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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양현(良炫), 호는 취암(翠庵). 아들은 강린(姜璘)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강대일(姜大一)은 1871년(고종 8)에 출생하였다.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며, 천성이 인자하고 재덕(才德)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지조(志操)가 고결하고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삶을 살았다. 학문에 전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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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 권효(權曉)의 5세손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권구덕(權九德)은 조선 후기의 효자로 형제 여섯 명이 같은 집에서 살고 같이 먹으며 모든 재산을 같이 하였다.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묘지 아래에 여막을 짓고 주야로 슬프게 소리 내어 울어 피눈물이 물 솟듯이 흘렀다고 한다. 어머니가 집에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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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 때 순창에 은거하며 절의를 지킨 충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요일(堯日), 호는 만은(晩隱). 4대조는 길창 부원군(吉昌府院君) 권준(權準)이다. 권효(權曉)는 세종 때 벼슬이 사정(司正)에 이르렀고, 1452년(단종 1) 수양 대군이 고명 사은사(誥命謝恩使)로 명나라에 갈 때 수행하였다. 단종이 손위(遜位)하고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순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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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심(敬心), 호는 서담(西潭), 초명은 김의현(金宜鉉). 증조할아버지는 김상신(金相信)이고 형은 김기창(金箕昌)이다. 김기삼(金箕三)[1832~?]은 1832년(순조 32)에 출생하였는데 벼슬은 사복시 첨정(司僕寺僉正)을 지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먹임으로써 며칠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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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경로(敬魯), 호는 순재(順齋), 초명은 김창현(金昌鉉). 증조할아버지는 김상신(金相信)이고 동생은 김기삼(金箕三)이다. 김기창(金箕昌)[1825~?]은 1825년(순조 25)에 출생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를 지냈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먹임으로써 며칠을 더 살게 하였으며, 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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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지방 관리. 본관은 분성(盆城). 자는 영백(英伯). 할아버지는 김말선(金末善)이고, 아버지는 직장(直長) 김윤형(金允亨)이다. 김남준(金南俊)은 전함사(典艦司) 소속의 정5품직인 해운판관(海運判官)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고령(高靈)을 함락시키고 마을과 성문과 관청에 모두 불을 질렀다. 김남준은 불길 가운데로 뛰어들어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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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의병. 본관 경주(慶州). 자는 태선(胎仙). 제숙공(齊肅公) 김곤(金稇)의 후손으로, 판관 김백령(金百齡)의 5세손이다. 김봉학(金奉鶴)[1515~1592]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8세의 고령으로 김극복(金克福)·이팽령(李彭齡) 등과 함께 종을 거느리고 금산(錦山)으로 달려가서 초토사 고경명(高敬命)[1533~1592]의 막하로 들어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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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군보(君輔), 호는 작천재(鵲川齋). 할아버지는 김장(金將)이고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김치세(金致世)[1563~1606]이다. 김산경(金汕慶)[1591~?]은 1591년(선조 24)에 순창군 오산면[현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하였다. 음직(蔭職)으로 통사랑(通仕郞)을 지냈으며, 천성으로 효성이 지극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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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군서(君瑞), 호는 염계(廉溪). 아버지는 김시택(金始澤)이고, 부인은 구성훈(具聖勳)의 딸 능성 구씨이다. 동생은 김상홍(金相弘)이다. 김상신(金相信)[1768~?]은 1768년(영조 44)에 김시택의 큰아들로 출생하였다. 벼슬은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교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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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열녀. 본관은 능성(綾城). 아버지는 구성훈(具聖勳)이고, 남편은 광산 김씨(光山金氏) 김상신(金相信)이다. 김상신 처 열녀 능성 구씨[1768~?]는 1768년(영조 44) 순창군 풍산면에서 출생하였다. 김상신에게 출가하여 시가의 가훈에 감화되어 자식을 사랑하고 시부모에게는 효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병이 들어 악화되자 대소변을 맛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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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덕민(德敏), 호는 옥강(玉崗), 초명은 김정룡(金廷龍). 아버지는 김시택(金詩澤)이고, 부인은 강영수(姜永秀)의 딸 진주 강씨이다. 아들은 김익환(金翊煥)이다. 형은 김상신(金相信)이다. 김상홍(金相弘)[1784~?]은 1784년(정조 8)에 김시택의 둘째 아들로 출생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자 약을 구하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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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열녀. 