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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여지승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743
한자 -比安輿地勝覽-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729년연표보기 - 『비안여지승람』편찬
편찬 시기/일시 1758년연표보기 - 『비안여지승람』증보 편찬
편찬 시기/일시 1878년연표보기 - 『비안여지승람』증보 편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4년 - 『비안여지승람』을 『의성지집록』으로 영인 간행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운중동 50]
영인처 의성 문화원 -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후죽리 509-3지도보기
성격 향토지|읍지
편자 비안현(比安縣)
권책 1책
행자 행자수부정(行字數不定)
규격 세로 31.4㎝|가로 20.6㎝

[정의]

조선 후기에 편찬된 경상도 비안현(比安縣)[현 의성군 비안면]의 읍지.

[개설]

『비안여지승람(比安輿地勝覽)』은 현재 의성 지역에 편입된, 경상도 비안현의 읍지이다. 현재 조선 후기에 편찬된 3종의 『비안여지승람』이 필사본(筆寫本)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관찬 읍지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순서대로 각각 1729년(옹정 7) 6월, 1758년(건륭 23), 1878년(광서 4) 8월에 편찬되었다. 앞의 2종은 근래까지 비안 향교(比安鄕校)에 소장되었었다고 하나 현재는 인멸된 상태이며, 1878년의 『비안여지승람』은 현재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저자]

부세(賦稅)와 관련된 항목이 상세히 기재된 것으로 보아 사찬(私撰) 읍지(邑誌)가 아니라, 관권이 개입되어 비안현에서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편찬/간행 경위]

『비안여지승람』의 편찬 경위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별도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내용으로 보았을 때, 이전 읍지를 증보(增補)하는 과정에서 편찬된 것은 분명하다. 19세기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가 간행되었는데, 여기에 수록된 『비안읍지(比安邑誌)』보다 이 책의 내용이 풍부하다. 비안현에서 자체적으로 편찬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1994년 의성 문화원에서 간행한 『의성지 집록(義城誌集錄)』에는 1729년과 1758년의 『비안여지승람』이 영인되어 재수록되어 있다. 『의성지 집록』은 해방 이전에 편찬된 지금의 의성 지역 관련 읍지를 1책으로 엮어 놓은 것이다.

[형태/서지]

3종 모두 필사본이다. 『의성지 집록』에 수록된 1729년의 『비안여지승람』은 13매가 영인되어 있으며, 13행 26자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책에 수록된 1758년의 『비안여지승람』은 34매가 영인되어 있으며, 8행에 자수부정(字數不定)이다. 1878년의 『비안여지승람』은 14장으로 선장(線裝)되어 있으며, 앞에는 채색 지도를 수록하였다. 본문에는 『비안여지승람』으로 시작되지만, 표제는 『비안현읍지(比安縣邑誌)』이고, 행자수 부정(行字數不定)이다.

[구성/내용]

1729년의 『비안여지승람』의 서두에는 현의 경계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 건치 연혁(建置沿革), 관원(官員), 군명(郡名), 성씨(姓氏), 풍속(風俗), 형승(形勝), 산천(山川), 봉수(烽燧), 제언(堤堰), 토산(土産), 궁실(宮室), 객관(客館), 누정(樓亭), 학교(學校), 역원(驛院), 사묘(祠廟), 고적(古跡), 총묘(冢墓), 명환(名宦), 인물(人物), 효자(孝子), 충절(忠節), 열녀(烈女), 제영(題詠), 공안(貢案), 천안(賤案), 병안(兵案), 호액(戶額), 전안(田案), 전세(田稅), 창곡(倉穀) 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말미에는 신증 객관(新增客館)과 신증 현창(新增縣倉)이 수록되어 있다. 구성과 내용상 부세와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증보한 것으로 생각된다.

1758년의 『비안여지승람』 구성은 1729년 것과 거의 유사하다. 다만 산천, 봉수, 객관, 학교, 원각(院閣), 명환, 열녀 등과 부세 관련 조항이 증보되거나 새로운 항목으로 추가되어 있다. 말미에는 임진왜란 당시 향교의 위패를 잘 보관한 손복(孫福)을 기리는 김광섭(金光涉)의 「교전손복비문(校前孫福碑文)」과 홍재겸(洪在謙)의 「검암중각기(儉巖重刻記)」를 새롭게 수록하였다. 그런데 1758년의 『비안여지승람』에는 1758년 이후의 기록도 일부 확인되어, 후대에 추가로 증보된 것으로 생각된다.

1878년에 편찬된 『비안여지승람』은 대부분의 항목이 이전에 작성된 것들보다 간략하다. 그리고 부세 관련 항목은 수록하지 않았다. 대신 서두에 「비안읍지도(比安邑誌圖)」를 새롭게 수록하였으며, 말미에 역대 수령안인 「비안현읍선생안(比安縣邑先生案)」을 길게 수록해 놓았다.

[의의와 평가]

19세기 편찬된 『경상도읍지』와 『영남읍지』에 수록된 『비안현읍지』 보다 내용이 풍부하여, 당대의 비안현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1758년의 『비안여지승람』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비안 향교 연혁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음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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