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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진양(晉陽). 자는 경수(敬綏), 호는 괴포(槐圃). 강영수(姜英壽)의 후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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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광산(光山). 남편은 김경좌(金慶佐)로,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김경좌 처 광산 김씨는 18세에 지금의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대덕리로 시집을 왔다. 효심으로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고 남편에게는 유순했으며 동서 간에는 우애롭게 지냈다. 1871년(고종 8) 봄에 남편이 병에 걸리자 하인을 시키지 않고 몸소 약을 달이고 죽을 쑤어 간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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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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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의사(義士).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성국(聲國), 호는 죽교(竹橋).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손이다. 김영수(金瀯秀)의 생년이 『하동군지』와 『하동지속수(河東誌續修)』에는 헌종 갑신년(甲申年)[1824]으로 나와 있으나, 헌종 때에는 갑신년이 없고 갑진년(甲辰年)[1844]이 있다. 또한 고종 경진년(庚辰年)[1880] 증광시(增廣試)에서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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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용궁(龍宮). 자는 인선(仁善), 호는 농산(聾山). 임진왜란 때 수문장으로서 진주성에서 순절하여 창렬사(彰烈祠)에 향사된 낭선재(浪仙齋) 김태백(金太白)의 후손이다. 김태권(金泰權)은 1880년(고종 17)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행 용양위부사과(宣略將軍行龍驤衛副司果),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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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치보(致甫), 호는 월포(月浦). 고려 후기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문제공(文齊公) 박충좌(朴忠佐)[1287~1349]의 후손이다. 예안의 역동서원(易東書院)에 봉향된 박충좌는 성품이 온화하고 검약하며 일생 동안 글 읽기를 즐겨하였다고 전한다. 박서한(朴瑞翰)은 지기(志氣)가 호탕하고 고매하였으며 힘이 매우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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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의 열녀. 본관은 진양(晉陽).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진문(河晉文)이다. 남편은 박이한(朴而翰)으로,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박이한 처 진양 하씨는 시집간 지 한 달 만에 남편 박이한이 독사에 물려 죽자, 독사가 나타난 곳으로 가서 슬피 울며 이틀을 기다려 독사를 잡아 물어서 씹어 죽이고는 시신을 입관한 뒤에 목을 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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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달성군(達城君) 서영(徐穎)의 11세손이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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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본관은 달성(達城). 자는 이경(而卿). 정평공(貞平公) 서균형(徐鈞衡)[?~1391)의 후손이다. 서균형은 고려 후기의 관리로 우정언(右正言)과 정당문학(政堂文學) 등을 거쳐 1390년(공양왕 2) 예문관대제학으로서 조준(趙浚)·이지(李至) 등과 함께 공양왕의 세자 왕석(王奭)의 사부로 활동했다. 1391년(공양왕 3) 사망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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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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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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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여경규(余璟奎)의 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선진(善珍), 호는 금산(錦汕). 호조판서를 지낸 여중부(余仲富)의 후손으로, 가선대부 여호철(余好哲)의 현손이다. 1893년(고종 30) 무과에 등제하여 그 해 12월 선전관이 되었다. 하동 송림 내에 여러 벼슬아치와 선비들이 무예를 닦고 회합하던 사정(射亭)인 하상정이 있었는데, 1880년에 세워져 많이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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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 지역에서 목숨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남편을 위해 지극한 정성을 다한 부녀자. 홍근호가 지은 『열부정려기(烈婦旌閭記)』에 “부인의 행실은 죽음으로써 열(烈)을 나타내니, 타고난 천성(天性)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자로 ‘열(烈)’의 뜻은 매우 다양하다. 따라서 열녀란 ‘세차고 사납고 굳세며 정열을 지키기 위하여 욕망을 불태워 없애고, 빛나고 밝고 아름다운 큰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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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지역에서 재직한 문신.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자천(自天). 할아버지는 고려 후기의 이름난 문인인 이규보(李奎報)[1168~1241]이며, 아버지는 사재소감(司宰少監)을 지낸 이함(李涵)이다. 이익배(李益培)는 고려 후기 고종(高宗) 때 과거에 급제하여 하동감무(河東監務)로 벼슬을 시작하였으며, 임기를 마친 후 한림원(翰林院)에 뽑혀 들어갔다. 그 뒤 승진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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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인좌(李麟佐) 등의 소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권 탈취 사건. 경상남도 하동군의 여러 관리가 진압 공신으로 등재되었다. 