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구에 있었던 대구 한약상들의 경제단체. 대구약상흥업회(大邱藥商興業會)는 일제강점기 대구의 한약상들이 대구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를 위하여 설립하였다....
대구의 특색을 상업 도시로 각인되게 한 대구의 시장. 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시장이 생겨나고, 시장을 배경으로 객주가 등장하였다. 더욱이 대구는 경상감영이 설치된 경상도의 수부였고, 낙동강 물길을 배경으로 바닷가의 해산물과 내륙의 곡물을 교환하는 방식의 어염미두(魚鹽米豆) 무역의 주요 지점이었다. 조선 후기 대구에는 10여 개소의 시장이 열렸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엿...
1908년에 대구의 경상감영 객사에서 열리던 약령시를 남성로로 이전하여 설치 운영한 일. 대구 약령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겪고 난 뒤인 17세기 중반부터 조정의 영시[대구 약령시의 약칭] 개시 통첩을 통하여 운영되었다.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 객사에서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보통 각각 10일 정도 열렸다....
1978년 대구 약령시를 부활하기 위하여 설립한 경제단체. 대구 약령시(大邱 藥令市)는 1658년(효종 9)부터 경상감영의 객사(客舍)인 달성관 주변에서 봄과 가을 두 차례 열리던 조선시대 전국 최대의 약령 시장이었다. 봄에 열리는 약령시는 춘령시(春令市), 가을에 열리는 약령시는 추령시(秋令市)라고 하였다. 대구 약령시는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남성정[현 중...
1928년 대구 약령시 이전을 둘러싸고 일어난 사건.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의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대구 약령시가 남성정으로 이전한 이후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는 상인들이 만든 자치 조직에 의하여...
일제강점기 대구 약령시의 진흥을 위하여 대구 한약업자 조합이 주도하여 세운 경제단체. 대구 약령시는 경상감영의 객사(客死)인 달성관(達城館)을 중심으로 봄·가을 두 차례 정기적으로 약령 시장을 개설한 데서 시작되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한 경상감영 객사 철거로 대구 약령시는 남성정[현 중구 남성로]으로 이전하였다. 대구 약령시가 남성정으로 이전한 이후 약령시의 운영 및 관리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