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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유학자 하헌진(河憲鎭)[1859~1921]의 유집(遺集). 하헌진의 호는 극재(克齋)이고 자(字)는 맹여(孟汝)이다. 동료(東寮) 하재문(河載文)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행동에 법도가 있고 말과 글이 편하면서도 매력이 있어 원근의 유학들이 존경하였다. 그는 ‘극복(克復: 克己復禮의 준말)’을 삶의 좌표로 삼아 매사에 극진히 임하였으며, 김황(金榥) 등과 함께 면우(俛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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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서 가뭄이 심할 때 비오기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례로 행해졌던 줄다리기 놀이. 줄다리기는 대개 풍농을 기원하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던 대동놀이이다. 하지만 진주지역에서는 가뭄이 심할 때 비오기를 기원하며 부정기적으로 행해왔다. 본래 줄다리기의 주술적 의미는 줄을 용이라 부름으로써 용신(龍神)을 상징하고, 용신은 곧 수신(水神)으로 농사의 풍흉과 직결된다. 따라서 청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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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학자 강보환의 유집. 모암(慕巖) 강보환(姜普桓)[1864~1936]의 자(字)는 내윤(乃允)으로 의령 덕천(德川)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주경야독하면서 약관의 나이에 서사(書史)의 대의에 통하였다. 강보환은 ‘술이부작(述而不作)’의 뜻으로 시문을 모아두지 않았으나, 사후 아들인 강병삼과 강병주가 몇몇의 시문을 찾아 유고로 문집을 발간하였다. 『모암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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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정용균(鄭龍均)[1838~1871]의 실기(實記)를 기록하여 편찬한 문집. 정용균의 자는 윤원(允元)이며, 호는 모재(慕齋)로서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침착하고 진중하여 학문하기 좋아하여 성현을 본받고자 하였다. 정용균은 특히 어버이를 섬김에 효를 다하였다. ‘모친이 학질을 앓아 병이 깊어 해를 넘기자 새벽마다 하늘에 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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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학자 이수필의 문집. 소산(素山) 이수필(李壽弼)[1864~1941]의 자(字)는 정윤(廷允)으로 진주 마진(麻津)에서 태어났다. 일찍 부모를 여의었으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학업에 진력하였다. 어려서부터 재주가 비범하여 약관의 나이에 백가지서(百家之書)에 통달하였으며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과 더불어 독서하였다. 집현산 아래에 거주하며 제자를 길렀으며, 만년에는 삼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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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 진주의 유학자인 성률(成凓)[1856~1924]의 시문을 모아서 간행한 유고집. 성률은 자가 국빈(國彬)이며, 호는 손암(損庵)이다. 시부(詩賦)에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선현의 도를 밝히는 데 그 정성을 다했다. 성률 사후, 그의 증손 성재정이 집안에 남아있던 손암의 시문을 모아 유고집으로 편찬하였다. 1권에는 삭녕(朔寧) 최인찬(崔寅巑)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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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수곡면 대천리에 있는 당산목. 대천리 마을공동체 신앙으로 동제를 지내던 나무를 말한다. 보통 마을공동체 신앙은 상당신과 하당신으로 구성된다. 상당신은 마을 뒷산 조용하고 그윽한 곳에 모신 산신이며 하당신은 마을 입구에 모셔져 있는 동구나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수곡면 대천리 산 104번지는 넓은 들을 끼고 있는 골짜기로서 이곳에서 마주보는 앞산이 옥녀봉이며, 동쪽으로 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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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월계마을 남쪽에 있는 골짜기. 무우제(舞雩祭), 즉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제의 장소이다. 옛날에 기우제를 지내고 덕을 봤다고 해서 ‘덕굼텅’이라고도 한다. ‘무제(무우제)’는 수제(水祭) 즉 기우제를 말하며, ‘굼팅이’는 이 지역의 사투리로 구덩이를 말한다. 진주시 수곡면 자매리 월계2반 서쪽 야산은 산정상부 한 가운데가 오목하여 마치 쌍봉낙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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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창촌리 직금마을과 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대천리 산 104번지 사이의 골짜기. 대천리 산 104번지 앞의 들은 현재 모두 논으로 바뀌었지만 원래 배씨(氏)들이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다. 이 마을은 뒷산 기슭에 ‘한새미’라는 큰 샘을 가지고 있어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과거 산신제를 지내던 장소여서 이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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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환자가 있을 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굿. 일반 가정에서 행하는 굿은 대부분 우환을 제거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우환은 대개 귀신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믿어왔는데, ‘섬겨야 될 신을 잘못 섬겨 노여움을 산다거나, 잡신이 와서 붙은 것’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우환이 있을 때 굿을 하여 신을 섬기고 잡귀를 몰아내면 우환은 당연히 제거될 거라는 믿음이 굿의 근거가 된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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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우환이 자주 생길 때, 우환을 막고 재수가 있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하는 굿. 재수(財數)란 재물의 운수를 뜻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 말을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한다. 즉 사람의 운수 전반을 뜻하는 것으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수를 믿는다. 그래서 늘 재수가 있도록 하기 위해 굿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굿이 재수굿이다. 재수굿은 재수가 없어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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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유학자 한몽삼의 사승관계(師承關係) 및 교우관계를 기록한 고문헌. 한몽삼(韓夢參)[1589~1662]은 자(字)는 자변(子變), 호는 조은(釣隱)으로 1589년 경상남도 진주시 정수(현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평촌리 정수)에서 태어났다. 20세 되던 1608년 황암(篁巖) 박제인(朴齊仁)의 문하에서 배우다가 24세에 문과 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생원시(生員試)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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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의기 논개(論介)의 사당. 의기사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최진한이 진주지역민 등의 요구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근거로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다. 1779년(정조 3)에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낡고 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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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경상남도 진주시 봉래동 소재의 진주교회에서 일어났던 신분차별 철폐와 관련된 사건. 진주지역을 포함한 경상남도 지역에서의 기독교 시원은 직접적으로 호주장로교 선교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1902년 커렐(Dr. H. Currell) 의사 부부는 의료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한 경상남도지방에서 의료활동의 시급성을 느끼고 진주지역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커렐 의사 부부는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