본관은 진주(晉州). 아버지는 강영수(姜永秀)이며, 남편은 김상홍(金相弘)이다. 김상홍 처 열녀 진주 강씨[1786~?]는 1786년(정조 10)에 출생하여 김상홍에게 출가하였다. 남편이 괴질로 위급하자 두 차례에 걸쳐 좌우 허벅지를 베어 구환하여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김시택(金始澤) 이후 조손(祖孫) 간 2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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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에 거주하며, 강학당인 훈몽재를 수축한 학자.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휴징(休徵), 호는 자연당(自然堂). 현조할아버지[5대조]는 김인후(金麟厚)[1510~1560], 아버지는 김창하(金昌夏)이다. 김시서(金時瑞)는 1652년(효종 3) 장성(長城)에서 출생하였으며,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순창의 쌍치에 은거하며,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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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여옥(如玉), 호는 오강(鰲崗). 부인은 초계 최씨이다. 아들은 효자 김상신(金相信)과 김상홍(金相弘)이고 손자는 효자 김익환(金翊煥)이다. 김시택(金始澤)[1749~?]은 1749년(영조 25)에 출생하였고, 벼슬은 통덕랑을 지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6세 때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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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 본관은 초계(草溪). 아버지는 최부승(崔夫昇)이고, 남편은 김시택(金始澤)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김시택 처 효부 초계 최씨는 1748년(영조 24) 출생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남편의 효행을 도와 40여 년 동안 홀시어머니를 공양하는 데 지성으로 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김시택 이후 조손(祖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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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사윤(士允), 호는 오봉(鰲峰). 할아버지는 김시택(金始澤)이고 아버지는 김상홍(金相弘)이다. 김익환(金翊煥)[1804~?]은 1804년(순조 4)에 출생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어 병세가 위급하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먹임으로써 며칠을 더 살게 하였다. 상을 당하여 예에 어긋남이 없었으며, 시묘살이 삼년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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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백제조에 완산주의 도실군(道實郡)에 역평현(礫坪縣)과 돌평현(堗坪縣)이 보인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 전주 순화군조에 “순화군은 본시 백제의 도실군으로 경덕왕이 고쳤다. 지금 순창현이니 영현이 둘이다. 적성현은 본시 백제의 역평현인데 경덕왕이 바꾸어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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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공신. 본관 밀양(密陽). 자는 인서(寅瑞), 호는 양촌(陽村). 부제학 박강생(朴剛生)의 후손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절도사를 지낸 박대손(朴大孫)이다. 박춘성(朴春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춘방관(春坊官)으로서 입시하여 선조를 의주까지 호종하였다. 항상 왕의 수호를 맡았는가 하면 여러 차례 병략(兵略)을 왕에게 건의하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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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화남사에 배향된 고려 후기의 문관이자 효자.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대방(大方), 호는 송암(松庵). 이천 서씨(利川徐氏)의 시조 서신일(徐神逸)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서희팔(徐希八)이다. 아들은 대장군(大將軍) 서준(徐俊)이고, 손자는 상장군(上將軍) 서민경(徐敏敬)이다. 서릉(徐稜)은 장성현(長城縣)[지금의 전라남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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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에 있는 화남사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무인.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대수(大壽), 호는 정암(正巖). 고조할아버지는 유명한 효자 서식(徐湜)이다. 서숭로(徐崇老)[1532~1597]는 1532년(중종 27)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심과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학문이 고명하여 경전과 사서를 널리 습득하였다. 특히 병서(兵書)에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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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화남사에 배향된 조선 시대의 효자.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청원(淸源), 호는 사암(思巖). 고려 고종 때의 문관이자 효자인 서릉(徐稜)의 9세손이다. 서식(徐湜)은 효성이 지극하여 살림이 가난한 가운데에도 부모를 공양하는 데 있는 힘껏 하였고, 학행으로 경연(經筵)에 선발되어 중정대부(中正大夫) 진안 현감(鎭安縣監)에 제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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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장성(長城). 자는 태초(太初), 호는 유계(柳溪)이다. 서영우(徐永佑)[1605~?]는 1605년(선조 38)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여 8세에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수학하였으며 특히 병서에 통달하였다. 