣) 대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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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박사순(朴士恂)의 자는 명백(明白), 호는 백보(白甫)이며, 1564년(명종 19)에 태어났고 몰년은 알 수 없으나 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풍천군수(豊川郡守)를 지내고 영천에 입향한 박영손(朴英孫)이며, 증조는 승사랑(承仕郞) 박숙(朴琡), 조부는 장사랑(將仕郞) 박윤화(朴允和)이다. 아버지는 선릉참봉(宣陵參奉) 박려(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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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박수항(朴守恒)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이경(彛卿), 호는 백원재(百源齋)이다. 고조는 생원(生員) 박순효(朴舜孝)이며, 증조는 생원(生員) 박전(朴 專아래 心), 조부는 학정(學正) 박성세(朴聖世)이다. 아버지는 박평(朴枰)이며, 어머니는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지평(持平) 정만양(鄭萬陽)의 딸이다. 부인은 월성 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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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박종인(朴鐘仁)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영식(永植), 호는 연호(淵湖)이다. 고조는 군자감 참봉(軍資監參奉) 박수성(朴守湦)이며, 증조는 박희구(朴希熰), 조부는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 박대원(朴大元)이다. 박종인의 아버지는 박치도(朴致道)이며, 어머니는 월성 이씨(月城 李氏)로 이용하(李龍河)의 딸이다. 부인은 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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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학리에 박천억 처 경주 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열녀각. 박천억(朴千億)의 처 경주 최씨는 남편이 병에 걸리자 지극한 정성으로 하늘에 빌었으나 끝내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최씨는 눈물을 흘리며 입관 때 자신의 옷을 관에 넣고 남편의 옷을 최씨의 옷상자에 보관해 두었다가 자신이 죽으면 이 옷을 넣어 염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장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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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월성 정씨(月城鄭氏)는 정필용(鄭弼容)의 딸로 부군(夫君)은 방일로(方逸老)이다. 방일로는 온양 방씨로 영천 입향조인 방이복(方以福)의 후예이다. 방일로의 고조는 방이복의 5세손 방덕흡(方德洽)이며, 증조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府使) 방세적(方世迪),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방선원(方善圓)이다.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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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방학기의 본관은 온양, 1879년(고종 16)에 태어났다. 고조는 방일만(方日萬)이며, 증조는 방후룡(方厚龍), 조부는 방덕환(方德煥)이다. 아버지는 방원규(方圓奎)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 金氏)로 김진채(金振彩)의 딸로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 방형식(方亨植)과 사위 정원덕(鄭源德)·이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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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경주 김씨·구산 박씨·순흥 안씨·오천 정씨 등 네 문중의 친화를 도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齋舍). 방화재(芳華齋)는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 영천 중앙 초등학교 화남 분교장 뒤편에 있다. 방화재는 대청 종도리 장혀 하부에 상량 묵서가 기록되어 있으나 희미하여 판독이 어렵고 상량기문, 편액 등도 없어 건립연대를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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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사리 마을에 있는 백암 김응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백암사가 자리하고 있는 사리마을[담골]은 임진왜란 때 순절한 백암(栢巖) 김응택(金應澤)[1551~1597]의 자손들이 420여 년 간 세거해온 마을이다. 김응택의 본관은 의성. 자는 취용(就用), 호는 백암(栢巖)이다. 참봉 김순번(金順蕃)의 아들이며 임진왜란 때 백암산(柏岩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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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 건립한 서당. 봉양 서당은 조선 헌종 때 유학자인 봉양(鳳陽) 서재신(徐載信)[1821~1856]이 건립한 서당으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저서로 『봉양선생문집(鳳陽先生文集)』 3권 1책이 있다. 그중에서도 「고각사의록 내외편(顧各思義錄內外篇)」은 그의 철학적 사상 체계를 집대성한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봉양 서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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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정시희(鄭時喜)의 묘하 재실(墓下 齋室). 부영재는 정방형의 대지에 재사와 관리사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곽은 블록담장을 둘렀다. 재사 전면에 철재 대문을 세워 출입구로 사용하고, 출입구 좌측에 4칸 규모의 관리사가 있다. 재사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규모이며, 평면 구성은 좌측부터 정지, 방, 대청, 방을 드린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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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녹전동에 있는 명고(鳴皐) 정간(鄭幹)의 영정을 모시는 사당. 북계 영당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간(鄭幹)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을 하는 사당이다. 북계 영당에 모셔진 「명고영정(鳴皐影幀)」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정간의 영정은 비단을 바탕으로 정면관(正面觀)의 전신교의(全身交椅) 좌상으로서 대체로 18세기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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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소재하는 조상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집. 사당(祠堂)의 사전적 의미는 사대부가(士大夫家)를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조상의 신위[신주]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집을 가리키며, 가묘(家廟)·사우(祠宇)·사묘(祠廟)·사(祠) 등으로도 불린다. 특별히 각(閣)이라 하여 격을 높이려 한 예도 있으며, 신주 대신 영정을 모신 것을 영당(影堂), 왕실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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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양산 이씨 가문의 가묘. 가묘는 전통 시대에 집을 지으면서 조상을 모시기 위해 건립하는 것으로, 사천리 가묘는 가옥을 구성하던 주요 건물들은 사라지고 가묘만 그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상태이다. 영천 시내에서 청송 방면 25번 국도를 따라 화남면 사천리 마을까지 오면 영천중앙초등학교 화남분교장이 나온다. 분교장 옆으로 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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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사천리 장학소는 조선 중종 때 대사헌을 역임하고 예조판서에 추증된 이승수(李承須)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당이다. 경내에 충간공의 기적비가 있다. 사천리 장학소는 상뜸마을 입구에 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북영천 나들목에서 내려 북쪽에 있는 마을로 국도 35호선을 따라 가면 영천 중앙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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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창녕 조씨 재사(齋舍). 사효재는 고려 우왕 때 급제하여 희천 군수로 봉직하였고, 조선에서는 강계도 좌익병마사로 제수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절의로 영천으로 은둔한 조신충(曺信忠)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사효재는 영천시 금호읍에서 대창 방면 지방도로 909번에서 동쪽으로 500여m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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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금호리에 있는 창녕 조씨·안동 권씨·순흥 안씨 3문중에서 건립한 재사(齋舍). 삼존재는 창녕 조씨, 안동 권씨, 순흥 안씨 3문중에서 건립한 재사로 고암 조한린(曺漢麟), 권해운(權海運)의 배위인 창녕 조씨, 안국권(安國權)의 배위인 순흥 안씨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했다. 삼존재는 영천시 화북면 오동리 버스 승강장에서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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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에 있는 광주 안씨 재사(齋舍). 상로재는 조선 숙종 때 성균관 학정(學正)을 봉직한 안후정(安后靜)이 그의 선조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세운 재사이다. 학연사는 광주 안씨 영천 입향조인 안증(安嶒)[1494~1553]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안증의 호는 완귀(玩龜)이며, 남원 부사를 역임한 안구(安購)의 둘째 아들이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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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의 황보상(皇甫相)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 황보상(皇甫相)은 조선 후기 충훈부 도사를 역임한 인물로, 총명 영호하고 의기심이 투철하였으며 흉년에는 곡식을 나누어 주어 자선을 베풀었다. 