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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산군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김산 향안(金山鄕案)」은 1861년(철종 12) 양사당[조선 후기의 사숙(私熟)]을 중수하던 중 대들보에서 발견된 것이다. 「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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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지례현 향청에서 제작된 품관좌목. 향안은 지방에 거주하는 유향소 품관의 명단이다. 경재소에 비치된 ‘경안(京案)’에 대칭해 작성되는 것으로, 품관좌목(品官座目)·향적(鄕籍)·향언록(鄕彦錄)·향록(鄕錄)·향중좌목(鄕中座目) 등으로도 불렀다. 향안이 정확히 언제부터 작성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조선 시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각 지방에 전래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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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 경양서원(鏡陽書院)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시대 여대로(呂大老)와 여응구(呂應龜)의 시문집을 새긴 책판. 감호문집·송오문집 판목은 경양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104장의 『감호문집(鑑湖文集)』 책판과 50장의 『송오문집(松塢文集)』 책판을 말한다. 『감호문집』은 조선 후기 문신 여대로[1552~1619]의 시문집이다. 여대로의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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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8년 발간한 경상도 김천 지역 일대에 설치되었던 역의 호구 대장. 『건륭삼년김천도형지안(乾隆三年金泉道形止案)』은 저지(楮紙)에 필사하였고 크기는 가로 80㎝, 세로 56.5㎝이다. 광곽은 사주 단변(四周單邊), 행수는 32행으로 상(上)은 대 1행(行), 하(下)는 소 2행으로 모두 40장이다[이하는 결락으로 알 수 없음]. 김천도찰방이 관할하는 19개의 속역(屬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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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 도암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문인 여희필(呂姬弼)의 『도암집(道巖集)』 판목. 『도암집』은 여희필[1584~1645]의 시문집이다. 여희필은 자가 가회(嘉會), 호는 도암(道巖)·양호(養浩)이고, 본관은 성주(星州)이다. 1613년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향리로 돌아와 은거하면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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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5~16세기 고문서.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은 창녕 조씨 찬성공파 조창현이 소장하고 있는 고문헌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분재기(分財記)』는 1449년(세종 31)에 작성한 분재기[1], 1578년(선조 11)의 별급 문기[2], 1516년의 입안 신청 소지와 입안 발급 과정에 작성된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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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 석정마을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가례리 고인돌군은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 석정마을의 석곡서당 앞 10m 지점에 2기가 위치하고 있다. 이 석정마을 일대는 배후에 위치한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의 깊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하천이 마을 앞을 지나 사행하는 감천과 합류하며 비교적 너른 개활지로 전개되기 시작하는 곳이다. 그리고 석정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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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이현택(李鉉澤)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에 간행된 『가례증해』의 판목. 가례증해 판목은 1792년(정조 16)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를 간행하기 위해 새긴 475판의 판목이다. 『가례증해』는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우리나라 제가설(諸家說)을 열거하여 증해하고 자가설(自家說)을 첨가하여 엮은 것이다. 전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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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가마가 있던 터. 가마터[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등을 구워내는 시설이다. 일반적으로 토기·자기·기와 등을 굽는 시설물을 ‘가마’라고 통칭한다. 선사 시대에는 가마 시설이 없어 노천에 토기를 쌓아 놓고 그 주위에 나무를 쌓아 그릇을 구워냈는데, 대략 섭씨 500~600°의 낮은 온도에서 구웠으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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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김천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 김산군 고적조에 “어모(禦侮) 폐현은 본래 신라의 금물현(今勿縣)이었고, 음달(陰達)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 때에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감문군(甘文郡)에 소속시켰다. 고려 현종 때에는 상주에, 본조 태조 때에는 본군에 소속되었으며, 지금은 직촌(直村)이 되었다.”라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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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취적봉에 있는 봉수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9, 개령현(開寧縣) 봉수조(烽燧條)에 “감문산봉수 동응선산부남산 서응김산군소산(甘文山烽燧 東應善山府藍山 西應金山郡所山)”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감문산 봉수지는 취적봉 정상 감문산성 안에 있다. 감문산 봉수지는 원형을 띠고 있으며, 지름 4m, 높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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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 취적봉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취적봉(吹笛峰) 또는 당고산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삼한[감문국] 시대 때 나라에 변란이 생겨 군사를 동원할 때 나팔을 불고 북을 치던 곳이라고 전해지는데 감문성과의 연관성은 알 수 없다. 감문국이 언제 세워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231년 이찬 석우로를 대장군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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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김천 지역에 설치한 신라의 군사 체제의 지명. 『동사강목(東史綱目)』 신라 진흥왕 18년, 고구려 양원왕 13년, 백제 위덕왕 4년[진(陳) 고조(高祖) 영정(永定) 원년, 557]에 보면 “신라가 사벌주(沙伐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여 청주(靑州)라 불렀다.”라는 기록이 나와 있다. 삼국 시대 신라가 백제와 가야를 견제 공략하려고 557년 감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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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김천 출신의 동학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영원(永元), 호는 석남(石南)·계헌(溪軒). 아버지는 강휘국(姜彙國)이다. 강기선(姜基善)[1846~1894]은 1894년(고종 31) 5월 9일 음직(陰職)으로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동학에 가담하여 강평접주(江坪接主)로 활약하였다. 1894년(고종 31) 9월 농민군을 일으켜 선산의 일본 군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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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낙서(洛瑞)·이중(而仲), 호는 학암(鶴巖). 은열공의 20세손, 학사공의 15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강여호(姜汝㦿)이고, 할아버지는 강필형(姜必亨)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강진환(姜震煥)이다. 외할아버지는 장만원(張萬元)이다. 강석구(姜碩龜)[1726~1810]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기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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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보(淨甫), 호는 남와(南窩). 할아버지는 김천도찰방을 역임한 강부(姜符)이고, 아버지는 군자감 참봉 강해로(姜海老)이다. 어머니는 고성 이씨이다. 아들로 강여구와 강여호를 두었다. 강설(姜渫)[1583~1651]은 1583년(선조 16) 지금의 충청남도 대덕군 회덕면에서 태어났다. 한강(寒岡) 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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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계숙(啓叔), 호는 기재(耆齋). 할아버지는 김천도찰방을 역임한 강부(姜符)이고, 아버지는 남와(南窩) 강설(姜渫)이다. 강여호는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여대로(呂大老)이며, 장인은 강용사(姜用俟)이다. 강여호의 서자(庶子)인 강필중(姜必中)은 허통(許通)되어 1708년(숙종 34) 식년회시(式年會試)에 합격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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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413년까지와 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흥왕에 “18년에 국원(國原)[충주(忠州)]을 소경(小京)으로 삼고, 사벌주(沙伐州)[주치(州治)는 상주(尙州)]를 폐하고, 감문주(甘文州)[주치는 김천군(金泉郡) 개령(開寧)]를 두어 사찬 기종(起宗)으로 그곳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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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도 개령 지방[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 전국적으로 발생했던 농민 항쟁의 하나인 개령민란은 삼정의 문란이 가장 심했던 때에 일어났다. 전정(田政)·군정(軍政)·환곡(還穀)의 문란, 즉 삼정의 문란이 계속 되자 동학이 일어나고, 1862년 2월에는 진주에서 민란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불길이 거창·선산·상주·성주를 비롯한 인근 고을에까지 번지더니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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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601년까지, 1609년부터 1895년까지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삼한 시대에 감문소국(甘文小國)이 있었던 곳으로, 231년 신라가 감문국을 공격하여 점령한 후 감문군(甘文郡)을 설치하였다. 557년(진흥왕 18)에는 감문주(甘文州)를 두었다가 진평왕(眞平王) 대에 폐지했으나, 661년 다시 감문군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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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개령현[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관아 터.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은 삼한 시대에는 감문국이 있었던 곳으로, 231년 신라에 병합되고 557년에 감문주를 설치하여 기종을 군주(軍主)로 파견하였다. 687년에는 사벌주 밑에 개령군을 두고 그 밑에 감물현[어모현]·지품천현[지례현]·무산현[무풍현]·김산현을 두었다. 조선 시대[14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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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김산군, 지례현, 개령현에 설치한 객사의 터. 객사(客舍)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에 둔 관사(館舍)이다. 여기에 다른 지역에서 온 벼슬아치를 대접하고 묵게 하였다. 김천 지역에는 조선 시대 김산군을 비롯해 지례현과 개령현에 각각 객사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 교동 359번지에 설치하였던 김산군 객사의 정확한 창건 시기는 미상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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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김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과 주조마국 등의 소국을 형성하였으나 신라로 편입되었다. 청동기 시대부터 한반도에는 많은 소규모 부족 국가가 발생하였다. 중국 사서인 『후한서(後漢書)』의 「동이전」에는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으로 모두 78국이 한반도 남부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중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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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역사. 918년 왕건(王建)[877~943]이 건국한 고려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오늘날의 김천시(金泉市)는 1995년 1월 전국적인 지방 행정의 개편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金陵郡)이 통합되면서 확정되었다. 고려시대의 현 김천 지역에는 처음에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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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조선 전기와 일제 강점기에 작성되어 전해 오는 문헌 자료. 김천 지역에서 현재까지 전해 오는 고문서로 대표적인 것은 봉산면 신리에 위치한 덕원당(德源堂) 고문헌자료관(古文獻資料館)에 소장되어 있는 15~16세기 고문서와 김천 출신 독립운동가 이명균(李明均)[1863~1923]의 간찰을 들 수 있다. 덕원당 고문헌자료관은 창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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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산재하고 있는 신라 시대의 무덤. 김천 지역은 대체로 감천 수계의 범위에 속하는데, 최하류는 구미시 선산읍에 해당한다. 그 외 서부 지역인 증산면 일대가 성주·고령 방면으로 흐르는 대가천 상류 지대에 속하나 이 지역은 후대의 행정적 균형을 위해 인위적으로 편입한 지역이므로 원래의 김천 권역은 최하류를 일부 제외한 감천 유역권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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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 고성산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김천시지』에 따르면 고성산 봉수에는 조선 중기까지는 봉수 정군 145인, 예비군 255인이 있었는데 이에 따른 공곡(公曲)의 감소로 말엽에는 별장 1인 정규군의 봉군(烽軍)이 50인, 군비를 바치는 봉수보(烽燧保)가 150인이 있었는데 이들은 금오산진보군(金烏山鎭步軍)에 예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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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고성산성지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금릉지(金陵誌)』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남쪽[金山洞 옛 郡衙에서]으로 9리에 있다.” 하였고, 『금릉지』에는 “남쪽 9리, 성은 신라 시대에 축조하였다.”고 적고 있다. 고성산성지는 김천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양천동, 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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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고소산성은 속문산성과 함께 신라 초기에 축성되었다. 문무동 마을 사람들은 속문산성을 숫성, 고소산성을 암성이라고 부른다. 옛날 장수 부부가 있어 숫성은 남편 장수가, 암성은 아내 장수가 하루아침에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고소산[성산]은 감문면 문무리와 어모면 구례리 사이에 있는 해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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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에 산재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의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서, 상석이 지상에 드러나 있고 하부에 지석(支石)이나 석곽(石槨), 석관(石棺)이 축조되어 있으며 주변으로 묘역이 있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 또는 지석묘라 부르며, 일본에서는 지석묘, 중국에서는 석붕(石棚)·대석개묘(大石蓋墓), 유럽에서는 거석 기념물 또는 돌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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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공자동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왜장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가 이끄는 왜군이 개령현에 왜군 후방 사령부를 구축하자 그 소속 부대가 대항면 공자동에 포진하고 있었다. 1592년 7월 봉계 출신의 좌수 정유한(鄭維翰)이 피란 갔다가 잠시 봉계마을에 들러 창의 격문을 보고 봉계에서 의병군 150명, 대항면에서 100명을 모아 김산군수 이우빈에게 인계하였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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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 새터마을 남서쪽에 관덕리 고인돌이 위치하고 있다. 현재 민묘로 조성된 곳의 뒤쪽으로 2기가 있다. 이중 1기의 크기는 250×150×130㎝이고, 평면 장방형이다. 민묘 동쪽 부분에 수해로 인해 절개된 곳에서 고인돌 아래 구조로 추정되는 석열(石列)이 관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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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는 김천역에서 동북 방향으로 직선거리로 1.5㎞ 떨어져 있으며, 감문면 소재지로부터는 동쪽 2㎞ 내외의 거리에 있다. 