김문경(金文敬)의 문인으로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격분을 이기지 못하고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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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인.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일이(一以), 호는 미재(眉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설홍윤(薛弘允), 아버지는 통례원 통례(通禮院通禮) 설명(薛蓂)이다. 설관도(薛貫道)[1612~?]는 1612년(광해군 4) 순창에서 출생하였고, 1639년(인조 17)에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에 올랐다. 문장과 행의로 이름이 높고 구제 사업에 주력하였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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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순창(淳昌). 자는 중민(仲敏), 호는 백정(栢亭). 증조할아버지는 설봉(薛鳳)이며, 할아버지는 설안통(薛安統), 아버지는 중랑장(中郞將) 설응(薛凝)이다. 설위(薛緯)는 1419년(세종 1)에 식년시(式年試) 동진사(同進士) 1위로 급제하였다. 관직은 만경 현령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일찍이 현감을 지낼 때에 청렴하고 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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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학자.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공신(公信), 호는 청취정(淸翠亭). 증조할아버지는 절의로 이름이 있는 설순조(薛順祖)이다. 설홍윤(薛弘允)[1515~1583]은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환여 승람(朝鮮寰輿勝覽)』 순창군 편에 의하면,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와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과 학문을 하였으며, 중종 때 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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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 있던 군장 국가. 소석색국(小石索國)은 마한 54소국 중의 하나이다.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東夷傳)에는 삼한의 소국이 열거되어 있다. 여기에 대석색국(大石索國)이 보이는데, 이는 글자의 뜻으로 보아 석색국(石索國)을 ‘소(小)’와 ‘대(大)’로 구분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근본이 되는 나라 이름은 석색국이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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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신라 전주 순화군조에 “순화군(淳化郡)은 본시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으로 경덕왕이 바꾸었다. 지금 순창현이니 영현이 둘이다. 적성현은 본시 백제의 역평현인데 경덕왕이 바꾸어 지금도 그대로 하고 있다. 구고현은 본시 백제의 돌평현인데 경덕왕이 바꾸어 지금도 그대로 한다[淳化郡(淳一作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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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중눌(仲訥), 호는 쌍매당(雙梅堂). 증조할아버지는 귀암(龜岩) 양배(楊培), 할아버지는 양공준(楊公俊)이며, 아버지는 홍문관 전한(弘文館典翰)을 지낸 양홍(楊洪)[1508~1564]이다. 어머니는 안극함(安克諴)의 딸 순흥 안씨이다. 양사민(楊士敏)[1531~1589]은 1531년(중종 26)에 순창 구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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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화백(和伯), 호는 화양(華陽). 아버지는 양시진(楊時晋)이다. 양여매(楊汝梅)[1601~1655]는 1601년(선조 34)에 출생하여 1635년(인조 13)에 진사에 올랐으며, 박학(博學)과 문장(文章)으로 이름이 있었다. 1636년(인조 14) 양여매의 주도로 옥천 사마재(玉川司馬齋)를 결성하였는데, 옥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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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 순창에는 일찍이 후기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며 문화를 발전시켜왔다. 청동기 시대가 되면 고인돌이 보이는데, 동계면, 금과면, 팔덕면 일대에 집중적으로 산재되어 있다.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영토로 오산(烏山) 또는 옥천(玉川)이라 불렀고, 삼국 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 도실군(道實郡)이 되었다. 백제가 망하자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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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백제조에 완산주 도실군(道實郡)에 역평현(礫坪縣)과 돌평현(堗坪縣)이 보인다. 또한 『삼국사기』 지리지 신라 전주 순화군조에 “순화군은 본시 백제의 도실군으로 경덕왕이 바꾸었다. 지금 순창현이니 영현(領縣)이 둘이다. 적성현은 본시 백제의 역평현인데 경덕왕이 바꾸어 지금도 그대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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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오산현(烏山縣)의 유래와 관련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옥천 군지(玉川郡誌)』[1760]의 산천조에 “오산(烏山)에 읍을 설치할 때 산의 형상이 까마귀 모양인 까닭이고, 군명(郡名)에서 오산과 옥천의 명칭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이 대립하기 이전에 있었을 것이며, 지금 향교의 주산을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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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순창군 읍지(淳昌郡邑誌)』와 『옥천 군지(玉川郡誌)』[1760]의 군명(郡名)에 “오산과 옥천의 명칭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이 대립하기 이전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 순창군의 서북 1리[약 0.39㎞]에 옥천동(玉川洞)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옥천현(玉川縣)의 유허이다[但烏山玉川之稱 不知在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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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에 있던 조선 시대의 숙박 시설.