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 공립 보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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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삶은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조선 시대 경상북도 의성군의 관학(官學) 교육 기관은 1394년(태조 3)에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에 건립된 의성 향교[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50호]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1610년(광해군 2)에 경상북도 의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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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운영된 근대식 교육. 한국의 근대 교육은 일반적으로 개항이 시작된 1876년대부터 1945년 해방까지 각종 근대식 학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을 말한다. 강화도 조약 이후 정부는 수신사(修信使)·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영선사(領選使) 파견, 서양인 교사 초빙, 1883년 동문학(同文學) 설치,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한 학부아문(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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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명출(金明出)[1893~1987]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안계리 출신으로, 비안면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비안면 독립 만세 시위는 쌍계 교회 중심으로 일어났다. 쌍계 교회 박영화 목사 등 추진 세력은 밀의를 거듭하면서 3월 1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김명출을 비롯한 배도근·이일만·박세길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태극기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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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 운동가. 김성수(金成守)[1890~1965]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6일 비안면 동부동·서부동 주민들에 의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다. 의성군에서 벌어진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는 3월 12일 비안면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과 쌍계동의 만세 시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동부동에 사는 김석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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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일제 강점기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전개된 항일 독립 운동. 외세의 조선 침탈에 맞선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비롯된 반제 자주화 투쟁은 일제의 한국 침략에 대한 항일 독립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항일 독립 운동은 강제 병합 이전의 의병 항쟁과 계몽 운동 등 양대 흐름으로 전개되었고, 병합 이후에는 새로운 독립 운동의 이념 수용에 따른 민족 대 사회주의의 양대 흐름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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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부터 1945년 광복 전까지 경상북도 의성 출신 또는 의성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의성 지역 한말 의병 활동은 을미사변을 계기로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서 가장 먼저 전개되었다. 의병 부대는 의병장 김상종(金象鍾), 초모장 김수욱(金壽旭), 중군 권대직(權大稷), 선봉장 김수빙(金壽聘), 관향장 김수협(金壽莢)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유교 사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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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만녕(朴萬寧)[1898~1967]은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출신으로, 비안면에 있는 비안 공립 보통학교(比安公立普通學校) 학생으로 상급 학생으로 급장(級長)이던 우희원(禹熙元)·박기근(朴基根)[혹 朴望牙]·정인성(鄭寅成) 등과 함께 3월 9일부터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 계획을 세웠다. 이들은 서울·평양·대구 등지의 독립 만세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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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세길(朴世吉)[1876~1946]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이 주도한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에 참가하였다. 3월 12일 박영화는 동료들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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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달(朴永達)[1887~1962]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과 함께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영달은 박영화·박영신·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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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신(朴永新)[1891~1942]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동 쌍계 교회의 목사 박영화(朴永和)의 동생으로 쌍계동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위한 구체적 계획에 참여하였다. 박영신은 3월 12일 자신의 집에서 형 박영화를 비롯하여 박영달·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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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화(朴永和)[1859~1923]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 교회의 담임 목사로 있으면서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평양 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서울·평양 등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귀향한 김원휘(金原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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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인욱(朴寅郁)[1896~1934]은 박주욱(朴宙郁)이라는 다른 이름도 전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인욱은 3월 12일 박영화·박영달·박영신·배중엽·배달근 등과 함께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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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달근(裵達根)[1865~1944]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배달근은 박영화·김원휘·박영신(朴永新)·박영달(朴永達)·배중엽(裵重曄) 등과 함께 3월 13일 쌍계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3월 12일 박영화·박영신·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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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도근(裵道根)[1866~1923]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에 참가하였다. 1919년 3월12일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부르고 정오 무렵 학생들이 마을로 돌아오자 동민들은 함께 만세 시위에 들어갔다. 박영화·박영신·박영달·배달근·배중엽 등이 만든 200장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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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용도(裵容度)[1895~1971]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박영화(朴永和)·김원휘·박영신(朴永新) 등은 3월 13일 쌍계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배용도를 비롯한 배도근·배용석·이일만·김명출·박세길 등이 합세하였다. 배용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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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용석(裵容奭)[1890~1938]은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이 주도한 비안면 쌍계동의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박영화는 교인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위하여 200장 정도의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그런데 이날 오전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이 학교 뒷산에서 만세를 부르고 마을로 돌아오자 교인들과 동민들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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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중엽(裵重曄)[1882~1934]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12일 쌍계 교회 목사 박영화(朴永和) 등과 함께 비안면 쌍계동의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배중엽은 박영화(朴永和)·김원휘·박영신(朴永新)·박영달(朴永達) 등과 함께 3월 13일 쌍계동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킨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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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1 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는 과정에서 3월 12일~4월 초순까지 의성 지역에서 일어난 항일 독립 만세 운동. 3·1 운동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받으면서 ‘충량한 신민의 양성’을 목표로 한 지배 정책과 식민지 수탈을 기조로 하는 경제 정책으로 인해 많은 고통에 시달린 가운데 민족의 독립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었다. 세계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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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비안군 군내면 창상동, 구교동, 서강동, 박연동, 신흥동을 병합하여 읍내의 서쪽에 위치하므로 서부동(西部洞)이라고 이름지었다. 자연 마을 서산밑은 서부동의 남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서쪽 산 아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박소는 마을 뒷산을 천박산(天朴山)이라 하고, 마을 모양이 박과 같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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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교육자. 이종섭(李鍾燮)[1858~?]은 1902년 창원항(昌原港) 총순(總巡), 1903년 상공 학교(商工學校) 교관(敎官)을 지낸 관료로 1909년 4월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에 우희목(禹熙穆)·김제하(金濟夏) 등과 함께 병산 학교(屛山學校)를 설립하였다. 「경상북도 비안군 병산 학교 취지서(慶尙北道 比安郡 屛山 學校 趣旨書)」에 의하면, 병산 학교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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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재호(林在虎)[1898~1961]는 1919년 3월 12일 비안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과 의성군 쌍계동의 박영화 등이 주도한 독립 만세 운동의 소식을 듣고 동부동과 서부동의 김석근(金石根)·박홍섭(朴洪燮)·박후도(朴後度) 등의 청년들과 함께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 시위에 발맞추어 함께 궐기할 것을 다짐하고 먼저 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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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의성군에 있는 초등 교육을 실시하는 교육 기관. 우리나라 최초의 관립 소학교는 갑오개혁 이후 한성 사범 학교 부속 소학교가 그 시작이다. 1895년 8월 1일 ‘소학교령’이 시행되면서 한성에 8개의 관립 소학교를 비롯하여 각 도에 약 100여 개의 공립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의성군에서도 1906년 11월 의성 초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문소 학교(聞韶 學校)가 설립되어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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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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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