광덕리 내에서 확인된 고인돌 4기는 광덕리 서반부의 외현천 유역에 분포하는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단독으로 위치해 있다. 고인돌[1]은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북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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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교동과 삼락동에서 출토된 토기와 자기 등 생활 유물. 교동 유적지 유물은 1996~1997년 계명대학교 박물관에서 시행한 교동 택지개발지구[교동·삼락동] 발굴, 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생활 유물들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 관아와 객사, 군기 터 등이 있던 곳이다. 김천 지역에는 고려 후기인 1390년에 감무가 설치되었다. 이후 조선 시대부터 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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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 구산에 동서로 길게 난 성터.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교리 산63번지, 즉 지례중학교에서 지례초등학교로 가다 보면 길 우측에 길 쪽으로 얕게 튀어나온 구산[342m] 중간 허리 부분에 동서로 길게 쌓여 있다. 교리 구산성지의 남남서 100m 지점에 국담장수황공인택지묘(菊潭長水黃公仁澤之墓)가 있고 이 민묘 서남 3m 지점에 직경 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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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9, 지례현(知禮縣) 봉수조(烽燧條)에 “남쪽은 거창군의 거말흘산(巨末訖山)에, 북쪽은 김산군의 고성산(高城山)에 응한다[龜山烽燧 南應居昌郡巨未訖山 北應金山郡高城山].”라는 기록이 보인다. 『김천향토지』에는 1895년(고종 32)에 폐지된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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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대리 국사봉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거창 쪽에서는 이 성이 임진왜란 때 축조되었으며, 하성(霞城)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이일(李鎰) 장군이 가토 기요사마[加藤淸正]의 15만 군을 맞아 싸우다가 패한 곳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성과 관련한 전설이 있는데 전설에는 남매가 있어 누이동생은 돌을 나르고 오빠는 그 돌로 성을 쌓는데 성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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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 김산군(金山郡)에 “굴곡부곡(屈谷部曲)은 군의 남쪽 3리에 있다. 신가량부곡(新加良部曲)은 군의 남쪽 23리에 있다. 조마부곡(助馬部曲)은 군의 남쪽 25리에 있다. 어미곡부곡(於未曲部曲)은 군의 동쪽 27리에 있다. 영명향(迎命鄕)은 군의 동쪽 30리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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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고려와 조선에서 문신을 지낸 문경공 독수와(獨樹窩) 권진(權軫)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권희정이다. 권세호(權世豪)는 어려서부터 재종숙 죽림 권산해(權山海) 밑에서 학업을 닦았다. 후에 권세호는 한산군수(韓山郡守)가 되었으며, 선정을 베풀어 명성이 났다. 그는 평소 권산해를 흠모하고 존경하였다. 권산해는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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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효자이자 선비. 본관은 안동. 자는 회숙(會叔), 호는 은재(隱齋). 안동 권씨 문경공 권진(權軫)의 5세손으로 아버지는 권흠(權欽)이다. 형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이었던 권응성(權應聖)[?~1592]이고, 아들은 권기(權耆)이다. 권기는 예빈시첨정을 역임하였다. 권응기(權應期)는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형 권응성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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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희숙(熙叔).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만호 권흠이다. 동생으로 권응기가 있다. 권응성(權應聖)[?~1592]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우가 극진하고 지용이 출중하였다. 도량이 넓고 장부의 기상이 있어 독서하되 손오병서를 읽을 때는 “장부로 태어나 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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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문인.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형숙(亨叔), 호는 송학(松鶴). 안동 권씨 문경공(文景公) 권진(權軫)의 6세손이다. 할아버지는 한산군수 권세호(權世豪)이고, 아버지는 권당(權鏜)이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이에 반발한 할아버지 권세호가 벼슬을 버리고 한양에서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로 은거하였다. 권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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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금극화(琴克和)는 형제간의 돈독한 우애로 향지(鄕誌)에 오른 인물이다. 본관이 봉화(奉化)로,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 하로에서 태어나 살았으며, 옥과현령(玉果縣令)을 지냈다. 일찍이 형이 세상을 떠나자 어린 조카 금유를 대신해 3년간 상복을 입었고 조카를 자식처럼 키웠다. 금유도 금극화를 부모님으로 섬겼으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금유는 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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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하활곡부곡(下活谷部曲)·상오지부곡(上烏知部曲)·금물도부곡(今勿刀部曲)은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49권 제계고 10 부록 씨족 4조에는 “금물도 홍씨(今勿刀洪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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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尙州) 개령군(開寧郡)에 “개령군의 …… 영현(領縣)이 넷이다. 어모현(禦侮縣)은 본래 금물현(今勿縣) 또는 음달(陰達)이라고도 하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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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전해지는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문자. 금석문(金石文)은 철(鐵)이나 동(銅)과 같은 금속성 재료에 기록한 금문(金文)과 석재(石材)에 기록한 석문(石文)을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넓게는 토기에 기록한 명문(銘文), 목간(木簡)에 기록한 묵서, 직물에 쓴 포기(布記), 칠기(漆器)에 기록한 묵서, 기와의 명문 등을 포괄하기도 한다. 다만, 짐승의 등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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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오봉리에 위치한 고려 후기의 산성. 금오산은 동남쪽으로 팔공산[1,193m]과 마주보고 있고, 남쪽으로는 수도산[1,327m]과 가야산[1,430m], 북쪽으로는 황학산[1,111m], 서북쪽으로 삼도봉[1,172m], 민주지산[1,241.7m]과 맥을 같이 한다. 행정 구역 상으로 보면, 금오산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구미시, 칠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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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상금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16권 충청도(忠淸道) 황간현(黃澗縣)에 “ …… 극락산(極樂山)에 금화부곡(金化部曲)이 있다. …… 박차원(朴車院)이 금화부곡에 있다. …… 금화부곡은 고을 동쪽 38리에 있다. 옛날엔 김산(金山)에 붙였었는데, 뒤에 경산부(京山府)로 옮겨 붙였고,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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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어떤 일이나 인물을 기념하여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세운 비. 기념비는 어떤 뜻 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등을 오래도록 잊지 아니하고 마음에 간직하기 위하여 세운 비이다. 김천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조사된 김천 지역 기념비는 총 6기이다. 기념비의 성격을 보면, 보를 쌓은 공적을 인정받아 세워진 기념비는 김천 성촌리 조용택기념비(金泉星村里趙鏞澤記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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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김천 출신의 길운절(吉云節)이 일으킨 반역 사건. 길운절[?~1601]은 개령현 아포 제석리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다가 패륜아로서 횡포가 심하여 유생들에 의해 쫓겨나 선산으로 이주하였다. 1601년(선조 34) 정여립(鄭汝立)의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도에 유배된 소덕유(蘇德兪)[정여립의 척분]를 찾아가 함께 모반을 도모하였다. 임진왜란 직전인 1589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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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어모면 구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김굉의 묘비. 김굉(金宏)[1560~1634]은 본관이 상산(商山)으로 자는 대기(大器), 호는 감개당(鑑開堂)이다. 처음 벼슬에 나아가 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지냈고, 1609년(광해군 1) 흉년이 들었을 때 가산을 털어 백성들을 구제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34년(인조 12) 75세의 나이로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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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의성(義城).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김협으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덕승(金德升)[1637~1662]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구미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글재주가 뛰어나 지례현감 조형은 영남에서 처음 보는 재주라 칭찬하였다고 한다. 15세에 「동국읍호부(東國邑號賦)」를 짓고, 16세에 「치격정중원문(馳檄定中原文)」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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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조선 전기 때 세워진 김득배의 제단비. 김득배(金得培)[1312~1362]는 본관은 상산(商山), 자는 국자(國滋), 호는 난계(蘭溪)이다. 불훤재(不諼齋) 신현(申賢)의 문하에서 포은 정몽주, 이우당 이경 등과 학문을 닦아 1330년(충숙왕 17) 문과에 급제한 뒤 내직과 외직을 두루 거쳤다. 1359년(공민왕 8) 홍건적이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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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1399년(정종 1) 김산현(金山縣) 관내 황악산에 제2대 정종(定宗)의 태를 안치한 후, 이웃의 어모현(禦侮縣)을 폐합하여 김산군(金山郡)으로 승격시켰다. 김산군에는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다. 1. 『고려사(高麗史)』 『고려사』 제82권 지 제36 병 2 참역조에는 “경산부도(京山府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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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부터 1499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757년(경덕왕 16) 지방 행정 제도의 개편에 따라 개령군(開寧郡)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1018년(현종 9) 지방 제도 정비의 일환으로 개령군에서 경산부(京山府)[현 성주군 일대]로 이속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에는 “김산현(金山縣)은 경덕왕이 주현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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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성중, 호는 송헌(松軒). 김성대(金聲大)[1695~1747]는 1728년(영조 4) 무신란에 종제 김성진(金聲振), 김성옥과 더불어 원근의 창의(倡義) 병사를 모집하여 거창의 우두령을 사수하고 지금의 김천으로 진입하는 적을 막았다. 정세갑이 이끄는 금어군(禁禦軍)과 합세하여 황간을 넘어 영동, 옥천, 청주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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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에 조선 전기의 문신 김세강의 묘비. 김해가 본관인 김세강(金世綱)은 1450년(세종 32) 청도 운계리에서 태어났다. 초명은 회석(徊碩), 자는 도정(道貞), 호는 송계(松溪)이다. 천성이 도량이 넓고 곧아 어려서도 함부로 장난을 하지 않았고 의젓하고 점잖았다. 일찍이 김일손(金馹孫)과 더불어 김종직(金宗直) 문하에서 수업하여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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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김해 김씨 효절공(孝節公) 김극일(金克一)의 6세손이다. 아버지는 진사 김응봉이고, 아들로 김여박을 두었다. 김승려(金承礪)[?~1592]는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 대리에서 태어났다. 지용(智勇)을 겸비하고 병법에 출중한 것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일에서 잘 나타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김응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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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해풍(海豊). 자는 정양(廷揚), 호는 남정(嵐亭). 할아버지는 사직(司直) 김효신(金孝信)이고, 아버지는 김의(金顗)이며, 어머니는 하산 조씨(夏山曺氏) 조승중(曺承重)의 딸이다. 김시창(金始昌)[1472~1558]은 지금의 김천시 대항면 대룡리에서 태어났으며, 평생 김천을 떠나지 않았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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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으로 이주한 문신. 본관은 의성(義城). 아버지는 판서 김수덕(金修德)이며, 부인은 옥산 장씨이다. 아들로 김화(金華), 김경(金鏡), 김감(金鑑)을 두었다. 김용초(金用超)[?~1406]는 고려 말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났다. 성품이 꾸민 데가 없이 수수하고 곧으며 무재(武才)가 있었다. 충정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문관이면서도 무예(武藝)가 뛰어나 활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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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김인상(金仁尙)은 1728년(영조 4) 무신란을 일으킨 정희량(鄭希亮)이 거창군을 함락하자 난의 주모자인 이웅보(李熊輔)와 정희량 등을 체포하는 데 공을 세웠다. 반란군 이웅보가 거창군의 속오(束伍) 8초(哨) 및 자신의 수하 군사 5초를 거느리고 우지치(牛旨峙)에 진을 치자, 이 곳에 거창천총(居昌千摠) 정빈주(鄭彬周)가 쳐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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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우거한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자는 계온(季昷)·효관(孝盥), 호는 점필재(佔畢齋). 아버지는 성균사예(成均司藝)를 지낸 김숙자(金叔滋)이며,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朴氏)로 사재감정(司宰監正) 박홍신(朴弘信)의 딸이다. 김종직의 가문은 고려 말 선산의 토성이족(土姓吏族)에서 사족(士族)으로 성장하였으며, 아버지 대에 이르러 박홍신 가문과 혼인하면서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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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김종태(金種泰)[1775~?]는 자는 노첨이고, 호는 광거(廣居)이다. 1820년(순조 20) 강이무(姜履武)[1772~1833], 강체순(姜體淳)[1773~1842], 여학조(呂學祖)[1715~1836] 등과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백화동에서 구로시사(九老詩社)를 결성하여 향산 고사를 본받아 자연과 벗하며 시와 술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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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김진옥(金振玉)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천성이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강개지사의 기질이 있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키고 이웅보(李熊輔)와 정희량(鄭希亮) 등이 거창을 함락하자 경상감사 황선(黃璿)은 성주목사(星州牧使) 이보혁(李普爀)을 우방장(右防將)으로, 초계군수(草溪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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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이전에 성립되었던 대부분의 소국이 그러하듯 감문국(甘文國) 또한 1700여 년의 풍상 속에 대부분의 유적이 훼손되고 멸실되어 그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따라서 감문국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은 제한된 사료(史料)와 전설, 문학 작품 등에 나타난 한정된 관련 자료를 통해 유추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감문국이 성립될 수 있었던 데는 먼저 청동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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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유운(遊雲), 호는 송정(松亭). 