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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충청북도 충주시 교현동 지역의 옛 이름으로 추정되고 있는 지역. 충주시 교현동에 속하며, 북문이 있었던 곳은 충주여자중학교의 북쪽 사거리 주변으로 추정되며, 그 북쪽으로 공설운동장 방면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다. 『예성춘추(蘂城春秋)』 41쪽의 「고북문」조에, “읍북 주봉 동측가도를 고래로부터 고북문거리라고 하는데, 연대는 미상이나 전설에 의하면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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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 가신3리에 있는 조선 말기 명성황후 피난지. 1882년(고종 19) 6월 9일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명성황후는 서울을 탈출하여 고향인 여주의 민위영 집에 숨었다가, 장호원에 있는 민응식의 향제를 거쳐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을 찾아가던 중 자취를 감추기 위해 충주시 노은면 가신리 국망산 밑 신흥동 이시영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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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탑은 9세기에 접어들면서 옛 백제·고구려 지역에서 등장하는 지방 세력의 반발과 반신라적 민심의 대두를 잠재우고 국가적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호국적인 불교의 힘을 빌려 세운 비보적 의미를 지닌 원탑이다. 중앙탑이 충주에 건립된 이유는 그 위치가 신라 영토의 중앙에 해당되어 건탑의 목적을 널리 떨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점, 그리고 수도 다음가는 소경(小京)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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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대림산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에 걸쳐 있는 봉화뚝 정상부에 남아 있는 봉수대이다. 조선시대 제2거 노선에 소속된 간봉으로 계립령을 넘어와 연풍현의 마골재 봉수 거쳐 온 봉화를 충주 주정산 봉수로부터 받아 마산봉수에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봉수대에는 별장 1명, 감관 5명, 군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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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향산리에 있는 고려시대 산성. 충주 대림산성은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과 살미면 향산리의 경계를 이루는 대림산[487.5m]의 정상부를 포함하는 능선과 계곡부를 가로지르며 축조된 둘레 4,906m의 토석혼축 포곡식 산성으로, 고려 1253년(고종 40) 몽고의 침략에서 최대의 승전을 거둔 충주 남산성 전투의 현장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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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지역은 우리나라 3대 철산지의 하나로 고대부터 철광산이 개발되어 철광석을 캐고, 쇠를 뽑고 녹이고 두드려 각종 무기나 농구 등의 연모를 만들던 쇠부리업이 발달했던 곳이다. 고대 국가의 힘의 상징인 철을 확보하기 위해 삼국은 공히 충주 지역에 공을 들였으며 충주 지역을 확보한 국가가 항상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충주는 질 좋은 철을 생산하던 자원의 보고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