조선 경종(景宗) 연간에 소론은 왕위 계승을 둘러싼 노론과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하였으나, 노론이 지지한 영조(英祖)가 즉위하자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이에 소론의 과격파들은 영조가 숙종(肅宗)의 아들이 아니며 경종의 죽음에 관계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영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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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에서 활동한 문인.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형락(亨洛), 호는 회산(晦山).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문인인 동곡(桐谷) 이조(李晁)[1530~1580]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이도형(李道炯)이며, 어머니는 최씨(崔氏)이다. 부인은 권씨(權氏)·이씨(李氏)이며, 2남 4녀를 두었다. 이택환(李宅煥)[1854~1924]은 1882년(고종 19)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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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의신(義臣). 정양(鄭穰)의 9세손이다. 정양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1423년(세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좌사간(左司諫)을 지냈다. 경시서 주부를 역임할 때에 세종의 명을 받아 예문관 대제학 유사눌(柳思訥), 집현전 대제학 정인지(鄭麟趾), 봉상 판관(奉常判官) 박연(朴堧) 등과 함께 구악(舊樂)을 정리하였다.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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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정석민(鄭錫民)의 본관은 진양(晉陽)으로,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의 후손이다. 1886년(고종 23)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宣略將軍龍驤衛副司果)와 내금위 효력부위 수문장(內禁衛效力副尉守門將)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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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하동(河東). 아들로 정윤당(鄭允當)과 정숙첨(鄭淑瞻)이 있는데, 정숙첨은 어머니가 연로하자 관직을 사직하고 하동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봉양하기도 하였다. 정세유(鄭世裕)는 1177년(명종 7) 대장군으로서 남적처치병마사(南賊處置兵馬使)가 되어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을 진압하였다. 명종 때 서북면 병마사로서 민간의 재물을 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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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아버지는 고려 명종 때 형부상서를 지낸 정세유(鄭世裕)이다. 형은 정윤당(鄭允當)과 우복야를 지낸 정진(鄭稹)이며, 사위는 무인 집정이었던 최이(崔怡)이다. 아들은 참지정사를 지낸 정안(鄭晏)이다. 정숙첨(鄭淑瞻)은 벼슬이 여러 번 올라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고, 고종 때는 참지정사가 되었다. 거란의 금산왕자(金山王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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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 정승서(鄭承緖)는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정 등을 역임하였다. 후에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되었다. 「선무원종공신록」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의 7년에 걸친 임진왜란 중 나라에 공이 있는 자를 선조가 도승지 신흠(申欽)을 시켜 공신도감(功臣都監)에서 발급했으며, 3등까지의 명단과 신분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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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정지상(鄭芝祥)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다. 누이동생이 원나라에 공녀로 가 그 인연으로 원에 자주 왕래하였다. 원에 숙위하러 간 공민왕을 시종하였고, 공민왕 즉위 후 그 공으로 누차 승진하여 감찰지평이 되었다. 전라도안렴사로 재직할 때, 원 순제(順帝)의 총애를 받던 야사불화(埜思不花)가 고려에 강향사(降香使)로 나와 가는 곳마다 횡포를 자행하였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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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정찬건(鄭燦健)의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문성공(文成公) 정인지(鄭麟趾)의 후손이다. 1891년(고종 28) 무과에 등제하여 절충장군 첨지중추부사, 오위장 전라감영중군(五衛將全羅監營中軍)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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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동 출신의 공신(功臣). 숙종 말년 소론은 세자[훗날의 경종]의 왕위 계승을 지지한 반면, 노론은 경종이 즉위한 뒤 숙종의 유명(遺命)이라는 이유로 경종의 뒤를 이을 인물로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지지하였다. 특히 경종이 젊은데도 노론 측이 경종이 병이 많고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 청정을 서두르자, 소론은 경종의 보호를 명분으로 신임사화를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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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하동 출신의 무신. 진경태(陳景泰)의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영선(榮善)이다. 여평군(驪平君) 진극일(陳克一)의 후손이다. 1888년(고종 25) 무과에 등제하여 선략장군 용양위 부사과(龍驤衛副司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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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인천서원(仁川書院) 내에 있는 강학 공간. 하동 서황리 경현당(河東西黃里景賢堂)은 하동군 북천면 서황리 중촌마을에 위치한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여 주변 경관이 매우 좋으며, 뒤편에는 대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다. 1719년(숙종 45) 하동군 북천면의 남포동에 죽당(竹塘) 최탁(崔濯)[1598~1645]을 기리기 위해 주담(珠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