상의재 정면 어칸 도리에 ‘상의재(尙義齋)’ 현판만 걸려있고, 건립연대를 알 수 있는 상량 묵서나 상량기문이 없어 연도를 밝히기 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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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경은 이맹전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이맹전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 병조판서 이심지(李審之)의 아들로 경북 선산 출신이다. 생육신 이경은 선생 부조묘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을 추모하여 세운 사당으로, 1786년(정조 10)에 임금의 명으로 지어졌다. 부조묘(不祧廟)란 불천위(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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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경은 이맹전을 기리기 위해 지은 제단. 생육신 이경은 선생 제단은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을 추모하여 세운 건물로, 1786년(정조 10)에 임금의 명으로 지어졌다. 이맹전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백순(伯純), 호는 경은(耕隱), 병조 판서 이심지(李審之)의 아들로 경상북도 선산 출신이다. 영천 시내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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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근대 공립 교육 기관이 설립되기 전 초등 교육을 담당했던 사설 교육 기관. 신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가장 보편화된 교육 기관이었던 서당은 민간 사설 교육 기관으로 오늘날의 초등 교육을 담당하던 기관이다. 서당의 기원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 있으며,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육 기관이다. 서당의 사회적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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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대구 서씨(大丘徐氏) 서복래(徐復來)의 자는 일초(一初), 호는 성재(惺齋)이며, 1657년(효종 8) 1월 11일에 태어나 1706년(숙종 32) 3월 19일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 서경치(徐景穉)이며, 증조는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서도립(徐道立), 조부는 서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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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서성보(徐聖輔)의 자는 비경(棐卿), 호는 분암(憤庵)이며, 1749년(영조 25) 5월 2일에 태어나 1820년(순조 20) 4월 26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성보의 동생 서동보(徐東輔) 또한 효자이다. 자는 자익(子翊), 호는 아헌(阿軒)이며, 1759년(영조 35) 7월 1일에 태어나 1811년(순조 20)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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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서성직(徐聖稷)의 본관은 대구. 자는 계주(啓周)이며, 1718년(숙종 44) 5월 14일에 태어나 1748년(영조 24) 3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서행달(徐行達)이며, 증조는 서대래(徐大來), 조부는 서지해(徐至海)이다. 아버지는 서유민(徐愈敏)이며, 어머니는 여주 이씨(驪州李氏)로 진사(進士) 이덕표(李德標)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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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선 중기 이후 학문 연구와 선현 제향을 위하여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 서원은 조선조에 발달한 사립 고등 교육 기관으로 1543년 풍기 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건립한 백운동 서원이 효시로서, 고려 말 이후 존재하던 서재의 강학 기능과 더불어 선현을 봉사하는 사묘(祀廟)를 가지고 있었으며, 풍속 교정, 지방 여론 조성 등의 기능을 갖춘 향촌 문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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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서유민(徐愈敏)의 본관은 대구. 자는 내적(乃績), 호는 누항(陋巷)이며, 1692년(숙종 18) 12월 16일에 태어나 1727년(영조 3) 1월 2일 3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서유민의 고조는 선무랑(宣務郞) 서강인(徐疆仁)이며, 증조는 서행달(徐行達), 조부는 서대래(徐大來)이다. 아버지는 서지해(徐至海)이며, 어머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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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서일상(徐日祥)은 양인(良人)[양반과 천민 사이의 중간 계층을 이르는 말] 막동(莫同)의 아들이다. 나이 12세 때 형인 서정남(徐貞男)과 더불어 산에 올라 나무를 하다가 호랑이가 갑자기 뛰쳐나와 형을 물자, 서일상은 울부짖으면서 낫을 휘둘러 호랑이의 정수리를 찍었다. 이에 호랑이는 물고 있던 형을 놓고 달아나니 형을 부축하여 집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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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손덕침(孫德沈)의 본관은 밀양. 자는 사원(士源), 호는 모헌(慕軒)이며, 1537년(중종 32)에 태어나 1596년(선조 29) 12월 16일 6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영천 입향조(入鄕祖) 손순조(孫順祖)로 효행으로 천거되어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고, 증조는 현감(縣監) 손후륜(孫厚倫), 조부는 현감(縣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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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손두남(孫斗南)의 본관은 밀양. 자는 사앙(士昻), 호는 추암(楸庵)이며, 1681년(숙종 7) 1월 8일에 태어나 1753년(영조 29) 1월 22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손흥운(孫興雲)이며, 증조는 손경후(孫慶後), 조부는 손만록(孫萬祿), 아버지는 손한린(孫漢麟)이며, 어머니는 달성 서씨(達城徐氏)로 서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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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최씨(崔氏)는 사인 최익찬(崔翼燦)의 딸이며, 군의 사인 손붕구(孫鵬九)의 아내이다. 열녀 최씨(崔氏)는 나이 17세에 혼례를 올린 후 시댁에 가니 남편이 병이 있어 아침저녁으로 정성을 다해 돌보며 ‘내 몸으로 대신하게 해 달라’며 하늘에 빌었다. 급기야 남편이 죽자 습렴(襲殮)의 도구들을 친히 스스로 마름하면서도 시부모님 모시기를 평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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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에 있는 손석후·손만지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손석후(孫錫後)[1613~?]와 손만지(孫萬祉)[1631~1703]는 밀양인으로 고경면 용전리 추곡마을에서 태어났다. 손석후가 일찍 죽어 후사가 없기에 형의 둘째 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손석후는 아버지가 병에 걸리자 밤낮으로 옷도 갈아입지 않고 하늘에 기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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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손주(孫胄)의 본관은 밀양. 자는 백로(伯老), 호는 노암(老巖)이며, 1491년(성종 27) 태어나 1552년(명종 7) 12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부여현감(夫餘縣監) 손문례(孫文禮)이며, 증조는 영천 입향조(入鄕祖) 손순조(孫順祖)로 효행으로 천거되어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조부 손후륜(孫厚倫)과 아버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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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 있는 서원. 송곡 서원은 유방선(柳方善)과 곽순(郭珣)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유방선[1388~1443]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본관 서산(瑞山), 자 자계(子繼), 호 태재(泰齋)이다. 학문에 정통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문에도 능하였고, 산수화도 잘 그렸다. 그의 문하에서 서거정(徐居正)·이보흠(李甫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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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향교. 신녕 향교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신녕 향교 명륜당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68호, 신녕 향교 대성전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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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건축.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신녕 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의 규모이며, 동무(東廡)·서무(西廡)가 없이 우리나라 성현들도 모두 대성전에 모셨다. 조선 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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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향교 건물 중 강학 기능을 가진 건물.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 기관이다. 