김해 김씨 안경공(安敬公) 김영정(金永貞)의 후예이다. 동생으로 김홍붕(金洪鵬)이 있는데, 호는 호은(湖隱)이다. 그리고 김홍기(金洪基), 김홍진(金洪振) 역시 김홍대의 동생이다. 김홍대(金洪大)[1599~1636]은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힘이 절륜하였고 말을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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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김효신(金孝信)은 본관이 해풍(海豊)으로, 고려 공민왕 대 경기도 개풍군 대성면 대릉리에서 태어났다. 사직부위에 올랐지만 고려가 망할 것을 알자 관직을 버리고 부성부원군(富城府院君)인 정윤홍(鄭允弘)과 승선(承宣)을 지낸 백귀선과 함께 김천으로 내려왔다. 백귀선은 할아버지 금릉부원군 백수의 봉군지(封君地)인 금산동으로, 정윤홍은 봉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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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년 김천 지역에서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벌인 곳. 오늘날 김천 지역은 삼국 시대에는 신라의 영토였다. 그렇지만 국경은 백제와 가까웠다. 이에 신라는 백제의 침범을 막기 위해 김천시에 고성산성, 감문면에 속문산성과 소산성, 개령면에 감문산성, 지례면에 구산성, 부항면에 산성[이름 없는 성], 대덕면에 대덕성, 구성면에 덕대산성 등을 구축하였다. 659년 백제의 좌평장군 의직(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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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다질촌부곡(多叱村部曲)의 위치는 개령현 관아[현 개령면 동부리]를 기준으로 북쪽 15리이다. 다질촌부곡에는 주로 문(文)·구(仇)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다질촌부곡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라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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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달오촌부곡(達烏村部曲)의 위치는 개령현 관아[현 개령면 동부리]를 기준으로 남쪽 20리이다. 달오촌부곡에는 주로 홍(洪)·문(文)·전(田)·구(仇)씨가 거주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다질촌부곡(多叱村部曲)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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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대신리 고분군은 김천시 아포읍 대신리 일원의 해발 340m인 봉화재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작은 능선의 말단부에 조성되어 있다. 고분군의 전방에 해당하는 북쪽으로는 감천 변의 너른 충적 평야지가 형성되어 있고, 강 건너편에는 고대 감문국의 중심지로 비정되고 있는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양천리 일대가 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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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흥평리와 대항면 향천리 사이의 덕대산에 있는 고려 시대 성터. 고려 말 정몽주의 문인 안동장군 이미숭(李美崇)과 진서장군(鎭西將軍) 최신(崔信)이 왕위에 오른 이성계에 반대하여 관군과 충청도 미산(尾山)에서 싸우다가 패하고 이곳에 들어와 성을 쌓고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성주로 철수하고 원산(元山)[가야산맥의 한 지산]에서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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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개국에 반대한 고려의 충의군이 김천 덕대산 일대에서 벌인 전투. 고려 말 우왕 때 벌어진 요동정벌 때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정도전(鄭道傳)·조준(趙浚) 등의 급진적 개혁파와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 왕조를 건국하였다. 그 과정에서 신왕조의 개창에 반대한 정몽주(鄭夢周)는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선죽교에서 격살됨으로써 고려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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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덕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 성(城). 대덕면 덕산1리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금평리 사이에 위치한 주치산[일명 덕산재] 정상 남쪽 능선 상에 있다. 덕산재는 과거부터 김천시와 무주군을 잇는 주요한 교통로로서, 현재는 성주군 성주읍에서 김천시 대덕면을 지나 무주군 무풍면에 이르는 국도 30호선이 덕산재를 통과하고 있다. 이 도로는 덕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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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도곡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도곡리 고분군은 지례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1.3㎞ 정도 떨어져 있는데, 이 지점은 부항천이 감천으로 합수하기 직전의 최하류 지역으로서 북편 김천시 지례면 도곡리 골짜기 입구부에 해당한다. 도곡리 고분군은 세 개의 지군으로 나누어져 분포하는데, 도로실마을을 기준으로 제1지군은 북쪽 500m 일대의 서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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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통일 신라 시대 금동 사리함.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사리기는 1977년 4월 2일 경상북도 구미시 도리사에 있는 세존사리탑으로 전해 내려오는 종 모양의 석조 부도를 옮기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직지성보박물관으로 옮겨져 보관, 전시되고 있다. 1982년 12월 7일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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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동부리 고분군은 김천시 개령면 동부리의 감천(甘川)과 취적봉(吹笛峰)으로 불리는 표고 380m의 감문산성(甘文山城) 사이의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감문산성에서 동남쪽의 김천시 개령면 양천리와 동부리 사이로 뻗어 내리는 능선의 하반부에 고분군이 형성되어 있는데, 능선을 기준으로 동쪽은 양천리에, 서쪽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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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건 정부의 수탈과 탐학에 반대하고 외세의 침략에 저항하며 일으킨 운동. 김천 지방에 동학이 전파된 때는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 시기였다. 1890년 11월 최시형은 경상북도 김천군 구성면 용호동 김창섭의 집에 머물면서 내수통문을 각 읍에 포고하였다. 김천에서 농민군이 조직된 시기는 대체로 동학 농민군이 전주성을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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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관기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두의곡부곡(頭衣曲部曲)의 위치는 지례현 관아[현 지례면 교리]를 기준으로 서쪽 30리이다. 두의곡부곡에는 주로 주씨(朱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주씨는 향리 집안의 성씨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상주목 지례현조에는 “부곡(部曲)은 월이곡과 두의곡(頭衣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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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모암동에 있는 삼한 시대에서 삼국 시대의 주거지 유적. 모암동 주거지 유적은 1996년부터 2010년에 걸쳐 시굴 및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1996년에는 김천시 문화유적 지표 조사가 김천시 전역에서 이루어지면서 모암동 주거지 유적도 조사되었다. 1997년 12월에는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경부고속철도 대구·경북권 발굴 예비 조사의 일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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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무차곡부곡(茂佽谷部曲)의 위치는 개령현 관아[현 개령면 동부리]를 기준으로 남쪽 20리이다. 무차곡부곡에는 주로 홍(洪)·구(仇)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달오촌부곡(達烏村部曲)·무차곡부곡 모두 현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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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997년까지 개령군의 영현.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 개령군(開寧郡)에는 “무풍현(茂豊縣)은 본래 무산현(茂山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고려]도 그대로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高麗史)』 제57권 지 제11 지리 2 전라도 진례현에는 “무풍현은 원래 신라의 무산현인데 경덕왕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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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문당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김천시 문당동 당곡마을 북쪽 300m 지점에 문당1지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은 모두 2개로 이 저수지의 남쪽 논에 한 개, 남동쪽 과수원 일대에 한 개가 있다. 즉 문당1지에서 남쪽으로 10m 떨어진 지점에 조그마한 못이 있고, 이 못에서 북쪽으로 10m 떨어진 논에 1호 지석묘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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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문무리 고분군은 감천의 지천인 감문천 최상류의 김천시 감문면 문무리 상여마을과 하여마을 주위에 분포하고 있는데, 김천역에서 북으로 13㎞ 정도 떨어져 있다. 문무리 고분군은 두 마을을 둘러싼 대부분의 능선부와 사면 하위에 광범위하게 분포한다. 문무리 고분군의 서쪽 산에는 고소산성(姑蘇山城), 동쪽 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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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는 국가 및 지방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고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보여 주는 귀중한 유산이다. 그 유형에 따라 유형 문화재·무형 문화재·기념물·민속자료 등으로 나뉘고, 지정 여부에 따라 지정 문화재와 비지정 문화재로 구분된다. 2010년 현재 김천시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 19점[국보 1점, 보물 16점, 천연기념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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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미평리에 있는 청동시 시대 고인돌군. 구성면 미평리 지품마을 연안 이씨 재실인 세성재(歲省齋) 위쪽 과수원을 지나면 동쪽에 연안 이씨 선산이 있다. 미평리 고인돌은 선산의 무덤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미평리 고인돌은 모두 6기로, 무덤[계산처사연안이공지묘배유인경산이씨부(桂山處士延安李公之墓配孺人京山李氏祔)] 바로 뒤에 2기가 있고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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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시윤(施允), 호는 학촌(鶴村). 증조할아버지는 박원직(朴原直)이고, 할아버지는 박지(朴址)이며, 아버지는 영천부사를 역임한 박성건(朴成楗)이다. 어머니는 흥덕 장씨이고, 7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인은 박윤종(朴胤宗)이다. 박이룡(朴以龍)[1533~1593]은 어려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문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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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여빈(汝彬), 호는 도은(道隱). 할아버지는 박수종(朴守宗)으로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였다. 박홍발(朴鴻發)[1610~1671]의 유허비에는 할아버지의 이름이 박원복(朴元福), 벼슬은 참봉(參奉)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명종 때 군기시주부(軍器寺主簿)를 역임한 박경순(朴景淳)이다. 어머니는 남양 홍씨(南陽洪氏)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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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수초(遂初). 할아버지는 효숙공(孝肅公) 배흥립(裵興立)이고, 아버지는 배시망(裵時望)이다.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의성 김씨(義城金氏)이다. 아들로 배상경(裵尙瓊), 배상행을 두었다. 배명순(裵命純)[1597~1636]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남달라 장차 후일에 이름을 남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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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공근(公瑾), 호는 만학당(晩學堂)·숭정처사(崇禎處士). 증조할아버지는 공조참판 배흥립(裵興立)이고, 아버지는 현감 배명전(裵命全)이다. 배태래와 배태휘(裵泰彙)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배태래[1651~1701]는 자는 내보이고, 호는 농수(農叟)이다. 경학에 밝아 숙종조에 관찰사의 천거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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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명(子明). 아버지는 배흥립(裵興立)이고, 부인은 정부인(貞夫人) 영산 신씨(靈山辛氏)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들은 통덕랑(通德郞) 배명호(裵明虎)와 진사(進士) 배명생(裵命生)을 두었고, 형으로 배시망(裵時望)과 배시준(裵時俊)이 있다. 배시량(裵時亮)[1604~1657]은 54세가 되던 1630년(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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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휘보, 호는 존덕성재(尊德性齋). 할아버지는 현감 배명전(裵命全)이고, 아버지는 배상유(裵尙瑜)[1622~1686]이며,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 배태래[1651~1701]가 있다. 자는 내보이고, 호는 농수(農叟)이다. 경학에 밝아 숙종조에 관찰사의 천거로 사헌부감찰에 제수되었지만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강선(姜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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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포(東圃). 아버지는 현감 배인범(裵仁範)이다. 외할아버지는 북일(北逸) 김익(金瀷)이다.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 할머니 한양 조씨는 대장기(大將旗)가 마당에 서는 꿈을 꾸었는데, 태어났을 때 과연 장군의 골상이었다고 한다.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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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무신 배흥립의 신도비. 배흥립(裵興立)[1546~1608]은 본관이 성산(星山)으로 자는 백기(伯起), 시호는 효숙(孝肅)이다.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배인범(裵仁範)이다. 1604년(선조 37) 임진왜란 중에 세운 공로로 무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공조참판이 되었다. 당시의 지휘관이던 이순신(李舜臣)이 장계(狀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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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김천으로 은거한 문신. 백귀선(白貴璇)은 고려 말기 승선으로 재직하다가 조선이 개창되자 벼슬을 버리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절의를 지키기 위해 김천으로 이거해 정착하였다. 김천의 금산동은 조부인 금릉부원군의 봉지(封地)였다. 조선 조정에서 여러 차례 관직을 내렸으나 거부하고 은둔 생활을 하였다. 백귀선의 자손들도 부친의 유지를 이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처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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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소국(小國). 변진감로국(弁辰甘路國)은 현재 김천시 개령면과 감문면 일대에 있던 소국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231년(조분이사금 2) 신라의 대장군 석우로에게 토벌되었다. 그리고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조선 전기까지 이 지역에는 감문국 때의 궁궐터와 감문국 왕의 무덤인 김효왕릉(金孝王陵) 및 장부인(獐夫人)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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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12월부터 1637년 1월까지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에 참여한 김천의 관군과 의병.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침공해 오자, 조정에서는 각 지방에 영을 내려 군사를 모았다. 김천 지방에서도 12월 19일 제색군(諸色軍)을 상주진관(尙州鎭管)에 주둔시키고 군기와 군량을 급송하였다. 김산군기감관 정은신, 김산군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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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보광리 보광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보광리 고분군은 김천역에서 서북쪽으로 12㎞ 정도 떨어져 있으며, 감천의 지천인 외현천(外現川) 상류 지역에 해당한다. 