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영화(朴永和)[1859~1923]는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쌍계리 출신으로, 쌍계 교회의 담임 목사로 있으면서 1919년 3월 12일 비안면 쌍계동 독립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7일 평양 신학교(平壤神學校)에 입학하기 위해 평양에 갔다가 서울·평양 등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고 귀향한 김원휘(金原輝),...
일제 강점기 의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학술(李學述)[1892~1955]은 의성군 신평면 덕봉리에서 출신으로, 1919년 3월 25일 신평면 덕봉동에서 김수성(金守星)·손문원(孫文遠) 등과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학술은 신평면 덕봉 교회의 집사로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주변의 쌍계 교회·대사동 교회·괴산동 교회 등에서 3·1 운동 독립 만세 시위를 벌인다는...
우리 민족은 개항 이래 근대를 달성하기 위한 자구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외세의 침탈을 막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청일 전쟁과 러일 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한국 침략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강제적 을사조약이 체결됨으로써 한국은 일본의 실질적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일제의 한국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일제의 한국 지배에 맞서 국내외에서 적극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