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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던 소년 계몽 운동 단체. 소년회(少年會)는 1919년 봄 이후로 서울·안변(安邊)·진주(晋州) 등 전국 각지에서 조직된 소년 운동 단체이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1930년 9월 2일 군내면 유교리 평촌에 있는 명신 학원(明新學院)을 중심으로 명신 소년회가 조직되었다. 명신 소년회는 소년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함께 경기도 포천 지역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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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조직되었던 여성 단체. 부인회는 경기도 포천 지역 농촌 여성들의 생활 개선과 노동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32년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용정리 신촌 부인회를 비롯하여 군의 각 면에 부인회가 조직되었다. 이중 확인된 것으로는 경기도 포천군 일동면 수팔리 부인회, 군내면 명산리 부인회, 영중면 영송리 내하동 부인회, 영북면 운천리 적현동 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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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지역에서 최초로 의병 활동이 일어난 곳. 1907년 9월 20일 오전 3시경, 포천군 외면 상송우리에 의병 약 100명이 내습하여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추정되는 마을 사람 1명을 총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일진회원 1명을 납치하였다. 그 후 이 소식을 접한 포천 주재 순검 신석주(申錫柱)가 수비병과 함께 추격해 오자 의병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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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소농을 위해 설립된 농민 조합. 소농 공제 조합은 일제 강점기에 농촌에 있는 빈약한 중소 농민층을 구제할 목적으로 설치되었으며, 농회를 통해 소농에게 자금을 융통하거나 금전을 대부하기도 하고 부업과 저축을 장려하기도 하였다. 중소 농민을 위한 저리의 자금 융통, 농산물 거래 지원, 부업 장려 등을 위해 설립되었다. 성북 소농 공제 조합은 19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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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25 전쟁 때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지역에서 활동한 민간 유격 부대. 소리봉 부대는 1950년 6·25 전쟁으로 경기도 포천 지역이 북한군 치하가 되었을 때 포천 지역의 청년들이 조직한 유격대로 북한군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소리봉 부대는 6·25 전쟁 기간 동안 경기도 포천 지역을 지키고, 북한군을 물리치기 위해 조직되었다. 1950년 7월 중순경 경기도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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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었던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1907년 칙령 제33호 「지방 금융 조합 규칙」을 발표한 이후에 전국 각지에 세워졌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여러 차례 조합령 개정으로 변하였으며, 1918년 조합령 개정 후에 예금 업무를 시작하였다. 송우 금융 조합은 조합원에게 농업상 필요한 자금 대부, 예금, 곡물의 창고 보관 업무 등 지역 농민들의 금융 지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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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에 세운 상업 진흥 단체.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는 호구 수가 300호에 달하는 시장 소재지로서 지역의 상업 중심지였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에 들어 상업 활동이 저조하여 지역의 상업 중심지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에 시민들이 힘을 합해 송우 진흥회를 조직하였다. 송우 진흥회는 산업 진흥, 수요 공급의 원활화, 구습 제도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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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 지역에 세운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는 주로 청년 단체와 그 회원들에 의해서 주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1920년대에 포천 지역에서 많은 청년 단체도 조직되었는데 송우 청년단은 그 중 대표적인 단체였다. 송우 청년단은 포천의 상업 중심지로 시장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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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일대에서 일어난 방어 전투.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제3사단[소장 이영호]·제4사단[소장 이권무]의 2개 보병 사단과 1개 기갑 여단이 기습적으로 남침하자, 포천 지역에서 국군 제7사단 제1, 제9연대가 대적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다. 본래 제7사단 예하에는 제3연대도 편제되어 있었지만, 6월 1일자로 수도경비사령부 산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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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송우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하였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송우리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1930년대 초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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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송우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만세 시위가 시작된 이래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 되어 가던 중 포천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송우리 주민 600여 명이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송우리 헌병 분견소 헌병 경찰들의 총검에 맞서 다수의 부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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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35년까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심곡리에서 운영된 수리 조합. 