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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619
한자 義城長春里毘盧舍那石佛坐像
이칭/별칭 의성 장춘리 석조 비로자나 석불,의성 장춘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불상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 2길 118[장춘리 산16-3]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황정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6월 19일연표보기 -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장처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 -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 산16-3지도보기
성격 불상
재질 석재
크기(높이) 불상 높이 90㎝|대좌 높이 83㎝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에 봉안되어 있는 고려 시대 불상.

[개설]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은 경상북도 의성군 비안면 장춘 2길 118[장춘리 산16-3] 장송 마을[긴솔 마을] 과수원 안에 지어진 작은 불당 내에 봉안되어 있다. 마을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400여 년 전에 집터를 닦다가 출토되어 큰 소나무 밑에 초가를 지어 모셔 놓았다가 근년에 과수원으로 개간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하여 봉안하였다고 한다. 1995년 6월 19일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한편 불당 앞에는 조그만 석탑의 부재들이 쌓여 있는데, 탑신석 위에 3매의 옥개석만 올려놓은 상태이다. 옥개석 받침은 하나뿐이고 낙수면이 가파르고 아주 짧다.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과 함께 발견되어 모아둔 것으로 보여 조성 연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형태]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의 전체 높이는 90㎝, 머리 높이는 33㎝, 어깨 너비는 50㎝, 무릎 너비는 116㎝이며, 연화 좌대의 총 높이는 83㎝이다. 불두(佛頭)는 꼬불꼬불한 작은 소라 모양을 붙여 놓은 듯한 나발(螺髮)의 머리카락에 정수리에 매우 낮은 육계(肉髻)가 표현되어 있으며, 두 눈은 훼손되어 깊게 패어져 있고, 코도 크게 손상되어 원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불상 전체의 비례에 비해 크고 긴 얼굴은 유난히 사각의 턱이 두툼하게 표현하였고 양 미간에는 별도의 보주를 박았던 백호공(白毫孔)이 뚜렷하며,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고 귓불은 유난히 두툼하게 표현되어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이 나타나 있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를 덮은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옷자락이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돌려져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두 다리를 덮으면서 내려와 대좌 위에 좁은 반원형의 주름을 남기고 있는데 주름선이 얇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팔꿈치에서부터 수인(手印)을 이루는 양 손은 불신에 비해 매우 빈약하고 가늘게 표현되어 있어 맨살이 그대로 드러난 느낌으로 옷자락이 살에 완전 밀착되며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불상이 앉은 대좌(臺座)는 전체적으로 팔엽 연화문의 상대석과 하대석, 그리고 팔각 중대석으로 이루어진 팔각 연화 대좌(八角蓮花臺座)이나 상대석과 하대석이 원형에 가깝게 둥글려져 있다.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은 전체적으로 불신의 비율에 비해 길고 큰 불두, 유난히 빈약한 양 팔로 인해 불상의 균형감을 잃고 있으며, 법의의 주름 역시 지극히 간략하고 도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불상이 앉은 좌대 역시 극히 간략하게 도식화된 연화 대좌로 구성된 점 등 비례감 및 조각 기법이 전성기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수인을 통해서도 통일 신라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비로자나불임을 확인할 수 있어 고려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징]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은 오른손의 검지를 왼손이 감싸 쥐고 있는 이른바 좌권인(左券印)을 하고 있는 비로자나불이다. 좌권인의 수인은 중국 당대와 북송대의 비로자나불상 중에서 간혹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주 불국사 금동 비로자나불 좌상을 비롯하여 홍천 물걸리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광주 증심사 철조 비로자나불 좌상 등 통일 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유행한 비로자나불상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좌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을 새로운 불상 형식을 수용할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단순한 좌우의 착오로 볼 수도 있겠으나, 수인(手印)이 불보살의 덕과 서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매우 중요한 항목임을 고려할 때 일정한 의미가 담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좌권인을 하고 있는 의성장춘리비로자나석불좌상은 비로자나불상의 양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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