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리 성재암 각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663
한자 長春里聖在巖刻石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 1리 산 89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용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장춘리 성재암 각석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 1리 산89지도보기
성격 각석
양식 음각
크기(가로) 80㎝
크기(세로) 30.5㎝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각석.

[위치]

장춘리 성재암 각석의성군 비안면 장춘 1리 항골의 남쪽 산중턱 바위 면에 자리하고 있다.

[건립 경위]

바위에 새겨진 내용으로 볼 때에 임진왜란 당시 어느 누군가가 창의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대상이 누구인지와 구체적인 활동 내용이 무엇인지가 각석되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건립 연대는 “임진후육을미각(壬辰後六乙未刻)”이라 각석되어 있는데 ‘을미(乙未)’인지 ‘기미(己未)’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만약 ‘을미’라면 1895년, ‘기미’라면 1919년에 새겨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형태]

성재암 각석은 바위 면에 횡서로 음각되어 있다. 층진 바위 윗부분의 약간 다듬어진 곳에 큰 글씨로 “성재암(聖在巖)” 이라는 글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음각(陰刻)되어 있으며, 글씨의 약간 아래 들어간 바위 면에 작은 글씨로 관련 내용이 새겨져 있다. 크기는 가로 80㎝, 세로 30.5㎝이다.

새겨진 글자는 “聖在巖” “壬辰猖燹 聖牌在玆 遺蹟次巖 令人永思 毅歟孫福 忠義出天 衛聖其烈 與巖久傳 壬辰後六乙未刻”이다. 번역하면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임금의 ○○가 여기 있고, 유적은 다음 바위 사람으로 하여금 길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마땅하구나. 후손의 복이로다. 충의가 출천하여 임금을 지키는데 열의가 있으니 바위로 더불어 오래 전해지리라. 임진왜란 후 여섯 번째 기미년에 새긴다’이다. 이상의 각석 내용을 볼 때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임진왜란 당시 창의한 인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현황]

산중턱에 각석되어 있으며 보호 시설이나 안내 표지판은 없다.

[의의와 평가]

금석문의 내용에는 구체적인 인명이나 공적 사항이 없어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다른 관련 자료와의 관련성을 찾아낼 수 있다면 역사적 기록물로 의의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12.15 [형태] 수정 <변경 전> 임진왜란 후 여섯 번째 을(기)미년에 새긴다’이다. <변경 후> 임진왜란 후 여섯 번째 기미년에 새긴다’이다.
이용자 의견
심** 어제 가보니 己未年(기미년:1919년)에 새겼다고 써놓았습니다.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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