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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강봉학(姜鳳鶴)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활약한 의병으로 1890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수성리에서 태어났으며 1914년 군자금 활동으로 피체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그해 10월 순국하였다. 강봉학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강봉은(姜鳳殷)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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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신월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영천 지역에 전투용 비행기를 보관하려고 건립한 창고. 격납고는 비행기를 보관하거나 정비할 목적으로 건립한 창고로 영천의 격납고는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볼 때 소형 전투기 격납고이다. 금호읍 신월리와 봉정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데 해발 226.8m 봉우리 서·남쪽 일대 및 해발 191.1m 봉우리 남쪽 일대에 대단위 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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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구봉서(具鳳書)의 본관은 능성(綾城)이고, 구연길(具然吉)의 아들로 1883년(고종 20) 영천시 고경면 학리에서 태어났으며, 1927년 세상을 떠났다. 구봉서(具鳳書)는 일제의 국권 침탈에 대항하여 조국의 회복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의병 투쟁에 가담하여 영천 지역을 중심으로 군자금 모금을 주도한 의병이다. 그는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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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권규섭(權奎燮)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좌영장으로 활약한 의병이다. 권규섭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인숙(仁俶)으로, 1883년(고종 20) 지금의 영천시 화산면 대기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권영식(權英植)과 어머니 경주 최씨(慶州崔氏)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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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교육자. 권오봉(權五鳳)의 본관은 안동. 자는 덕여(德汝), 호는 청민(靑民)이며, 1930년 11월 13일에 태어나 1999년 7월 3일 7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권치일(權致一)이며, 증조는 권준현(權俊鉉), 조부는 권희락(權凞洛)이다. 아버지는 권영구(權寧球)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로 박동률(朴東律)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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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권태용(權泰鏞)은 강제 징집되었으나 일본군 병영을 탈출하여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권태용은 1920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 권석중(權錫中)과 어머니 영일 정씨(迎日鄭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권태용은 경성혜화전문학교 재학 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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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역사. 우리나라에서의 근대(近代)는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이후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를 거쳐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의 기간을 가리킨다. 학자에 따라서는 근대의 시점을 1876년(고종 13) 개항 이후로 보기도 한다. 1. 대한제국기 현재의 영천 지역은 1894년(고종 31) 7월 갑오개혁으로 영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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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근우회 지회. 1926년 이래 국내·외에서 추진된 민족유일당운동(民族唯一黨運動)의 결과, 1927년 2월 민족협동단체인 신간회(新幹會)가 결성되었다. 여성운동계에서도 1926년 말부터 여성유일당 운동을 전개하여 여성운동계의 통합 단일화를 위해 1927년 5월 27일 근우회가 창립되었다. 근우회의 창립 이념과 활동의 기본 방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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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기용(金基用)의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명숙(明淑), 또는 사실(士實)이며 호는 능백(能伯)이고, 김명숙(金明淑)이라고도 불린다. 1883년(고종 20) 지금의 경북 청송군 현동면 오사리에서 태어나 1919년 영천시 창구동으로 이거하였으며 1938년 세상을 떠났다. 김기용은 1919년 3월 25일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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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낙헌(金洛憲)은 1919년 3·1 만세운동 당시 영천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김낙헌(金洛憲)의 본관은 경주. 자는 치원(致元), 호는 일와(逸窩), 이명(異名)은 김영헌(金榮憲)으로 1902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황강리에서 태어났으며 196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김규정(金奎鼎),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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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동필(金東弼)은 1860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 신덕리에서 태어났으며, 1944년 세상을 떠났다. 김동필은 1904년 2월 일제가 러·일전쟁을 도발하며 제1차 한일의정서를 강제 체결하여 침략 정책을 강화하자, 1905년 1월 동지들과 함께 대한십삼도유약소(大韓十三道儒約所)를 설치하고 일제의 침략 정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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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법린은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부산 범어사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만당 일본지부 결성과 조선어학회사건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김법린(金法麟)의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범산(梵山)으로, 1899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 치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세상을 떠났다. 