고분군은 2개의 군으로 나누어져 분포하는데, 배후의 보광산[232m]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내려오는 능선부에 제1군이, 동남쪽으로 내려와 구릉을 이루는 부분에 제2군이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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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보광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보광리 고인돌군은 김천역에서 서북쪽으로 직선거리로 12㎞ 정도 떨어져 있으며, 감천의 지천인 외현천(外現川) 상류 지역에 해당한다. 감문중학교에서 서남서 방향의 지방도를 따라 약 1㎞를 가면 보광마을 나오는데, 이 마을에서 남서 400m 지점의 논둑에 고인돌 2기가 남북으로 4m 정도 이격된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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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봉산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봉산리 고분군은 김천역과 구미역의 중간 지점인 김천시 아포읍 봉산리 작동마을 서쪽 일대에 위치한다. 고분군의 북쪽에 접해서 경부고속도로가 나 있으며, 남쪽 가까이로 경부선 철도가 지나 고분군의 범위가 두 간선 교통로의 사이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감천의 작은 지류인 연봉천 하류의 너른 충적지가 발달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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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의 관아에서 긴급한 상황을 중앙에 전하던 군사 통신 시설. 봉수는 옛날에 널리 쓰인 통신 수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149년(고려 의종 3) 병마사 조진약(趙晋約)의 제창으로 고려에서 채택하였다. 밤에는 횃불을 올리고, 낮에는 연기로써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로 신호를 보내어 변경의 위급을 중앙에 통보하였다. 보통 4㎞에서 16㎞마다 봉수대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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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봉계마을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서당. 연일 정씨 선조의 선비 정신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려고 향내 문중의 젊은이를 모아 교육하던 서당이다. 김천시에서 김천대학으로 가는 길[대학로]을 따라 가다 김천대학을 지나자마자 삼락동이 나오고 산을 끼고 돌면 예지리라는 마을이 나온다. 그 마을에 봉곡이 있으며 그곳에 봉암서당이 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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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부곡(部曲)은 향(鄕)이나 소(所)와 마찬가지로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인데,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촌락 집단이었다. 김천 지역에 부곡이 설치된 곳은 김산군(金山郡), 지례현(知禮縣), 개령현(開寧縣) 등이다. 김산군에는 굴곡부곡(屈谷部曲), 신가량부곡(新加良部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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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부항령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성터가 있는 이 산은 신라 영토로서, 삼국 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 황악산(黃岳山)과 삼도봉(三道峰)을 잇는 연속된 준령의 연장선상의 하나이다. 평지와는 달리 백제가 패망할 때까지 신라와의 국경으로서 거의 변경이 없었다.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 산118-3번지 가목마을 서쪽 산 정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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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사등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 지례현에 “사등량부곡(沙等良部曲)이 월이곡과 같은 마을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월이(月伊)부곡과 사등량부곡은 모두 서쪽으로 25리, 두의곡부곡은 30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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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김천 지역에 설치한 사령청. 사령청(使令廳)은 장교청(將校廳)의 하부 기관으로 사령들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사령은 중앙과 지방 관청에서 심부름 등의 천한 일을 맡고, 군관(軍官)·포교(捕校) 밑에 있으면서 죄인에게 곤장을 치는 등 하는 일이 여러 가지여서 그 일에 따라 조례(皁隷)·문졸(門卒)·일수(日守)·나장(羅將)·군노(軍奴) 등으로 달리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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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동종. 문경 김룡사 동종은 1670년(현종 11)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주종장(鋳鍾匠)으로 활동한 사인비구(思印比丘)가 만든 종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410번지에 있는 김룡사에서 전해 오던 동종으로, 1995년 직지성보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옮겨져 보관, 전시되고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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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삼락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김천역에서 봉산면 신리 마을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김천대학교가 있고, 이 학교를 지나 400m 정도 가면 우측에 거문들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350m 정도 들어가다 보면 서쪽에 삼락교회가 있는데, 고인돌은 이 교회에서 서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규모는 24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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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삼성리 고분군은 감문소국(甘文小國)의 고지(故地)로 알려져 있는 개령면 중심지에 위치한 삼국 시대 주고분군 외곽의 하위 고분군에 해당한다. 현재 봉토분의 분포 양상, 내부 구조의 장축 방향, 판석조 벽체 그리고 산포 유물로 미루어 5~6세기 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김천 지역 내에서는 중규모에 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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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상부리에 있는 토석 혼축의 성터. 김천 지례 사람들에 의하면 당초 지례면 상부리에 도곡리(道谷里)로 돌아가는 길 오른쪽 해발 140m의 끝 봉우리에 성이 있었다가 뒤에 지례면 교리 지금의 지례중고등학교 뒷산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해발 160m의 산봉우리에서 50m쯤 내려온 산 동북쪽 둘레에는 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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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하활곡부곡(下活谷部曲)·상오지부곡(上烏知部曲)·금물도부곡(今勿刀部曲)은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49권 제계고 10 부록 씨족 4조에는 “상오지 홍씨(上烏知洪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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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는 김천에서 서남쪽으로 거창행 국도를 따라 13㎞ 정도 떨어져 있으며, 상원리 고인돌군은 구성초등학교의 동쪽 약 300m 지점에 위치한다. 이 일대는 감천과 그 지류인 하원천(下院川)의 합류 지대로 현재의 구성면 소재지 일대에 해당한다. 상원리 고인돌군 주변은 북쪽 가까이에서 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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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서부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서부리 고분군은 감문소국(甘文小國)의 고지(故地)로 알려져 있는 개령면 중심지에 위치한 삼국 시대 고분군의 한 부분에 속한다. 현재 확인된 고분의 구조는 굴식 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이지만 구릉 위쪽 범위에는 규모가 큰 고분이 포함된 판석조 구덩식 돌방무덤[竪穴式石室墳]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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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대덕면 가례리 석정마을에 위치한 석곡서당은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제자로 영남 사림의 태두로 일컬어지는 한강(寒岡) 정구(鄭逑)의 제자들이 스승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서당이다. 한강 정구가 성주에서 벼슬을 마다하고 학문을 강론할 때 이웃한 고을인 지례현을 방문하자 평소 그를 따르던 지례현의 선비들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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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석기를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로 나눌 수 있다. 김천의 선사 문화는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현재 고고학적 성과에 의하면 김천 지역에서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조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주, 칠곡 등 김천 인접 지역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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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김천의 감문국을 격파한 신라의 왕족이자 장군. 본관은 경주(慶州). 아버지는 내해이사금으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인은 조분왕의 딸 명원부인(命元夫人)이다. 아들은 흘해이사금이다. 아들 흘해는 풍채가 빼어나고, 어리지만 노성한 덕이 있어 기림이사금이 세상을 떠나자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신라 제16대 왕이 되었다. 석우로(昔于老)는 231년 이찬으로 대장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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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돌고개[석현]에서 벌어진 김천의 대표적 전투. 이 석현전투로 인해 고개는 돌모리로 불리게 되었으며 면 이름도 석현면으로 불리게 되었다. 석현[돌고개]은 조선 시대에는 김산군, 지례현의 접경을 이루었다. 조선 시대에는 지례현 하북면에 속한 상좌원리는 1914년 석현면에 편입되어 상좌원과 도동, 원앞을 통합하여 하원리가 되었다. 구미의 석현면 면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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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전개된 역사 이전의 시대. 선사는 문자를 사용하여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한 이전의 시대로 역사 시대라는 용어와 대칭되는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인류가 생산한 유물의 재질을 기준으로 하여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의 3대 시기로 구분한다. 석기 시대는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눌 수 있다. 김천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 유적이나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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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이나 돌로 구축된 방어 시설. 성곽이란 성(城)과 곽(郭)의 합성어이다. 성은 내성을 말하고 곽은 성의 주위를 에워싼 나성의 형태로 우리나라는 내성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을 성곽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천 지역에 현존하는 성지들은 대부분이 삼한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축조되었다. 취적봉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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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소(所)는 향(鄕)이나 부곡(部曲)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인데,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특수한 촌락 집단이다. 이러한 집단으로는 소 이외에 향과 부곡 등이 있어 흔히 향·소·부곡으로 함께 불린다. 김천 지역에 설치된 소로는 김산군(金山郡)에 황금소(黃金所)·수다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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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금라리 봉화산 정상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9, 김산군(金山郡) 봉수조(烽燧條)에 “남쪽은 지례현의 구산(龜山)에, 서쪽은 충청도 황간현 눌이항산(訥伊項山)에 응한다. 소산(所山) 봉수 군의 북쪽 29리에 있다. 동쪽은 개령현 감문산(甘文山)에, 북쪽은 상주 회룡산(回龍山)에 응한다[所山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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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송북리 백운산[옛날에는 속문산이라 일컬어졌음]에 있는 삼국 시대 성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 29, 김산군(金山郡) 성곽조(城郭條)에 “속문산성 석축주위이천사백오십오척 고칠척 내유이천이지 유군창(俗門山城 石築周圍二千四百五十五尺 高七尺 內有二泉二池 有軍倉)”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삼국 시대에 속문산성은 어모현에 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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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당 터. 1702년(숙종 28)에 기로(耆老), 장암(壯岩)의 여러 선비들이 자제 교육을 위해 조마면 강곡리에 처음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학도들이 많이 모여들어 학문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많았으나 오래되어 돌보는 이가 없어 퇴락하게 되었다. 1950년대 지금의 자리인 구성면 광명리 하기(下耆)로 옮겼다. 강당이 있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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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감문면 송북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송북리 고인돌은 김천역에서 북동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15.2㎞ 떨어져 있다. 송북리 고인돌이 위치한 곳은 감천의 지류인 외현천 상류의 북 지류이자 감문면의 북단 오지에 해당하는 김천시 감문면 송북리 성북마을 입구 길가이다. 1979년에 실시된 지표 조사에서는 성북마을 동쪽 20m 지점의 상엿집 뒷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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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고목마을에 있는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마을 유적. 송죽리 유적은 구성지방공단 조성 계획으로 1992~1993년에 계명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하였다. 송죽리 유적은 행정 구역상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 고목마을에 해당한다. 낙동강(洛東江) 중류의 한 지류인 감천(甘川)이 남북으로 돌출된 산지로 인해 ‘U’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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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에서 활동한 선비.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성경, 호는 남촌(南村). 쌍천당 송유(宋愉)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송충기(宋忠己)이다. 송천상(宋天祥)[1556~1626]은 지금의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태어나 등곡(藤谷)[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으로 옮겨 살았다. 임진왜란 때 지례향교(知禮鄕校)가 불에 타자 오성(五聖)의 위판(位版)과 공부자(孔夫子)의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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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관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숙명과 숙경 공주의 태실 터. 숙명·숙경공주 태실 터는 조선 17대 왕인 효종의 3녀 숙명(淑明), 6녀 숙경(淑敬) 두 공주의 태를 안치했던 곳이다. 효종 이후 왕실에서는 한 태봉에 두 태를 안치하거나 요란한 발행 의식을 치르는 일을 삼갔으며, 아예 궁궐 내 정갈한 곳에 안태하는 등의 방법으로 대안을 물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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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 있는 선비 모습의 입석상(立石像). 숭산동 유사석상은 숭산마을 입구 제방에 30m 간격으로 쌍을 이루어 세워져 있는 선비 모습의 석상이다. 숭산동 유사석상은 화강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크기는 높이 100㎝, 몸 둘레 120㎝ 이다. 거칠고 투박한 형태로 동쪽 석상은 밑부분이 파손되었고 서쪽 석상은 목이 없다. 석상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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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월명리에서 발견된 삼국 통일 전쟁 시기 시장군의 비. 시장군(柴將軍)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보이는 당나라 장군 시철위(柴哲威)로 추정되는 인물로, 당 태종의 외척인 시소(柴紹)의 아들이다. 삼국 시대에 백제를 멸망시키고 가림도행군총관(加林道行軍摠管)으로 김천 방면에 주둔하고 있을 때 고구려 정벌 명령을 받고 함자도행군총관(含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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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 김산군(金山郡)에 “굴곡부곡(屈谷部曲)은 군의 남쪽 3리에 있다. 신가량부곡(新加良部曲)은 군의 남쪽 23리에 있다. 조마부곡(助馬部曲)은 군의 남쪽 25리에 있다. 어미곡부곡(於未曲部曲)은 군의 동쪽 27리에 있다. 