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2년 제작된 공주목의 지도.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은 조선 사회는 18세기 영조·정조 대에 이르러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각종 문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적으로 안정되면서 중심 산업인 농업 부문의 생산력이 높아지고 이와 더불어 상품 유통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실학을 비롯한 학문뿐만 아니라 문학·예술 부분에서도 많은 성과들이 축적되기도 하였다....
-
1861년 간행된 충청남도 공주의 사찬 읍지. 『공산지(公山誌)』는 영조 대의 구읍지를 바탕으로 관찰사, 판관 등의 협조를 받아 공주 지역의 유력 향반이 보완하여 제작하였다. 편찬 작업에는 임정회(林挺會)·이익형(李翼亨)·오흠(吳欽)·노기웅(盧基雄) 등이 참여하였다. 『공산지』의 사본이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후대의 필사본 산질(散秩)인 『공산지』와 발췌본인 『...
-
1790년(정조 14) 간행된 충청감영의 현황을 기록한 읍지. 영조(英祖) 대에 이어 정조(正祖) 대에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속성 작업이 계속되었다. 1789년(정조 13) 실록 기사에 “여러 문신들이 분담, 각 도의 읍지를 널리 모아 『동국여지승람』의 속성 작업을 실시하되 편찬은 교서관에서 하라고 규장각에 명하였으나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다”는 내용으로 보아...
-
420년 아도화상이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에 창건한 사찰. 동학사, 신원사와 함께 계룡산의 대표적인 사찰의 하나로서 갑사구곡(甲寺九曲)의 경관을 배경으로 풍부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갑사는 계룡산의 여러 사찰 중에서도 가장 문화재가 풍부한 사찰이며 공주시에 가까이 위치해 있다. 420년(백제 구이신왕 원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전언이 있다. 그 이후...
-
조선시대 제작된 공주의 지도. 공주의 고지도는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 단독 지도, 읍지에 포함된 지도 등이 있으며 18세기부터 19세기에 걸쳐 제작된 자료들이다. 공주의 옛 지도를 크게 지도책에 포함된 지도와 읍지에 포함된 지도로 구분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공주의 고지도가 수록된 전국 지도책으로서는 『여지도(輿地圖)』(18세기 중엽), 『해동지도(海東地圖...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신원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하던 제향 건축물. 1879년(고종 16) 중수한 건축한 건물이지만, 계룡산신에 대한 제사 공간으로서의 역사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계룡산은 신라의 제사 규정에서 중사(中祀)에 속한다. 신라 5악 신앙에 의한 국가적 제사의 전통이 후대로 계승된 것이다. 15세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1895년(고종 32) 충청남도 공주를 중심으로 편성된 행정 구역.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을 계기로 지방 행정 제도에도 대대적인 개편이 이루어졌다. 1895년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하여 8도제가 폐지되면서 전국을 23부로 개편하고 목·군·현 등으로 구별되던 군현을 모두 군으로 통일하였다. 이에 따라 종래의 충청도는 공주부(公州府)·홍주부(洪州府)·충주부(忠州府)로...
-
충청남도 공주시 소학동에 있는 통일신라 때의 효자 향덕의 정려비. 755년(경덕왕 14)에는 심각한 기근이 신라 전국을 휩쓸고 전염병까지 나돌았다. 부모 공양이 막연해지자 공주 판적향(공주시 소학동 일대)에 살던 향덕은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또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하여 종기를 입으로 빨아 치료하였다. 신라 경덕왕은 향덕의 효행이 보고되자 각...
-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지역 문화 단체. 공주 지역의 전통 문화 유산을 발굴, 조사, 연구함으로써 지역 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1988년 3월 공주사범대학의 교원을 중심으로 웅진문화동호회로 창립되었고, 10월 13일 공주향토문화연구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12월 30일에 『웅진문화』창간호를 발간하였다. 1993년 12월 가입 자격을 일반...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의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행정구역. 백제·신라시대에는 벌음지현(伐音支縣)이었으며, 고려 초에 신풍현이 되었다고 추측한다. 918년에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즉위한 뒤에도 삼한 통일을 위한 계속적인 정복사업을 펼쳤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지방제도가 변경 개편되기도 하였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 940년(태조 23)에 효과적인 지방통제의 일환으로 군현제에...
-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충청남도 공주시의 역사. 공주는 금강의 중류에 위치한 역사 도시이다. 선사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부 지역 거점으로서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한 중부 지역 대표 도시의 하나이다. 남한에서 최초로 조사된 석장리 구석기 유적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미 5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하던 공간이며 신석기와 청동기시대를 거치며 도시 형성이 이루어진다....
-
고려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이복은 병석에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겨울에 금강 물의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모친을 치유하였다는 전설이 전한다. 그리고 공주시 옥룡동 부근에 ‘국을 엎질렀다’는 뜻의 ‘갱경(羹傾)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갱경골은 이복이 어머니에게 먹일 국을 얻어 귀가하던 중 서두르다 넘어져 국을 엎지른 곳이란 유래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
1376년(우왕 2) 7월 공주목 정현에서 공주목사 김사혁의 부대가 왜구 침입에 대항하여 벌인 전투. 14세기 말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시기이지만 또한,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전국적인 왜구의 침입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충청도의 경우만 53건이 기록되고 있다. 1376년 7월 왜구가 금강을 거슬러서 공주의...
-
신라시대 충청남도 공주 출신의 효자. 아버지는 선(善)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효행이 기록되어 있고, 『동국삼강행실(東國三綱行實)』에 그림과 함께 효행이 소개되어 있다. 755년(경덕왕 14) 봄 심각한 기근이 전국을 휩쓸고 전염병까지 돌았다. 부모 공양이 막연해진 향덕은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부모를 봉양하였다. 또 어머니의 병을 낫게...
-
신라 말 고려 초 충청남도 공주 지역의 호족. 견훤과 궁예가 대결하는 후삼국기, 공주는 양대 세력이 마주하는 접점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 때문에 공주는 때로는 남쪽의 견훤에, 때로는 북쪽의 궁예나 왕건의 세력권에 들었다. 이때 공주의 실제적 지배자는 ‘공주장군’으로 지칭된 홍기(弘奇)였다. 처음에는 견훤에 가까웠으나 중부 지역에서 궁예가 흥기하여 경상도 상주 등지까지 세...
-
1236년(고종 23) 12월 공주 효가동에서 있었던 고려의 야별초와 몽고군과의 전투. 몽고의 고려 침입은 1231년(고종 18)부터 1259년(고종 46)까지 총 6차(학자들에 따라서는 7차, 9차, 11차로 구분하기도 함)에 걸쳐 진행되었다. 그 사이 호남 지역으로까지 침략군이 남하한 경우는 1236년, 1247년, 1256년, 1257년 등 도합 4회에 이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