김정택(金玎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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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김병현(金秉鉉)은 영양 김씨(英陽金氏)로 자는 자용(子庸), 호는 품산(品山)이며, 1890년 11월 26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김보택(金寶宅)이며, 증조는 김성구(金聖九), 조부는 김우성(金宇聲)이다. 아버지는 종사랑(從仕郞) 김재석(金在錫)이며, 어머니는 나주 정씨(羅州丁氏)로 참판(參判) 정주석(丁周奭)의 딸이다. 첫째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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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률(金相律)은 1919년 4월 15일 한말 의병장 출신인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중심이 되어 유하현 삼원보 서구 대화사에서 결성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김승렬(金承烈)이라고도 불린다. 동지 5명과 함께 친일기관인 보민회(保民會)를 습격하는 등 친일파 제거에 진력하던 김상률은 19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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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 역사학자. 김성칠(金聖七)[1913~1951]은 영천 출신으로 경성제국대학에서 역사학자로 활동한 인물이다. 1928년 대구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 독서회사건으로 검거되어 1년간 미결수로 복역하였다. 일제 치하 단일 학생결사사건으로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건은 1928년 11월에 있은 ‘대구학생비밀결사사건’이었다. 대구의 고등경찰 9명이 넉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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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김수곡(金水谷)은 1875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에서 태어났으며,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조직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가담하여 경상북도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그는 정환직의 명령에 따라 동지들과 무기를 휴대하고 1907년 10월 29일 흥해 읍내에 들어가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소장 일본인 시원위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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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임고 출신의 문학평론가. 김양헌(金楊憲)[1957~2008]의 본관은 경주. 호는 달빛몽돌[달몽], 당호(堂號)는 바람재이며, 1957년 11월 3일[음력]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평리[돌빼기]에서 태어나 2008년 7월 3일 사망했다. 아버지 김규연(金奎淵)과 어머니 성산 이씨(星山李氏) 사이의 6남매 가운데 다섯째로 태어났다. 김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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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영길(金永吉)은 1924년 지금의 영천시 성내동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세상을 떠났다. 1942년 박기수(朴基秀)·이영환(李榮還) 등 6인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1943년 4월 동지 10여 명과 함께 이영환의 집에 모여 일본 신사(神社) 방화 계획을 모의하였다. 일행은 당시 교촌동 영천 향교 옆 사망대 중턱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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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노성기(盧成基)의 본관은 광주(光州). 자는 성오(聖五), 호는 침계당(沈溪堂)이며, 1845년(헌종 11)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창면 직천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부호군(副護軍) 노사속(盧思涑)이며, 아버지는 노정갑(盧鼎甲),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신상훈(申相勳)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정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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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용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전상필(全祥弼)이 세운 비. 대한광무황제 애민불망비(大韓光武皇帝愛民不忘碑)는 화북면 용소리 부들밭마을 남쪽 고현천변에 있는데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후 고종을 배알하기 위해 전상필이 건립했다. 용소리 부들밭마을은 화북면 내에서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영천에서 청송으로 넘어가는 두메산골이다. 대한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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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45년까지 일제의 침략과 강점에 대항하여 영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 해방 운동. 영천 지역의 독립 운동은 1895년(고종 32) 을미의병(乙未義兵)에서 1945년 해방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는데, 1895년 을미의병과 1906년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의병 투쟁, 1919년 3·1 독립운동, 1920년대 대중 운동과 사회주의 운동,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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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출신 또는 외지 출신으로 영천 지역 내외에서 한말과 일제 강점기에 국권 회복 운동과 독립 쟁취를 위해 활동한 인사들. 예로부터 충절의 고장이요, 호국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영천은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던 한말에는 의병 항쟁을 전개하여 국권 회복 운동에 앞장섰으며, 일제에 의해 국권이 강탈당한 일제 강점기에는 3·1 만세운동을 비롯하여 학생운동과 의열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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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박광(朴匡)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답곡리에서 태어났으며, 이명은 박주광(朴柱匡)이다. 박광은 1906년 3월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에 의해 조직된 산남의진(山南義陣)이 의거할 때 군위와 의흥 지역을 맡아 모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영천과 청송 등지에서 일군과 교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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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소설가. 백신애(白信愛)의 아명은 무잠(武潛), 호적명은 백무동(白戊東)이며, 1908년 5월 20일 경상북도 영천군 창구동 68번지에서 태어나 1939년 6월 25일 사망했다. 