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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석인(姜錫麟)은 1919년 3월 2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가실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산구고등학교(山口高等學校)에 재학 중이던 1939년 2월 교우(校友) 유재우(柳在佑), 성창환(成昌煥) 등과 학교 친목 단체인 여우회(麗友會)를 민족주의 항일 단체로 개편하였다. 이후 신입생을 상대로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한편, 창씨개명에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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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후손이다. 강수립(姜守立)은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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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비승(丕承).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강중호(姜仲虎)이다. 강종립(姜宗立)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공을 세워 정릉참봉에 제수되었다.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따르면 지중추에 올랐다고 되어 있는데, 증직이 아니었을까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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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부(仁父), 호는 송재(松齋). 고조할아버지는 완휴재(玩休齋) 강승(姜昇)[1430~1500]이며, 아들로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한 강종립이 있다. 강중호(姜仲虎)는 임진왜란 당시 김제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왜군과 싸운 공이 있다. 호조참판이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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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이자 성리학자. 고봉익(高鳳翼)은 광해군 재위 기간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몰두하였으며, 유집(柳楫), 조성립(趙成立)과 교유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과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군량을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여 왕을 모셨다.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지음서원(芝陰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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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고인옥(高仁玉)은 1879년 3월 10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 23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1일 당시 김제군 수류면의 원평장날을 이용하여 배세동(裵世彤), 전도명(田道明), 전도근(田道根) 등과 함께 태극기를 들고 수백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 그 후 같은 해 4월 11일 광주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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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공사일(孔士一)의 본관은 곡부(曲阜)이다. 1883년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관상리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며 국권 회복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공사일은 이 시기에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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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경렬(郭京烈)의 본관은 현풍(玄風)으로, 1901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에서 태어났다. 곽봉수(郭奉守)로도 불렸다. 곽경렬은 1915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광복회는 박상진(朴尙鎭)·채기중(蔡基中) 등이 풍기광복단(豊基光復團)과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 인사들을 통합하여 대구에서 조직한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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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곽대형(郭戴炯)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출신으로, 1926년 중동학교에 재학 중 김재문(金載文)·황정환(黃廷煥) 등과 중동학교 대표로 6·10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6·10만세운동은 조선학생과학연구회를 중심으로 전문 학생층의 계획과 중앙고등학교와 중동학교 중심의 중등 학생층의 계획으로 추진되었다. 전문 학생층의 시위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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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김광춘(金光春)은 1877년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태어났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이에 격분하여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며 국권 회복 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김광춘은 이 시기에 전해산(全海山) 의병진에 가담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전해산 의병장은 1908년 8월 선봉장 정원집(鄭元執)과 함께 전라남도 나주와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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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의사. 김병수(金炳洙)의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삼산(三山)이다. 1898년 10월 18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유강리 51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군산 지역의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서울의 남대문 정거장 앞에서 수백 명의 학생들을 이끌고 시위를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병수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지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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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사. 김병순(金炳純)은 1926년 10월 10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만경리 308번지에서 태어났다. 1943년 1월경 전주에 있는 공립 북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완산동 320번지 박윤하(朴潤河)의 집에서 김기태 등과 같이 수차례 회합을 하며 민족 해방과 자유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징병제에 대한 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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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시 죽산면에서 활동한 의병. 김성언(金成彦)은 1847년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동에서 태어났으며, 젊은 시절 마을에서 훈장으로 후학을 지도하였다. 1906년 국운이 기울자 창원과 거창 등지에서 왜병과 항전하는 등 용맹을 떨쳤다. 그러나 왜병의 감시와 핍박이 심해지자 가족과 가산을 버려 둔 채 고향을 떠나 김제의 죽산면으로 이주하였다. 이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비밀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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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1905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에서 태어난 김종철(金宗喆)은 1927년 음력 9월 말 자신의 집에서 조인현(趙仁賢)의 권유로 통의부(統義府)에 가입하였다. 