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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주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57
한자 -報恩-酒幕-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1967년 10월 - 「보은의 주막」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71년 - 「보은의 주막」 『영남의 전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보은의 주막」 『의성의 전설』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보은의 주막」 『의성 군지』에 수록
성격 전설|보은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조씨 노인|손자|노씨 부부
모티프 유형 보은(報恩)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에서 열떼재 중턱의 주막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열떼재라는 고개에서 생명의 은인을 만났던 부부가 훗날 은혜를 갚기 위해 주막을 차려 그 은인을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보은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1971년 유증선이 편저한 『영남의 전설』에 「보은의 주막」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1967년 10월에 의성 초등학교 이경용이 제보한 이야기라고 기록되어 있다. 1982년 의성군에서 발행한 『의성의 전설』과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 문화 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과 경상북도 구미시의 경계를 이루는 열떼재[十嶺]라는 고개 중턱에 낡고 조그마한 집이 한 채 있다. 그 집이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비바람에 허물어진 벽과 부서진 문짝이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집이지만, 옛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던 주막이었다고 한다. 이 주막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하고 있다.

때는 조선 후기 동학 농민 운동(東學農民運動)이 한창일 무렵이었다. 도처에서 민란이 일어났고 관군은 이를 토벌하러 나섰다. 사회가 지극히 혼란한 틈을 타서 도적떼들조차 극성을 부리니, 외진 산길을 넘어가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이곳 열떼재에도 산적이 자주 출몰하였는데 한두 사람이 재를 넘는 것은 위험했기에 열 사람 이상이 떼를 지어 넘었다고 해서 열떼재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나라는 어지럽고 시절은 3월이라 보릿고개가 돌아왔다. 가뭄이 들어 그나마 보리 농사도 말이 아니어서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이 무렵 예순은 넘어 보이는 한 노인이 아홉 살쯤 되는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의성 쪽을 향하여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노인은 긴요하게 돈을 쓸 일이 있어서 집에 있던 황소 한 마리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가 우거진 산중이라 바람소리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으나 끊임없이 소리가 들려왔다. 노인과 손자가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사람이 다투는 소리 같았다. 시절이 험하고 갈 길이 바쁜지라 노인은 손자의 손을 이끌고 지나쳐 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어린 손자는 그들이 왜 싸우는지 그곳에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결국 두 사람은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가슴 아프고도 어처구니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젊은 부인이 아기를 업고 있는데, 다른 젊은 남자가 아기의 손을 잡아채려고 하고 그 여자는 울부짖으며 도망 다니고 있었다. 남자는 “어서 이리 와! 그것 좀 잡아먹자!” 하며 여자를 쫓아다녔다. 여자가 엎어졌고 아기는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그렇게 숨바꼭질 하던 남녀는 지쳐 쓰러졌고 기진맥진하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노인이 “여보시오! 여보시오!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러고 있는 것이오?” 하고 그 곡절을 물었다. 지친 남자는 자리에 늘어졌고, 여자는 한숨을 쉬며 눈물을 흘렸다. 사연인즉 그 남자는 자기 남편인데 양식이 없어 며칠을 굶주리더니 배고픔에 정신을 잃고 아기를 잡아먹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들은 손자는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떡을 이 사람들에게 주자고 하였다. 노인 역시 떡을 나눠주려고 마음먹었으나 자기들이 먹을 것을 조금은 남겨두려고 하였다. 그러나 손자의 마음씀씀이가 기특하여 남김없이 떡을 내주었다. 떡을 본 그들은 미친 사람처럼 허겁지겁 떡을 먹어치웠다. 그제야 정신이 드는 눈치였지만 남편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아내가 말을 이어갔다.

“저희는 너무도 가난하여 이제 굶주림에 지쳤습니다. 그래서 의성 쪽에 사는 친지를 찾아 도움을 청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배고픔에 정신을 잃고 아이를 잡아먹으려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노인은 그 아낙네에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하고는 길을 떠나려 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손자가 애원하며 말했다. “할아버지, 아까 소 판 돈을 이 사람들에게 주면 좋겠어요. 떡 한두 개만 먹고 어떻게 살겠어요. 우리가 떠나면 저 사람들은 곧 굶어죽을 거예요. 돈이 있어야 앞으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손자의 말에 할아버지는 몹시 당황하였다. 왜냐하면 긴요하게 쓸 데가 있어 소를 판 것인데, 그 돈을 처음 보는 남에게 주자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원래 계획했던 일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이내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는 손자의 말대로 그 돈을 그들에게 주기로 했다. 자신의 계획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 얼마 되지 않는 돈이나마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살 길을 마련하시오.” 노인은 소 판 돈을 전부 내주고 길을 나섰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돈과 마음을 받은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감사의 절을 했다. 그리고는 “정말 감사합니다. 어디에 사는 누구신지 존함이라도 알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노인은 “그렇게 이름을 내놓을 만큼 대단한 사람이 못 되오.”라고 말하고는 길을 떠났다. 노인은 이 고장에서 이름 있는 부자인 조씨(趙氏)였으며 그동안도 주위 사람들에게 은덕을 많이 베푼 인물이었다.