아버지 백내유(白乃酉)와 어머니 이내동(李內東) 사이에서 외동딸로 태어났으며, 5살 위의 오빠 백기호(白基浩)가 있다. 백신애(白信愛)는 1915년 8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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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에 1921년 1월 사립으로 설립된 신교육 기관. 백학 학원은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안천리에 있는 백학서당[옛 백학서원의 후신]에서 1921년 1월 설립된 신학문 교육 기관으로 민족 교육을 통해 이육사(李陸史)[이원록(李源祿)]·조재만(曺再萬)[조용찬]·안병철(安柄喆)·이진영(李進榮)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민족 교육 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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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경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조재만(曺在萬)이 항일독립운동을 위해 대구에서 조직한 비밀결사.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 출신의 조재만은 1922년 설립된 영천 백학학원(白鶴學院)에서 이원록(李源祿)을 만나 민족의식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이원록은 1921년 영천군 화북면 오동리의 대지주 안용락(安庸洛)의 딸 안일양(安一陽)과 결혼하면서 백학학원에 다녔으며,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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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의 영천 문화원 내에 있는 구한말 영천 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의병 단체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 산남의진비는 구한말 일본의 국권침탈에 대응하여 의병을 일으켰던 정환직(鄭煥直)[1844~1907]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1862~1907] 의병장을 비롯해 수많은 장병들의 공훈을 추모하기 위해 1963년 경상북도의 지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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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3월 경상북도 영천에서 조직된 항일 의병 부대. 산남의진(山南義陣)은 중추원 의관 정환직(鄭煥直)이 광무황제로부터 의병 봉기의 밀지를 받고 아들 정용기(鄭鏞基)와 함께 영천을 중심으로 거병한 의병 부대이다. 초기에 정용기가 관군에게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1906년 9월 그의 석방을 계기로 의병진을 재편하여 영천·경주·청하·청송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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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운동. 3·1 운동은 국내외의 정세에서 발생 배경을 찾을 수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성공 등으로 한반도를 비롯한 피압박 약소 민족의 해방을 고무시켰다. 뿐만 아니라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이후 미국 윌슨(Wilson)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는 피억압 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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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성원표(成元杓)의 본관은 창녕. 자는 선초(善初), 호는 운당(耘堂)이며, 1905년 5월 17일에 태어나 1992년 3월 23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조부는 성훈진(成勳鎭)이며, 아버지는 성낙기(成洛基), 어머니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완집(李完集)의 딸이다. 부인은 여강 이씨(驪江李氏)로 이석순(李錫珣)의 딸이며, 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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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손병헌(孫炳憲)은 1870년 영천에서 태어났으며 1946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19년 3·1 만세 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손극장(孫克章)·독고욱(獨孤旭)·이천민(李天民) 등과 함께 남만주 환인현에서 인근 청년들을 규합하여 한교공회(韓僑公會)를 조직하였다. 한교공회는 본부를 환인현 마권자에 두고 각처에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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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신간회 지회. 민족주의 좌파와 사회주의자들의 민족협동전선으로 1927년 2월 15일 창립된 신간회는 1931년까지 존속하였다. 신간회는 서울에 본부를 두고 전국적으로 120~150여 개의 지회와 2~4만의 회원을 두고 있었다. 경상북도의 경우 1927년 6월부터 1929년 7월까지 신간회 김천지회를 시작으로 모두 21개의 지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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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6일부터 4월 8일까지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신녕공립보통학교의 교사 및 학생들이 전개한 만세 시위 운동. 신녕공립보통학교 만세 운동은 교사와 학생들이 야간에 전개한 만세 시위 운동이다. 3·1 운동은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만주·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계속되었다.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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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에 있는 6·25 전쟁 때 신녕 지역에서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국군 제2군단과 인민군 제2군단 간의 병력 2만5천명이 1950년 8월 13일에서 9월 14일까지 33일간 영천·신녕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때 국군 제6사단을 주축으로 한 아군은 인민군의 전차를 육탄으로 공격하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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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6일부터 9월 15일까지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국군 제6사단이 영천 지역으로 진출하려던 북한군 제8사단의 공격을 저지시킨 방어 전투다. 이 전투는 대구 점령을 목표로 하던 북한군을 격퇴하고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50년 8월 초 북한군 중동부 전선 담당 제2군단은 공세의 주목표를 대구 점령으로 정하고,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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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신녕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신녕현이 신녕군이 되었다. 