통의부는 남만주에 본거지를 둔 무장 독립운동 단체로서, 조인현은 당시 은행과 관공서를 파괴하여 부호들을 각성시키면서 군자금을 모금할 계획을 세우고 걸인으로 변장하여 폭탄과 권총을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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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박명수(朴命壽)는 본관이 함양(咸陽)으로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위험을 무릅쓰고 백의창의(白衣倡義)하여 의병을 모집한 뒤 웅치전투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순절하였다.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장수와 양곡을 주청한 이순신(李舜臣) 등 18명은 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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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자는 순경(順京)이고, 박정문(朴正文)으로도 불린다. 1880년 4월 26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서 태어났다. 박봉래(朴琫來)는 1905년 항일 투쟁을 목적으로 만주로 망명한 뒤, 1919년 3·1운동 이후 이범윤(李範允)이 인솔하는 독립운동 단체인 의군부(義軍府)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20년 동지들과 함께 연해주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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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일서(一瑞), 호는 굴지당(屈指堂).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고창현감을 지낸 박형(朴珩)이다. 어머니가 큰 돌이 떨어져 가슴에 안기는 꿈을 꾸고 낳아 석정(石精)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다. 박석정(朴石精)은 16세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학문이 남달리 뛰어났으며, 많은 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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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목사. 박연세(朴淵世)는 1883년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에서 대대로 농토를 일구어 온 박자형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사를 도우며 인근 서당에서 한문을 익히다가 군산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던 전킨(W. M. Junkin)[개명 전위렴]이 세운 영명학교에 입학하여 4년 과정을 이수하였다. 이후 박연세는 당시 김제군 백구면 유강리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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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화(孝華), 호는 신촌(薪村). 고려 말의 유신(儒臣) 정재(鄭齋) 박의중(朴宜中)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참봉을 지낸 박이(朴頤)이다. 박정영(朴廷榮)[1559~1592]은 지금의 김제시 흥사동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재종숙인 굴지당(屈指堂) 박석정(朴石精)에게 글을 배워 11살 때 『주역(周易)』을 알고 경전(經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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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학생운동가.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에서 태어난 박종운(朴鍾雲)은 서울의 보성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1년 6월 17일 동맹 휴학(同盟休學)을 주도하였다. 당시의 동맹 휴학은 학생들이 교육상 제 문제나 또는 정치적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에서 동맹 휴학이 격화된 시기는 1920년대부터인데, 이는 1919년 3·1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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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배세동(裵世彤)은 1894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다.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배세동은 평소 나라를 빼앗긴 백성으로서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품고 있었는데, 1919년 3월 13일 전주시장에 나갔다가 그곳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배세동은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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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정천(徐廷天)은 1917년 9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대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광복군 제1지대 전방 공작책인 오명해와 접선하여 1943년 3월 10일 개봉을 탈출한 뒤 광복군 제1지대 전방공작대에 입대하여 광복군 공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해 5월 정주 지구에서 초모 공작 및 적의 정보 수집 등을 위해 활약하다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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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송시용(宋始鏞)은 1902년 9월 26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봉남면 구정리 141번지에서 태어났다. 1928년 3월 만주통의부에서 재무위원장 강재하(姜在夏)가 군자금 모집과 동지 규합을 목적으로 국내에 입국하자, 조인현과 오석완 등에게 자기 소유지를 팔고 계약금으로 받은 1,700여 원을 군자금으로 제공하는 등 군자금 모금에 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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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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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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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용재(用齋),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별좌(別坐) 유태형(柳泰亨)이고, 자의(諮議) 유집(柳楫)의 동생이다. 유도(柳棹)[1592~?]는 큰형인 유집을 따라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시남(市南) 유계(兪棨), 기암(畸庵) 정홍명(鄭弘溟) 등과 더불어 교우하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유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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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제 출신의 의병. 호는 죽헌(竹軒)이고, 이명은 종규(種奎)이다. 1859년 10월 7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공덕면 마현리에서 태어났다. 유종규(柳鐘奎)는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이 서서히 강탈당하자 1906년 4월 전라도 태인에 있는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의병을 모집할 때 참여하여 임병찬(林炳瓚)·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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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파평(坡平)으로, 1924년 1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부거리 576번지에서 태어났다. 윤석진(尹錫珍)은 1944년 3월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같은 해 10월 강제 징병되었다. 1945년 1월 중국 전선으로 수송 도중, 함께 가던 이경희·유창옥 등과 은밀하게 탈출을 모의한 끝에 기회를 엿보다가, 2월 6일에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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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운(李相云)은 1927년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이상운은 급우인 김구(金丘), 김봉수(金鳳洙), 장이규(張二圭), 박기춘(朴基春), 강동석(姜東錫), 김진수(金眞洙) 등을 규합하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상운은 화랑회 회원들과 함께 김제군 모악산에 있는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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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종희(李鍾熙)는 1890년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용호리 663번지에서 태어났다. 