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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가창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가창소작인조합(嘉昌小作人組合)은 1923년에 결성되었다. 가창면 농업 협동회를 계승하고 있는 농민 운동 단체이다. 1923년 지주 서우순에 대한 투쟁과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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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10월 달성군 가창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단체. 가창면 농업협동회는 1921년 10월 달성군 가창면에서 지이달(池二達), 서대수(徐大洙) 등을 중심으로 소작인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농민 단체로서 달성군의 농민 운동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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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노동운동가. 김광서(金光瑞)[1878~?]는 대구노동회 회장을 맡아 노동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29년 원산총파업 때 어용노조 활동을 하였고, 대구노동회의 자금을 횡령·배임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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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경상북도 달성군 각 면의 소작인들이 일으킨 소작권 반환 운동. 일제 강점기 농민 운동은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과 1920년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한 일제의 농업책의 결과로 나타난 식민지 지주제의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달성군에서는 가창면 농업 협동회를 필두로 1925년에 이르기까지 각 면 소작인 조합이 결성되면서 지세 불납 투쟁과 소작지 반환 투쟁을 전개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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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전국 차원 노농운동의 조직화를 위하여 조직된 노농운동 단체. 1924년 3월 9일부터 3월 10일까지 이틀간 대구의 만경관(萬慶官)에서 ‘남선노농동맹 창립대회’ 개최를 함으로써 남선노농총동맹(南鮮勞農總同盟)이 조직되었다. 남선노농총동맹은 조선노농연맹회가 전국 차원 노농운동의 조직화를 위하여 1924년 1월 경남 진주의 경남노농운동자간친회, 1924년 3월 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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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논공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논공소작조합은 1923년 내지 1924년에 결성되어 1924년 소작권 반환 투쟁,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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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농민이 권익 옹호를 위해 조직적으로 전개한 사회 경제 운동. 일제 강점기 농민 운동은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과 1920년 산미 증식 계획을 추진한 일제의 농업 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식민지 지주제의 모순에서 비롯되었다. 달성군의 농민 운동은 1921년 10월에 가창면의 지이달(池二達), 서대수(徐大洙) 등이 가창면 농업 협동회를 조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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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 있던 근대적 노농운동 단체. 1920년대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노농운동 단체이다. 대구 지역의 농민운동을 조직, 지도하였고, 노동운동 단체를 설립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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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대구 달성 지역에서 활동한 노농 운동 단체. 1920년대 대구의 대표적 노농 운동 단체로서 달성군의 농민 운동을 조직화시켜 농민 운동을 지도하였고, 대구에서 직업별 노동 운동 단체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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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7월 대구 입자[갓] 제조 직공들의 임금 인하 반대 노동쟁의. 일제강점기에 전통 갓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을 입자(笠子) 직공이라 불렀다. 1926년 7월 대구의 전통 갓을 생산하는 업자들은 입자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입자 하나의 임금을 45전으로 해오던 것을 30전으로 인하하였다. 입자 업주들은 입자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 인하의 이유로 갓 제조업체가 가입해 있던 대구관물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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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마명(馬鳴)[1906~?]은 190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인교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조직인 진우연맹(眞友聯盟)에 가담하였으며, 건설사(建設社)·조선노농총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본명은 정우호(鄭宇鎬)이고, 마승주(馬昇宙)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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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8월 대구에 주둔하던 보병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가 조선인 일가족을 폭행한 사건. 1927년 8월 초 대구 주둔 보병 80연대 소속 육군 대위 세가와 마사오[瀨川正雄]가 자신의 조카와 말다툼을 하던 신구실(辛玖實)을 폭행하였다. 이어 세가와 마사오는 신구실의 여동생과 삼촌을 폭행하고, 어머니까지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였다. 피해자 신구실은 10세의 어린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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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송기찬(宋箕贊)은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달성군 현풍면[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10년대 후반 20살이 되기 전에 중국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 만주에서 몇 년을 보낸 뒤에 귀국길에 올랐다. 1920년 2월 국내로 돌아오는 길에 폭탄 습격을 기도한 불령선인(不逞鮮人)[불온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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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 있었던 사상단체. 수양단은 1924년 12월 14일 대구에서 무산계급의 공존공영과 해방을 목적으로 조직된 사상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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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신재모(辛宰摸)[1885~1958]는 1921년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 대구노동친목회 등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5년에는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진우연맹에 결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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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주의운동가. 이상훈(李相薰)[1894~?]은 1884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 활동을 시작으로 정오회·대구노동공제회·조선노농총동맹·조선공산당·조선건국동맹 등에서 활동하였다. 광복 후에는 조선공산당 경북도위원회·대구공동위원회 등 좌익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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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대구에서 전개된 대중운동. 일제강점기 대중운동이란 대중 자신들의 평범하고도 민주적인 일상생활의 이익을 지키고, 민족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한 투쟁을 말한다. 일제강점기의 대중운동은 청년, 노동자와 농민, 여성, 형평 등의 부문 운동의 성격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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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달성군에서 전개된 농민 운동. 달성군은 1914년 조선 총독부의 지방 제도 개편 때 전통적인 대구에서 분리되어 대구부를 둘러싼 드넓은 농촌이었다. 따라서 달성군의 주요 산업은 자연스레 농업이었다. 일제는 1910년대 토지 조사 사업을 통해 근대적 토지 소유를 확립하고, 식민지 지주제를 성립시켰으며, 이에 기초해 농업·농민에 대한 계통적 지배 체제를 수립해 나갔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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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운해(鄭雲海)[1893~1945]는 1893년 9월 14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2가에서 정만원(鄭萬源)의 이들로 태어났다. 중국에서 무장 독립투쟁을 전개하였고, 대구에서 사회주의 계열 단체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경진(李景珍)·이봉화(李奉華)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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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결성된, 노동운동 단체인 조선노동공제회의 지회.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朝鮮勞動共濟會 大邱支會)는 1920년 5월 27일 대구 은사관에서 지회 발기대회를 열고, 서만달(徐萬達)·박기돈(朴基敦)·정운해(鄭雲海) 등을 창립 준비위원으로 선정하였다. 조선노동공제회 대구지회의 발기대회는 5월 28일에 열렸던 조선노동공제회 평양지회의 발회식보다 하루 빠른 전국 최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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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최윤동(崔允東)은 1897년 7월 3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서 최명조(崔明祚)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중국과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광복 후에는 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최진(崔震)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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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해안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해안소작조합은 1923년 내지 1924년에 결성되어 1925년 지세 반환 운동과 지세 불납 운동을 벌이고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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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달성군 화원면에서 결성된 소작인 농민 운동 단체. 화원소작조합은 1923년 내지 1924년에 결성되어 1924년 추수 태업 투쟁과 1925년 낙작인회 투쟁을 통해 농민 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