신녕 향교는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보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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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산 신씨(靈山辛氏)의 시조는 고려 인종(仁宗) 때 중국에서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귀화한 후 문과에 급제하고 금자광록대부(金紫光錄大夫)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고, 정의(貞懿)라는 시호(諡號)를 받은 신경(辛鏡)이다. 후손들은 시조 신경이 처음 정착한 영산(靈山)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잇게 되었으며, 8세(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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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신원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윤긍(尹兢)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 윤긍[1432~1493]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영천(永川)이다. 초명은 윤흠(尹欽)이고, 자는 경부(敬夫), 호는 죽재(竹齋)이다. 이조참판 윤헌(尹憲)의 아들로 1447년(세종 29) 16세 때 사마시에 합격하고, 1450년 식년 문과(式年文科)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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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신이행(申以涬)은 아주 신씨(鵝洲申氏)로 회당(晦堂) 신원록(申元祿)의 5세손이다. 신이행은 효성이 지극하여 나이 겨우 9세에 혼정신성(昏精晨省)[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살피는 것]과 공양(供養)의 절도를 배우지 않고도 능하였다. 성장하여 어머니가 병이 들자 옷에는 띠를 풀지 않고 입에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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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매호리에 있는 이감(李敢)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사. 문한당(文閒堂) 이감은 려말 선초의 문신이다. 자는 의민(義民), 호는 첨정자(添丁子)이고, 영천 이씨 상장군파의 8세손이다. 1388년 문과에 장원, 간관(諫官)이 되어 직언으로써 그 명성을 떨쳤다. 1390년(공양왕 2) 9월에 사헌규정(司憲糾正)으로서 무절제한 시상(施賞)을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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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여주 이씨(驪州李氏)는 판관(判官) 이태주(李泰周)의 딸이며, 남편은 안서중(安瑞重)이다. 안서중의 자는 공신(公信)이며, 아버지 수직(壽職) 통정대부(通政大夫) 안경시(安景時)와 최남걸(崔南杰)의 딸인 어머니 월성 최씨(月城崔氏) 사이에서 1738년(영조 14)에 태어나 1777년(정조 원년) 11월 26일 4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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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안영중(安榮重)의 처 열녀 월성 손씨(月城 孫氏)는 손성도(孫星度)의 딸로 1786년(정조 10)에 태어났으며, 1814년(순조 14) 9월 24일 2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 안영중은 고려의 매염진국장군(梅塩鎭國將軍)이며 광릉군(廣陵君)인 안방걸(安邦傑)을 시조로 하는 광주 안씨(廣州 安氏)로 좌랑(佐郞) 안증(安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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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청주 양씨(淸州楊氏)의 시조인 양기(楊起)는 공민왕(恭愍王)이 북경에 머무르다가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1351년(고려 충정왕 3)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함께 귀국할 때 노빈도령(魯嬪都令)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체찰사(軆察使) 노국삼명사신(魯國三命使臣)으로 고려로 들어왔다. 후에 고려에 귀화하니 벽상삼한창국공신(壁上三韓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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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양실근(楊實根)의 본관은 청주. 1867년(고종 5) 9월 7일에 태어났고, 사망한 해는 알 수 없으나 11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양영상(楊永尙)이며, 증조는 양귀천(楊貴天), 조부는 양손업(楊遜業)이다. 아버지는 양우덕(楊遇德)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이다. 부인은 영인(令人)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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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에 있는 서당. 조선 인조 때의 문인 김복천(金馥天)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양우당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옥계리의 마을 내에 있다. 35번 국도를 따라가면 자양 방면[보현산 천문과학관]으로 빠지기 직전에 옥계리 버스 정류소가 나온다. 버스정류소 뒤쪽 마을 안에 있으며 주택과 같은 대지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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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청주 양씨 신녕파 문중 재실. 양청재(養淸齋)는 조선 세조 때의 학자로, 천품이 순후하고 우애가 돈독했던 성균관 교리 양자한(楊自漢)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정자로 현재 재사로 사용하고 있다. 양청재는 화산1리 화산마을에서 삼창 방면으로 1.2㎞ 지점 도로변에 있다. 덕강서원과 담장을 경계로 인접하고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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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파계리에 있는 서도립(徐道立)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사. 서도립[1580~1632]의 자는 중수(仲修), 호는 동천(東泉)으로 봉사(奉事) 서경치(徐景致)의 아들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3세에 노복(奴僕) 십여 명을 거느리고 의병진(義兵陣)에 가담하여 종사하고, 1597년 정유재란 때는 화왕산성(火旺山城)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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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에 있는 이술중(李述中)과 배위인 숙부인 전의 이씨의 묘하 재실(墓下齋室). 여주 이씨 재사는 영천시 임고면 수성2리 경로당 뒤편에 있다. 여주 이씨 재사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 하부에 ‘단기사천삼백사년신해(檀紀四仟三百四年辛亥)....’묵서가 기록되어 있어 1971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주 이씨 재사는 경사진 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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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 있는 한일순(韓日順)의 추모 재사(齋舍). 연호재는 조선 영조 때의 학자로 가선대부를 지낸 한일순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연호재는 지천초등학교 상송분류 앞 삼거리에서 상송안길로 150m 직진 후 다시 연지안길로 좌회전 후 100여m 이동하면 연지마을 초입에 있다. 연호재는 평탄한 대지에 북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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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해선리에 있는 이영찬(李英讚)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영모재는 포항~영천 간 국도 28호선의 고경면사무소를 지나 우측에 있는 장재 못을 지나서 북서쪽으로 30m 지점의 언덕에 있다. 이영찬은 조선 인조 때 훈련원정을 지냈다. 영모재의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청 상부 종도리 장혀에 ‘단기사천삼백년정미사월십오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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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귀호리에 있는 조희장(曺希章)의 묘하(墓下) 재사(齋舍). 영모재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로 정릉참봉을 역임한 송당(松堂) 조희장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1568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모재는 화남면사무소에서 귀호리 방향의 신화로를 따라 1.1㎞ 이동한 후 우측의 귀호1길을 따라 1.7㎞ 이동하면 새못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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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죽곡리 이보흠(李甫欽)의 묘소에 있는 재사(齋舍). 영모재는 조선 단종 때 순흥 부사로 재직하면서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참형을 당한 이보흠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영천 이씨 충장공파 17대손인 이희춘의 조부가 거창에서 영천으로 이주하면서 1897년 재실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영모재는 북영천 나들목에서 영천댐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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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에 있는 이전인(李全仁)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사. 이전인[1516~1568]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부(敬夫), 호는 잠계(潛溪)이다. 부친은 회재(晦齋) 이언적[1491~1553]이다. 천성이 온아하고,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몸가짐은 경근(敬謹)하게 하였고, 학문 또한 깊었다. 1547년에 부친 이언적이 을사사화의 여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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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에 있는 향교. 