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의성의 열녀. 참봉(參奉)을 지낸 홍간(洪諫)의 딸로 태어나 선산인(善山人) 김철(金喆)과 혼인하였다. 김철은 고려 말의 충신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예복(金禮復)이다. 김철은 4형제 중 셋째로 맏형인 김희(金喜)는 의병장으로 단밀 전투에서 순직하였으며, 동생인 김계(金啓)는 「용사일기(龍蛇日記)」와 「용담록(龍潭錄)」을 남긴 학자였다. 김철(金喆...
조선 후기 의성 의 열녀. 본관은 남양(南陽). 문경공(文景公) 홍길문(洪吉文)의 8세손이다. 문경제 처 남양 홍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닥친 왜구에게 남편과 아들이 모두 피살되었다. 왜구의 마수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힘없는 아녀자들을 겁탈하려 하였다. 살기 위해 욕됨을 감수할지, 아니면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을 해야 할지 양단의 길밖에 없었다. 하지만 홍씨는...
조선 후기 의성의 열녀. 병조 판서를 지낸 여자신(呂自新)의 증손녀이자, 절도사를 지낸 여윤철(呂允哲)의 손녀이다. 문응주 처 함양 여씨[?~?]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갑작스레 닥친 왜구에게 남편과 시아버지를 한꺼번에 잃었다. 의지할 데 없는 아녀자들만 남게 되자 왜구들은 집안의 여인들을 욕보이려 덤벼들었다. 이에 시어머니인 남양 홍씨는 남편과 자식의 원수인 왜구에게 욕을 당하느니...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남편에 대한 정절을 지켜 포상을 받은 여자. 전통 사회에서 여자는 주체적인 존재라기보다 남자에 종속된 존재였다. 따라서 결혼한 여인은 남편을 보필하고 집안을 건사하는 것을 가장 큰 책임으로 여겼고, 이를 위해 여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받았다. 남편이 위급한 때는 단지수혈(斷指輸血)하는 것은 물론이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남편을 따...
1592년 4월 13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구는 불과 열흘 남짓 만에 의성에 당도했다. 가히 파죽지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왜구의 기세는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전을 치루면서 다져진 전투 경험과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갖춘 왜구 앞에 문치주의를 표방하며 오랜 평화기를 거친 조선은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라의 위기 앞에 자신의 목숨까지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것이 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