이후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러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노인은 세상을 떠났고 아홉 살짜리 어린 소년도 이제는 어엿한 30대 청년이 되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사이 조씨가(趙氏家)의 살림은 많이 기울어서 생계가 어렵게 되었다. 청년은 가산을 다시 일으키려고 애썼지만 쉽지가 않았다. 실패도 하고 좌절도 하였지만 언젠가는 지난날처럼 잘 사는 날이 올 것이라 믿으며 어렵사리 생활하고 있었다.

한편, 열떼재에서 노인과 손자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했다. 비록 농사일이 고됐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부부에게는 이나마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 결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부자가 되었다. 그들은 20년 만에 재물을 크게 모았고 그 마을에서 노부자(魯富者)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노씨 부부에게도 세월은 비껴가지 않았다. 어느덧 흰 머리가 듬성듬성 생기는 등 중년을 훌쩍 넘긴 것이었다. 부부는 생활이 안정되고 여유로워지자 지난날 자신들의 목숨을 구하고 살 길을 마련해 주었던 노인과 손자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동안도 늘 고마운 마음을 안고 살았지만 사는 것이 바빠 선뜻 찾아 나서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부인이 남편에게 한 가지 방책을 제시하였다. “여보, 우리가 그때 도움을 받았던 열떼재에 가서 주막을 하면 어떨까요? 그곳은 왕래하는 사람이 많으니 오고가는 사람을 붙잡고 그분들의 소식을 물어보면 찾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말을 들은 남편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하였다.

부부는 열떼재에 가서 아담한 주막을 열었다. 오가는 길손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하고 술은 공짜로 주었다. 공짜 술을 대접하며 자신들이 옛날 이곳에서 도움을 받았던 사연을 이야기하였고, 노인과 손자의 소식을 탐문하였다. 한 달의 시간이 지났고 그사이 많은 사람들이 그 주막을 다녀갔다. 그러나 조손(祖孫)의 소식이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부는 이러다 그들을 영영 만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여 초조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다. 초여름 어느 날,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무렵 남루한 행색의 나그네가 주막을 지나쳐가려 하고 있었다. 차림새는 궁색했지만 어딘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부인은 나그네를 붙잡으며 좀 쉬어가기를 청하였다. “말씀은 고맙지만 곧 날이 저물 것이고 갈 길도 바빠서 쉬어가지는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발길을 재촉하였다. 부인이 재삼 간청하자 나그네는 “가진 돈이 없어 술을 먹을 형편도 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술값을 받는 주막이 아니니 마음 편히 쉬어가라고 부탁하는 부인의 간청에 못 이겨 나그네는 주막으로 들어섰다. 부인은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고 여느 손님에게처럼 지난날 자신들의 사연을 들려주었다.

부인의 이야기를 다 들은 나그네는 눈을 지그시 감고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고는 20년 전 자신이 아홉 살 때 있었던 그 일을 소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 나그네가 바로 그때 소 판 돈을 모두 주자고 말했던 어린 소년이었던 것이다. 나그네와 부부 모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부부는 자신들이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은인을 찾았으니 감사한 마음을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초로의 부인은 그 나그네를 와락 껴안았다. 20년 동안 밤낮 할 것 없이 성실하게 일했던 사연과, 옛날 짐승 같은 삶을 살던 자신들을 구해 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은인을 찾고자 이곳에 주막을 차리게 된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설명하였다. 조씨도 그 사이 가세가 기울고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형편을 이야기하였다. 그들의 이야기는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 주막집 노씨 내외는 자신들이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조씨를 도와주고자 마음을 먹었다. 은혜에 보답할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쁠 뿐이었다. 부부의 도움으로 조씨도 안정을 되찾게 되었고, 노씨 부부와 조씨는 친형제나 다름없이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비록 도둑이 들끓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인정이 오고 갔던 그 옛날 열떼재는 이제 숲이 우거지고 길이 막혀 오가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직도 전해져서 사람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신다. 이제 주막은 없어졌지만 그 자리는 아직도 남아 소중한 사연을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모티프 분석]

「보은의 주막」의 주요 모티프는 ‘보은’이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내주었던 노인과 손자에 대해 은혜를 갚기 위해 주막을 열고 결국 그 손자를 만나 은혜를 갚은 부부의 보은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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