영명향(迎命鄕)은 군의 동쪽 30리에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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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신곡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곡부곡(薪谷部曲)은 조선 시대에는 성주목(星州牧)[현 경상북도 성주군 일대] 내에 있던 부곡으로, 성주목을 기준으로 서북쪽 30리에 위치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제134권 열전 제47 신우 2 신우 경신 6년(1380)에서는 “왜적이 경산부(京山府) 신곡부곡에 침입하였다.”라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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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신리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신리 고분군은 김천역에서 서북서 방향으로 직선거리로 5㎞ 떨어진 봉계초등학교의 뒷산 일대에 위치한다. 신리 고분군은 구 김천시역과 봉산면의 경계를 이루는 남주 능선의 해발 157.9m 지점에서 서쪽으로 파생된 능선부와 완만한 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신리 고분군의 남쪽으로 약 1㎞ 떨어진 곳에 감천의 지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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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금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김천시내에서 국도 3호선을 따라 가다가 구성면 송죽리송죽휴게소 직전에 조마면 방면으로 좌회전을 하면 금평리와 광명리가 나온다. 금평리 기를마을 앞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2㎞정도 직진하면 금평리 광수마을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고 마을 입구로부터 300m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도로 왼편에 야귀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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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교동에 있던 조선 후기 서당 터. 조선 후기의 사숙(私熟)이었으나 김산군수가 적극 권장했던 서당이라고 한다. 규모 등 관련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1709년(숙종 35)에 군수 윤택(尹澤)이 유생들의 힘을 얻어 건립하였고 송상기(宋相琦)가 송당기(松堂記)를 썼다. 1741년(영조 7)에 군수 이화중(李華重)이 향교 동쪽으로 옮겼고 1790년(정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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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1년 김천 지역에서 양석천(梁錫天)과 이정(李瀞)이 일으킨 반역 사건. 1631년(인조 9) 김산[현 김천]의 양석천이 당파 싸움에 휘말려 상소하였다가 반역죄로 몰렸다. 조마면 장암리 신촌에 사는 이정은 벽진 사람으로, 재산가 이당춘(李堂春)의 아들이다. 이정은 양석천과 함께 모역을 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고, 그의 가택은 헐려 연못이 되었다. 이정의 아들 이천건은 이광제의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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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양천리 양천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양천리 고분군은 김천역에서 동남쪽으로 직선거리로 약 9.5㎞ 떨어져 있으며, 그 좌측에 동부리 고분군이 위치해 있다. 김천시 개령면 양천리 양천마을의 양천교회 북편의 구릉 일대에 분포하며, 배후에는 감문산성이 위치하고 전방에는 감천 유역의 넓은 충적지가 펼쳐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고분과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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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416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고려사(高麗史)』 제57권 지 제11 지리 2 상주목에 “어모현(禦侮縣)은 원래 신라의 금물현(今勿縣)[음달현(陰達縣)이라고도 한다]인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개령군의 관할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1018) 본 목에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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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원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어미곡부곡(於未曲部曲)의 위치는 김산군(金山郡) 관아[현 김천시 삼락동]를 기준으로 동쪽 27리이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어미곡부곡의 위치가 남쪽 27리라고 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김산군에 “어미곡부곡은 동쪽으로 27리, 수다곡소는 남쪽으로 28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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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어전리에 위치한 삼국 시대 성터. 부항면소재지에서 4㎞ 거리에 있는 마을로 삼도봉과 대덕산 중간 지점의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월곡리에서 좌회전하여 삼도봉터널 방면으로 가다 보면 좌측에 어전령[863m]이 위치한다. 어전령은 옛날 신라와 백제 접경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이곳에 삼국 시대 성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있다. 이 성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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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우(聖遇), 호는 감호(鑑湖). 아버지는 여응구(呂應龜)이다. 여대로(呂大老)[1552~1619]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문하생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업을 이루려는 뜻이 남달랐다. 아버지는 늘 “이 아이가 우리 가문을 빛낼 자식”이라고 격려하였다. 8세에 모친상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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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송죽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여대로의 창의비. 여대로(呂大老)는 성산여씨 여응구(呂應龜)의 아들로 1552년(명종 7)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감호(鑑湖)이다. 1582년(선조 15)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때에 고향에서 집안의 노복과 마을 사람들을 거느리고 의병을 일으켜 김면(金沔), 곽재우(郭再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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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문서(文瑞), 호는 송오(松塢). 아버지는 처사 여종호(呂從護)이며, 어머니는 인천 이씨(仁川李氏)로 참봉 이승원(李承元)의 딸이다. 여응구(呂應龜)[1523~1577]는 금릉에서 태어나 처가와 가까이 있던 주세붕(周世鵬)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익혔으며, 당대 석학이었던 오건(吳健), 조식(曺植) 등과 도의로 사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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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명세(鳴世), 호는 수봉(壽峰). 여대로(呂大老)의 후예로 아버지는 여저징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여이명(呂以鳴)[1650~1737]은 김천시 교동에 있던 양사당(養士堂) 창건을 주도하여 김천 지역의 유학 진흥에 이바지하였다. 특히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와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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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도, 호는 노일헌. 여종호(呂從護), 여응구(呂應龜), 여대로(呂大老)의 가계를 잇는 여사민의 아들이다. 아들로 여석홍을 두었다. 여학조(呂學祖)[1715~1836]는 천품이 총명하였고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문장에도 뛰어났다. 일찍이 조목수(趙沐洙)·유심춘(柳尋春)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여러 번 사림에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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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김천시의 역사. 김천 지역은 삼한 시대에 감문국(甘文國)과 주조마국(走漕馬國)이 있었고 삼국 시대에는 신라가 감문국과 주조마국을 병합하여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였던 곳이다. 신라 때는 김산군에 속하는 산간 촌락에 지나지 않았으나, 조선 초기에 역마제도가 생긴 이후 인근 주민들의 물물 교환 및 주변 지역과의 교역 중심지로서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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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분묘군. 예지리 고인돌군은 경부고속도로 김천IC에서 추풍령 방향으로 4㎞ 정도 떨어진 고속도로 북변 약 200m 지점에 동서로 2기가 위치하고 있다. 예지리 고인돌군의 동쪽에는 율리마을이 위치하며 북쪽의 외입석마을의 입구부에 해당하는데, 김천시 봉산면 예지리 일대에서 생산된 나락을 도정하는 정미소로부터 서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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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전기 금동으로 만든 자물쇠 3점과 쇠북[청동 반자] 1점. 예천 한천사 금동 자물쇠 및 쇠북[醴泉寒天寺金銅자물쇠 및 金鼓]은 1989년 1월 15일 한천사 경내 정비 작업 중 발견되었다. 크기가 다른 금동 자물쇠 3점과 쇠북[청동 반자] 1점으로, 고려 전기에 금동으로 만든 것이다. ‘한천사 청동 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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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하강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당 터. 1701년 안동인 진사 김선(金墠)이 아내의 고향인 하로(賀老)에 이거하면서 백방으로 동지를 모아 5칸짜리 한 동을 지었다. 이후 수학하는 사람이 늘어 1703년에 쌍계사(雙溪寺) 승려 목수로 하여금 10칸을 증축하여 석간정사(石磵精舍)라 하였다. 10칸 가운데 5칸은 승려들의 숙사로 지었다. 1705년에 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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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용전리에 있는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산포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급속히 늘어나는 물류량과 곡선 구간으로 인한 사고의 피해를 줄이고 원활한 교통 흐름과 주변 지역의 발전을 위해 김천시 농소면 월곡리에서 어모면 옥율리에 이르는 총 길이 12.98㎞에 해당하는 도로 신설을 계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용전리 유물산포지[2]와 용전리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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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우두령[우치현]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임진왜란 초기 전라도 점령의 임무를 맡은 왜군 제6진 고바야가와가 이끄는 왜군 1만 5000명이 의령에서 거병한 의병장 곽재우(郭再祐)의 활약으로 의령·삼가·합천에서 차단되고, 고령에서 거병한 김면(金沔)에게 함양·거창에서 차단되어 호남에 들어가지 못한 채 지례·김산·선산·성주 등지에 분산 주둔하면서 거창과 무주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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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단양(丹陽). 안정공(安靖公) 우홍강(禹洪康)[1357~1423]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우익선(禹益善)이다. 우상학(禹象學)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빈농가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후에는 흉년이 들었을 때 감문면 빈민들의 호구세를 대신 내주었고, 사재를 털어 감문면의 구야평과 하포평의 제방을 쌓았다. 또한 금오산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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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월명리에 있던 신라 시대 고분. 월명리 고분은 삼국 시대 신라의 지역 단위 세력을 의미하는 김천 지역의 감문국(甘文國)과 성주 지역의 성산가야(星山加耶)의 경계부 고갯길에 위치하는 판석조(板石造)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추정된다. 비록 1기만 알려져 있고 구조 원상을 알 수 없으나 경계부에 위치한 두 지역 간의 고분 문화를 연구하는 데 양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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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부항면 월곡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월이곡부곡(月伊谷部曲)의 위치는 지례현(知禮縣) 관아[현 지례면 교리]를 기준으로 서쪽 15리이다. 월이곡에는 주로 박씨(朴氏) 성을 가진 사람들이 거주하였으며, 박씨는 향리 집안의 성씨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 상주목 지례현조에 “부곡(部曲)은 월이곡과 두의곡(頭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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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산(金山). 자는 무수, 호는 학포(學圃)·해붕(海鵬). 유섭의 후손이다. 유익명(兪益明)[~1455]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금송리에서 태어났다. 무예가 뛰어나 무과를 거쳐 사량만호(蛇梁萬戶)가 되었고, 1427년(세종 9) 세자가 조현(朝見)할 때 사직으로 참여하였다. 1440년(세종 22) 병조참판 황보인(皇甫仁) 등이 장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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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풍산. 자는 숙빈(叔斌), 호는 계당(溪堂).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의 9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용양위부호군 유심춘(柳尋春)이며, 아버지는 좌의정 유후조(柳厚祚), 어머니는 연안 이씨로 부사 이재연(李載延)의 딸이다. 유주목(柳疇睦)은 1813년(순조 13)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에서 태어났다. 전통적인 가학을 전수하여 젊은 시절에 이미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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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현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적을 몰아내기 위해 일어난 의병들의 항쟁. 임진왜란은 일본이 오랜 기간 전국 시대를 통하여 전쟁 경험을 쌓고 신무기인 조총으로 무장하여 일으킨 전쟁이었다. 이에 비해 조선은 당쟁에만 몰두하여 군비가 전무한 상태였다. 왜군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서울까지 오는데 20일이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왜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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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작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당. 승용차로 김천에서 거창으로 가는 국도 3호선을 따라가다 구성면을 지나면 5분 거리에 구미교라는 작은 교량이 나오는데, 이 교량 끝을 지나자마자 오른쪽 작은 길로 5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장천마을이 있으며 그 동쪽 끝에 의산서당이 있다. 의성 김씨 문중의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1864년(고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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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김여권(金汝權)의 유행(儒行)을 찬양하여 지례향교에 내린 친필 현판. 의산서당 석파 친필 현판은, 임진왜란 때 관란재(觀瀾齋) 김여권이 지례향교가 불타 대성전에 모신 오성(五聖)의 위패位牌)와 동방 제현(諸賢)의 위판이 불에 탈 위험에 처하자 불속으로 뛰어들어 위판을 가지고 나와 대덕면 등곡에 모셨다는 유행(儒行)을 찬양하여 흥선대원군이 지례향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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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중추부지사(中樞府知事)를 역임한 이호성(李好誠)이다. 이호성은 북정(北征)에 참여할 때 가는 곳마다 대적할 상대가 없어 비장군(飛將軍)이라 불렸다. 이거인(李居仁)[1431~1507]은 김천 하로에서 태어났다. 무과를 통해 관직에 나아갔으며, 아버지 이호성의 무예를 이어 받아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였다. 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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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으로 우거한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겸보(謙甫), 호는 우봉(牛峰). 증조할아버지는 이집(李集),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고,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부인은 경주 최씨이다. 동생으로 이극감(李克堪)·이극돈(李克墩)·이극균(李克均)이 있다. 이극배(李克培)[1421~1495]는 1447년(세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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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이거한 문신이자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아버지는 사헌부장령과 보주지사(甫州知事)를 역임하고 병조판서에 증직된 이백겸(李伯謙)이고, 어머니는 온양 방씨이다. 부인은 곡산 한씨로 장인은 경상도관찰사와 의정부좌찬성을 역임한 한옹(韓擁)이다. 정경부인 곡산 한씨와의 사이에 5남 1녀를 두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고 관직에 나아갔다. 