국도(國都)를 제외한 각 지방에 관학이 설치된 것은 고려 이후에 이루어졌지만, 조선 왕조의 성립과 함께 정책적으로 그 교육적 기능과 문화적 기능을 확대, 강화하였다. 따라서 향교의 전반적 설명은 조선 왕조에서 전개된 역사상을 중심으로 설명되어진다. 영천 향교는 영천시 법원의 좌측 배면 쪽에 교촌길을 따라가면 야산 아래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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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에 정환직(鄭煥直)과 정용기(鄭鏞基) 부자의 전공을 기념하기 위한 재사(齋舍). 충효재는 1905년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아 영천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항일투쟁을 벌인 정환직과 정용기 부자의 충효 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동네 이름을 검단동에서 충효동으로 고쳐 1923년에 건립하였다. 정환직[1843~1907]은 한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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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에 있는 영천 향교의 문묘(文廟). 영천 향교는 옛 성현께 제사를 드리고 학문을 갈고 닦는 지방의 국립교육기관이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영천 향교 대성전은 법원의 좌측 배면 쪽에 교촌길을 따라가면 야산 아래 있는 영천 향교 내에 있다. 1502년(연산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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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도남동에 있는 서당. 예남재는 안후정이 후학 양성을 위하여 지은 서당이고 상로재는 안후정이 지은 조상의 재실(齋室)이다. 예남재 동쪽으로는 봉동, 서쪽으로는 금호강과 접해있다. 영천시 민속자료 제20호인 완귀정 남쪽에 있다. 예남재는 숙종 때 학자인 성재(省齋) 안후정(安后靜)[1659~1702]이 후학 양성을 위하여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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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용계리에 있는 서당. 용계 서재(龍溪書齋)는 한말의 학자인 이병춘(李秉春)이 후학을 양성하던 서당이다. 용계 서재는 북안면 용계리 마을 내에 있다. 지방도 921호선을 따라 명주교회와 명주 경로당 사이로 난 새불길을 따라 550여m 가면 용계리 마을이 나타나는데, 그 우측으로 150m 가면 마을 내에 있다. 용계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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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서원. 용계 서원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이맹전(李孟專)[1392~1480]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용계 서원은 영천호를 끼고 도는 69번 도로를 따라 가다가 원각길로 빠지는 길을 통하여 가면 원각마을이 나오는데 마을 초입부에 있다. 용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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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 건립한 서원. 우고 서사가 있는 마을은 조선 세조 때 사간원 헌납 등 내직을 두루 거치고 황해도 풍천 군수로 재직 시에 지방 정사를 살피고 돌아온 암행어사의 보고에 ‘청렴 고결하고 빙옥처럼 맑다’고 하여 왕으로부터 청풍당이란 호를 하사받은 박영손[1442~1486]의 자손들이 세거해온 마을이다. 우고 서사와 청풍당(淸風堂)은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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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 있는 조황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 우모재는 창녕 조씨 영천공파 입향조인 사의공의 손자 훈도공 조황(曺艎)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정자이다. 조황은 학문이 뛰어나고 행의가 중후하였으며 함평 훈도를 역임했다. 우모재는 화북면 오산리 오산마을회관에서 마을 뒷길로 가면 마을 끝자락에 있다. 우모재는 언제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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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 있는 벽진 이씨 영천 종중 재실. 원계재(圓溪齋)는 벽진 이씨 영천 종중에서 종사를 논의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원각골의 계류를 바라보면 용산정사(龍山精舍), 독락당(獨樂堂) 등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원계재 맞은 편에는 용계서원이 있다. 원계재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나 기문과 묵서 등을 확인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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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원당리에 있는 정광후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실. 영일 정씨는 시조 정습명 때부터 영일에 세거를 하였으나 고려 말에 정몽주(鄭夢周)가 순절하자, 가문이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전공판서(典工判書)였던 정인언(鄭仁彦)이 아들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와 함께 영천 남전촌(南錢村)[지금의 도동]으로 은거하게 됨으로써 영천이 세거지(世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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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 있는 김응정(金應挺)과 김연(金演)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원모재는 조선 명종 때 참봉을 지낸 김응정과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전한 공으로 한성부 판관에 증직된 김연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원모재는 자양면 삼귀리 마을 중귀미에 6개의 재사 및 정자 건물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으며 구성재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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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사천리의 정몽길(丁夢吉)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한 재사(齋舍). 원모재(遠慕齋)는 나주 정씨 영천 입향조인 정몽길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된 재사로 알려져 있지만 전체적인 배치 구성을 볼 때 살림집을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원모재(遠慕齋)는 북영천 나들목에서 청송 방면에서 사천2길로 진입하여 안마을로 중간쯤 좌측 편에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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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행해지는, 중국 공자를 시조로 하는 전통적 학문과 종교적 의례 및 활동. 유교는 중국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도덕 사상이다. 인(仁)을 기본 이념으로 삼고, 수신(修身)·제가(齊家)·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종의 윤리학이며 정치학을 내재한 종교 개념으로,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일본·베트남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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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 있는 유서룡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유서룡(柳瑞龍)[1789~1867]의 본관은 문화. 자는 성연(聖淵)이다.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봉양해 비서승(秘書丞)의 증직이 내려지고, 이에 정효각을 세워 기리고 있다. 어느 날 입안에 가시가 있는 호랑이가 집 앞에 와 있기에 이를 꺼내 주니 은혜를 잊지 못한 호랑이가 유서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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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윤필성(尹弼成)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주석(柱錫)이고 1794년(정조 18)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에서 태어나 1850년(철종 원년) 1월 2일 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윤경언(尹慶彦), 증조는 윤면교(尹勉敎), 조부는 윤수인(尹守仁)이다. 아버지는 윤순대(尹順大)이며 어머니는 영양 최씨(永陽崔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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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이감(李敢)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고려 시대 학자인 이감[1362~1426]의 자는 의민(義民), 호는 문한당(文閒堂)으로 정몽주의 고향 인근에서 태어나 정몽주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138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385년 문과에 급제해 내·외직을 두루 거쳐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를 지냈다. 조선이 개국되자 언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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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오위장 이득운(李得運)의 딸이며, 이계문(李啓文)의 아내이다. 열녀 이씨(李氏)의 아버지 이득운(李得運)은 여러 차례 벼슬을 쫓아 경성에서 살다 결국 객지에서 죽었다. 당시 이씨는 어린 소녀였으나 널을 붙잡고 고향으로 운구하여 장례를 치르고, 스스로 이계문과 혼인하여 부도(婦道)를 행하였다. 남편의 상을 당하여서도 상례의 범절을 일일이 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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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경주 이씨(慶州李氏)의 시조는 알천양산촌장 이알평(李謁平)이며, 중시조는 소판공(蘇判公) 이거명(李居明)이다. 