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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에서 깊어진 세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739
한자 -墓域-世誼-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묘역에서 깊어진 세의」 『의성 군지』에 수록
성격 설화|전설
주요 등장 인물 김세정|장숙|장문서|이효건
모티프 유형 장인과 사위 간의 세의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 전해오는 선산 김씨(善山金氏), 순천 장씨(順天張氏), 우봉 이씨(牛峰李氏)가 하나의 묘역을 이룬 사연에 대한 이야기.

[개설]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는 선산 김씨, 순천 장씨, 우봉 이씨가 하나의 묘역을 이루고 있는데 그 내력을 설명해주는 지역 전설이다. 사회가 급변하고 가족 간의 인정이 갈수록 각박해지는 현대 사회에서 그런 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묘역에서 깊어진 세의」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의성문화관광’ 홈페이지에도 같은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내용]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에는 선산 김씨, 순천 장씨, 우봉 이씨가 하나의 묘역을 이루고 있다. 인근은 옛날에는 한적하였으나 지금은 안계면의 번성과 더불어 다소 번잡한 곳이 되었다. 그러나 세 문중이 오래 사귀면서 쌓은 정은 변함없이 전해지고 있다.

이 묘역에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은 김세정(金世貞)이다. 그는 기자전(箕子殿) 참봉(參奉)을 지낸 인물로, 고려 후기의 충신으로 이름난 백암(白巖) 김제(金濟)의 후손이다. 그의 생몰년(生歿年)에 관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그가 묘에 안장된 시기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연산군 내지 중종대의 일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세정에게는 딸이 있었는데 진주 판관(晋州判官)을 지낸 순천인(順天人) 장일신(張日新)의 아들 장숙(張叔)을 사위로 맞이하였다. 김세정은 사위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였으며, 그 마음을 아는 장숙 또한 장인을 깊이 존경하고 따랐다. 결국 사위를 의성읍의 본가에서 비안(比安) 고을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게 되었다. 이로써 장숙은 순천 장씨의 비안 고을 입향조(入鄕祖)가 되었다. 한편 출가한 딸과 사위를 가까이 두고 자주 볼 수 있게 되어 김세정은 마음이 든든하고 기뻤다. 만년에 이르러 가족과 일가친지를 불러 놓고 각별한 유언을 하였다. 자기가 죽으면 율현(栗峴)에 묻어 주고, 저 세상에 가서도 사위 장숙과 정의를 나누고자 하니 뒷날 사위가 생을 마치면 자신의 무덤 아래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김세정이 세상을 뜨고 세월이 흘러 장숙도 78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당연히 장인 김세정의 유언에 따라 그의 묘 바로 아래에 묘를 지었고, 이후 부인 김씨도 합장을 하였다. 이로써 딸과 사위를 지극히 사랑하여 한곳에 묘역을 이루고자 하던 김세정의 유언은 이루어졌다. 장인과 사위, 아버지와 딸이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 더욱 깊은 정을 나누었으리라 생각된다.

장숙이 묻힌 이후 국천효자(國薦孝子)로 이름난 그의 아들 문암공(文巖公) 장문서(張文瑞)도 그 아래쪽에 묘를 조성했다. 그때가 1577년(선조 10)이었다. 그런데 문암공도 김세정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그 역시 그의 사위인 우봉인(牛峰人) 진사(進士) 이효건(李孝騫)을 무척 사랑하여 뒷날에 한 묘역에 묻히기를 당부하였다. 그의 아들 진사 장해(張邂)의 묘 옆쪽에 사위인 진사 이효건도 부인 장씨와 함께 묻혔다.

이렇듯 생시의 깊은 세의는 유언으로 남고 그 유언은 어김없이 실행되어서 선산 김씨, 순천 장씨, 우봉 이씨는 한 묘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들은 400여 년을 내려오면서 선외가(先外家)와의 정의를 다지는 아름다운 전통을 남겼다. 해마다 가을이 깊으면 자손들이 모여 묘향을 치른다. 묘향의 날짜가 문중마다 다르고 각 문중에서 세 곳 모두에 성묘를 하니,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무슨 일이기에 한 해에 묘사를 세 번씩이나 지내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조선 시대 소송의 7할이 묘송(廟訟)이나 산송(山訟)이었다고 한다. 당시 백성들은 풍수지리설을 깊이 신봉하였기에 그와 관련된 이해관계 앞에서 남남은 고사하고 족친이나 근친 간에도 심각한 분쟁이 일어나곤 했다. 그 분쟁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두고두고 서로를 원망하고 반목하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러한 사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다. 세상의 인심과 관념이 이러하니, 먼 옛날부터 율현묘역에서 맺어 온 세 문중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의성 군민들은 이러한 사례가 우리의 전통을 세워 나가는 데 모범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가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묘역에서 깊어진 세의」의 주요 모티프는 ‘옹서간의 세의’이다. 의성 지역을 기반으로 전해지는 지역 전설이며, 세 문중이 하나의 묘역을 이루게 된 경위를 설명해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의성 군지』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 1998)
  • 의성 문화 관광(http://tour.usc.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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