수리 조합은 일제의 산미 증식 계획 수립을 전후로 하여 본격적으로 증설되기 시작했으며 심곡 수리 조합도 그중 하나이다. 1917년에 「조선 수리 조합령」을 발포하여 수리 시설의 개량을 기도했던 일제가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일대의 관개 개선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1919년 12월 25일에 설치를 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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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양문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양문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양문 노동 야학은 경기도 포천군 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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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북면을 중심으로 조직된 수리 조합. 일제는 산미 증식 계획을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수리 조합 사업을 통해 토지 개량 사업을 진행하였다. 당시 대부분의 논농사가 강우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관개 개선 중심의 토지 개량 사업이 필요하였다. 이를 위해 일제는 각 지역에 수리조합을 설립하였다. 그런데 일제의 수리 조합 사업은 일제와 소수의 대지주들이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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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영평리에 설립된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1907년 칙령 제33호 「지방 금융 조합 규칙」의 발표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조합령 개정이 있었고, 1918년의 조합령 개정 후로 예금 업무를 취급하였다. 영평 금융 조합은 농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 예금, 곡물 보관 등의 업무를 통해 지역 농민들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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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용정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용정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용정 노동 야학은 당시 취학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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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학자.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필경(弼卿), 호는 자교당(慈敎堂). 할아버지 유성증(兪省曾)은 관찰사로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아버지 유황(兪榥)은 관찰사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직장(直長) 송시욱(宋時煜)의 딸인데 아버지의 후처(後妻)였다. 유명뢰(兪命賚)[1652~1712]는 17세에 우암(尤庵)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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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계소(季昭), 호는 향하(香下). 시령 부원군(始寧府院君) 영의정(領議政) 유전(柳㙉)의 10세손이다. 유병철(柳秉喆)[1807~1889]은 1887년(고종 24) 천거로 금부도사를 제수받고, 1888년(고종 25) 돈령부 도정을 제수받았다. 1889년(고종 26) 조 대비(趙大妃)의 망구칭경(望九稱慶)으로 동지돈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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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희명(希明), 호는 노포당(老圃堂).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가 일으킨 역성혁명에 가담하여 개국원종공신이 된 유만수(柳曼殊)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중추원 사 유원지(柳原之)이고 할아버지는 판관 유종(柳淙)이다. 아버지는 세마 유사공(柳思恭)이며 외할아버지는 홍상직(洪尙直)이다. 부인은 정장계(鄭張繼)의 딸이다. 유순(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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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후기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원지(元之), 호는 관재(寬齋). 증조할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유여해(兪汝諧)이고, 할아버지는 참판 유창(兪瑒)이다.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유회일(兪晦一)이며 외할아버지는 예조참판 이준구(李俊耈)이고, 부인은 이강(李綱)의 딸이다. 유숭(兪崇)[1661~1734]은 1699년(숙종 25) 증광 문과 을과로 급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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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천녕(川寧). 자는 신지(信之). 호는 벽량(碧梁)이다. 유응부(兪應孚)[?~1456]는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올라 1448년(세종 30) 첨지중추원사에 임명되었고, 1449년(세종 31) 경원 도호부사·경원 절제사를 거쳐, 1452년(단종 즉위년) 의주 목사에 임명되고, 1453년(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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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성동리에 세운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유정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유정 노동 야학은 경기도 포천군 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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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의 주택과 집터에서의 삶. 인간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해 가기 위해서는 그 본거지로서 가옥을 필요로 한다. 가옥은 인간 거주의 최소 단위이고, 물질문화의 기본 속성 중의 하나이다. 인간은 가옥을 근거로 하여 생활을 해 왔으며, 그 형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였다. 한편 가옥의 구조나 형태는 각 지역의 지리적, 사회적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가옥은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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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던 식민지 체제 안정을 위해 일제가 세운 농촌 진흥 단체. 일제는 농촌 진흥 운동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대표적인 관변 단체로 기능할 농촌 진흥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농촌 부락들을 지배해 나갔다. 