경주 이씨의 세계는 중시조 이거명의 16대손[고려 말기]에서 크게 8파로 나뉘고 다시 아래로 내려오면서 대소 70여 파로 분파된다. 8대파는 평리공파(評理公派)·이암공파(怡庵公派)·익재공파(益齋公派)·호군공파(護軍公派)·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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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득봉(李得鳳)의 본관은 벽진. 자는 성서(聖瑞), 호는 귀촌(歸村)이며, 1573년(선조 계유)에 태어났으며, 몰년은 알 수 없고 12월 26일에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경력(經歷) 이진산(李震山)이며, 증조는 군자감참봉(軍資監參奉) 이팽조(李彭祖)이니 칠곡 월오(月塢)에서 영천시 고경면 추곡리로 이거(移居)하여 후손이 세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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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단인(端人) 일선 김씨(一善 金氏)는 진사(進士) 김건준(金建準)의 딸로, 성산인(星山人) 이세하(李世賀)의 부인이다. 이세하는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 후손으로, 처음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17세(世) 이석보(李錫保)의 네째 아들 이방(李芳)이 이세하의 6대조가 된다. 이세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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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부. 연주 현씨(延州玄氏)는 현성구(玄聖龜)의 딸로 1873년(고종 10)에 태어났으며, 남편은 이수상(李秀祥)이다. 이수상은 아버지 이종한(李宗漢)과 어머니 함평 정씨(咸平鄭氏) 사이에서, 1870년(고종 7) 2월 12일에 태어났다. 슬하에 3남을 두니 이기헌(李基憲)·이기준(李基俊)·이기조(李基祚)이다. 연주 현씨는 4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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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쌍계동에 이수징의 처 함양 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각. 이수징(李洙徵)의 처 함양 박씨(咸陽朴氏)는 시집 간지 3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아픔을 참고 늙은 시부모를 위로하다 초상이 끝나는 날 약을 먹고 죽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이수징 처 함양 박씨 정려각은 영천시 쌍계동 쌍계마을에 있다.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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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조선 후기 효자. 이승화의 자는 내윤(乃允), 호는 참오정(參五亭)이다. 이승화(李承和)는 고려 초기에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고울군(高鬱君)[영천의 옛 이름]에 봉해진 이문한(李文漢)을 시조로 하고, 고려 때 좌명공신(佐命功臣) 신호위대장군(神號衛大將軍)을 지내고 영양군(永陽君)에 봉해진 이대영(李大榮)을 중시조(中始祖)로 하는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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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시복(李時復)은 고려 개국공신 이능일(李能一)을 시조로 하는 성산 이씨(星山李氏) 후손이다. 처음 영천에 입향한 사람은 17세(世) 이석보(李錫保)의 넷째아들 이방(李芳)으로 이시복의 9대조가 된다. 이시복의 자는 내백(來伯), 호는 신와(愼窩)이며, 1758년(영조 34)에 태어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이기(李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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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흥해 사인 정사익(鄭四益)의 딸이며, 본군의 사인 이우협(李虞莢)의 아내이다. 열녀 정씨(鄭氏)는 적들이 집에 들어와 장차 남편이 될 이우협을 해치려 하자 팔을 벌려 막으면서 말하기를 “남편이 무슨 죄가 있는가? 차라리 나를 죽여라”라 하여 대신 창칼을 받아 죽어 이우협을 살렸다. 1704년(숙종 30)에 이 사실이 알려져 정려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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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도암리에 있는 이일장·이득룡·이득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 삼충각(三忠閣)은 조선 시대 임진왜란 당시 자인[현재의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전투와 영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이일장(李日將)·이득룡(李得龍)·이득린(李得麟)의 공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건립했다. 세 사람은 본관이 벽진(碧珍)[현재의 경상북도 성주]으로 고경면 도암리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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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공덕리에 이재영(李在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비 및 비각. 이재영[1819~1884]은 본관이 경주이며, 지극한 효성으로 이 지역에서 이름이 난 인물이다. 아버지의 병환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드리니 다음날 쾌차했다고 전하며, 겨울에 얼음을 깨어 물고기를 잡아드리는 등 부모가 드시고 싶은 음식은 아무리 멀어도 구해드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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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효자. 이재학(李在鶴)의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경제(慶堤), 호는 백원재(百源齋)이며 1880년(고종 17) 9월 13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이창번(李昌蕃)이며, 증조는 이장영(李章霙), 조부는 이덕수(李德秀)이다. 아버지는 이영백(李永白)이나 숙부 이화백(李和白)에게 출계하였다. 부인은 월성 최씨(月城 崔氏)로 최세진(崔世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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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김선중(金先仲)의 딸로 남편은 이종근(李鍾根)이다. 이종근은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자는 치문(致文)이며, 아버지는 부호군(副護軍) 이규선(李圭善)이고, 어머니는 능주 구씨(綾州具氏)이다. 슬하에 1남을 두니 이성우(李成雨)이다. 열녀 김해 김씨는 이종근의 처로 가세가 빈한함에도 불구하고 참고 견디며 지극히 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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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치두(李致斗)의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경칠(景七), 호는 죽오(竹塢)이며, 1824년(순조 24)에 태어나 1889년(고종 28) 10월 4일 6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통덕랑(通德郞) 이만휘(李萬輝)이며, 증조는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 판윤(漢城判尹) 이광옥(李光玉), 조부는 통덕랑(通德郞)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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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 이치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이치두(李致斗)[1824~1889]의 본관은 여주, 자는 경칠(景七), 호는 죽오(竹塢)이다. 어릴적부터 효성스러웠으며 아버지가 병에 들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성을 다해 약을 구하러 다녔다. 늦은 밤 산중으로 약을 구하러 다닐 때는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가 호위해 주었다고 한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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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이택화(李澤和)의 처 정부인(貞夫人) 안동 권씨(安東 權氏)는 1854년(철종 5) 9월 26일에 태어났으며, 통덕랑(通德郞) 권여택(權與宅)의 딸이다. 이택화의 본관은 영천, 고조는 이성부(李聖溥)이며, 증조는 이학배(李學培), 조부는 참봉(參奉) 이중권(李中權)이다. 아버지는 수직(壽職) 가선대부(嘉善大夫)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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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필영(李弼榮)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은설(殷說)이며, 1797년(정조 21) 3월 7일에 태어나 1847년(헌종 13) 12월 15일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수문장(守門將) 이시원(李時元)이니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상리리로 처음 옮겨 살았으며, 증조는 이흥춘(李興春), 조부는 이재발(李再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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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열부. 효열부(孝烈婦)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김경용(金慶鏞)의 딸로 1933년에 태어났으며, 남편은 이혜우(李惠雨)이다. 이혜우의 자는 기은(基殷)이며, 아버지 이종명(李鍾明)과 허용(許龍)의 딸인 어머니 하양 허씨(河陽許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편 이혜우와 사이에서 1녀를 두었고, 사위는 강릉인(江陵人) 함진수이다. 김해 김씨는 이혜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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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이희영(李曦榮)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성중(成重), 호는 동포(東圃)이며, 1849년(헌종 15) 1월 2일에 태어나 1925년 2월 11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증(贈)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추부사(中樞府事) 이덕룡(李德龍)이며, 증조는 이수억(李壽億), 조부는 이시춘(李時春)이다. 아버지는 이유화(李裕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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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에 있는 서원. 