신녕현의 옛 이름인 사정화(史丁火)는 지형이 배[舟]와 같고 한들[현 완전동(莞田洞)]에 3m 높이의 자연석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봉화제(烽火堤) 바람이 세차게 불면 갑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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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 5월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박만선(朴晩善)이 영천의 신사(神社)에 방화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 서울중동중학교 재학 중이던 박만선은 1942년 3월 일제가 시행한 강제 징병에 반대하는 지하선전 활동을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장춘 주재원(長春駐在員)인 박동만(朴東萬)을 만나 밀명을 받고 입국했다. 1943년 5월 박만선은 명령 받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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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신억(辛檍)의 본관은 영산. 자는 자미(子美), 호는 영좌(潁左), 초명(初名)은 장식(章植)이며, 1902년 9월 1일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가수리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신재성(辛載誠)이며, 조부는 신석화(辛錫和), 아버지는 신해진(辛海鎭), 어머니는 이천 서씨(利川徐氏)로 서태수(徐泰洙)의 딸이다. 부인은 오천 정씨(烏川鄭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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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안귀련(安龜鍊)의 본관은 순흥. 자는 영근(泳根), 호는 죽남(竹南)으로, 1867년(고종 4)에 태어나 삼종숙(三從叔) 안기명(安基明)에게 출계하여 1941년 7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안국윤(安國尹), 증조는 안경동(安擎東), 조부는 안기문(安器文), 아버지는 안기일(安基鎰), 어머니는 월성 이씨(月城李氏)로 이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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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10월 18일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사건 후 장진홍(張鎭弘)이 제2차 계획으로 추진한 영천경찰서 폭탄 거사. 1927년 10월 18일 정오 경상북도 칠곡 출신의 장진홍이 대구의 일제기관 4개소를 폭파할 목적으로 배달시킨 점화식 폭탄 4개 중 3개가 폭발하여 경관 4명이 중경상을 입고 은행 창문 70여 개가 파손되었다. 그 후 장진홍은 안동과 영천에서도 폭탄 거사를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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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된 소년 운동. 일제 강점기 때의 소년 운동은 1920년을 전후로 전개되었으며,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몰아내고 조국 광복을 목적으로 한 실력 양성 운동이다. 1919년 조직된 안변소년회와 왜관소년회는 동화나 학습을 목적으로 한 최초의 소년 운동 단체였으며, 1920년 조직된 진주소년회는 20세 이하의 학생들이 조선 독립을 목적으로 만세 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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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2일 영천읍 장날에 전개된 만세 시위 운동. 영천장날 만세 운동은 1919년 4월 12일 영천읍 시장에서 농부 홍종현(洪鍾顯)이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여 군중을 선동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19년 3월 1일 일어난 3·1 운동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5월 중순까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만주·하와이 등 국외에서도 계속되었다. 비폭력·일원화·대중화 등을 원칙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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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창구동의 영천문화원 내에 있는 6·25 전쟁 때 영천지구 전투의 전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후 1950년 9월 4일 파죽지세로 남침한 북한군 제2군단은 일거에 부산을 석권할 목적으로 전략의 요충지인 영천을 점령하고자 최후의 공세를 폈다. 북한군은 우세한 화력으로 공격해 옴으로써 필사적인 방어에도 불구하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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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시 교촌동의 마현산 정상에 있는 6·25 전쟁 때 영천지구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일명 영천대첩[1950년 9월 4일~1950년 9월 13일]으로 불리고 있는 영천지구 전투는 9월에 발생한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기습 남침을 감행 후 계속적인 퇴각으로 밀리던 국군은 8월 칠곡·왜관의 낙동강에 방어선을 구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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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5일부터 9월 13일까지 경상북도 영천시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국군 제2군단 예하 제8사단 및 증원 부대들이 영천을 점령한 북한군 제15사단을 9일 간의 공방전 끝에 격퇴하고 영천을 탈환한 전투다. 이 전투를 계기로 낙동강 방어선에서 반격을 위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1950년 북한군 제2군단은 8월 공세에서 구미~다부~대구 축선(軸線)에 대한 공격이 실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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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결성된 청년운동 단체.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는 3·1 독립 운동 이후 영천 청년회(永川靑年會)·영천 기독 청년회(永川基督靑年會)·영천 기독 여자 청년회·영양 청년회(永陽靑年會)·영천 구락부(永川俱樂部)·금호 청년회(琴湖靑年會)·신녕 청년회(新寧靑年會) 등이 조직되었다. 1920년대 사회주의 사상이 수용되면서 사상계는 민족주의 계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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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청년들의 사회운동. 1919년 3·1 독립운동 이후 대중의 힘을 효과적으로 결집하고 항일 역량을 지속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조직제의 필요성이 대두되었으며, 이에 따라 전국 각처에서 청년회가 조직되어 계몽적인 성격의 실력 양성 운동 및 문화 운동이 전개되었다. 영천 지역에서는 3·1 독립운동 이후 영천청년회(永川靑年會)·영천엡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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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3년까지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영천군(永川郡)은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 당시 지방 제도 개정건이 공포되어 새로운 지방 행정 제도가 설치되면서 영천군이 되었다. 고려 시대 영주(永州)로 불렸던 영천은 조선 개국 후 1413년(태종 13) 작은 군현은 ‘주’라는 명칭을 금지하고 대신 ‘천’과 ‘산’을 사용하도록 명하자 천을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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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 영천역에 증기기관차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1937년에 건축된 급수시설. 