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69
한자 林盛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하창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3년연표보기 - 임성무 출생
몰년 시기/일시 1729년 8월 14일연표보기 - 임성무 사망
추모 시기/일시 1737년 - 임성무 정려각 건립
출생지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2리지도보기
묘소|단소 정려각 -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2리지도보기
성격 효자
성별
본관 예천(醴泉)

[정의]

조선 후기 의성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예천(醴泉).

[활동 사항]

임성무(林盛茂)[1673~1729]는 현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위중 2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위고 홀로 된 어머니를 모시는 데 정성을 다하였다. 가난한 살림에 끼니를 잇기도 어려웠으나 어머니만은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하도록 한시도 마음을 놓지 않았다. 밖에 나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가지고 와서 어머니께 드리고, 시장에 갈 때면 아무리 돈이 없어도 언제나 어머니가 좋아하는 반찬거리를 샀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치아의 뿌리가 없게 되자 음식을 씹어 드리는가 하면, 정신이 혼미하여 피마자 기름을 짜서 모아둔 항아리를 요강을 잘못 알고 쏟아버리자 어머니가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자책할까봐 다른 사람의 입을 막았다. 이 같은 정성스런 보살핌 덕분으로 어머니는 90세가 되도록 천수를 누렸다.

그 사이에는 믿기 어려운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다.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나서는데 홍수로 내를 건너지 못하여 한탄하고 있는데 위천(渭川)이 거꾸로 흘러 무사히 건널 수 있었다. 구하기 어렵다는 낙동강의 잉어가 얼음 구멍에 뛰쳐나와 좋아했는데 갑자기 솔개가 나타나 낚아채어 가버렸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그 잉어가 마당에 던져져 있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집에서 까마득히 바라보이는 만경산(萬景山)에서 3년간 시묘 살이를 하였다. 시묘를 시작하자 그 묘소 곁에 맑은 우물이 생겨나고, 호랑이가 와서 지켜 주었다. 마을에서 불이 났을 때도 갑자기 역풍이 불어 그 집과 빈소만은 무사했다. 시묘를 끝내고 나니 맑은 우물은 말라 버리고, 호위하던 호랑이도 죽어 묘소 옆에 묻어 주었다.

이 행적들은 어사 박문수(朴文秀)가 조정에 아뢰고, 상주 목사 송인월(宋寅月)이 경상도 관찰사에게 올린 글에 있는 내용이다. 임성무의 효행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삼강행실록(三綱行實錄)』에도 기록되었다.

[상훈과 추모]

1737년 조정에서 정려의 명이 내려지고 마을 앞에 여각(閭閣)이 세워졌다. 그런데 이 여각이 세워질 때 아들 임대근(林大根)이 비석에 쓰일 돌을 구하는 신의 계시를 얻었다. 그 계시가 지시하는 땅을 파보니 그곳에는 이미 다듬어지고 백색의 별이 박힌 돌이 나왔다. 이 정려각은 창건된 이후 1862년에 중건하고, 1909년에 중수했으며, 1990년에 군비로 보수했다. 또 거기에는 하대발(河大潑)의 상량문과 유후조(柳厚祚)의 중건기문, 그리고 이돈구(李敦九)의 중수기문과 함께 강재기(康在璣)의 기문(記文)도 걸려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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