임고 서원은 고려 말의 충신이자 유학자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임고 서원은 28번 국도의 임고 교차로 방면에서 69번 국도로 영천댐 방향으로 가다가 임고 삼거리에 있다. 임고 서원은 1553년(명종 8) 정몽주(鄭夢周)의 덕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임고면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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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임고 서원에 소장된 전적. 임고 서원은 고려 말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를 주향한 서원으로, 1553년(명종 8)에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건립되었다. 이에 앞서 이황(李滉)[1501~1570]은 1550년(명종 5) 백운동 서원[소수 서원]의 사액 운동을 후원했다. 백운동 서원은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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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에 있는 권덕온(權德溫)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 입동재(卄洞齋)는 안동 권씨 복야공파 문중 재실로 조선 시대 통사랑(通仕郞)을 지낸 권덕온(權德溫)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이다. 권덕온의 묘는 입동재 북편 산 중턱에 있으며 입동재는 묘하재실(墓下齋室)로 초창에 관한 기록은 알 수 없으나 중수기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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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서당. 자양 서당은 김응생(金應生), 정윤량, 이의 등이 향리의 후진 교육을 위해 자양면 노항동에 창건한 서당 건물이다. 서당 내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으며, 동인각(東麟閣)에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모셔져 있는 김완(金浣) 장군은 김응생 선생의 제3자(第三子)이다. 자양 서당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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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이수명(李受明)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자천재(紫泉齋)는 고려 말의 문관으로 감무 벼슬을 지냈으며 학문이 출중하였던 이찬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알려져 왔다. 재사 좌측에 있는 산이 문중산으로 이 산 중턱에 재단을 꾸미고 묘를 두었다. 『영양지(永陽誌)』에 자천재의 기록이 있는데 “재군북성곡기룡산하한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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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장원호(蔣元琥)는 사인(舍人) 장시술(蔣時述)의 아들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모심에 효도가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붕어를 드시고 싶어하셨는데, 때는 겨울이라 강이 얼어붙어 낚시를 드리울 수 없었다. 장원호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울부짖으며 하늘에 빌면서 낚시를 드리우자 물고기가 홀연히 물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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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있는 묘소나 사묘 옆에 지은 집. 재사(齋舍)는 학문과 덕행, 충효가 뛰어난 인물이나 입향조, 중시조 등을 추모하는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墓所)나 사묘(祠廟) 옆에 지은 집을 말하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청결히 하고, 1년에 한 번 이상 자손들이 모여서 제사 지내는 곳이라 하여 재숙소(齋宿所)라고도 한다. 조선 시대 재실은 묘제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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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대걸의 본관은 나주, 자는 주서(周瑞), 호는 경와(敬窩)이며, 1830년(순조 30)에 태어나 1857년 5월 21일 2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인태(丁麟泰)이며, 증조는 정덕열(丁德烈), 조부는 정사상(丁師尙), 아버지는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 정성교(丁成敎)이며,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제주 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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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대천리에 정대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자각. 정대걸(丁大杰)[1830~1857]의 본관은 나주, 자는 주서(周瑞), 호는 경와(敬窩)이다. 정대걸은 어릴 때부터 지성으로 부모를 모신 효자로 이름이 났다. 어머니의 오랜 병중에 하루는 회를 먹고 싶어하시니 얼음을 깨고 낚시하면서 진정으로 기도를 하니 고기가 잡혔다고 하는 등 그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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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동빈(鄭東彬)은 노모를 봉양함에 극진하여 효자로 소문이 났다. 어머니가 설사가 나서 살아 있는 물고기를 드시고자 원하였으나, 때가 마침 한 겨울이어서 잡기가 곤란했는데 칠성장어[또는 숭어라고도 함]가 저절로 도랑에서 나와 이를 잡아 드렸다. 또한 부엉이가 살아 있는 꿩을 떨어뜨리기에 가져다가 음식을 해드렸더니 바로 신비한 효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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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게 된 것은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이다.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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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억(鄭嶷)의 본관은 영일(迎日). 고조는 장수도 찰방(長水道察訪) 정이휘(鄭以揮)이며, 증조는 직장(直長) 정차순(鄭次諄), 조부는 참봉(參奉) 정호(鄭灝)이다. 아버지 어모장군(禦侮將軍) 정경희(鄭景禧)이며, 어머니는 고령 김씨(高靈 金氏)로 김명견(金命堅)의 딸이다. 아우 정잠(鄭岑)도 지극한 효성으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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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정유인(鄭裕仁)의 처 밀양 박씨(密陽朴氏)는 박형태(朴亨泰) 딸이다. 정유인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의 후손으로, 고조는 정기양(鄭岐陽), 증조는 정일종(鄭一宗), 조부는 정하시(鄭夏時), 아버지는 정진휴(鄭軫休), 어머니는 영산 신씨(靈山 辛氏) 신명신(辛命新)의 딸이다. 밀양 박씨는 슬하에 후사(後嗣)가 없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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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정응기 처 오천 정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효열각. 정응기(丁應璣)의 처 오천 정씨(烏川鄭氏)[영일 정씨(迎日鄭氏)]는 정유재란 때 왜군의 침입을 피해 신산[노고산]으로 시부모와 함께 피신했다. 하지만 왜군에게 붙잡혀 시아버지는 왜군에게 죽고 시어머니도 죽이려 하면서 자신을 핍박하자 기지를 발휘해 시어머니를 보내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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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충신.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를 지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의번(鄭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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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정의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효각. 정의번(鄭宜藩)[1560~1592]의 본관은 영일, 자는 위보(衛甫), 호는 백암(柏巖)으로 정세아(鄭世雅)의 아들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박소’에서 권응수와 정대임이 승리하는데 앞장섰고, 아버지 호수 정세아와 함께 의병[창의정용군]을 조직해 영천성 복성(復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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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치규(鄭致奎)의 본관은 영일. 자는 경오(景五)이며, 1812년(순조 12)에 태어나 1833년 4월 15일 2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효자 정수강(鄭壽崗)의 5세손으로, 고조는 정일현(鄭一玄), 증조는 정하종(鄭夏宗), 조부는 정발(鄭撥)이다. 아버지는 정필형(鄭弼衡)이며, 어머니는 여강 이씨(驪江李氏) 이준상(李駿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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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효자 정치규(鄭致奎)의 처 의성 김씨(義城金氏)의 증조는 김익범(金益範)이며, 조부는 김준익(金俊翼), 아버지는 김완(金琬)이다. 부군(夫君)인 영일 정씨(迎日鄭氏) 정치규(鄭致奎)는 효자(孝子) 정수강(鄭壽崗)의 5세손으로, 고조는 정일현(鄭一玄), 증조는 정하종(鄭夏宗), 조부는 정발(鄭撥), 아버지는 정필형(鄭弼衡)이다. 어머니는 여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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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림동에 있는 정한헌 처 이천 서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창열각. 오천(烏川)[영일(迎日)]인 정한헌(鄭澣憲)의 처 이천 서씨(利川 徐氏)[아버지 서영규(徐榮奎)]는 구한말 친정에 근친을 갔던 중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들었다. 바로 달려와 모든 장례 절차를 마쳐놓고 자신은 초빈에 가서 남편이 평소 사용하던 허리끈을 소나무에 묶고 남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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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조경온(曺景溫)의 본관은 창녕. 