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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455
한자 在地士族
이칭/별칭 양반,사대부,사림,처사,사족,유생,유림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형기

[정의]

조선 시대 의성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개설]

지금의 의성 지역은 조선 시대 의성현(義城縣), 비안현(比安縣)을 비롯하여, 상주목(尙州牧)의 속현이었던 단밀현(丹密縣), 보주(甫州)[예천(醴泉)]의 속현이었던 다인현(多仁縣)과 용궁현(龍宮縣)의 일부[현재 안사면 지역]가 해당한다.

[역사적 배경]

의성 지역은 후삼국 시대에 활약했던 홍유(洪儒)김홍술(金洪術)의 출신지로서 호족 세력이 강했던 곳이다. 그러나 홍씨는 점차 세력이 약해졌고 김씨만이 의성을 대표하는 대성으로 발전하였다. 의성 김씨(義城 金氏)는 고려 후기 이래 계속 상경종사하면서 여말 선초(麗末鮮初)에는 기호 지방에까지 진출하여 분포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의성 지역의 재지 세력은 사족(士族)과 이족(吏族)[향리층(鄕吏層)]으로 분화하였고, 사족은 영남 일원으로 확대되어 갔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정변이 발생했을 때 이를 피해 낙향하거나, 인척 관계에 있던 타도 출신의 사족을 의성으로 견인함으로써 많은 재지 사족을 보유하게 되었다. 의성은 안동과 인접해 있어서 안동의 토성들 또한 많이 이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의성현의 토성과 재지 세력]

조선 시대 의성 지역의 토성(土姓)은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의성현의 토성으로 김(金)·심(沈) 등 2성과 경래성(京來姓)인 왕(王)·류(柳) 등 2성, 속성(續姓)인 정(丁)·강(康)·김(金)·장(蔣)·노(盧)[노(魯)] 등 5성, 마지막으로 촌성(村姓)인 장기 오씨(長鬐吳氏)·진주 강씨(晉州姜氏)·이족(吏族)이 된 박(朴) 등 3성이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는 토성으로 김(金)·심(沈)·홍(洪)의 3성, 촌성으로 정(丁)·강(康)·설(薛)·노(盧)[노(魯)]·김(金) 등 5성, 개경(開京) 출신의 왕(王)·류(柳), 장기 오(吳)·진주 강(姜)과 속성(續姓)으로 박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새로 늘어난 성으로 아주 신씨(鵝州 申氏)·영양 이씨(永陽 李氏)·안동 권씨(安東 權氏)·한양 조씨(漢陽 趙氏)·아산 장씨(牙山 蔣氏)·안동 김씨(安東 金氏)·풍천 임씨(豐川 任氏)·영양 남씨(英陽 南氏)·울진 임씨(蔚珍 林氏)·고창 오씨(高敝 吳氏)·진성 이씨(眞城 李氏)·달성 서씨(達城 徐氏)·월성 손씨(月城 孫氏)·광산 김씨(光山 金氏)·광주 이씨(廣州 李氏)·평산 신씨(平山 申氏)·월성 이씨(月城 李氏)·반남 박씨(潘南 朴氏) 등 18성이 기록되어 있다.

위 기록을 정리해 보면 의성현은 여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고려 말 조선 초에는 재경 관인(在京官人)과 재지 이족(在地吏族)이 각자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공존하였으나 점차 사족과 이족으로 분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각종 사화와 임진왜란 등을 겪으면서 의성 지역의 향촌 지배 세력은 외부에서 이주해 온 성씨 집단으로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의성현의 대표적인 재지 사족으로는 토성으로 성장한 의성 김씨를 비롯하여 타읍에서 이주한 안동 권씨(安東 權氏), 아주 신씨(鵝州 申氏), 안동 김씨(安東 金氏), 영천 이씨(永川 李氏), 영양 남씨(英陽 南氏) 등이 있다. 한편, 의성 이족(義城吏族)으로는 사족과 이족으로 분화되었던 의성 김씨를 비롯하여 촌성인 정씨와 속성인 오씨 등이 있다. 의성 호장(義城戶長)으로 『정만록(征蠻錄)』을 쓴 이탁영(李擢英)[1541~1610]도 유력한 이족이었다.

[비안현의 토성과 재지 사족]

비안현의 경우 『세종실록지리지』에 비옥(比屋) 지역의 성으로 박(朴)·손(孫)·원(袁)·장(張) 등의 4성과 내성으로 정(鄭)·나(羅) 등 2성이 기록되어 있고, 신평 부곡(新平部曲)의 성으로 팽(彭) 1성, 이족이 된 임(林)·황(黃) 등 2개의 속성(續姓)이 기록되어 있다. 안정(安貞) 지역의 토성으로는 오(吳)·임(林)·나(羅) 등 3성, 이족이 된 밀양 박씨(密陽 朴氏)와 김(金) 등 3개의 속성이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의 기록도 동일하다.

비안현 토성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의 기록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에는 이주 토성이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그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대표적인 성씨는 비안 박씨(比安 朴氏)이다. 비안 박씨는 조선 초 박서생(朴瑞生), 박효원(朴孝元) 등이 문과에 급제하여 중견 관인의 지위까지 올라가며 사족으로 발전하였으며, 시간이 흐르며 점차 사족과 이족으로 분화되었다. 안정 나씨(安貞 羅氏)도 그 선세(先世)부터 현리(縣吏)의 역을 맡았다.

[단밀현의 토성과 재지 사족]

단밀현의 토성 역시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를 통해 파악해 볼 수 있다.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토성으로 인리성(人吏姓)인 나(羅) 1성과 촌락성(村落姓)인 손(孫) 1성이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서는 토성으로 나·손 등 2성과, 주선(主善)에 단곡(丹谷)과 생물(生物)에서 온 신(申) 외에 새로 증가한 성으로 조(趙)·장(張)·신(申)·류(柳)·하(河) 등 5성이 기록되어 있다.

단밀현의 토성 역시 여말 선초 사족과 이족으로 분화되었고, 향촌 지배 세력은 이주 토성으로 교체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밀현은 조선 시대 속현으로 존재하였기 때문에 이 지역의 재지 사족은 주읍(主邑)인 상주목의 유향소, 향교, 서원 등을 출입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특히 유성룡(柳成龍)의 후손인 풍산 유씨(豊山 柳氏)들이 단밀현에 정착하여 상주 지역 향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단밀현의 재지 사족들은 상주를 비롯한 의성과 안동 등의 유력 가문들과 혼인 관계 및 사제 관계를 맺으며 향촌 지배 세력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인현의 토성과 재지 사족]

다인현의 토성도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면 다인현의 토성으로 황(黃)·장(張)·최(崔)·목(睦) 등 4성과 내성(來姓)으로 나(羅)·백(白) 등 2성이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도 동일하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여지도서』의 기록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다인현의 경우도 비안현과 마찬가지로 조선 중·후기에는 이주 토성이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영향력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인현은 조선 시대 예천군의 속현으로 존속하였기 때문에 주읍인 예천군의 재지 사족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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