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에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하여 중요한 길목에 설치된 편의 시설이다. 원과 역(驛)은 같은 장소에 설치되는 경우가 많아 역과 원을 합해 역원(驛院)이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시대 전국에는 모두 1,310개의 원이 있었으며 경상도 468개, 전라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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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전라북도 순창군 지역의 효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사진(李士鎭)이며, 남편은 여주 윤씨(驪州尹氏) 윤문상(尹汶相)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이귀순(李貴順)[1900~1950]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정숙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출가하여 가세가 빈곤하였으나 시종 근검한 생활로 자식 교육과 시부모 공양에 지성을 다하였다.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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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군수를 역임하였으며, 순창의 지계 서원에 배향된 문신. 본관은 우봉(牛峯). 자는 수익(受益), 호는 만회(晩悔). 고조할아버지는 이승건(李承健), 증조할아버지는 이심(李諶), 할아버지는 이지신(李之信)이다. 아버지는 이길(李劼)이고, 어머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이다. 부인은 파평 윤씨(坡平尹氏)로서 윤홍유(尹弘裕)의 딸이다. 5남 1녀를 두었다.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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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자오(子五), 호는 청재(淸齋). 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고 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이다. 아들은 효자 임종혁(林宗赫)과 임종빈(林宗彬)이다. 임광수(林光洙)[1750~?]는 1750년(영조 26)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집안의 가훈을 이어받아 더욱 가풍을 진작시켰다. 아버지의 등창이 심하자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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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문관.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성배(聖配), 호는 오암(鰲庵). 중종 때 승지를 지낸 귀래정(歸來亭) 임붕(林鵬)[1486~?]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임덕화(林德華), 할아버지는 임형원(林馨遠), 아버지는 상묵재(尙默齋) 임복(林馥)이다. 임문수(林文洙)[1802~1883]는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비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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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부. 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이주의(李周儀)이고, 남편은 나주 임씨(羅州林氏) 임병구(林炳球)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임병구 처 열녀 전주 이씨[1883~?]는 1883년(고종 20)에 출생하였고, 어려서부터 효성이 깊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나주 임씨 집안으로 출가하여 시부모를 친부모처럼 섬기고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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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형보(亨甫). 아버지는 임재무(林再茂)이다. 아들은 효자 임양성(林養性)이고 손자는 임광수(林光洙)이다. 임시채(林時采)[1708~?]는 1708년(숙종 34)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침에는 일찍 안부를 묻는다는 뜻]의 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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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군평(君平), 호는 호호옹(虎護翁). 할아버지는 임재무(林再茂)이고 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다. 아들은 효자 임광수(林光洙)이다. 임양성(林養性)[1730~?]은 1730년(영조 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아버지가 허벅지에 난 종기로 고생을 하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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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대구(大邱). 아버지는 배윤복(裵胤福)이고, 남편은 평택 임씨(平澤林氏) 임용진(林容鎭)이다. 임용진 처 열녀 대구 배씨[1781~?]는 16세에 순창군 인계면 호계리의 임용진에게 출가하였다. 배씨는 시부모 공양과 남편 봉양에 정성을 다하였다. 남편이 괴질에 걸리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탕제를 끓여서 정성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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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도여(道汝), 초명은 임백긍(林栢兢)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고 할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 아버지는 임광수(林光洙)이다. 형은 임종혁(林宗赫)이다. 아들은 효자 임환(林煥)이다. 임종빈(林宗彬)[1801~?]