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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행정리. 마을이 곶을 이루었으므로 갈구실 또는 각회곡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촌(東村)과 덕동(德洞)을 병합하여 각회리가 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북부에는 우등산[262m]과 227m의 산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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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행정리. 구룡리와 사계리에서 ‘구’ 자와 ‘계’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궁제(宮堤)·구룡(九龍)·사계(泗溪)·보습(保習)·죽엽(竹葉) 등이 통합되어 구계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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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선비. 구만재는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으로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이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일월리, 지금의 쌍봉리에 은거하였다. 구만재가 살던 곳을 명촌(明村)이라 하였다.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구계리에 있다. 부제학 이단상(李端相)이 행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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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금곡리와 석우리에서 ‘금’ 자와 ‘석’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우리(石隅里)·반의리(班衣里)·금곡리(金谷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금석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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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에 속하는 행정구역. 금목면과 법왕면에서 ‘금’ 자와 ‘왕’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과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맹동면의 개현리(介峴里) 일부와 소탄면(所呑面) 한삼리(汗三里), 천기면(川岐面) 금정리(金井里), 두의면(豆衣面)의 각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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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제내리와 수곡리에서 ‘내’ 자와 ‘곡’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제내리(堤內里)·수곡리(水谷里)·고봉리(高峯里)가 통합되어 내곡리라 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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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내동과 송당리에서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동리(內洞里)·송당리(松堂里)·시일리(時日里) 일부를 병합하고 내송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184m의 산이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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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도장리와 청일리에서 ‘도’ 자와 ‘청’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리(本里)·도장리(道庄里)·청일리(晴日里)·장현리(長峴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도청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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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냇가 또는 벌판이 되므로 무기 또는 무극이 되었다. 일설에는 무극 지역이 금이 많이 매장되어서 나침판의 자침이 극(남극과 북극)을 나타내지 못하므로 극(極)이 없다는 의미로 무극이 되었다고도 한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의리(班衣里)와 금곡리(金谷里)의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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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의 민간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져 전해 내려오는 노래. 음성 지역에서는 예부터 여타의 다른 지방과 크게 다르지 않게 토속민요가 많이 불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논농사나 밭농사와 관련한 「모찌기 소리」나 「모심기 소리」, 「논매는 소리」 등은 음성 지역의 특유하고 순수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노래들이다. 음성 지역의 민요는 전체적으로 메나리 토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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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여흥(驪興).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민충길(閔忠吉)이다. 민침(閔忱)[1600~?]은 1627년(인조 5) 27살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51살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지 정창주(鄭昌胄)가 “세무(世務)에 통달하고 강어(强禦)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천거하여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이어서 문의현감(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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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속리산 밑이 되므로 배태·배터 또는 백야가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상촌(上村)·중촌(中村)·하촌(下村)·속리(俗離)를 병합하고 백야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에 소속리산[43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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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리와 응대리에서 ‘본’ 자와 ‘대’ 자, 각 한 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본리(本里)·응대리(應垈里)·후평리(後坪里)와 금목면(金目面) 장현리의 일부를 병합하고 본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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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외봉리와 영곡리에서 ‘봉’ 자와 ‘곡’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리(坪里)·외봉리(外蓬里)·내봉리(內蓬里)·영곡리(靈谷里) 일부와 구개천리 일부를 병합하고 봉곡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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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조선시대에 사창이 있었으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사창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서쪽 경계에 132m의 산과 남쪽의 안골에는 133m의 산이 있이 있으나 높은 편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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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한삼리와 봉계리에서 ‘삼’ 자와 ‘봉’ 자, 각 한 글자씩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증산리(曾山里)·정단리(丁丹里)·봉계리(鳳溪里)·한삼리(閑三里) 일부와 맹동면 개현리 일부를 병합하여 삼봉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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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약방말 동쪽에 새로이 조성된 마을로, 무극리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금석리, 서쪽으로 응천과 각각 접하고 있다. 바래미산 동북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고종 43)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의리와 금곡리의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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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정생1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왕읍 정생1리 북부 지역에 있는 마을로 남쪽으로 정짓말, 북쪽으로 가징개와 각각 접하고 있다. 새로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 신대(新垈)라 불린다. 『충주군읍지(忠州郡邑誌)』에는 신대(新臺)로 나온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신촌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 도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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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정생2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생탕골은 정생2리의 서쪽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동쪽으로는 도관리, 남쪽으로는 각회리 각구실, 북쪽으로는 생극면의 도신리·병암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예부터 물이 좋은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경기도 음죽군 무극면 생탕리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도신리에 속한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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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역사가.