영천역 급수탑은 철로의 방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역사와 같은 방향에 있기도 하고 반대 방향에 있기도 한다. 급수탑은 철도 도입 초기부터 세워지지 않았고, 철도 이용객이 증가하면서 정거장이 급격하게 늘어난 1925년 그리고 1935년부터 1937년까지 많이 설치되었다. 당시 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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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인 1940년 경상북도 영천군 은해사에 설립된 불교학교. 오산 불교 학교(五山佛敎學校)는 1939년 10월 대한불교 조계종 경상북도 5본산이 영천 은해사 경내에 설립한 중등 정도의 불교학교이다. 1940년 4월 8일 개교 이래 근대 교육에 입각한 민족 계몽 운동을 실시하였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 대한 문화 말살 정책이 극에 달하여 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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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예술가. 왕평(王平)[1908년?~1940년]의 자는 광희(光熙), 본명은 이응호(李應浩)이며 이동암의 장남으로 경상북도 영천에서 출생했다. 일제 강점기에 연극·영화·대중가요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한 예술인이다. 고학으로 배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배우학교 1기생으로 연기를 공부했으며, 일본의 포리돌 레코드사의 서울지사 초대 문예부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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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경상북도 영천시를 비롯한 한반도에서 일어난 전쟁. 1948년 8월과 9월에 남북한 독립 정부 수립을 통해 한반도 분단은 공식화되었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중국 대륙 공산화, 주한 미군 철수, 애치슨(Acheson) 선언, 남한 내 남로당(南勞黨)의 실질적 붕괴, 정치·경제적 혼란, 국군의 국방력 열세 등 자신들의 유리한 배경을 이용하여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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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12월부터 1896년 1월 사이에 영천을 포함한 경상도 각 군현의 향교를 중심으로 돌았던 의병 문서. 「의병격문통문(義兵檄文通文)」은 을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각 의병진에서 창의 격문(檄文)이나 통유문(通諭文)을 각처로 보내어 의병을 일으킬 것을 독려한 의병문서이다. 의병들이 봉기했을 당시 각지 향교를 중심으로 돌았던 의병 문서 다섯 건이 현재 경상북도 4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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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한말 국권 회복을 위한 구국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무력 투쟁. 의병 항쟁(義兵抗爭)은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나라의 부름을 받기 전에 스스로 일어난 민군(民軍)의 무력 투쟁을 말한다. 백암(白巖) 박은식(朴殷植)은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서 “의병은 민군이다. 나라가 위급하면 바로 의병이 일어나는데 조정이 명령하는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종군하여 적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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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이규필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주범(周範), 호는 관천(觀川)으로 1878년(고종 15) 지금의 영천시 북안면 임포리에서 태어나 191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정영(李庭榮)과 어머니 김녕 김씨(金寧金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이규필(李圭弼)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주축이 된 영천 지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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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근기(李謹基)의 본관은 성산. 자는 경춘(景春), 호는 돈산(遯山)으로 1887년(고종 24) 경상북도 영천시 완산동에서 태어나 1947년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우인(李友仁)이며, 증조는 이호성(李浩成), 조부는 이광표(李光杓)이다. 아버지는 이희구(李熙球)이며, 어머니는 용궁 전씨(龍宮全氏)로 전병두(全秉斗)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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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범교(李範敎)는 1888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영천시 과전동으로 이거하였으며 1951년 세상을 떠났는데, 이명(異名)은 이상백(李相伯)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아버지는 이종하(李淙夏), 어머니는 김해 김씨 김정원(金正元)으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범교는 대구에서 동산병원을 개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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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영표(李榮杓)의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문거(文擧), 호는 송은(松隱)이며, 1863년(철종 14) 12월 22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고경면 대의리에서 태어났다. 고조는 이상기(李祥璣)이며, 증조는 이시윤(李時潤), 조부는 이유인(李裕仁)이며, 아버지는 이호상(李浩翔)이며, 어머니는 김녕 김씨(金寧金氏)이다.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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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영환(李榮還)은 1924년 지금의 영천시 교촌동에서 태어났으며, 1964년 세상을 떠났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과 1941년 태평양전쟁을 도발한 후 식량과 자원을 강제 수탈하는 한편 징용·징병 등 각종 명목으로 한국인을 침략 전쟁의 일선으로 끌어가자 그는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결심하였다. 이영환은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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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대(李元大)는 조선의용대 분대장으로 중국에서 활동했다. 이원대는 1943년 32세의 젊은 나이에 군사정탐죄로 북경 일본군 헌병대 본부에서 총살형에 의해 순국하였다. 이원대의 본관은 경주. 자는 달문(達文), 호는 덕산(德山)이며, 1911년 지금의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서 태어났으며, 중국에서 활동할 때는 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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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벽진 이씨는 고려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장군 이총언(李忩言)을 시조로 한다. 