자는 여율(汝慄), 호는 임계(林溪)이며, 1548년(명종 3) 5월 9일에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장사랑(將仕郞) 조계조(曺繼祖)이며, 증조는 정릉참봉(貞陵參奉) 조응하(曺應河), 조부는 경릉참봉(敬陵參奉) 조영(曺英)이다. 아버지는 정릉참봉(貞陵參奉) 조희장(曺希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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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유씨(柳氏)는 사인 유하극(柳河極)의 딸이며, 사인 조광열(趙光烈)의 아내이다. 열녀 유씨는 시집을 간 뒤 몇 달 만에 남편의 초상을 만나니, 상례에 따라서 조용히 장례를 준비하며 시부모님 모시기를 평소와 다름없게 하였다. 장례일이 이르자 같이 죽을 생각으로 스스로 빈소에서 목매어 죽었다. 1792년(정조 16)에 사실이 알려져 정려(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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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있는 김자양(金自養)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김자양의 자는 선군(善君), 호는 호연당(浩然堂)이다. 정숙공(貞肅公) 김인경(金仁鏡)의 7세손으로 태종 조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병조정랑(兵曹正郞)을 거쳐, 통천 군수(通川郡守)와 청풍 부사(淸風府使)를 역임하여 치적이 있음에 그 지방 백성들이 청덕비(淸德碑)를 세웠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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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신광리에 있는 서당. 지헌 서당(芝軒書堂)은 조선 고종 때의 학자인 박용우(朴鏞佑)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지헌 서당은 개상마을 서쪽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다. 개상마을은 신광리에서 가장 크고 중심되는 마을로 앞에는 들이 있고 뒤에는 못이 있다. 지헌 서당은 조선 말에 건립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현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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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과전동에 있는 정대임(鄭大任)과 정제(鄭梯)를 배향한 조선 후기 서원. 정대임의 본관은 영일,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이며 1553년(명종 8) 6월 4일에 태어났다. 정대임은 임진왜란에 분기하여 일어나 일신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창의하여 적을 토벌하고, 왜군을 공격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정제의 자는 가승(可升), 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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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상리에 있는 황보능장(皇甫能長)의 묘하 재실(墓下 齋室). 창암재는 영천 황보씨의 시조인 황보능장(皇甫能長)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황보능장은 영천의 호족 출신으로, 신라 말 고려 초의 혼란기에 영천 지방을 지키기 위해 금강성을 축조한 장군으로 전해오고 있다.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을 이룩한 역사적 인물로서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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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창상리에 있는 청안 이씨 재실. 창암재는 청안 이씨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로, 육군 3사관학교에서 단포리 방향으로 호국로를 따라 300여m 직진하면 창상리 방향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산 아래 길을 따라 1.7㎞ 이동하면 창상리 솔밭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 초입의 우측에 창암재가 있다. 창암재는 마을 초입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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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금호읍 삼호리에 있는 서당. 창주 서당은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 단종 때 집현전 부제학을 지낸 정재 조상치(曺尙治)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수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셔 서원으로 건립하였으나 후에 훼철된 후 서당으로 복원하였다. 창주 서당은 삼호리 마을 천변에 있다. 창주 서당은 1727년(영조 3)에 창수사를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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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월곡리에 있는 청주 양씨 문중의 재사. 첨모재는 양사(楊泗)의 부인 숙부인 영양 최씨를 기리고 그 아래 자손들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된 재사이다. 양사는 조선 중기 인물로, 본관은 청주 양씨이며 음직(蔭職)으로 종 6품의 관직인 통례원 인의(通禮院 引儀)를 지냈다. 양사와 부인인 영양 최씨의 묘소는 덕강[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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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죽전리에 있는 문흥범(文興範)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재사. 첨모재는 조선 광해군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을 지낸 간은(澗隱) 문흥범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첨모재는 지천 초등학교 상송 분류 앞 삼거리에서 상송안길을 따라 2.2㎞ 직진하여 탑들소일길로 우회전 후 마을 안길을 따라 100여m 이동하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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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달성 서씨 재사(齋舍). 청호재는 기묘사화를 일으킨 심정과 내외종간(內外從間)의 정을 끊고 의리를 밝혀 영천으로 이거(移居)하여 학문과 자연을 벗 삼아 일생을 마친 서숙원(徐叔元)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지은 재사이다. 청호재는 구암마을 좌측 경부고속도로 아래 구암안길을 따라서 800여m 가다가 갈림길에서 우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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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최경제(崔經濟)의 처 문화 류씨(文化柳氏)의 증조는 참판(參判)을 증직 받은 류보(柳葆)이며, 조부는 참봉(參奉)으로 승지(承旨)를 증직 받은 류연양(柳延陽), 아버지는 류요신(柳堯臣)이다. 부군(夫君)인 최경제의 고조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최치온(崔致溫)이며, 증조는 선무랑(宣武郞) 밀양훈도(密陽訓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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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부. 효부(孝婦) 수원 백씨(水原白氏)는 1847년(헌종 13)에 태어났다. 남편은 최득선(崔得先)이며, 아버지 최순황(崔舜凰)과 어머니 안동 김씨(安東金氏) 사이에서 1843년(헌종 9)에 태어나 1876년(고종 13) 5월 11일 3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슬하에 아들 최일룡(崔馹龍)이 있다. 수원 백씨는 경주 최씨 문중에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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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정중교(鄭重喬)를 추모하기 위한 재실. 정중교의 본관은 오천. 호는 모재(慕齋)로 조선 후기 영조 때의 학자로 후손들이 그를 추모하기 위해 추모당(追慕堂)이라 이름 짓고 건립했다. 추모당은 행정구역으로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 귀미마을에 있다. 삼귀리는 영천댐 둘레길을 따라 자양면소재지를 지나면 벽진 이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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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용전리에 있는 성이량(成以諒)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추모재는 조선 광해군 때의 학자로 성균관 진사를 지냈으며, 장현광과 친교를 맺으며 학문을 교류한 성이량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재사이다. 성이량은 1586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여정(汝貞), 호는 송암(松庵)이다. 진사를 지냈으나 과거를 접고 학문에 힘쓰니 세상의 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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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조곡리에 있는 조변안(曺變安)과 조석보(曺碩輔)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추모재는 조선 시대 대·소과에 급제하고 참의를 지낸 조변안과 예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통정대부 작위를 받은 아들 조석보 부자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추모재는 영천시 대창면 조곡리 조곡 마을회관에서 마을 안길을 따라 500여m 위쪽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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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성천리에 있는 월성 박씨 재실(齋室). 추원재는 성균관 진사를 지낸 박석문과 판관 박광명, 첨정 박영약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추원재는 금호읍 성천 마을 성천 앞길에서 대평리 방향으로 직진하면 우측에 우벌길로 진입하는 진입로가 나타나고, 그 길을 따라 800m 정도 들어가면 우측에 우벌 못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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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어방리에 있는 조상치(曺尙治)의 묘하 재사(墓下 齋舍). 