일제 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농촌 진흥 운동 방침에 따라 농촌 진흥과 농민의 자력갱생을 목표로, 각 지역의 관공서가 중심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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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천도교 계열의 종교. 청림교(靑林敎)는 동학 혁명 후 남정(南正)이 창시한 종교이다. 남정은 본래 최제우(崔濟愚) 밑에서 동학을 배운 서울 출신의 양반이었는데, 동학 농민 운동 이후 따로 청림교를 세워 서울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포교 활동을 하였다. 교의 의식은 천도교나 시천교와 유사했으며 교리로는 새로운 지혜와 바른 생각을 발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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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길에 있는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4학년생들이 동맹 휴학을 벌인 곳. 포천 공업 보통학교 동맹 휴학은 1927년 이 학교 4학년 학생들이 송원(宋原) 일본인 교장의 학생 구타에 집단 반발하여 동맹 휴학을 한 사건이다.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송원 일본인 교장이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을 구타하자, 교장을 배척하고자 동맹 휴학을 하였다.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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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있던 경제 단체. 계는 농촌 주민의 필요에 따라 예로부터 자생적으로 발생, 유지된 집단으로 두레·품앗이보다 보편적이고 활발한 것이었다. 포천 구우계는 지역의 경제를 살리고 조선 총독부와 싸울 수 있었던 지역 경제 단체였다. 포천 구우계는 지역의 농가 소득과 경제 발전을 위해 조직되었다. 포천군 신읍 발전 기관인 번영회와 군내면, 서면, 신북면,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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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조직된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대한 독립 촉성 국민회는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 추진 단체로 1946년 2월 8일 서울 인사동에서 이승만(李承晩)의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와 김구(金九)의 신탁 통치 반대 국민 총동원 위원회가 통합하여 발족하였다. 발족 당시 채택한 선언문에는 “단조(檀祖)의 성혈(聖血)이 얽히고 가갸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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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설립된 금융 조합. 금융 조합은 1907년 칙령 제33호 「지방 금융 조합 규칙」의 발표와 더불어 전국 각지에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일제 강점 이후에는 여러 차례의 조합령 개정이 있었고, 1918년의 조합령 개정 후로 예금 업무를 취급하였다. 포천 금융 조합은 농업에 필요한 자금 대부, 예금, 곡물 보관 등의 업무를 통해 지역 농민들을 경제적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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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경기도 포천 지역에 조직된 지역 언론 단체. 포천 기자단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직후에 결성되었던 우익 청년 운동 단체인 대한 청년단의 사무실에서 조직되었다. 따라서 포천 기자단은 당시 우익 청년 단체인 대한 청년단과 같은 뜻을 가진 지역 언론인들로 조직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 청년단은 1948년 12월 19일 좌익계 청년 단체들의 통합체인 민주 청년 동맹(民主靑年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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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읍내에 설치한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포천 노동 야학도 그중 하나이다. 포천 노동 야학은 경기도 포천 읍내 지역의 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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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에 세운 상인 단체. 번영회는 지역의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경제 단체이다. 기본적으로 회원들 상호간의 친목 도모 및 발전을 위한 상호 부조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또한 지역 경제의 발전과 자영업자들의 경제적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이다. 포천 번영회는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 지역 상인들이 조직한 상인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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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에 세운 청년 운동 단체. 포천 산업 청년회는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에 살던 청년들이 모여 포천 지역의 농업 발전과 노동 야학, 지역 빈곤층 위문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청년 운동 단체이다. 포천 산업 청년회는 농사 개량, 축산 진흥, 삼림 조성 등을 통한 농업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경기도 포천군 서면 신읍리의 무산 청년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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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설립된 소년 계몽 운동 단체. 포천 소년회는 경기도 포천 지역 어린이들을 계몽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창립 당시 강령을 살펴보면, ‘참된 사람이 되자, 배우며 일하자, 선(善)을 위하여 일하자, 대중의 종이 되자’였다. 이를 통해 포천 소년회가 계몽 사업의 전개를 위해 설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28년 3월 10일 조무환(曹武煥)의 발기로 군청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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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4월 19일 경기도 포천군 군민들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개최한 행사. 포천 시민 위안 대회는 포천 군민들을 위해 포천 번영회와 포천 청년단이 개최한 행사로, 1930년 4월 19일부터 4월 23일까지 5일간 진행되었다. 장소는 포천군 서면 신읍리[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시장이었으며, 후원 단체는 『동아 일보』와 『중외 일보』 포천 지부였다. 첫날인 4월 19일에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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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의 청년 연합 단체. 