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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구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1653
이칭/별칭 덜구 노래,달구 소리,회다지 소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집필자 박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8년 - 「덜구지」 『의성군지』에 수록
성격 민요|의식요
토리 메나리토리
출현음 미, 솔, 라, 도, 레
기능 구분 선후창

[정의]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무덤을 만들 때 흙을 다지면서 부르는 장례 의식요.

[개설]

상여가 무덤에 당도하면 하관(下棺) 등의 여러 의식(儀式)을 거친다. 그리고 봉분을 쌓기 위하여 흙을 다지는데, 이때 부르는 노래가 「덜구지」이다.

[채록/수집 상황]

1998년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에서 발행한 『의성 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묘를 쓸 때는, 하관을 마치고 물이 무덤에 스며들어가지 못하도록 관 주변의 흙을 단단히 다진다. 이때 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노래에 발을 맞추면서 빙빙 돌아 발로 땅을 다지면서 「덜구지」 노래를 한다. 지역이나 사람에 따라서 몽둥이를 들고 땅을 쿵쿵 찧으면서 「덜구지」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내용]

어허 덜구야 말 못하는 까마귀도/ 공맹안증 저문 날에 반포한줄 알았는데/ 말 잘하는 우리 인생 무슨 말을 못하리까/ 상하촌에 모인 장군 어떤 장군 모였던가/ 좌우편을 돌아보니 일등장군 모였구나/ 발맞추어 손뼉 치며 쿵덕쿵덕 다려주소/ 천하제일 강동골은 산도 좋고 물도 좋은데/ 아향새향 죽을 곳 가/ 만고절색 고운 얼굴 웅이미가 낮다더니/ 오날 다린 이 터에는 정승 판서 날듯하다/ 공수래공수거라 빈 손 빈 몸 나왔다가/ 빈 손 빈 몸 가난 곳이 초로 같은 인생이라/ 한심하고 가련한 게 우리 인생 아닐런가/ 명사십리 해당화야 너 꽃진다 서러마라/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련마는/ 왕손은 귀불귀라 다시 오기 어렵도다/ 용하도다 용하도다 어이 그리 용하던가/ 승지도사 용타해도 이런 터는 못 잡았네/ 이 터가 생길 적에 비봉산 남루하에/ 이런 터가 생겼구나/ 엄동설한 풍설 중에 노루 한 쌍 자던 터라/ 봉황이 알을 품어 알 까던 터 분명하고/ 신선 선녀 모여 앉아 장기바둑 희롱할 때/ 양수겸장 부르던 터 이 터가 분명찮나/ 좌청룡 돌아보고 우백호 돌아보니

좌청룡이 노래하고 우백호가 춤을 추니/ 천하에는 대명지라/ 뒤에 주춤 노적봉이 좌우산천 둘렀으니/ 대대부자 할 터로다/ 사시에 하관하니 오시에 발복온 터/ 이 터가 분명찮나/ 상주네 복 있는가 죽은 망인 복 있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상주네 복이로다/ 금강산이 좋다한들 이 산만은 못 하구나/ 우리 군장 들어 보소/ 건너 산천 건너보니 노적봉이 솟았구나/ 노적봉이 비쳤으니 벼 천 석 할 터로다/ 건너 산천 건너보니 투구봉도 솟았구나/ 투구봉 비쳤으니 대대장군 날 터로다/ 건너 산천 건너보니 문필봉이 솟아있네/ 문필봉이 비쳤으니 대대문장 날 터로다/ 권력 좋은 진시황은 만리장성 쌓건마는/ 이런 터를 구했던가/ 대국 갑부 석숭이가 재물이야 많건마는 못 구했네/ 삼천갑자 동방삭이 삼천갑자 살았건만/ 이런 터를 구했던가/ 당 명황에 양귀비가 인물이 절색이라/ 여러 사람 접촉해도 이런 터는 못 구했네/ 상주네들 복으로서 이런 터를 구했던가/ 우리 군장 들어 보소 조선 명지 좋은 명지/ 차례차례 찾아보세/ 경상도 태백산은 낙동강이 둘러있고/ 부산이라 직할시는 태평양이 둘러있고/ 일월 같은 대구시는 팔공산이 둘러있고/ 조선 서울 첫 서울은 경주시가 분명하나/ 불국사가 좋건 만은 왕릉묘가 둘러있고/ 오늘 다린 이 터에는 노적봉이 둘러있고/ 호상꾼 들어보소/ 이번 막죽 가는 길에 배행차로 오셨으니/ 염라국에 들어가서 염라대왕 교재 하여/ 한몫을 얻어다가 열십자에 걸어놓으니/ 일천 천 자 분명찮나/ 일천 천 자 분명하니 오십 살 오신호상 오천 년 살 것이요/ 육십 살 오신호상 육천 년 살 것이요/ 칩십 살 오신호상 칠천 년 살 것이니/ 공수래공수거라/ 이 세상에 살아올 때 인심 한번 쓰다가소/ 에헤이야 덜구야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덜구질을 하는 것은 오랜 시간 계속되는 노동이었다. 때문에 「덜구 노래」를 통해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현황]

의성군에는 「덜구 노래[선창]」「덜구지」가 전해진다. 「덜구 노래」「덜구지」의 사설은 죽어서 무덤에 묻히러 가는 사람의 입장에서 살아 있는 자손이나 친척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앞소리꾼이 대신해서 한다. 때문에 즉흥적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덜구지」「덜구 노래」에 비해 긴 사설을 가지고 있으며 명당에 자리 잡아 자손들과 집안이 잘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의성군에서 가창되는 「덜구지」는 다른 지역에서 가창되는 「덜구 노래」와 유사하게 명당에 묘를 썼으니 망인도 마음 놓고, 또한 자손들도 복을 받을 것이라는 사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망인에 대한 애도와 함께 남겨진 자손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배려로 보여 진다.

[참고문헌]
  • 『경북 민요』 (조동일, 1977)
  • 『의성 군지』 (의성 군지 편찬 위원회, 1998)
  • 관광 지식 정보 시스템(http://www.tour.go.kr/)
  •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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