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자현(子賢), 호는 하석(荷石). 득우재(得寓齎) 송상철(宋相哲)의 후손으로, 송헌삼(宋憲三)의 손자이며, 정와(定窩) 송달용(宋達用)의 아들이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포리에 있다. 송석민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포리에서 출생하였다. 형 송석규(宋錫珪)와 함께 회당(晦堂) 윤응선(尹膺善) 문하에서 한학을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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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음성군 금왕읍 무극3리 서쪽 지역에 있는 마을로 동쪽으로 안바래미, 서쪽으로 내송리 작은비선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바래미에서 금왕읍 내송리로 넘어가는 숫돌고개 밑에 마을이 있어 마을 이름이 숫돌고개라 불린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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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마을은 황골·황곡 또는 신평이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석평리(石坪里)와 강구리(康衢里)를 병합하여 신평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에 139m의 산이 있으며, 지형은 대체로 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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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에 두개의 봉우리로 된 산이 있어서 지금의 마을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지소리(只所里)를 병합하고 쌍봉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에 우등산[262m]이 있으며, 서쪽에 쌍봉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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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강거리에는 윗강거리, 아랫강거리가 있는데 아랫강거리는 신평리에 속하고, 윗강거리는 쌍봉리에 속한다. 음성군 금왕읍 신평리 북쪽 지역에 있으며, 동쪽으로 황골, 서쪽으로 행제리, 남쪽으로 도도물, 북쪽으로 윗강거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강거리는 강구리(康衢里)라고도 불리며, 강거리 또는 강구리를 중심으로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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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내숙(內叔), 호는 월창(月窓). 광양군(光陽君) 안황(安滉)의 증손이고, 동몽교관 안시수(安時秀)의 아들이다. 1666년(헌종 7)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정원가주서를 지냈다. 1670년 주서에 임명되었으며 1674년 이후 장령, 필선, 정언을 거쳤다. 1680년(숙종 6) 다시 장령, 정언이 되어 유명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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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무극3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무극리 동북부 지역에 위치한 마을로 바래미의 일부이다. 바래미는 뒷산이 주발을 엎어놓은 듯 둥글다고 하여 발산(바래미산)이라 하였는 데, 이 바래미의 양당이 드는 곳에 위치한다 하여 양달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의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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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오룡과 개천의 뜻을 따서 지금의 마을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오룡리(五龍里)·신개천리(新介川里)·구개천리(舊介川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용계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과 북쪽에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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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가래버들이 많으므로 가래들 또는 유촌리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와우리(臥牛里)·촌서리(村西里)·촌동리(村東里)·한삼리(閑三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유촌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었다. 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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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앞 내에 버드나무가 많으므로 버들개 또는 유포라 하였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포동리(浦東里)·포서리(浦西里)·포중리(浦中里)·별선리(別仙里) 일부와 소탄면의 한삼리를 병합하여 유포리라 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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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육십리와 기령리에서 ‘육’ 자와 ‘령’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陵洞)·육십리(六十里)·기령리(奇靈里)·묵방리(墨防里)를 병합하여 육령리라 하고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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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전주. 효령대군의 현손 이효언(李孝彦)의 아들이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본대리에 있다. 이곳 묘소 근처를 전능(前陵)이라 하는데, 영의정에 증직된 까닭에 ‘능(陵)’ 자를 붙였다 한다. 영의정에 증직되고 극풍부원군(克豊府院君)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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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중호(仲浩), 호는 행남(杏南).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도암(陶庵) 이재(李縡)의 문인이 되어 학문으로 감역(監役)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서울에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로 내려와 살았다. 세상 사람들이 처사(處士)라 불렀다. 묘소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행제리에 있다. 문암(文菴) 이의철(李宜哲)이 묘갈을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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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종친이자 문신. 본관은 전주. 자는 군미(君美), 호는 애일당(愛日堂). 효령대군의 현손이며, 강성도정 이견손(李堅孫)의 넷째아들이다. 부인은 청주한씨로 대간 한승정(韓承貞)의 딸이다. 1510년(중종 5) 춘추관기사관, 1511년 예문관검열을 거쳐 홍문관수찬, 검토관, 직산현감이 되었다. 1512년 이조좌랑으로 소릉에 관한 상소를 하였다. 1518년 이조좌랑, 봉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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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음죽군 무극면(無極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촌리(新村里)·도관리(道貫里)와 곤암리(昆岩里)·생탕리(生湯里) 각 일부와 금목면의 각회리 일부를 병합하여 도신리라 하고 생극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금왕면이 금왕읍으로 승격되면서 도신2구와 도신3구가 읍에 편입되어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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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충청북도 음성군 출신의 효부. 곽대용(郭大鎔)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 유포리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고 우애가 돈독하였다. 1906년(고종 43) 정인상(鄭寅尙)과 혼인하였다. 시부모를 섬김에 극진히 하였는데, 시아버지인 정규영(鄭圭永)이 일찍부터 약주를 좋아하니 넉넉지 않은 집안 살림에도 하루에 세 번씩 약주를 대접하였다. 흉년이 들어 술을 빚을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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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리와 연제리에서 ‘행’ 자와 ‘제’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행정리(杏亭里)·연제리(蓮堤里)·천방리(川防里)와 천기면 금정리(金井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형제리라 하여 금왕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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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 속하는 법정리. 호일리와 산막리에서 ‘호’ 자와 ‘산’ 자, 각 한 글자씩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본래 충주군 법왕면(法旺面) 지역이었으나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산직리(山直里)·호일리(湖一里)·치산리(雉山里)·석원리(石院里) 일부와 두의면(豆衣面)의 산막리(山幕里)·신대리(新垈里)의 각 일부 그리고 경기도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