이종희란 이름 외에도 이집중(李集中), 이인홍(李仁洪) 등의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1919년 만주로 망명하여 조선의열단에 가입하고 항일 투쟁에 헌신하였다. 1922년 3월 김익상(金益狀)·오성륜(吳成崙)과 함께 상해 황포탄(黃浦灘)에서 일본 육군대장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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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임병률(林秉律)은 1891년 8월 30일 전라북도 김제시 만경읍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성장해서는 주로 군산에서 활동했는데, 1919년 3월 군산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1919년 영명학교 교사 박연세(朴淵世)와 이두열(李斗烈) 등은 서울에서 내려온 김병수(金炳洙)로부터 독립선언서와 함께 서울의 시위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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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관료. 장현식(張鉉植)은 1896년 9월 17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서도리[구 상신리]에서 만석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중앙고등보통학교[지금의 중앙고등학교]가 설립될 당시 거액을 기부하였으며, 고려대학교가 설립될 당시에도 재단에 사재를 기부하여 교육을 통해 침체된 민족의 기운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동아일보사가 창간될 당시에는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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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도근(田道根)은 1880년 4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 30번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김제군 수류면 원평리[현재의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원평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1919년 구월리에 살던 배세동(裵世彤)은 3월 13일 전주시장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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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도명(田道明)은 1872년 4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구월리 8번지[원평1길 205-5]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0일 김제군 수류면 원평리[현재의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원평장터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을 주도하여 옥고를 치렀다. 1919년 구월리에 살던 배세동(裵世彤)이 3월 13일 전주시장 독립 만세 운동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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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병모(鄭秉謨)는 1872년 10월 18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후 전라남도 장성군 지역에서 생활하던 중 1919년 4월 3일부터 4일까지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을 주동하다 체포되어, 1919년 8월 7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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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 정한조(鄭瀚朝)는 1890년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요교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거유 석정 이정직(李定稷)의 문하에 들어가, 뛰어난 향학열로 18세에 사서삼경을 통달하였다. 구(舊) 학문만을 배울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명을 배워서 나라의 동량이 되어야 한다는 이정직의 가르침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경성공업전수학원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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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현섭(鄭賢燮)의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윤옥(允玉), 호는 화암(華岩)이다. 1896년 9월 14일에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월촌동에서 태어났다. 정화암(鄭華岩)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는데, ‘화암’은 중국에 건너가면서 부르게 된 호이다. 1919년 고향에서 3·1운동에 참가하였다. 1920년 극동을 시찰하는 미국의원단의 한반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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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정윤옥(鄭允玉) 또는 정현섭(鄭賢燮)으로도 불렸던 정화암(鄭華巖)은 1896년 전라북도 김제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1운동에 참가하였고, 1920년 미국 의회사절단이 내한하자 일본의 침략상과 학정을 알리는 활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고 1921년 10월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였다. 정화암은 1924년부터 상해에서 이회영(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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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조기담(趙紀淡)의 본관은 한양, 호는 운정(雲汀)이다. 1893년 6월 9일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237번지에서 태어났다. 조기담은 1916년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동지를 규합한 뒤, 군자금 모집을 위해 미곡상인(米穀商人)으로 가장하고 군산 지방에서 활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사기죄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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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사응(士凝), 호는 죽암(竹庵)이다. 조성립(趙成立)은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1591년(선조 24)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전주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을 함락시키고 두 갈래로 나누어 그 중 한 왜병의 부대가 용담과 진안을 친 다음 진안과 경계를 이르는 전주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웅치를 넘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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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의 법조인이자 독립운동가·정치가. 함태영(咸台永)의 본관은 강릉(江陵), 호는 송암(松岩)이다. 1873년 전라북도 김제시 진봉면 정당리에서 태어났다. 1889년에 아버지 함우택(咸遇澤)이 선략장군행용양위부사관(宣略將軍行龍讓衛副司官)에 제수되자 함께 한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189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법조 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에 입학하여 6개월 과정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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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의병이자 학자. 병자호란은 1636년(인조 14) 12월부터 이듬해 1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두 번째로 침입한 전쟁이다. 청나라 군대가 평양을 공격하여 오자 12월 14일 인조는 먼저 원임대신 윤방(尹昉)과 김상용(金尙容)에게 명하여 종묘사직의 신주를 받들고 세자빈 강씨, 원손(元孫), 둘째 아들 봉림대군, 셋째 아들 인평대군을 인도하여 강화도로 병화를 피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