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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200250
한자 沙村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마강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88년 5월 1일 -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에서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12.6㎢
가구수 149가구
인구(남, 여) 306명[남자 161명, 여자 145명]

[정의]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사촌리는 옛날 사기점이 있어서 점곡(點谷), 점실 또는 사진, 수촌이라 하였다. 또 일설에 따르면 신라 시대 때 나(羅)씨, 손(孫)씨에 이어 1392년 김(金)씨가 들어와 서방(西方)을 막기 위하여 서림을 조성하고 동네 이름을 중국 사진촌(沙眞村)을 모방하여 붙였다고도 한다.

자연 마을 비대(比大)는 18세기 초 이참봉(李參奉)이 마을에 정착하여 부자골[富子谷]이라고 부르다가, 19세기 중엽 의성 김씨가 이주하여 마을의 지형은 좁고 긴 골짜기인데 비하여 작은 마을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중리(中里)는 15세기 중엽 사직공(司直公) 김한동(金漢仝)이 마을에 정착하여 사촌(沙村)과 비대의 중간 지점이라 하여 중사촌으로 부르다가 중리(中里)로 줄여 불렀다 한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의성군 점곡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서각동, 중리동과 서진동, 서후동, 비대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의성군 점곡면 사촌동이 되었다. 1988년 5월 1일 군 조례 제1225호에 의해 사촌동을 사촌리로 개칭하였다.

[자연 환경]

동쪽으로 생해봉, 서쪽으로 등운산, 남쪽으로 매봉산, 북쪽에 기룡산이 있다. 사방의 산과 물이 이곳으로 쏠려서 풍수지리적으로 산수가 밝고 맑아 장수하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 한다. 낙동강 지류 미천 북쪽에 사질의 기름진 땅이 동서로 길게 가로 놓여 있고, 그 뒤를 수려한 봉우리들이 마을을 지키며 감싸듯 솟아 있다. 사촌 서편 매봉산 기슭을 따라 길이 약 1,040m, 폭 40m의 방풍 경관림이 길게 가로 놓여 있는데 이것이 유명한 의성 사촌리 가로숲이다.

[현황]

사촌리점곡면 북쪽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2011년 현재 면적은 12.6㎢이며, 총 149가구에 306명[남자 161명, 여자 14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서변리와 경계를 하고, 서쪽으로는 송내리단촌면 병방리, 남쪽은 명고리, 북쪽은 단촌면 구계리를 이웃하고 있다. 자연 마을에는 비대[비대골], 중리, 사촌, 새뫁[새뭍]이 있다.

지방도 79호선이 마을 남쪽을 지나가고 동쪽으로 지방도 914호선이 연결된다. 농촌 마을로서 벼농사가 많이 이루어지며, 특산물로는 고추, 담배, 사과 등이 재배된다. 교육 기관으로는 점곡 초등학교가 있다.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69호 의성 만취당(晩翠堂)이 있고, 김응하(金應夏)가 강학하던 병암 서당(屛岩 書堂), 18세기 건립되었다 복원된 후산 정사(後山 精舍)가 있다. 사촌 3리에는 신라 시대 나정승(羅正丞)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의 묘가 자하산(紫霞山) 중턱에 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2.21 [현황] 수정 <변경 전> 복원된 후산 서원(後山 書院)이 있다. <변경 후> 복원된 후산 정사(後山 精舍)가 있다.
이용자 의견
김** [현황] 끝에서 둘째 줄에 '후산 서원(後山 書院)'을 '후산정사(後山精舍)'로 고쳐야 합니다.
  • 답변
  • 디지털의성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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