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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916
한자 申冕瀅
이칭/별칭 선장(善章),남헌(楠軒)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오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2년 5월 24일연표보기 - 신면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2년 - 신면형 부호군에 임명
몰년 시기/일시 1908년 5월 1일연표보기 - 신면형 사망
출생지 신면형 출생지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동리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신면형 거주지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오리
묘소|단소 신면형 묘소 -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금곡리지도보기
성격 학자
성별
본관 아주(鵝洲)
대표 관직|경력 부호군

[정의]

개항기 의성 출신의 학자.

[가계]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선장(善章), 호는 남헌(楠軒). 신정모(申貞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지현(申之炫)이고 아버지는 신석교(申奭敎)이며,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 洪氏) 홍윤국(洪綸國)의 딸이다. 부인은 전주 유씨(全州 柳氏) 유성문(柳星文)의 딸이다.

[활동 사항]

신면형(申冕瀅)[1832~1908]은 어렸을 때 총명하고 덕이 있었으며, 성장함에 따라 고을의 사림들이 명망 있음을 칭송하였으나, 과거에 뜻을 버리고 중년에 오목(梧木)[현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오목리]으로 이주하여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주력하였다.

1894년(고종 31) 동학 농민 운동이 일어나자 향리에서 민보군(民堡軍)을 이끌었다. 의성 지역은 1894년 8월 농민군에 의해 점령되었으며, 의성의 전직 관료와 유생들이 민보군을 결성하여 이에 항거하였다. 그는 이때 격문을 돌리고 향리의 장정들을 모아 민보군을 결성하여 농민군들로부터 의성군 춘산면 일대를 방어하였으며, 장기현(張鬐縣)에서 장정들을 이끌고 온 정치익(鄭致益)과 합류하였다. 이후 전열을 갖추어, 영남 지역에서의 활동이 미약했던 농민군을 퇴각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1902년(광무 6)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副護軍)에 제수되었다. 말년에는 시세가 난국이라 하여 고향에서 은둔하였다.

[학문과 저술]

동학 농민 운동 때 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한 활약을 기록한 『갑오 동고록(甲午 同苦錄)』을 엮었다고 전해진다.

[묘소]

묘는 처음 사미동(思美洞) 구곡산(九曲山)에 있었으나, 뒤에 금곡동(金谷洞)[현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금곡리]으로 옮겼다.

[상훈과 추모]

1996년 「남헌공 묘갈명(楠軒公 墓碣銘)」이 작성되었는데, 이태능(李泰能)이 지었으며, 김창회(金昌會)가 썼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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