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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산마을에는 신한균 도공예 가까운 곳에 불곡 도자기가 있다. 이 집안이 도자기를 하게 된 계기는 아주머니 남편이, 골짜기에 이사 온 지 32년 째 된 신정희 씨 집에 월급쟁이로 허드렛일을 하러 들어가서 그 집에 한 15년 있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때 그릇을 배우게 되었다. 그 뒤 15년을 신정희 선생님 밑에 있은 뒤, 서운암 절에 삼천불 도자 부처님을 만들다가, 작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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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극수(61). 시인이며 수필가인 그는 한마디로 명동의 정신을 기록을 통해 계승코자 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돈이 아까워 새참도 먹지 않았다. 소출이 적어 경작하지 않는 산답(山畓)을 소작으로 얻어 밤을 지새우며 죽도록 일해도 동생들 학비며 기본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찼다. 빚은 자꾸 늘어만 가고, 모든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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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에 위치한 양산가정폭력상담소(소장 홍혜숙)에서는 ‘아버지학교’를 개설하고 4월 29일부터 5월 27일까지 매주 화요일 5회에 걸쳐 교육을 실시했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바로 서고, 가정이 바로 서야 자녀가 행복해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이 교육은 아버지의 자아 이해, 배우자 이해, 자녀 이해, 가족체계 이해, 아버지 사명과 리더십 훈련으로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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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열(69세) 씨는 합천군 용주면이 고향이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왔고, 부산 토박이와 결혼한 뒤로 부산 사람이 되었다. 처가에서 합판공장을 경영하고 있었기에 인도네시아 등지로 다니면서 원목 수입을 함으로써 장인을 도왔다. 날로 사업이 번창하자 일선에서 물러나 호주로 이민을 갔다. 7년여를 살다 1986년에 입국하여 장인을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기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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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더댓 살 적 얘기니까 쉰 네 해를 산 강미애(54세) 씨 자신의 연륜을 놓고 볼 때 참으로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새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사 오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발이 강씨의 발보다 작았다는 것이다. 어머니께서 다음 저자 날 바꿔다 주신다는 걸 행여 자기 것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어린 마음에 작지 않다고 우기고는 그걸 신고 종일 밖에 나가 자랑하며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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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배(49세) 씨는 한국전력공사에 합격하여 교육을 마치고 부산지사에서 근무하던 중 한전 양산출장소에 자원, 1984년 10월 24일자로 발령을 받아서 근무를 시작한 게 양산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양산에서 근무한 지 3년이 되어갈 무렵,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권태기였다고 여겨지는 시기를 잘 넘기지 못하고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와서 여러 가지를 사업이랍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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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마을이 고향인 심재현(58세) 씨 내외는 10년 전에 이곳 비석골로 이사 와서 비석골 지킴이가 되었다. 어릴 적 천태산 큰골 입구에 옹달샘이 있었는데 수량도 풍부했거니와 그 물맛이 기가 막혔다고 한다. 그런데 비석골에 우물을 파고 난 뒤부터는 그 옹달샘의 수량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하구언을 만들기 전 바닷물이 이곳까지 올라왔을 때는 이곳의 우물 물맛이 대부분 약간 짭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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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동 175번지의 김영식(51) 씨는 이곳에서 42년 째 살고 있다. 그 옛날 양산읍성의 객사가 있었던 자리 뒤편이다. 출생지도 중부동이어서 태어나서 지금까지 양산 구도심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이곳에 오기까지 두 곳을 거쳤지만 모두 반경 100m 이내의 가까운 거리이다. 김씨는 가락국 김해김씨 수로왕 후손으로 고조부 이전부터 대대로 양산 주변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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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영(79세)은 이웃하고 있는 삼수리의 시온목장에 이어 양산에서 두 번째로 낙농을 시작한 사람이다. 이곳은 275㎡당 소 한 마리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것은 젖소는 하루에 두세 시간 정도만 자고 아홉 시간 가까이 풀을 뜯어 먹는데 어미 소인 경우에는 하루 60㎏까지도 먹어치움으로 넓은 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씨에게는 큰물이라도 져 양산천이 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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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대학 앞에 살고 있는 정효삭(68세)은 소토리에서 업(業)구렁이를 죽이고 가세가 기운 자신 가족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젊었을 때 그의 가족은 내전마을에서 살았었다. 일본에 건너가 고철 장사로 부를 축적한 선친(치돈)이 이곳에 과수원을 매입하고, 정미소를 차려 떵떵거리며 살 때의 이야기다. 오래된 기와집 처마는 참새들의 둥지로 제격이었다. 어느 날 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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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만을 고집하는 로맨스그레이 서용도(79세) 씨를 보았을 때 내일 모레면 팔순 노인이 된다는 걸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부산 가서 친구들 만나고 오는 중이라는 그는 꽃 자줏빛 드레스셔츠를 입었고, 옅은 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에서 단지 젊은 오빠만 생각났다. 