장남 이숙황(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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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정약, 호는 이원재(二願齋). 아버지는 이수함이다. 이병중(李秉中)[1762~1848]은 명성당 이의조(李宜朝)와 당대 석학인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나, 과거 시험을 보지 않고 오로지 중용학 공부에 힘썼다. 예학에도 밝아 『경예문답(經禮問答)』과 『예의해집(禮疑解輯)』 등의 저서가 있다. 승정원좌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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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호는 송월당(送月堂). 할아버지는 광정대부(匡靖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이언충(李彦冲)이며, 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광익(李光翊)이고, 장인은 판서 백광비(白光庇)이다. 아들로 승려 상부(尙孚)와 이종(李悰)을 두었다. 이사경(李思敬)은 1356년(공민왕 5) 서북면병마부사(西北面兵馬副使)를 지내고, 뒤에 판사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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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평(廣平). 자는 희성(希聖). 아버지는 직장 이춘란(李春蘭)이고, 어머니는 흥해 최씨이다. 이삼성[1564~1624]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향시에 수차례 합격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물고기를 잡아 모친을 봉양하였으며, 충의위(忠義衛)를 거쳐 찰방으로 향촌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36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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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언부, 호는 강촌. 이우당(二憂堂) 이경(李瓊)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이문규이다. 이선동(李善仝)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광명리[구 김천시 구성면 기로리]에서 태어났다. 조용한 성품에 의지가 곧았으며 불의에 과감하였다. 세종 대 진사가 되어 성균관 유생으로 학문을 닦을 때 궁중 여인들이 왕의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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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명필가. 본관은 성산(星山). 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후, 두문불출하여 절의를 지킨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성동(李星東)[1662~1702]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에서 태어났다. 벼슬은 통사랑에 이르렀으며, 문장뿐 아니라 명필로도 널리 알려졌다. 특히 서도에 능하여 개령객사(開寧客舍)에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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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원지(元之), 호는 연담(蓮潭). 고려 시대 좌정언(左正言)을 지낸 이여량(李汝良)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성균관 진사(進士)를 지낸 이벽(李壁)이다. 부인은 현령(縣令)을 지낸 신천 강씨 강응겸(康應謙)의 딸이다. 아들은 이항(李沆)이다. 이항은 연산군조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장원을 하였다. 호당(湖堂)과 옥당(玉堂)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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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양오, 호는 진암(進庵). 형으로 이수암이 있다. 이수호(李遂浩)[1744~1796]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족숙인 명성당 이의조(李宜朝)와 당대 석학인 송환기(宋煥箕)의 문하에서 예학과 경학을 공부하였다. 특히 이수호가 저술한 역서 『소학증해(小學增解)』는 간행된 후 널리 반포되었으며, 학자들의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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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공근(公瑾). 할아버지는 이백겸(李伯謙)이고, 아버지는 서울에서 지례현(知禮縣) 지품(知品)으로 낙향한 연성부원군 이말정(李末丁)이다. 외할아버지인 한옹(韓雍)은 당시 경상도관찰사였다. 형은 이숙황(李淑璜), 이숙형(李淑珩), 이숙규(李淑珪)가 있고 동생은 이숙함(李淑瑊)이다. 부인은 홍씨이며, 아들로 홍문관수찬을 지낸 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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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차공(次公), 호는 몽암(夢庵)·양원(楊原), 이명(異名)은 이숙감(李淑瑊). 할아버지는 이백겸(李伯謙)이고, 아버지는 연성부원군 이말정(李末丁)이다.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숙황(李淑璜), 이숙형(李淑珩), 이숙규(李淑珪), 이숙기(李淑琦)가 있다. 외할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한옹(韓雍)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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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호는 희보(姬輔). 아버지는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 이말정(李末丁)으로 첫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동생으로 이숙형·이숙규·이숙기(李淑琦)·이숙함(李淑瑊)이 있다. 형제들이 모두 문장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는데 이숙황·이숙형·이숙규·이숙함은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숙기는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숙황(李淑璜)은 지금의 김천시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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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인(仲仁). 증조할아버지는 이량(李亮)이고, 할아버지는 이백겸(李伯謙)이며, 아버지는 예조참판을 지낸 이보정(李補丁)이다. 외할아버지는 이숙(李淑)이고, 조부가 이숙(李淑)이다. 이숭원(李崇元)[1428~1491]은 천성이 효성스럽고 우애로웠으며, 청렴하고 평온하며 공경하고 검약하여 산업(産業)을 일삼지 아니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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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 경덕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이숭원(李崇元)의 초상화. 이숭원[1428~1491]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중인(仲仁), 시호는 충간(忠簡)이다. 중종 때 청백리에 뽑혔다. 「이숭원 초상화」는 이숭원[1428~1491]이 1471년(성종 2) 좌리공신3등(佐理功臣三等)으로 연원군(延原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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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인천(仁川). 증조할아버지는 대제학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이문화(李文和 )이며, 아버지는 부윤 이계남이다. 문종 때 진사가 되었고 1454년(단종 2) 제릉참봉에 제수되었으며, 학문 정진과 문명(文名)으로 이름이 있었다. 1456년(세조 2) 단종 복위 운동이 사육신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이들이 극형으로 처벌을 받자 부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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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자선가.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성용. 증조할아버지는 이창하이다. 이안신(李安臣)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기개와 도량이 탁월하였으며 성품도 관대하고 어질어 권선을 낙(樂)으로 삼았다. 흉년에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자, “우리만 배불리 먹는 일은 하늘에 죄를 짓는 일이다.”라면서 자신의 재산을 내놓아 사람들을 도왔다. 18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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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춘보(春甫)·노촌(老村)·평정(平靖), 초명은 이약동(李藥童). 할아버지는 군기소감(軍器少監)을 지낸 이존실(李存實)이고, 아버지는 남해현령을 지낸 이덕손(李德孫)이다. 어머니는 정부인 고흥 유씨(高興柳氏)이며, 외할아버지는 공조전서를 지낸 유무(柳務)이다. 부인은 정부인 완산 이씨(完山李氏)이며, 장인은 안변부사(安邊府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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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양천동에 있는 조선 초기의 문신 이약동의 유허비. 이약동(李約東)[1416~1493]은 본관이 벽진(碧珍)으로 자는 춘보(春甫), 호는 노촌(老村), 시호는 평정(平靖)이다. 김종직(金宗直), 조위(曺偉) 등과 교분이 깊었다. 1441년(태종 14) 진사시에 합격하고,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급제한 뒤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을 거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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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윤칙(允則). 할아버지는 통훈대부 용담현령 이검송(李儉松)이고, 아버지는 진사 이근동(李根東)이다. 어머니는 완산 이씨이며, 부인은 성산 배씨이다. 네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삼남은 통정대부 이은계(李殷繼)이고 사남은 첨정 이은확(李殷確)이다. 이언의(李彦儀)[1600~1637]는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 도평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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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아버지는 이문광(李文廣)이며, 셋째 아들이다. 성산 이씨 정언공파의 파조이며, 아들로 이우가 있다. 이우는 세종 때 진주목사를 거쳐 경기좌도수군첨절제사를 지냈으며, 성주군 한개마을로 거처를 옮겨 성산 이씨 집성촌을 이룬 입향조이다. 이여량(李汝良)은 1354년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1380년(우왕 6) 생원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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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경망, 호는 눌재(訥齋). 강양군 이요의 후예이다. 이여림(李汝霖)은 명종 때 김천 개령에서 태어났다. 선조조에 생원이 되었다. 학문이 심오하였지만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학덕을 숨기고 임천에 은거하였으나 절속하지 않았다. 지봉 이수광(李睟光)·벽오 이시발(李時發) 등과 끝까지 도의로 사귀었고, 사림의 중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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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학자.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건백, 호는 숭례(崇禮). 할아버지는 이돈(李墩)[1628~1703]으로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병자호란 이후 관료로 나아가지 않고 향리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숭정처사로 불렸다. 아들은 이의조(李宜朝)이다. 이의조는 조정에 천거될 때 ‘영남 우도의 큰 유학자’라고 하였는데, 2책의 『의요보유(義要補遺)』, 『경의수차(經義隨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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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맹종(孟宗), 호는 경호(鏡湖)·명성당(明誠堂). 아버지는 이윤적(李胤積)이다. 이의조(李宜朝)[1727~1805]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리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학문적 기반을 바탕으로 다양한 저술 활동뿐만 아니라, 방초정(芳草亭)을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후진 양성에도 전력하였다. 부친의 유명을 따라 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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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이자 선비.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대유, 호는 용호(龍湖). 이숭인(李崇仁)의 후예이다. 이의형(李宜亨)[1800~?]은 지금의 김천시 감천면에서 태어났다. 용호재를 짓고 후진을 양성하여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다. 향리와 도에서 학문이 뛰어나다고 추천하여 동몽교관에 제수되었다. 『학설(學說)』 2권, 『잡록(雜錄)』 15권 및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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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모반자. 본관은 벽진(碧珍). 아버지는 재산가 이당춘(李堂春)이다. 아들로 이천건을 두었다. 이정(李瀞)[?~1631]은 김천시 조마면 장암리 신촌에서 태어났다. 1631년(인조 9) 양석천(梁錫天)과 더불어 반역을 도모하였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으며, 가택은 헐리고 그 자리에는 못이 파였다. 이때 이정의 아들 이천건도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천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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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고려 시대 대장군을 지낸 이성간(李成幹)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판서를 지낸 이회목이며, 이존실은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으로 이존인(李存仁), 이존의, 이존례(李存禮)가 있다. 아들 이덕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거제현령을 지냈다. 김천의 청백리로 유명한 이약동(李約東)이 손자이다. 이존실(李存實)은 고려 말 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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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호는 두은. 고려 시대 대장군을 지낸 이성간(李成幹)의 현손으로 공조판서를 지낸 이회목의 4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으로 이존의, 이존례(李存禮), 이존실(李存實)이 있다. 이존인(李存仁)[1344~?]은 남달리 총명하였고 형제간의 우애와 효심이 특출하여 촉망을 받았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문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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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할아버지는 밀직부사 이광익(李光翊)이고, 아버지는 고려 두문동 72현의 일인인 이사경(李思敬)이다. 이종은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형은 승려 상부(尙孚)이다. 이종(李悰)은 밀직제학 장원(長源) 김도(金濤)의 문인이었다. 1377년(우왕 3) 십운시(十韻詩)에 1등 3명으로 급제하여 명운을 얻었다. 스승인 김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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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직여, 호는 해재(海齋). 아버지는 이유(李遊)이다. 집안이 대를 이어 주자학을 연구하고 실천하여 ‘사세 학행, 사세 유일’로 명성을 얻었다. 아버지 이유도 형 이혼과 함께 고향에 은거하면서 성리학에 잠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중종 대에 학행으로 안음현 훈도에 제수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아들 이지남[자 성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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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의 향토지를 저술한 문인. 본관은 하빈(河濱). 자는 자형(子亨), 호는 허주자(虛舟子). 이선동(李善仝)의 후예로 아버지는 이명필이다. 1718년(숙종 44) 이태하(李泰夏)[1658~1721]는 여이명(呂以鳴)과 함께 현존하는 김천 지역 최고(最古)의 향토지인 『금릉승람(金陵勝覽)』을 저술하였다. 경학(經學)에 밝고 문장이 탁월하여 유명하였으며, 특히 시사(時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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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개령(開寧)에 세거지를 둔 이상규(李尙規)이고, 장인은 황준경(黃浚瓊)이다.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으로 이함(李馠)과 이암(李馣)이 있고, 아우로 이필(李馝)과 이발(李馞)·이의(李薿)가 있다. 이하(李馥)[1626~1688]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삼봉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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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면여(勉餘), 호는 양계(陽溪). 아버지는 병자호란 이후 절의를 지켜 개령 삼봉에서 두문불출한 숭정처사 이상규(李相規)[1596~1645]이다. 이하(李𩡘)는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에서 태어났다. 1651년(효종 2)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문과에 급제하였다. 1660년(현종 1) 사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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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백, 호는 천고(闡皐). 연안 이씨 가적(家籍)의 종손이다. 이현구(李賢求)[1808~1874]는 지금의 김천시 구성면에서 태어났다. 김천 지역에서 후학의 교육에 힘써 유풍(儒風)을 쇄신하였고,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실행하였다. 저서로 『용학연의(庸學衍義)』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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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광평(廣平). 호는 동산(東山). 할아버지는 이회, 아버지는 이영선(李寧善)이다. 외할아버지는 평절공(平節公) 한옹(韓雍)이다. 아들로 이거인을 두었다. 