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287
한자 縣里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진원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동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5.7㎢
가구수 94가구
인구(남, 여) 209명[남자 109명, 여자 100명]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현리리(縣里里)는 이 지역에 고을 창고[사창(社倉)]가 있었으므로 창리, 창마, 창말로 부르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현리라 하였다 한다.

[형성 및 변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의 현리동, 중리동, 대동, 용산동, 척화동을 병합하여 의성군 가음면 현리동(縣里洞)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로 개칭하면서 현리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마을 남동쪽에 솟아 있는 선암산(船岩山)에서 서쪽으로 점차 낮아지며 뻗어 내린 산줄기가 마을 남부를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 북동쪽으로는 북두산(北斗山)복두산(福頭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가로 놓여 있다. 이들 산간 계곡에서 발원한 쌍계천(雙鷄川)이 서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쌍계천 주위에 형성된 산간 계곡을 따라 내려가며 농경지와 취락이 분포하고 있다. 마을 동쪽 경계부의 한티재[가음면]를 넘어 가면 대구광역시 군위군과 연결된다.

[현황]

현리리가음면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리 1리, 현리 2리 2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다. 2011년 12월 31일 현재 면적은 15.7㎢로 가음면에서 가장 넓은 법정리로서, 총 94가구에 209명[남자 109명, 여자 100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 의성군 춘산면·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서쪽으로 의성군 가음면양지리·순호리, 남쪽으로 군위군 의흥면, 북쪽으로 가음면 이리와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현리 1리에 자불·척화(尺和), 대동리(大同里), 가라골·용산, 현리 2리에 중리(中里), 창말·창마·창리(倉里), 적으네미·서당마·옥계 마을 등이 있다. 자불·척화는 옛날 이 마을에 척화사(尺火寺)라는 사찰이 있어 척화 또는 우리말 자불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불 화(火)자가 불길하다 하여 한자를 화(和)로 고쳐 불렀다 한다. 대동리는 옛날 포항에서 경상북도 상주 방면으로 소금이나 생선을 운반하던 길목에 위치한 마을로서, 마을 동쪽의 한티재[가음면][큰한티재]를 넘기 전 쉬어가는 곳이라 큰 촌락 같이 많은 사람들이 붐벼 붙여진 이름이다. 가라골은 마을 남쪽 선암산에 물레에 쓰는 가락같이 협소하고 곧은 골짜기가 있어 가락골이라 부르는데, 마을 이름도 이와 유사하게 가라골이라 하며, 마을 앞에 용이 등천을 했다는 용못[龍湫]이 있어 용산이라고도 부른다. 창리는 조선 초기 개척된 마을로 곡물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 창리, 창마 또는 창말이라 불렀다. 중리는 대동리와 창리 중간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서당마·옥계 마을은 옛날 옥계 서당(玉溪 書堂)이 있어 서당마 또는 옥계라 불렀는데, 냇가에 위치해 홍수 피해로 사람들이 윗마을 창리로 이주함에 따라 마을 주민이 적어져, 적은 냇가마을이란 뜻의 적은네미로 부른다.

현리리는 산간 농촌 마을로서, 현리 1리는 예로부터 담배 재배가 많이 이루어졌다. 마을을 지나는 군도 23호선을 따라 양지리로 연결된다. 자연 마을 대동리와 중리의 중간 지점 산록 남사면에 빙계 온천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현리리 북쪽의 유명한 얼음 계곡인 빙계 계곡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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