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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건릉과 관련된 개항기 전적. 『건릉지』는 1878년 남정철(南廷哲)이 성균관 진사로 건침랑(健寢郞)에 제수되어 건릉(健陵)에 대한 능지(陵誌)가 없음을 확인하고, 비부(祕府)와 예조, 봉상시(奉常寺) 등에서 해당 고실(故實)과 전적 등을 참고하여 능지를 작성하였다. 원래 건릉에 대한 기록으로 구지(舊誌)가 있었으나 1873년(고종 10) 재실의 화재로 선생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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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에서 4월 사이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 운동.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등불처럼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사전 계획에 의해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전개된 만세 운동도 있었다. 화성 지역의 3·1운동은 공세적인 만세 시위 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위 운동이다. 시위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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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성·최루백을 시조로 하는 경기도 화성시의 세거 성씨. 수원 최씨는 고려 때부터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조선 건국 후에도 지역 사족으로서 관직자를 꾸준히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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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4월 15일 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제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79연대 소속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와 11명의 보병 및 경관이 함께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지금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의 마을 주민들을 기독교회당에 소집하여 총을 쏘았고, 교회당과 마을에 불을 질렀다. 제암리사건은 기독교 선교사와 미국·영국 총영사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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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출신의 조선 후기 학자 우하영이 국정의 개혁안에 관해 논술한 정책서. 우하영(禹夏永)[1741-1812]의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대유(大猷), 호는 취석실(醉石室)이다. 아버지는 우정서(禹鼎瑞)이며, 큰아버지 우정태(禹鼎台)의 가계를 이었다. 1755년(영조 31)부터 과거공부를 시작하여 여러 번 응시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시골의 유생으로 평생을 보낸 조선 후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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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 일대인 수주(水州)를 본관으로 하는 수원 최씨(水原崔氏)의 시조. 수원 최씨(水原崔氏)는 동성동본이면서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통이 있다. 한 계통은 고려 시대 산원동정(散員同正)을 지낸 최정(崔靖)을 시조로 하며, 또 다른 계통은 고려 예종 때 수주(水州)의 호장(戶長) 최상저(崔尙翥)를 시조로 한다. 수성(隋城)은 수주(水州)의 별호로, 수주는 현재 경기도 화성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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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경기도 화성시로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장하면서 정조가 쓴 글. 「현륭원지」는 1789년 정조가 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부 화산으로 천장하고 원호를 영우원(永祐園)에서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면서 영조가 친히 썼던 지문을 대신해 새롭게 지문을 지은 것이다. 지문은 죽은 사람의 이름, 생몰연원일, 행적, 무덤이 있는 곳과 좌향 등을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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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시를 세거지로 하는 남양 홍씨 출신의 조선 전기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퇴지(退之), 호는 인재(忍齋).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엮임한 홍귀해(洪貴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우부승지(右副承旨) 홍형(洪泂), 아버지는 영의정 홍언필(洪彦弼)이며, 어머니는 영의정 송일(宋軼)의 딸이다. 첫 부인은 진산군(晉山君) 유홍(柳泓)의 딸이며, 계실(繼室)은 좌의정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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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화성 지역에서 1919년 일어난 3·1운동과 일제의 제암리·고주리 민간인 학살 사건. 1919년 3월 1일의 만세 운동은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 갔다. 그중에는 평화적인 시위도 있었지만, 조직적이고 격렬하게 진행된 시위도 있었다. 화성 지역에서 일어난 3·1운동은 전국에서 몇 안 되는 대표적인 공세적 만세 시위 운동으로, 3·1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례이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