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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국의 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83
한자 -召文國-古跡-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집필자 박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62년 7월 - 「조문국의 고적」 제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3년 - 「조문국의 고적」 『한국 구전 설화』12에 수록
관련 지명 금성면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93지도보기
성격 설화
모티프 유형 패망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에서 조문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조문국의 고적」의성군 금성면에 존재했던 조문국(召文國)이 신라에 복속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62년 7월에 의성군 금성면에 살던 김세한에게서 채록한 내용으로, 1993년에 임석재가 저술한 『한국 구전 설화』-임석재 전집 12 경상북도 편에 「조문국의 고적」이라는 제목으로 수록하였다.

[내용]

의성군 금성면은 옛날 조문국이라는 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당시는 신라가 흥성하던 때로 신라의 왕은 많은 군사를 이끌고 조문국을 침공하였다. 결국 군사력이 약한 조문국의 왕은 금성산 뒤쪽에 있는 대궐산으로 궐을 옮기고 버티었다. 금성산비봉산 사이에 겹겹이 성을 쌓고 문을 숨겨두어 신라의 군사들은 성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북쪽의 산을 짚 섬으로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거대한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했다.

신라군은 금성산 밑에까지 쳐들어와 공격을 했으나 험준한 산봉우리와 커다란 노적가리에 막혀 좀처럼 공격할 수가 없었고 결국 회군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때 한 군사가 조문국은 산꼭대기에 있어 물이 없을 것이기에 조금만 더 공격하자고 했다. 그러자 조문국의 백성들이 말 등에 백미를 퍼부어 멀리서 보면 마치 물로 말을 씻기는 듯 보이게 하였다. 조문국 진영에 물이 풍부한 것으로 착각한 신라군은 실망하였고, 말 머리를 돌려 철수하려던 때 모든 것이 조문국 백성들의 속임수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조문국은 전쟁에 패했고 신라의 영토로 복속되었다.

[모티프 분석]

「조문국의 고적」의 주요 모티프는 ‘패망’이다. 조문국이 신라에 편입되었던 시점을 배경으로 한 전설이다. 의성군에 존재했던 조문국이라는 고대 국가는 신라에 대응해 갖은 지략으로 버티었으나 결국 전쟁에 패해 나라는 사라져 버렸다.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의성군 금성면 사람들의 아쉬움이 전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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