이종기는 고려 충렬왕·충선왕·충숙왕 3대에 걸쳐 시(詩)로 이름이 높았던 진현관 대제학 이견간(李堅幹)의 후손이며, 영천 입향조는 장사랑(將仕郞) 이배원(李培源)이다. 이종기(李宗基)의 본관은 벽진. 자는 찬경(璨卿), 호는 우파(愚坡)이며,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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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진영(李進榮)은 중국에서 조선의용대와 한국광복군 간부로서 활동한 독립군이다. 이진영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자강(自强), 호는 일우(一宇)이며, 1907년 지금의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서 태어났으며 1951년 6·25 전쟁에 중대장으로 참전하였다가 전사하였다. 아버지는 이집구(李集九), 어머니는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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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태일(李泰一)의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삼수(三叟), 호는 명암(明庵)이며, 1860년(철종 11) 10월 15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원각(元覺)마을에서 태어나 1944년 8월 30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인호(李仁浩), 증조는 이재장(李載璋), 조부는 이진현(李鎭鉉)이다. 아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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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영천 출신의 의병. 이학로(李學魯)의 본관은 벽진(碧珍). 1867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33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이정봉(李禎鳳)과 어머니 경주 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학로(李學魯)는 1907년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이 체결되며 조·일 양국간에 교환된 비밀 각서에 의하여 8월 1일을 기해 한국군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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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한기(李漢基)의 본관은 성산. 자는 치록(致麓), 호는 괴은(槐隱)이며, 1868년(고종 5) 6월 27일에 태어나 1945년 9월 16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관인(李寬仁)이며, 증조는 이규(李奎), 조부는 이문표(李文杓), 아버지는 이희석(李熙碩)이며, 어머니는 창녕 성씨(昌寧成氏)로 성덕운(成德運)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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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이호대(李好大)의 본관은 전주. 자는 내문(乃門), 호는 중재(中齋)로, 1901년 12월 22일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 천곡(泉谷)에서 태어나 1981년 1월 29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이정보(李廷輔)이며, 증조는 이인하(李仁夏)이니 영천시 청통면 후평(後坪)에 처음 옮겨 살았고, 조부는 이창우(李昌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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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이후(李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선재(善載), 호는 낭산(朗山)이며, 1870년(고종 7) 10월 26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 천곡(泉谷)에서 태어나, 1934년 1월 11일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증조는 이정보(李廷輔)이며, 조부는 이인하(李仁夏)이니 현재의 영천시 청통면 후평(後坪)에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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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예술인. 임윤수(林允洙)의 본관은 나주. 호는 연정(燕亭)이며, 1917년 9월 25일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384에서 태어나 2004년 8월 11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임재근(林在根)이며, 어머니는 손봉순(孫鳳順)으로 손진기(孫晋琪)의 딸이다. 부인은 김순이(金淳伊)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임동지(林東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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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전응팔(全應八)의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국삼(國三), 호는 석강(石崗), 이명(異名)은 전상택(全相宅)이다. 1878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서 태어나 1971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전록영(全祿永)과 어머니 경주 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전응팔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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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관식(鄭灌植)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내우(乃宇), 호는 성재(省齋)로 1896년 9월 19일에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梅谷)에서 태어나 1976년 6월 20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유로(鄭裕魯)이며, 증조는 생원(生員) 정치화(鄭致華), 조부는 정진태(鄭鎭泰)이다. 아버지는 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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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규식(鄭圭植)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선행(善行), 호는 효봉(曉峯)이며, 1920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삼귀리에서 태어나 1950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정연량(鄭淵亮)과 어머니 경주 김씨(慶州金氏)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정규식은 1941년 8월 일본 오사카[大阪]에 있는 오사카공학교에 재학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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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문인.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는 영일 정씨(迎日 鄭氏)는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부터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았다. 정도영(鄭島榮)의 본관은 영일. 