이호성(李好誠)[1397~1467]은 지금의 김천시 양천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하고 달리는 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말 타기와 활쏘기 등 무예에 출중하였을 뿐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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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개령(開寧). 자는 우춘(遇春), 호는 수호자(垂胡子).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임재광이며, 서자로 태어났다. 임기(林芑)는 학문에 특출한 자질을 보였다. 영민하고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었으며 관상도 잘 보았다. 부모상을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와 남학(南學)과 동학(東學)에서 역관의 공부를 하였다. 한리학관(漢吏學官)으로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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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4월 13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한양을 함락하기 위해 교통로를 따라 빠르게 진격하였다. 구로다 나가사마[黑田長政]가 이끄는 우로의 왜군은 무계~성주~개령을 거쳐 4월 25일 교통의 요지인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김천역을 지키던 우방어사 조경(趙儆)과 조방장 양사준이 적을 맞아 싸웠으나 패배하여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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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임천강(林千江)은 본관은 나주(羅州)이며, 지금의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에서 태어났다. 김천의 역리(驛吏)였다. 1566년(명종 21) 강사상이 경상감사로 부임할 때 진주로 수행하다가 덕산에서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을 만났다. 이때 남명이 임천강에게 “향리나 역리는 모두 고려 때 충신의 후손인데, 향리는 과거에 응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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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김천 지역에 기거한 문인. 본관은 예천(醴泉). 자는 기지(耆之), 호는 서하(西河). 고려 건국 공신의 자손으로 할아버지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내고 충경(忠敬)이라는 시호를 받은 임중간(任仲幹)이고, 아버지는 한림원학사를 지내 귀족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기반을 지닌 임광비(任光庇)이다. 역시 한림원학사를 지낸 큰아버지 임종비(任宗庇)에게 학문을 배웠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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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농소면 입석리 새터마을에 있는 신라 시대 고분군. 입석리 고분군은 김천역에서 동남동쪽으로 직선거리로 7.7㎞ 떨어져 있으며, 김천시 농소면 입석리 새터마을 북쪽의 세 능선과 사면을 포함하는 범위에 입지한다. 세 능선들은 김천시 농소면 입석리 새터마을 뒷산의 주능선이 서북으로 뻗어 내리면서 여러 곳에서 서쪽으로 파생된 가지 능선들이다. 전방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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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김천 지역에 설치한 장교청. 장교청(將校廳)은 장교들의 집무실로 사용되던 관아가 있었던 곳이다. 장교청(將校廳)은 ‘무청(武廳)’이라고도 한다. 이청(吏廳)의 아전들이 수령을 보좌하여 지방 행정을 맡고, 군사·경찰은 장교청에서 담당하였다. 인리청(人吏廳)에는 육방이서(六房吏胥)가 행정을 분장하고, 장교청에는 군교가 있어 군사는 군관이 담당하고, 경찰권은 포교가 분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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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인.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윤오, 호는 농재(聾齋). 장홍한(張鴻翰)의 후예이며, 아버지는 장한걸이다. 장신강(張信鋼)[1779~1856]은 선대의 업적을 드러내어 밝혀서 널리 퍼지게 하려는 높은 뜻을 가졌으나, 시대 상황은 이미 조선 말기의 쇠퇴기이었다. 이에 김천시 구성면 임천리에 은거하였다. 관리로서는 제세안민의 뜻을 펼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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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인동(仁同). 호는 반곡(盤谷). 아버지는 경상도 청하현감(淸河縣監)을 지낸 장을포(張乙浦)이고, 큰아버지는 운봉현감(雲峰縣監)을 지낸 장을해(張乙海)이다. 후손은 없다. 장지도(張志道)[1371~?]는 김천시 지례면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절의가 굳었다. 공민왕 때 향시에 합격하고 곧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기거주지의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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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순거. 할아버지는 죽정 장잠이고, 아버지는 참의 장곤이다. 장홍한(張鴻翰)[1571~1594]은 의기가 초인하고 지략이 절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승 찬희와 그 상좌승 수정을 사로잡는 공을 세웠다. 1593년(선조 26) 10월에는 황간의 의병장 박이룡과 더불어 김산, 지례, 개령, 선산 네 개 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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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인이자 학자. 본관은 성산(星山). 자는 중수, 호는 나옹(懶翁). 수헌 전흥의 5세손이며, 아버지는 승정원좌부승지를 지낸 전번이다. 전만령(全萬齡)은 지금의 김천시 대곡동[옛 미곡동]에서 전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486년(성종 17) 성균관 생원으로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김천시 다수동에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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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가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정구의 기념비. 정구 기념비는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고향 성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에 늘 들르던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鳳谷寺)를 오르내릴 때 지팡이를 기대어 놓고 쉬어 가던 곳에 1826년경 후학들이 정구의 덕을 기리고자 세웠다. 비석을 세우기 시작하여 20년이 지나 비석을 완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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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재우(載羽), 호는 운재(雲齋). 아버지는 생원(生員) 정은견(鄭銀堅)이다. 아들로 정수(鄭遂), 정연(鄭延), 정준(鄭遵), 정손(鄭遜), 정지(鄭遲), 정탁이 있으며, 정탁은 1564년 식년시에 생원으로 급제하였다. 정란(鄭鸞)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뜻이 곧고 호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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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로 노비 해방을 실천한 인물. 본관은 영일(迎日). 호는 구암(懼庵). 아버지는 정박(鄭璞)이다. 아들은 정사기(鄭師沂)와 정량수를 두었고 손자로는 정혐(鄭馦)이 있다. 정혐은 1789년(정조 13) 식년시에 급제하여 할아버지의 명성과 가세를 이어갔다. 정만용(鄭萬容)은 1682년(숙종 8)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신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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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에서 출토된 정부인 문화류씨의 묘지명 지석. 문화류씨는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의 부인이자 문장공 매계 조위(曺偉)의 어머니이다. 1459년(연산군 1)에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조위는 그의 어머니가 일생동안 많은 부덕을 남긴 것이 모두 없어질까 걱정하였다. 이에 문화류씨의 숨은 덕행(德行)을 드러내어 먼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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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선산(善山). 본관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해주(海州)라고 기재되어 있다. 자는 운정(雲程), 호는 신당(新堂), 별칭은 정청송(鄭靑松). 할아버지는 정지운(鄭智耘)이고, 아버지는 정철견(鄭鐵堅)[휘는 성벽(成璧)]이다. 정철견은 조행이 탁월하여 성종 때에 함창현감(咸昌縣監)으로 징배(徵拜)되었다. 청송군수를 지내 정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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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덕용·자건(子建), 호는 한벽재(寒碧齋). 증조할아버지는 정윤성(鄭允成)이고, 할아버지는 정희언(鄭希彦)이며, 아버지는 단천교도(端川敎導) 정유공(鄭由恭)이다. 형으로 정철견(鄭鐵堅)과 정은견(鄭銀堅)이 있다. 정석견(鄭錫堅)[1444~1500]은 지금의 김천시 감문면 광덕리 탄동마을에서 태어났다. 타고난 성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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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으로 무신란 때 공을 세운 인물. 본관은 서산(瑞山). 자는 조향, 호는 율옹(栗翁). 고려 후기 문신인 서산 정씨 정인경(鄭仁卿)의 후손이다. 정세갑(鄭世甲)[?~1788]은 지금의 김천시 대덕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비상한 재주가 있었으며 사색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였다. 무예에 관심이 많았는데, 특히 활쏘기와 말 타기를 즐겨하였다. 마을 앞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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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선비.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만은(晩隱). 증조할아버지는 고려대장군 정초(鄭初·鄭礎)이다. 『해주정씨족보』의 별보는 정초로부터 11세손까지를 수록한 것이다. 이 계열은 흔히 해주 정씨 영남파로 불리는 가계로 정초의 증손 정유공(鄭由恭)의 세 아들 정철견(鄭鐵堅)[붕(鵬) 계열], 정은견(鄭銀堅)[난(鸞) 계열] 정석견(鄭錫堅)[부(鳧) 계열]이 중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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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보(仲輔), 호는 천방자(天方子)·수옹(睡翁).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鼐臣)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동생인 옥산(玉山) 이우(李瑀)의 사위이다. 정유성(鄭維城)[1569~1645]은 총명하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하여 율곡 이이의 문하에서 촉망받던 제자로, 율곡의 학통을 이을 기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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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정서룡(鄭瑞龍), 자는 인보(仁輔).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정내신(鄭乃臣)이다. 정유한(鄭維翰)[1568~1640]은 어릴 때부터 영민하고 효성 우애가 돈독하였다. 13세에 시구(詩句)를 맺을 줄 알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다리에 갑자기 종기가 나서 일어서지를 못할 때 삼촌과 함께 병간호에 치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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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문인. 본관은 서산(瑞山). 중국 송나라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로 있다가 원나라의 건국과 함께 고려로 추방된 정신보(鄭臣保)와 정인경(鄭仁卿)으로 가계의 이어지는 후손이다. 직계 선조인 정인보는 고려에서 안사공신(安社功臣)으로 상장군이 되고 서산군(瑞山君)에 봉군되었다. 아버지는 정인경의 4세손인 판장작감사(判將作監事) 정숙(鄭璹)이며, 둘째 아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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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자미(子美), 호는 만취헌(晩翠軒). 할아버지는 정회형(鄭淮衡)이며, 아버지는 성균관사성을 지낸 정종소(鄭從韶)이다. 형은 정이휘(鄭以揮)이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과 직제학(直提學)을 거쳐 양주목사(楊洲牧使)를 역임하였다. 동생은 정이심(鄭以諶)으로 1486년(성종 17) 정이교와 함께 중시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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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유중(悠仲). 아버지는 정란이다. 정탁(鄭逴)[1517~1564]은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다. 1564년(명종 19)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때 이이, 김성일, 이원익 등과 동방(同榜)이라 교분을 맺고 학문과 도의를 강마하여 친분이 두터웠다. 일찍 노비 문제로 권문세가로부터 무고를 당하였지만, 향리뿐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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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상보. 증조할아버지는 정내신, 할아버지는 정유한(鄭維翰)[1568~1640]이다. 정유한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자동에서 김산 관군과 합세하여 적을 물리친 공을 세웠다. 정후상(鄭后相)[1649~1715]은 할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아 의협심이 강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겼다. 숙종조에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청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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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 강곡리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조마부곡(助馬部曲)의 위치는 김산군(金山郡) 관아[현 김천시 삼락동]를 기준으로 남쪽 25리이다. 조마의 대표적 속성(續姓)에는 임씨(林氏)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김산군에 “굴곡부곡(屈谷部曲)은 군의 남쪽 3리에 있고, 신가량부곡(新加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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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910년까지 김천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의 경우 지방에는 대체로 520여 개의 군현이 존재하였다. 그렇지만 고려 시대의 경우 수령이 파견된 주읍은 130여 개에 불과하고 수령이 파견되지 않은 군현은 속읍이라 하여 주읍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군현에 소속된 향·소·부곡·처·장이라고 부르는 부곡제 영역이 현재 확인된 것만도 900여 개 이상이었다. 고려 시대 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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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숙분(叔奮), 호는 적암(適庵).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조계문(曺繼門)이며, 얼자(孼子)로 태어났다. 형으로 조위(曺偉)가 있고, 점필재 김종직(金宗直)이 매형이다. 조신(曺伸)[1454~1529]은 지금의 김천시 봉산면 인의리 봉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형인 조위와 함께 시문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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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태허(太虛), 호는 매계(梅溪). 증조할아버지는 참의에 증직된 조경수(曺敬修)이고, 할아버지는 조심(曺深)이며 아버지는 울진현령 조계문(曺繼門)이다. 어머니는 문화 유씨로 외할아버지는 유문(柳汶)이고, 장인은 신윤범(申允範)이다. 아들로 조사우(曺士虞)를 두었고, 동생으로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조윤(曺倫), 효력부위(效力副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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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에 있는, 박사삼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서당. 김천 시내에서 국도 4호선을 타고 가다가 직지사로 가는 지방도 903호선으로 접어들면 첫 마을로 직지천 건너편인 김천시 대항면 복전리 복전마을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안으로 좀 더 들어가면 조천서당(藻川書堂)이 위치하고 있다. 충주 박씨 안정공(安定公) 박사삼(朴事三)[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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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던 소국(小國). 주조마국(走漕馬國)의 주조(走漕)는 ‘물에서 배를 통해 간다’는 의미이고, 마국(馬國)의 마(馬)는 땅·나라·마을을 뜻하는 단어로 나라[國]를 의미한다. 주조마국은 가야 연맹의 일원으로 토착적인 세력 기반을 유지한 채 개별적인 정치 집단으로 성장을 지속하다가, 562년 다른 가야 소국들과 함께 신라에 병합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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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거물리에서 일어난 의병 항전. 지례 거물리 의병 항전에 대한 의병군 측 기록은 없고 다만 일본군 사령부의 기록인 『조선폭도토벌지(朝鮮暴徒討伐誌)』나 경찰 계통의 『경북고등경찰요사』에 폭도 토벌과 재판 기록으로 전한다. 『조선폭도토벌지』에 의하면 1908년 3월 3일 지례군 거물리[현 지례면 거물리]에서 폭도[의병]와 교전 끝에 괴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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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지례현[지금의 김천시]에서 의병 연합군이 왜군을 섬멸한 전투.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들은 교통로를 따라 한양으로 직행하였으나 후방에서 의병들이 일어나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여 공격을 가하자 1592년 5월 초 한양 함락 후 각 도를 분담하여 공격하는 전술을 택하였다. 