은 1801년(순조 1)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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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字)는 문여(文汝), 초명은 임백혁(林栢赫). 증조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 할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 아버지는 임광수(林光洙), 동생은 임종빈(林宗彬)이다. 임종혁(林宗赫)[1782~1847]은 1782년(정조 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선대의 효제(孝悌)의 가훈을 이어받아 평생을 한 번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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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평택(平澤). 자는 원거(元巨), 호는 농암(聾庵), 초명은 임노항(林魯恒). 고조할아버지는 임시채(林時采)이고 증조할아버지는 임양성(林養性)이며, 할아버지는 임광수(林光洙), 아버지는 임종빈(林宗彬)이다. 임환(林煥)[1826~?]은 1826년(순조 26)에 순창군 유등면 외이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선인들의 가훈을 이어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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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노원리에 있던 나루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적성진(赤城津)은 임실현(任實縣) 오원천(烏源川)의 하류이다. 일명 화연(花淵)이라고도 하는데, 적성산(赤城山) 아래에 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데, 세속에서 전하기를 신령스러운 것이 있다고 하며 날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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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사(高麗史)』 지리지 남원부 적성현조에 “적성현(赤城縣)은 본래 백제 역평현(礫坪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지금 이름으로 고쳐 순화군의 영현(領縣)으로 삼았다. 고려 초에 내속되었으며 뒤에 순창군에 다시 속하게 하였다[赤城縣 本百濟礫坪縣 新羅景德王 改今名 爲淳化郡領縣 高麗初 來屬 後還屬淳昌郡]”라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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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보(順甫), 호는 화암(花巖). 증조할아버지는 효자 정시태(鄭時泰)이고 아버지는 정채룡(鄭采龍)이다. 정상신(鄭商臣)[1775~?]은 1775년(영조 51)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가정의 교훈을 이어받아 효성이 지극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예를 다하여 마쳤고, 시묘살이를 지성으로 하자 하늘이 감동하여 큰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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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미화(美化), 호는 방은(芳隱). 계림군(鷄林君) 정지년(鄭知年)[1395~1462]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정언교(鄭彦僑)이다. 손자는 효자 정채룡(鄭采龍)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정시태(鄭時泰)는 품성이 순효하여 부모를 섬김에 있어 혼정신성(昏定晨省)[저녁에는 잠자리를 살피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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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애죽당(愛竹堂). 할아버지는 정시태(鄭時泰), 아버지는 정세만(鄭世萬)이다. 아들은 효자 정상신(鄭商臣)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정채룡(鄭采龍)은 어려서부터 조상들의 행실을 본받아 잘 지켜서 홀어머니를 섬기는 데 효를 다 하였다. 어머니 앞에서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려서 마음을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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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어암 서원에 배향된 조선 전기의 문관이자 학자.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 아버지는 돈녕부 판관(敦寧府判官) 정유침(鄭惟沈)이다. 정철(鄭澈)[1536~1593]은 1536년(중종 31) 서울 장의동(藏義洞)[지금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출생하였다. 인종(仁宗)의 귀인(貴人)[후궁]인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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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의 역사와 문화. 1. 조선 전기 1409년(태종 9) 전라도의 모든 임내를 직촌화하는 조치에 따라 순창군의 임내인 적성현과 복흥현 및 치등소, 유등촌소, 감물토소, 잉좌소, 고도암소 등이 순창군의 직촌으로 병합되었다. 신라 때부터 현이었고, 고려 시대에는 남원부나 순창군의 임내였지만 하나의 고을이던 적성현과 복흥현 등이 없어지고 5개의 소까지 합해져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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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 출신의 선비.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인우(仁佑). 할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적교(趙勣敎)이고, 아버지는 화릉 참봉(和陵參奉)을 지낸 조여옥(趙汝玉)이다. 조수억(趙壽億)은 순창(淳昌)에서 출생하여 1531년(중종 26)에 생원(生員) 식년시(式年試)에 3등(三等) 21위로 급제하였다. 선조 때 성균관 생원으로 수학하다가 귀향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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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충신.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성중(聖中), 호는 농은(農隱). 증조할아버지는 옥천 조씨의 시조인 문하시중 조장(趙璋)이며, 아버지는 옥천 부원군으로 추증된 조전(趙佺)이다. 아들은 조유(趙瑜), 조영(趙瑛) 등이다. 조원길(趙元吉)[?~1391]은 1369년(공민왕 18)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이 검교 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에 이르렀다. 