초명(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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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원흥(鄭元興)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규백(圭伯), 원래 이름은 정용복(鄭容復)으로 1912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매곡]에서 태어났으며 1945년 사망하였다. 아버지 정종식(鄭宗植)과 어머니 밀양 손씨(密陽孫氏)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백부 정인식(鄭寅植)과 백모 서흥 김씨(瑞興金氏)에게 입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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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재전(鄭載銓)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형보(衡保), 호는 소하(小霞)이며, 1885년(고종 22) 8월 28일에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 횡계리에서 태어나 1969년 2월 12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태환(鄭台煥)이며, 증조는 정학령(鄭鶴齡), 조부는 정치정(鄭致楨)이다. 아버지는 정사구(鄭師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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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재호(鄭在鎬)는 북로군정서와 연통제 및 정의부 요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정재호(鄭在鎬)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건중(建仲), 호는 춘산(春山)이며, 1891년 지금의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에서 정용우(鄭鏞禹)의 아들로 태어나, 1943년 용정형무소에서 옥중 사망하였다. 정재호(鄭在鎬)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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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화식(鄭華植) 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협(重協), 호는 고방재(古方齋)이며, 1897년(고종 34) 4월 2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용산리에서 태어나 1980년 3월 21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유술(鄭裕述)이며, 증조는 정치려(鄭致閭), 조부는 정진수(鄭鎭守), 아버지는 정연규(鄭淵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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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화식(鄭崋植)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성관(聖觀), 호는 동릉(東陵)이며, 1906년(고종 43) 8월 16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梅谷)에서 태어나 1977년 5월 24일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유정(鄭裕鼎)이며, 증조는 정치상(鄭致庠), 조부는 정진하(鄭鎭夏)이다. 아버지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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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정환국(鄭煥國)의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공좌(公佐), 호는 노전(老田)이며, 1901년(고종 38) 3월 13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대전동에서 태어나 1978년 6월 10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정치인(鄭致仁)이며, 증조는 정동진(鄭東鎭), 조부는 정연달(鄭淵達)이다. 아버지는 정원화(鄭元和)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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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 국어학자이자 시인. 정희준(鄭熙俊)은 1914년 5월 11일 영천 임고면 선원리에서 태어났다. 홍익대학교 설립 초기에 국문과 교수를 지낸 정희준은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큰 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했고, 1949년에는 우리나라 초창기 고어사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선고어사전』을 펴냈다. 아마도 정희준은 『9인회』나 『삼사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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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조규철(曺圭喆)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여명(汝明), 호는 우인(于人)이며, 1906년(고종 43) 1월 14일에 태어났다. 고조는 조경화(曺慶華)이며, 증조는 조이승(曺以承), 조부는 조병래(曺秉來), 아버지는 조신환(曺臣煥)이다. 부인은 하양 허씨(河陽許氏)로 허작(許碏)의 딸이며, 슬하에 1남 2녀를 두니 아들은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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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진(曺秉鎭)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진원(進元)이며, 1891년 지금의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서 태어나 1961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조도승(曺度承)과 어머니 김해 김씨(金海金氏) 사이에서 3남 중 2남으로 태어났다. 조병진은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홍종현(洪鍾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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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병화(曺秉華)의 본관은 창녕. 1908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에서 태어났으며, 1982년 미국으로 건너가 1998년 세상을 떠났다. 조병화는 1932년 4월 일본 오사카[大阪]의 계시교회에서 ‘삼천리강산을 나의 무대로 삼아’라는 제목으로 동포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던 중 일경에게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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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조상환(曺相煥)은 의병 조직인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도포장으로 활약하였다. 조상환(曺相煥)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석보(石甫)이며, 1866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보현리 거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조병전(曺秉銓)과 어머니 경주 이씨(慶州李氏) 사이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조상환은 1906년 3월 정환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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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재만(曺再萬)은 비밀결사 암살단 단원 및 조선인군관학교 설립자금 모금운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재만(曺再萬)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봉헌(奉憲), 호는 백농(白聾), 또 다른 이름으로 조용찬(曺瑢燦) 또는 조충환(曺忠煥)을 사용하였다. 