포천 연합 청년단은 일제 강점기에 경기도 포천 지역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여 만든 청년 단체이다. 일제의 지배 정책에 잘 따르도록 하고, 지역의 단체들을 친일 단체로 만들기 위해 설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1937년 10월 28일 포천 공립 보통학교[현 포천 초등학교] 대강당에서는 군내 각 청년단을 망라하여 단원 400여 명과 내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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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포천 공립 보통학교에서 열린 연합 학예회. 포천 연합 학예회는 포천 공립 보통학교[현 포천 초등학교]와 심상소학교가 연합하여 개최한 학예 행사이다. 1927년 3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포천 공립 보통학교와 심상소학교가 서로 연합하여 학예회를 개최하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60여 종에 이르는 동화와 유희를 선보여 참여한 학부모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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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용상동에 있었던 야학. 1919년 3·1 운동 이후 1920년대 들어 전국적으로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여러 곳에 야학이 세워져 많은 노동자, 농민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문맹 퇴치에 공헌했으며 국권 회복을 위한 항일 운동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포천 용상동 야학교도 그중 하나이다. 포천 용상동 야학교는 일반 노동 계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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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세운 감리교 청년 단체. 의법 청년회는 엡윗 청년회(Epworth League)를 한자식으로 표한 것이다. 엡윗 청년회는 1889년 미국에서 창설된 감리교의 청년 단체이며, ‘엡윗’은 요한 웨슬리의 고향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1897년 5월 5일 서울 정동 교회에서 창립된 엡윗 청년회를 기점으로 하고 있으며 이후 전국 각지에 엡윗 청년회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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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1952년 2월 1일 대한민국 재향 군인회가 부산에서 창립되었고, 1961년 12월 27일 재건 총회로 경기도 재향군인회가 창립되었다. 이어 1962년 2월 26일에 전국 21개 시·군회, 256개 읍·면·동회가 조직되었다. 포천 재향 군인회도 이 무렵 조직된 것으로 추정된다. 포천 재향 군인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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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세운 청년 단체. 1919년 3·1 운동 이후 각 지역에서는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도 청년 단체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노동 야학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이들 노동 야학 운동을 지원한 대표적인 단체가 포천 청년회였다. 1920년대 당시 청년 단체들의 가장 긴급하고도 중요한 사업이었던 지식 보급, 도덕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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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 지역에 세운 일제의 농업 정책 담당 기관. 농회는 1926년 1월 일제가 「조선농회령」의 공표와 함께 조선 농민을 착취하기 위해 전국적인 조직으로 설립한 농촌 단체이다. 농회는 농업에 대한 실질적인 행정 권한을 가지고 소작 쟁의 조정 및 중재, 농업 지도 장려 및 친목 도모, 복리 증진, 농업 연구 등에 관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포천군 농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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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동에 있는 산림 조합. 산림 조합은 조선 시대 향약의 일종인 송계에서 출발하였다. 조합의 업무를 원활하게 운영하고 공동의 이익을 증진하고자 설립된 비영리 사단 법인으로, 「산림조합법」에 의거한 조합 구성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산림 보호와 개발을 촉진함으로써 국민 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포천시 산림 조합은 조합원이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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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열리는 다양한 축제와 정기적으로 서는 오일장. 축제의 전통적 개념은 예술적 요소가 포함된 제의(祭儀)적 성격과 놀이로서의 유희(遊戱)적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는 문화 활동이다. 현재의 지역 축제는 축(祝)과 제(際)의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으나, 사회 변동에 의해서 오늘날에는 종교적 신성성이 거의 퇴색하고 유희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제(際)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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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초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하성북리에 세운 농촌 청년 단체. 하성북리 청년단은 경기도 포천군 군내면 하성북리 지역 청년들이 농업 발전과 농사의 개량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하성북리 청년단은 밭의 하루갈이 공동 경작 및 조기 작업과 야학 경영 등을 실천하려고 하였다. 하성북리 청년단은 단장 양경혁, 총무 박영찬, 간사 박호성 외 2명 등으로 조직이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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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결성된 한국 반공단의 경기도 포천 지역 지부. 한국 반공단은 1948년 4월 12일 서울 종로 기독교 청년 회관에서 결성된 반공 단체이다. 한국 반공단의 설립 이후로 전국 각 지역에 지부가 결성되었는데 한국 반공단 포천군 지단도 이 당시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반공단 포천군 지단은 우리나라의 완전 자주 독립과 세계 인류 평화 수립을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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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경기도 포천에 있던 개성 한영 서원의 분교. 한영 서원(韓英書院)은 미국 남감리교 선교부가 1906년에 세웠으며 윤치호(尹致昊)가 원장이 되어 본교는 개성에, 분교인 한영 지서원(韓英支書院)은 포천에 두고 민족 지도자 양성을 목적으로 운영하였다. 윤치호는 한영 서원의 초대 및 제4대 교장을 맡아 학교를 운영하였다. 윤치호는 교장으로 있으면서 실업 교육 중시, 근로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