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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리의 달맞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58
한자 -分明里-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68년 8월 - 「분명리의 달맞이」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71년 - 「분명리의 달맞이」 『영남의 전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분명리의 달맞이」 『의성의 전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분명리의 달맞이」 『의성 군지』에 수록
성격 전설|지명 유래 전설
주요 등장 인물 분명리 마을 주민
모티프 유형 신앙 행위|풍년|득남 기원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에 있는 분명리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개설]

정월 대보름 달맞이 행사로 농사의 흉풍을 점친 데서 분명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하게 된 내력을 전하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분명리의 달맞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1968년 8월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명리 김정현이 제보한 이야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1982년 의성군에서 발행한 『의성의 전설』과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소개되어 있다.

[내용]

정월대보름 에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것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행해지는 고유의 풍속이지만 경상북도 의성군 봉양면 분명리의 달맞이 행사는 더욱 특별하다. 음력 정월 보름날이 되면 줄다리기와 달맞이 행사로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불꽃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 어른들의 고함소리와 꽹과리 소리로 온 동네가 떠나갈 듯하다. 특히 의성군 봉양면 분명리의 달맞이는 1년 농사의 흉풍(凶豊)을 가늠하는 신앙적 행사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매우 진지한 행사였다. 어느 봉우리에서 달이 뜨느냐에 따라 농사의 결과를 점치게 된다. 아침에 지은 찰밥으로 이른 저녁을 대신한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마을 어귀에 있는 망월대에 오른다. “올해는 어느 봉(蜂)에서 달이 뜨려나.” 경건한 마음과 호기심을 가지고 달이 뜨기를 기다린다.

달이 뜨는 곳은 바로 크고 작은 다섯 개의 산봉우리로 되어 있는 마을 뒷산이다. 봉우리의 이름은 북쪽으로부터 차례로 노루봉, 국수봉, 밥봉, 죽봉, 범벅봉이다. 먼저 노루봉은 평평하고 넓적하게 생겨서 이곳에서 달이 떠오르면 비가 많이 와서 풍년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서 달이 뜨는 일은 거의 없고, 100여 년 전쯤에 그런 일이 한 번 있었다고 한다. 국수봉은 산골이 국수처럼 길게 뻗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국수봉에서 달이 뜨면 처음에는 비가 오지 않다가 나중에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날 우려가 있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국수를 반죽할 때는 물기가 없으나 먹을 때는 물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밥봉은 밥공기처럼 둥그스름하게 생겼는데 여기서 달이 뜨면 밥에 물기가 없는 것처럼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든다고 한다. 죽봉은 죽 그릇처럼 생겨서 밥봉보다는 좀 평평한 모양인데 여기서 달이 뜨면 비가 순조롭게 와서 풍년이 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범벅봉에서 달이 뜨면 흉년이 든다고 하는데, 최근 수십 년 동안 여기에서 달이 뜨는 것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다고들 한다.

결과적으로 주로 달이 떠오르는 봉우리는 국수봉, 죽봉, 밥봉이다. 국수봉에서 뜨면 홍수의 염려가 있고, 밥봉에서 뜨면 가뭄이 들 우려가 있고, 죽봉에서 달이 뜨면 비가 순조롭게 내리고 바람도 적당하여 대풍이 든다고 하니 모두들 죽봉에서 달이 뜨기를 고대한다고 한다.

마을에서 오래 산 노인은 “금년은 국수봉에서 달이 뜨더니 정말 비가 많이 왔어. 20여 년 간 경험해 본 결과 틀림이 없어.”라고 얘기한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 달맞이로 한 해의 흉풍을 점치는 일은 신앙과 같은 측면이 있다. 그렇기에 마을 이름도 여기에서 연유하여 ‘분명리(分明里)’라고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 기이한 것은, 정월대보름날 망월대에 올라 떠오르는 첫 달을 보는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마을의 여러 사람들이 첫 달을 보고 절하여 아들을 얻었고, 딸만 다섯 낳은 어떤 이는 여러 사람의 양보를 받아 의관을 정제하고 달이 뜨는 것을 보고 절을 한 후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 마을에는 아들 없는 집이 거의 없다고도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이러한 점은 이웃 마을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라고도 한다. 농사를 지으며 아들로 가계를 계승하던 시절, 풍년과 득남을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소망을 떠오르는 달에 기대어 빌어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모티프 분석]

「분명리의 달맞이」의 주요 모티프는 ‘신앙 행위’, ‘풍년’, ‘득남 기원’이다. 농사를 주로 지으며 아들이 있어야만 한다고 여겼던 시절, 풍년이 드는 것과 아들을 얻는 것은 가장 바라던 일이었다. 분명리에서는 그러한 소망을 담아 달맞이 행사를 하였는데, 그 행사가 마을 이름이 지어지게 된 유래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지명 유래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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