정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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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순창 출신의 충신. 본관은 옥천(玉川). 자는 유옥(兪玉), 호는 옥천(玉川)·건곡(虔谷). 아버지는 옥천 부원군 조원길(趙元吉)이다. 조유(趙瑜)[1346~1428]는 1346년(충목왕 2) 순창에서 출생하였으며, 진사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중현대부(中顯大夫) 전농시 부정(典農寺 副正)에 이르렀다. 고려 말에 정치가 날로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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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단종에 대해 절의를 지킨 순창 출신의 의절신. 본관은 옥천(玉川). 호는 돈세옹(遯世翁). 아버지는 옥과 현감(玉果縣監)을 지낸 조희충(趙希忠)이다. 조윤옥(趙潤屋)은 순창군 적성면 대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다. 단종 때 승정원 사간(承政院司諫)으로 있다가 세조의 찬탈 뒤 벼슬을 버렸다. 순창의 추산(追山)에 은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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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순창에 거주한 공신. 본관 창녕(昌寧). 호는 퇴사헌(退思軒), 봉호(封號)는 옥천군(玉川君).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 문하시중을 지내고 창성 부원군에 봉해진 조민수이다. 조흡(曺恰)[?~1429]은 1400년(정종 2) 태조의 넷째 아들인 이방간(李芳幹)이 박포(朴苞)와 결탁하여 일으킨 제2차 왕자의 난[방간의 난, 박포의 난이라고도 함]에서 공로를 세워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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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년에 순창 군수 김정, 담양 부사 박상, 무안 현감 유옥이 중종의 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며 상소를 올린 사건. 중종의 비 신씨는 1499년(연산군 5)에 중종이 진성 대군(晋城大君)으로 있을 때 혼인하여 부부인(府夫人)에 책봉되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왕후가 되었다. 폐비의 아버지 신수근(愼守勤)은 여동생이 연산군의 비였으므로 연산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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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창신리에 있던 교통·통신을 담당한 역. 역은 역관(驛館), 역참(驛站), 우역(郵驛) 등 다양하게 불리며 중국의 역전 제도(驛傳制度)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이야기된다. 역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신라에서 우역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삼국 시대부터 있었으며, 고려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는 고려의 역제를 이어받아 본격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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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달천(達千).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대사간 문하찬성사 최양(崔瀁)[1351~1424]의 13세손이다. 최관익(崔寬翊)[1817~?]은 순창군 구림면 월정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인후(仁厚)하고 의용(儀容)이 단정하며 우애가 남달랐고 부모를 봉양하는 데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의 병(病)에 정성을 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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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김치행(金致行), 남편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사복시정(司僕寺正)을 지낸 경주 최씨(慶州崔氏) 최길영(崔吉榮)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최길영 처 열녀 김해 김씨는 어려서부터 천성이 유순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하여 시부모 공양에 정성을 다하였으며 남편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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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지역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안동(安東). 남편은 경주 최씨 최문석(崔文錫)이다. 『전북 향교 원우 대관(全北鄕校院宇大觀)』에 의하면, 최문석 처 안동 권씨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부드럽고 정숙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0세에 출가하여 시부모에게 효를 다하고 남편을 공경함에 예를 다하였다. 남편이 병에 걸리자 잠시도 곁을 떠나는 일이 없이 간호하여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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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순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여신(汝愼). 아버지는 최억창(崔億昌)이다. 최영국(崔榮國)[1772~?]은 1772년(영조 48)에 순창군 유등면 오교리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아버지의 병환에 대소변을 맛보아 병세를 가늠하고 그 병을 자신이 대신하기를 기원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슬픔이 지극하였고 3년을 하루같이 성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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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순창 출신의 효부이자 열녀.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인 김종현(金宗鉉)이고, 남편은 화순(和順) 최씨 최윤문(崔允文)이다. 최윤문의 처 효부 김해 김씨[1865~?]는 1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혼인하여 시부모를 정성껏 공양하고 남편을 공경함에 부도(婦道)를 다하였다. 남편이 병이 드니 백방으로 약을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