1906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삼창리[현고]에서 태어났으며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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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영천 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조재복(曺再福)의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취오(聚五)이다. 아버지 조계환(曺啓煥)과 어머니 안동 권씨(安東權氏)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897년 지금의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에서 출생하여 1953년에 세상을 떠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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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최석기(崔碩基)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응도(應度), 호는 동주(東洲)이며, 1904년(고종 41) 9월 25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노항리에서 3형제 중 2남으로 태어났고, 1987년 윤 6월 21일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조는 최달효(崔達孝)이며, 증조는 최학조(崔學祚), 조부는 최계규(崔啓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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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최치환은 영천에서 거의한 의병 조직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후봉장으로 활약하였다. 최치환(崔致煥)의 본관은 전주. 1875년 지금의 영천시 자양면 충효리[당시 검단리]에서 태어나 1944년 세상을 떠났다. 최치환(崔致煥)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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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소설가. 하근찬(河瑾燦)은 경상북도 영천시 금노동에서 1931년에 10월 21일 츌생했으며 2007년 11월 25일 사망했다. 1948년 전주사범학교를 중퇴하고 몇 년간 교사로 근무하다가, 1954년 부산 동아대학교 토목과에 입학했으며, 1957년 중퇴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교육자료사 및 대한교육연합회 등에서 일했으며, 1959년 교육주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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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 출신의 문인. 한덕연(韓德鍊)의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정중(正中), 호는 송계(竦溪), 초휘(初諱)는 덕수(德銖)이며, 1881년(고종 18) 11월 27일 현재의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교전(校前)마을에서 태어났다. 증조는 한운복(韓雲福), 조부는 한재언(韓在彦)이다. 아버지는 한잠범(韓岑範)이며, 어머니는 김해 김씨(金海金氏)로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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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한상택(韓相澤)은 학생 항일운동 단체인 적우동맹 조사부 위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한상택은 본관은 청주(淸州). 한방구 또는 한상훈이라고도 불리며, 1909년 지금의 영천시 신녕면 완전리에서 태어나 1985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한종수와 어머니 양호남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상택(韓相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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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전개된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현재까지의 역사.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광복이라는 환희 속에 미국과 소련의 남북 분할 점령으로 인한 혼란과 좌우의 분열, 그리고 6·25 전쟁 등의 혼란기를 겪었다. 1960년 4·19 학생혁명과 1961년 5·16 군사정변, 그리고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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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조직된 조선형평사의 영천형평분사에서 전개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 형평 운동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4월 경상남도 진주에서 조직된 조선형평사가 전개한 백정의 신분 해방 운동이다. 형평사 혹은 조선형평사는 1923년 5월부터 지·분사를 설립하기 시작하여 1923년 12월까지 전국적으로 80여 지·분사가 설립되었고, 1926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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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영천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홍종현(洪鍾顯)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자 영천 지역의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홍종현(洪鍾顯)의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내문(乃文), 호는 치당(痴堂)이며, 1890년 지금의 군위군 군위읍 외량리에서 태어나 영천시 화북면 입석리로 이거하였으며, 1977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홍재복(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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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의병. 황보근(皇甫覲)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원직(元直)이며, 초명은 황보명용(皇甫名容)이다. 1882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태어났으며 1963년 세상을 떠났다. 황보근(皇甫覲)은 고종황제의 밀명을 받은 정환직(鄭煥直)과 그의 아들 정용기(鄭鏞基)가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基)·손영각(孫永珏) 등과 더불어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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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영천 출신의 독립운동가. 황보선(皇甫善)은 학생 항일운동 단체인 구화회(丘火會)와 혁우동맹(革友東盟) 및 적우동맹(赤友同盟)의 간부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황보선(皇甫善)의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경가(慶可), 호는 화경(華瓊)이며, 1908년 지금의 영천시 화남면 구전리에서 태어나 1982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황보곤(皇甫坤)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