추원재는 조선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단종 때 부제학을 역임한 조상치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추원재는 영천시 운천보건진료소에서 운천2리 마을로 200여m 이동한 후 우회전하여 운잠길을 따라 산을 끼고 1.2㎞ 들어가면 능곡지 저수지 아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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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북안면 도유리에 있는 이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재사. 추원재는 고려 시대 생원이며 조선 시대에 이조판서를 증직 받은 이당(李唐)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이당은 부인 인화 이씨와의 사이에 오형제를 두었는데 그 중 둘째 이집(李集)이 후대에 번성하였다. 이집의 호는 둔촌, 호연 등으로 문장과 도덕으로 명성을 울렸으며 1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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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에 있는 정응백과 정응숙의 묘소에 있는 재사(齋舍). 품산재는 조선 인조 때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정응백과 통례원인의를 지낸 정응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품산재는 신녕 초등학교 앞 신화로를 따라 연정리 방향으로 1.2km 정도 이동하여 우측 방향에 있는 농로를 따라 200여m 직진한 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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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하전철(河全澈)은 역리(驛吏)로서 효성이 지극했다. 나이 8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어른처럼 슬퍼하였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묘소의 곁에 여막을 짓고 81세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집에 내려오지 않았기에 주위의 칭송이 있었으며, 도신(道臣)이 이를 알려 급복(給復)[공이 있는 자에게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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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벽진 이씨 위계종중의 묘하(墓下) 재실(齋室). 하천재(夏泉齋)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이며 장사랑을 역임한 이배원(李培源)과 이의(李椅) 부자와 함께 통정대부 작위 이수눌(李守訥)과 이수겸(李守謙)의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이다. 자양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9호선을 타고 평천리 방향으로 200여m 이동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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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오천 정씨 집안의 묘와 정세아의 묘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지은 재실과 비각.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는 임진왜란 때 의병 대장에 추천되어 영천성 복성 전투, 경주성 전투 등에서 많은 공을 세웠다. 정세아는 임진왜란이 끝난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강호정사(江湖精舍)에서 제자를 기르며 학문을 닦아 덕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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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하성(河姓)은 향리(鄕吏)인 한응규(韓應奎)의 아내로, 남편 한응규가 죽은 후 10년 동안 한 번도 빗질도 않고 목욕도 하지 않자 일가들이 상복(喪服)을 벗도록 권하였으나 죽음에 이르도록 벗지 않고 울다가 병으로 거적 위에서 죽으니 고을 사람들이 열부라 칭송하였다. 이로 인하여 암행어사가 계장(啓狀)을 보내 급복(給復) 50부(負)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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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재사(齋舍). 한천재(漢川齋)는 임진왜란 때 죽음으로 충효를 다한 조경온(曺景溫)의 조부인 조영(曺英)의 재실이다. 조경온[1548~1592]은 조선 중기 유학자로 자는 여율(汝慄)이고, 호는 임계(林溪)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출신지는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이다. 고조는 조계조(曺繼祖)이고, 증조는 영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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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오계리에 있는 창녕 조씨 서당. 함양재는 창녕 조씨 문중에서 후손들의 학업을 위해 건립한 서당으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11년 전에 붕괴되어 다시 지어진 건물이다. 함양재는 영천 만취당이 있는 마을로 만취당 앞 중동길을 따라 170여m 이동하면 종동마을 동쪽 끝의 얕은 산자락에 있다. 함양재는 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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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 있는 서당. ‘현고(賢皐)’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 조사언(曺士彦)이라는 학자가 정착한 이후 그 자손이 살았으며, 인근에서 그 공덕을 칭송할 수 있을 정도로 현명하였기에 현(賢)자와 지형이 경사진 언덕이라 고(皐)자를 합하여 현고(賢皐)라 부르게 되었다. 현고 서당(賢皐書堂)은 조용석(曺龍錫) 선생이 강학하는 곳으로 건립하였다. 조용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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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도남동 호연사 유허지에 있는 비와 비각. 호연사(虎淵祠)는 조선 중종 때의 학자인 안증(安嶒)[1494~1553]을 향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었다. 광주 안씨(廣州 安氏) 경상북도 영천 입향조인 안증의 자는 사겸(士謙), 호는 완귀(玩龜)이다. 안증은 아버지가 김종직의 문인이었기에 김종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벼슬에는 뜻이 없고 학문에만 심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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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정씨(鄭氏)는 의흥 사인 홍성영(洪聖瀛)의 아내이다. 혼례 후에 남편 홍성영을 따라 경상북도 영천군의 서북쪽 북습리에서 우거하였다. 남편이 병으로 일찍 죽으니, 정씨는 곡을 하고 가슴을 치면서 애통해 하며 곡기를 끊었다. 주위에서 안타깝게 여겨 입안에 물을 떠 넣어주어도 삼키지 않고 9일 만에 드디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1676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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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선원리에 있는 정세아(鄭世雅)와 정의번(鄭宜藩)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 환구 세덕사(環丘世德祠)는 임진왜란 때 영천 출신 의병장이었던 정세아와 정의번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정세아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화숙(和叔), 호는 호수(湖叟)이며, 영천 출신으로 정윤량(鄭允良)의 아들이다. 정의번의 자는 위보(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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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황보성(皇甫星)은 고려 초 상장군(上將軍) 황보능장(皇甫能長)을 시조로 하는 영천 황보씨(永川皇甫氏)의 후손이다. 5대조 황보덕(皇甫德)이 장기(長鬐)[포항시 장기면]에서 영천으로 이주하였으며, 고조는 황보령(皇甫齡), 증조는 황보남(皇甫楠), 조부는 황보익(皇甫益), 아버지는 황보탈(皇甫侻)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 영양군(永陽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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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 있는 서원. 회계 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임계(林溪) 조경온(曺景溫)을 배향하고 있다. 회계 서원은 삼창리 마을 뒤쪽 숲 뒤 바깥 못의 우측에 있다. 회계 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임계 조경온을 배향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신녕면 치산리의 구천서원에 충의공 권응수와 함께 제향하였으나 문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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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 있는 서당. 횡계 서당은 원래 훈수 정만양과 지수 정규양을 배향하는 횡계서원으로 건립하였으나 훼철되어 횡계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경내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1호인 모고헌이라는 정자가 있다. 횡계 서당은 횡계천을 따라 횡계저수지 방향으로 가면 횡계리 마을 입구 도로 좌측 아래 횡계천에 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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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리에 있는 이시손과 아들 이막배를 추모키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 이막배의 아버지는 군자감정(軍資監正) 이시손(李時孫)이며, 어머니는 영천 이씨(永川 李氏)로 목사(牧使) 이두표(李斗杓)의 딸이다. 이막배는 1611년 광해군(光海君) 신해년(辛亥年) 2월 13일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화산1리에서 태어났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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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효정리에 있는 서당. 효정리 서당은 나주 정씨(羅州丁氏) 문중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고종 시대인 1800년 후반에 건립하였고, 효정리 마을의 서당지 좌측에 있다. 효정리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주위에는 토석 담장을 두르고 서당의 우측 모서리 담장 부분에 사주문을 내어 대문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