이때 고바야가와 부대는 전라도를 맡아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처음 창원에서 남원으로 직행하려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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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일대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제도. 신라 시대에는 지품천현(知品川縣)이라 불렸으며, 757년(경덕왕 16)에 지례현(知禮縣)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어모현, 무풍현, 김산현과 함께 개령군(開寧郡)의 영현이 되었다. 1.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사기』 권 제34 잡지 제3 지리 1 신라 상주 개령군에 “개령군(開寧郡)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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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지례현[지금의 김천시 지례면]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관아 터.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은 삼한 시대에는 변한에 속한 지역으로, 신라 진흥왕 때 상주[사벌주(沙伐州)]에 속했으며 지품천현(知品川縣)이라 불렀다. 757년(신라 경덕왕 35) 개령군에 속하였고 지례현이라 고쳤으며, 고려 시대인 1018년(현종 9)에 경산부[성주(星州)]에 속하였는데 공양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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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757년까지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고려사(高麗史)』 제57권 지 제11 지리 2 상주목 경산부(京山府)조에는 “지례현(知禮縣)은 원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인데 경덕왕이 지금 명칭으로 고쳐서 개령군의 관할 현으로 만들었다. 현종 9년에 본 부에 소속시켰으며 공양왕 2년에 감무를 두었는바 구성(龜城)이라고도 부른다.”라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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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적비. 직지사는 신라 말 고려 초에 능여대사가 활동하여 고려 태조가 대찰로 창건하였다. 이곳에 왕희지(王羲之) 글씨를 집자한 비가 있었는데, 조선 세조 때 학조(學祖)가 중수하였고, 임진왜란으로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을 때 중창하였다. 직지사 사적비는 1681년(숙종 7)에 조종저(趙宗著)가 짓고 낭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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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정종의 어태(御胎)를 안치했던 곳. 정종[1399~1400 재위]은 자신이 즉위한 원년에 다른 곳에 안치되어 있던 태실(胎室)을 사두혈(蛇頭穴)의 명당으로 이름난 직지사 대웅전 뒤 북봉에 안치하고 직지사를 태실을 수호하는 수직(守職) 사찰로 지정하였다. 이후 왕실과 직지사의 보호를 받아오다 1928년 일제 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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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비. 추담대사 관징(琯澄)[1582~1685]은 13세에 출가하여 회암(晦庵), 낙암(洛岩), 환성(喚醒), 쌍운(雙運), 대적(大寂) 등 당대 명승이라 불리던 여러 승려들을 찾아 배우고 끝내 운암(雲岩)의 법을 이었다. 조선 후기에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법을 찾던 수행자들의 일면을 뚜렷이 보여주는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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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직지사 직지성보박물관에 걸려 있는 조선 후기 김정희(金正喜)의 친필 현판. 김정희[1786~1856]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이자 금석 학자, 고증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 등 503여 종에 이른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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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남산동에 있는 조선 시대 김천역 역대 찰방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 김천역은 『고려사(高麗史)』 병지역참조(兵志驛站條)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경산부도(京山府道)[현 성주]에 속한 속역으로 김천역과 함께 작내역[지례현], 추풍역[어모현], 부상역[개령현], 장곡역[지례현] 등 김천 지역의 5개 역이 나타난다. 세종 대에 44역도, 538속역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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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조선 시대 김천 지역에 설치된 처(處)로는 김산군(金山郡)에 설치된 파매처(巴買處) 1곳뿐이다. 파매처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파매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 파매처는 봉산면 인의리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 김산군에서는 “····· 파매처는 군의 서쪽 7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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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의 문당동 유적 Ⅱ지구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청동기 시대 천하석제 장신구. 문당동 유적 Ⅱ지구 1호 목곽묘에서 출토된 천하석제소옥은 목걸이로 사용되었던 장신구로, 서단벽 아래 목관이 썩은 흔적 부분인 회백색 이질(泥質) 점토층에서 발견되었다. 평면은 원형, 단면은 장방형, 중앙에는 원형의 구멍이 나 있다. 바깥지름은 0.3~0.6㎝, 두께는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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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철을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시작은 중국 연나라로부터 철기를 도입한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의 경우 석기와 더불어 청동기 중심의 유물에서 철기 유물이 유입되는 단계로, 검의 경우 철검과 칼 손잡이의 동제품의 결합으로 이어졌다. 기원전 2세기경 제출(製出)[만들어 냄] 기술이 빠르게 전파되었으며, 주조(鑄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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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서 청동기를 사용하던 시대의 역사와 문화. 김천 지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은 송죽리 유적과 1996년 주거지 1기가 확인된 교동 유적 등이 전부이다. 하지만 지표 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이 발견된 곳은 김천시 감문면, 어모면, 봉산면, 구성면, 부항면 등 총 31개소로 김천 지역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다. 특히 31개소는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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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의병.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취오(聚五), 호는 지재(止齋). 아버지는 최상도(崔尙道)이다. 동생으로 최창규가 있다. 최동규(崔東奎)[1674~?]는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8세에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읽고 10세에 사서에 통달하였으며, 문예에도 특출하였다. 20세에 향시에 실패한 후 무예에 전념하여 26세인 16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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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호는 원로(元老). 증조할아버지는 최원지(崔元之)이고, 할아버지는 제용감정(濟用監正) 최자하(崔自河)이며, 아버지는 생원(生員) 최안선(崔安善)이다. 어머니는 나상지(羅尙之)의 딸이고, 부인은 권순(權循)의 딸이다. 최사로(崔士老)[1406~1469]는 1406년 경상북도 김천시 조마면에서 태어났다. 1434년(세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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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경부(慶夫), 호는 동대(東臺). 증조할아버지는 최유(崔濡)이고, 할아버지는 최원지(崔元之)이며, 아버지는 중부령 최자강(崔自江), 어머니는 진주 강씨이다. 부인은 김명리(金明理)의 딸이다. 아들로 최한공(崔漢公), 최한후(崔漢侯), 최한백(崔漢伯), 최한번(崔漢藩), 최한남(崔漢南)을 두었다. 가계가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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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이자 의병. 본관은 화순(和順). 증조할아버지는 최선문(崔善門)이고, 아버지는 최득종이다. 아들은 최경운·최기운, 손자는 최유형·최유선·최유림·최유수, 증손자는 최여망·최단망을 두었다. 아들 최경운과 최기운도 1630년(인조 8) 각각 33세와 28세로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의 대를 이어갔다. 이들은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를 지근거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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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사겸(士謙). 아버지는 최응화이다. 최익대(崔益大)[1719~1783]는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윗대 조상인 수우당 최영경이 정여립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면서 집안이 몰락하였다. 그는 “빛나던 가문은 빛이 없어지고, 당장에 끼니를 잇지 못하시는 늙으신 부모님이 계신다. 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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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천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범구(範九), 호는 남애(南涯). 증조할아버지는 최하대이고, 아버지는 최성수이다. 아들로 김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최학길(崔鶴吉)을 두었다. 최창락(崔昌洛)[1832~1886]은 지금의 김천시 조마면 신안리에서 태어났다. 1880년(고종 17) 12월 김천시 안서동[현 조마면 신안리]에서 동민들과 함께 마을의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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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태보(台甫), 호는 고곡(考谷). 증조할아버지는 최원지(崔元之), 할아버지는 중부령을 지낸 최자강(崔自江)이며, 아버지는 좌찬성 최선문(崔善問)이다. 어머니는 김명리(金明理)의 딸이다. 부인은 정몽주(鄭夢周)의 손녀이다. 5남 4녀 중 장남으로 동생 최한후(崔漢侯), 최한백(崔漢伯), 최한번(崔漢藩), 최한남(崔漢南)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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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 문신. 본관은 화순(和順). 자는 자경(子慶). 아버지는 최사로이다. 아들로 최중홍 등 다섯 명을 두었고, 증손자에 수우당 최영경이 있다. 최한정(崔漢禎)[1427~1486]은 1456년(세조 2) 생원이 되고, 1459년(세조 5)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감찰과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1463년(세조 9) 중시에 급제하였다. 사헌부헌납, 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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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추풍령에서 일어난 김천의 대표적 전투. 1592년 3월 14일 부산포에 상륙한 왜군이 파죽지세로 각 읍을 함락하고 북진하자 조정에서는 17일 강계부사 조경(趙儆)을 우방어사로 임명하여 즉시 추풍령으로 떠나게 하였다. 조경은 이수광(李睟光)을 종사관으로, 양사준을 조방장으로 삼아 100여 명의 관군을 이끌고 김산 김천역에 당도하였다. 때마침 진주성 훈령봉사인 30세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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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있는, 승려의 생애를 적은 비. 승려의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유골을 돌로 만든 묘탑에 안치하는데, 이를 부도 또는 승탑이라 한다. 탑비(塔碑)는 부도와 함께 조성되는 것으로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는 일생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 탑비에는 고승의 일평생 행적이 건립 연월일과 함께 새겨 지고 있어, 그 비문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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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김천 지역에서 확인된 토기. 선사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 김천에서 확인된 토기는 주로 발굴 조사를 통해서 확인되었다. 이들 조사된 유적의 유물을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원삼국 시대, 삼국 시대, 통일 신라 시대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송죽리 암음 유적과 송죽리 신석기 시대 유적이 대표적이다. 송죽리 암음 유적 내부 표토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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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일대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29권 경상도(慶尙道) 개령현(開寧縣)에 “ 하활곡부곡(下活谷部曲)·상오지부곡(上烏知部曲)·금물도부곡(今勿刀部曲)은 지금은 모두 폐지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제49권 제계고 10 부록 씨족 4조에는 “하활 홍씨(下活洪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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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의 무흘정사(武屹精舍)가 있던 터.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는 1563년에 이황(李滉)을, 1566년에 조식(曺植)을 스승으로 삼았다. 1563년 향시(鄕試)에 합격하였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다가 1580년 창녕현감(昌寧縣監) 관직생활을 하였다. 1584년 동복현감(同福縣監)을 거쳐, 교정청낭청(校正廳郎廳)을 지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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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가서(可舒), 호는 유선(儒仙). 증조할아버지는 직학사 한진(韓瑨)이고, 할아버지는 관찰사 한방좌(韓邦佐)이며, 아버지는 개성유후 평절공(平節公) 한옹(韓雍)이다. 외할아버지는 배희현(裵希賢)이고, 장인은 김용초(金用超)이다. 부인은 의성 김씨이다. 한권의 이름은 왕조 실록에는 ‘권(卷)’으로 되어 있고, 『국조문과방목(國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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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김천 지역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곡산(谷山). 자는 백희(百熙), 호는 정포(靜浦). 증조할아버지는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문하평장사 한예(韓銳)이고, 할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한진(韓瑨)이며, 아버지는 관찰사 한방좌(韓邦佐)이다. 아들로 한권(韓卷)을 두었다. 한옹(韓雍)[1352~1425]은 개경에서 태어났으며, 아량과 재질이 탁월하였고 학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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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 구역. 향(鄕)은 소(所)나 부곡(部曲)과 마찬가지로 지방의 특수한 하급 행정 구역인데, 일반 양민이 아닌 노비·천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모여 살던 촌락 집단이었다. 같은 성격의 소와 부곡을 함께 일컬어 흔히 향·소·부곡으로 불린다. 『세종실록지리지』 경상도 상주목 김산군(金山郡)에 “······향이 1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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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종경(宗卿)·종지(宗之), 호는 상우당(尙友堂). 증조할아버지는 허기(許愭)이고, 할아버지는 양양도호부사 허비(許扉)이며, 아버지는 양천부원군 허손(許蓀)이며, 어머니는 금릉 하로의 부녹사 최안선(崔安善)의 딸이다. 부인은 한서봉(韓瑞鳳)의 딸이다. 아들은 허광(許礦)이다. 동생으로 좌의정을 지낸 허침(許琛)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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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헌지(獻之), 호는 이헌(頤軒). 증조할아버지는 허기(許愭)이고, 할아버지는 양양도호부사 허비(許扉)이며, 아버지는 양천부원군 허손(許蓀)이며, 어머니는 금릉 하로의 부녹사 최안선(崔安善)의 딸이다. 부인은 유시(柳蒔)의 딸이다. 아들은 허굉(許硡)이다. 형으로 우의정을 지낸 허종(許琮)이 있다. 허침(許琛)[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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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까지 경상북도 김천 지역에 존재한 지방 세력. 호족(豪族)은 신라 하대 이후 진골 귀족이 분열되면서 지방에 성읍(城邑)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만들어 주민들을 무장시키고 성주·장군을 칭하면서 지방을 독립적·반독립적으로 다스리던 지방 세력을 말한다. 후삼국 통합 전쟁은 독자적인 지방 세력인 호족을 무력이나 회유의 방법으로 흡수하는 과정이었다. 현재 김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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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김천 출신의 무신. 본관은 남양(南陽). 아버지는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낸 홍균(洪鈞)이다. 홍녹주(洪祿遒)는 지금의 김천시 개령면에서 태어났으며, 무예에 조예가 깊고 용감하였다. 1269년(원종 10) 서북면병마사가 되었다. 서북면 지역은 아버지 홍균이 두 번이나 역임한 곳으로, 홍균의 은공과 선정을 잊지 않은 백성들은 홍녹주를 열렬히 환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