인터뷰를 해 보니 아니다 다를까 잘나가는(?) 어르신이다. 그 옛날 시골에서 부산에서 상업학교를 다닌 것을 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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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사는 정인근(75세) 씨는 오랫동안 중등에서 교편을 잡다가 정년퇴임을 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다. 정씨 부부를 처음 만나러 갈 때 고희를 훌쩍 넘긴 촌부의 모습을 상상하고 갔으나 전혀 예상 밖으로 품위 있게 곱게 늙으신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부부의 얼굴에는 농촌의 빛이 제대로 내려앉지 않은 듯 했다. ▶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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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노마을회관 옆에는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게 꾸며 놓은 작은 식당 하나가 있다. 언뜻 봐도 외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위치이다. ‘새미추어탕’. 소노마을이 친정인 주부 정미향(44), 정진남(38) 두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다. 정씨 자매는 8남매의 형제 중 셋째와 여섯째로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뛰어 놀던 곳, 엄마의 품 같은 고향, 이곳이 지금은 일터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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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은 첩첩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열려있는 곳이라고는 동그란 하늘밖에 없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운진리에서 태어난 박상권 씨는 1973년 소양댐이 건설되면서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대처로 나왔다. 고향 양구를 떠나 처음 취업한 곳이 청평에 있는 제지공장이었다. 성실하게 일한 것이 사장의 눈에 띄어 1974년에 같은 계열의 이곳 ‘국일농원’으로 차출되어 오게 되었다. ▶ 농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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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리는 통도관광민박마을이다. 통도환타지아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 마을길을 따라가면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평산마을, 오른쪽으로 가면 지산마을이다. 평산마을로 가는 길로 들어가면 길 왼쪽에 약수터가 나온다. 거기에 서서 오른쪽 영축산 쪽을 바라보면 ‘원조 손두부집’ 간판이 보인다. 그곳이 시어머니에게서 두부 만드는 법을 배워 17년째 전통방식으로 손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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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용(60세) 씨는 올해(2008년) 환갑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양복점에 취업했으니 50년이 다된 셈이다. 상북이 고향인 그가 처음 양복가게에 발을 들여놓았던 곳은 부산 동대신동 어느 집이었다. 너나없이 가난하던 시절 호구지책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잔심부름에서 시작하여 단추달기, 주머니달기로 이어진 뒤 9개월 만에 바지를 만들게 되었다. 그나마 보통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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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비가 잠시 멈춘 어느 후텁지근한 날 오후, 예고도 없이 불쑥 이형우 씨(79세)의 다방동 자택을 방문했다. 예고가 없었던 것은 지금도 가축병원을 꾸려나가고 있겠거니 해서였다. 마침 지인과 더불어 약주를 즐기던 차라 반가이 맞아줬다. 일제에 의해 多芳이라 바뀐 지명이 하루 빨리 원래의 지명인 茶芳(이곳 원주민들은 지금도 다방이 아니라 차방이라 일컫고 있다)으로 되기를 바란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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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만(81세) 씨를 만났다. 귀 옆에 좀 남아 있는 머리카락이 새하얀 망구(望九)의 노인이다. 그런데 휴대전화기를 목에 걸고 있다. 명함을 내미는데 특이하다. 자신의 이름 위에 곡부공씨대종회 이사 및 양산시종친회 회장이라는 직함 활자 크기가 이름보다 훨씬 크게 적혀있다. 그 뿐만 아니다. 한자 이름 밑에는 영어와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고, “만인의 사람을 알아보면, 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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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순(55) 씨는 농청장원놀이가 1998년 제30회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할 때 부녀회장이었다고 한다. 그때의 감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 “내 누구한테 맞아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을 기다. 그냥 눈물이 펑펑 쏟아지드라.(김종순, 명동마을 주민, 55세. 2008년 9월 3일)” 그녀는 명동에서 6년 째 웅상탁구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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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암마을 앞 양산천 건너편에는 산바다 사슴농장이 있다. 공암마을에 사는 농장주인인 오정일(68세)을 만났다. 오씨가 처음 사슴을 키우게 된 것은 그저 우아한 모습의 사슴 그 자체가 좋아서였다. 1975년 취미삼아 집 앞 공터에 두어 마리를 키운 것이 그 시작이었다. 옛날부터 소토마을과 공암마을에서는 벽돌·기와·옹기공장이 많았다. 오씨의 집안 역시 증조부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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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마을에 사는 최원봉(95) 옹(2008년 작고)은 1973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3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길을 나섰다. 통도사 산문을 비껴난 길을 따라 30분 가량 걸어 도착한 야산이 최옹의 부모와 아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최옹은 "가고 오지 않는 게 세월이고, 다시 볼 수 없는 게 부모"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묘소의 잡초를 뽑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