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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뒤에 가래나무가 많아 가래울[楸谷]이라는 설이 있으나 가래나무는 안산 지역에 자생하지 않으므로 ‘추(楸)’자를 같이 쓰는 개오동나무, 호두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또는 들의 가장자리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갈래길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 안산군 잉화면에 속하였다가 1914년 시흥군 수암면 화정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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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있는 여섯 개 섬 가운데 하나. 끝눅섬[末六島] 남쪽과 육도[끝눅섬·가운데눅섬·육도[본육도]·질마섬·정철이섬·물우녀] 북쪽에 있는 섬으로, 끝눅섬과 육도[본육도]의 가운데 있다고 하여 가운데눅섬이라 부른다. 지도에는 종육도(終六島)로 표기되어 있다. 암석으로 이루어진 작은 돌산으로, 물이 나지 않아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이다. 가운데눅섬은 동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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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워 있는 와우혈(臥牛穴)이므로 각골[角谷]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마을 동쪽에 있는 산이 코끼리 형상이라 하여 상봉(象峯)이라 했고, 마을 이름은 상촌(象村)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살던 전주이씨 가승(家乘)[직계 조상을 중심으로 가계를 간단히 기록한 책]에는 가골[佳谷]로 기록되어 있다. 각골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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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에 있는 산의 형태가 말머리 모양이고 그 앞에는 작은 우물이 있는데, 목마른 말이 이 우물물을 먹고 갈증을 풀었다 하여 갈마지(渴馬地)라 하였다. 갈마지가 있는 대부도는 삼국시대에 마한(馬韓), 통일신라시대에 한주(漢州)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 조선시대에는 남양군(南陽郡)에 속하였으며, 인조 때는 방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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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으며, 마을에 대나무가 많이 있다 하여 감대골[柿竹谷]로 불리다가, 후대에 음이 변하여 감자골이 되었다. 감자골의 세거성씨였던 양주최씨의 옛 족보에는 선대들의 묘를 시죽동(柿竹洞)에 썼다는 기록이 여러 군데 나온다. 사동은 신도시 개발 전에는 화성군 양감면 면장보다 사리[현 사동]이장을 한다고 할 만큼 화성군 관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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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섬. 지형이 옛날 벼슬아치들이 쓰던 감투처럼 생겼다 하여 감투섬이라 하였다. 감투섬은 아주 작은 섬으로 잡목과 풀이 자라고 있으며, 주위에 갈대가 많이 서식하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북4리[북4통] 숯부리에서 도보로 3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시화호 안쪽에 위치하게 되어 지금은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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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 풍수로 보아 가마[釜]를 엎어 놓은 형국이어서 가마산[伏釜山]이라 하였으며, 후에 이곳에 취락이 형성되자 산 이름을 따서 가마골이라 하였다. 후대에 내려오면서 개멸[元釜谷]로 통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마을 북쪽 지역이 나무가 많고 숲이 우거진 곳이라 하여 만수동(萬樹洞)이라 불렀고, 동쪽 지역이 골짜기 안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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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방아머리에 있던 섬. 섬 모양이 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섬은 1988년 4월부터 1994년 1월까지 이루어진 시화방조제[11.20㎞] 공사 때 채토장으로 쓰여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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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서 나문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펄과 나문재」는 흉년에 먹을 것이 없을 때 식량 대신 먹던 개펄에 나는 나문재에 대한 유래담이다. 나문재는 본래 바닷물이 드나드는 개펄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잎은 좁고 부드럽지는 않지만 물기가 많다. 그래서 뜯는다기 보다는 훑어서 삶아 고추장에 무쳐 먹어야 제격이다. 1996년 안산시 상록구 일동으로 현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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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에 속하였던 석곡동과 거모포의 옛 지명. 거무개는 현재 경기도 시흥시 관할로 동쪽과 남쪽으로 안산시와 접하며, 북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난다. 교육기관으로는 군자초등학교와 군자중학교·군자공업고등학교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이 있다. 이곳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조(仁祖)의 장인인 한준겸(韓浚謙)[155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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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던 자연마을. 건건동의 끝자락인 용담뿌리 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건건동의 끝이라 하여 건지미(乾之尾)라고 했으나, 용담뿌리에 주막이 생기면서 맛 ‘미(味)’자를 써서 건지미(乾之味)라 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북방면 건건리라 했다가,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따라 안산군 북방면 건건리가 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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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에 큰 향나무가 있었다 하여 계향동(桂香洞)이라 하였다. 점섬 산 너머에 위치하여 등너머라 부르기도 하였다. 2008년 점섬에 있는 화림선원(華林禪院) 화단에서 화림선원의 옛 이름인 약수암 초석이 발견되었는데 ‘계향산(桂香山) 약수암(藥水庵)’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 걸로 보아 계향산에서 이름을 따 계향동이라 부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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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현재 건건동 삼천리 마을은 무와 배추·상추 등의 채소를 재배하여 인근 군포시와 안양시에 공급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는 고구마 재배지로 유명했다. 중남미가 원산지인 고구마와 감자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감자보다는 고구마가 먼저 전해졌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18세기 중반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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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에 있는 두 개의 산봉우리. 노리울마을의 뒤[동쪽]에 있는 봉우리이다. 고깔 모양을 한 두 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서 있다. 그중 남쪽에 있는 봉우리를 ‘큰고깔봉’이라 부르고, 북쪽에 있는 봉우리를 ‘작은 고깔봉’이라 부른다. 노리울마을을 지나 고깔봉에 오를 수 있으며, 국도 42호선이 노리울마을 앞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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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는 골짜기. 골짜기의 산등성이가 높고 길어서 고등골[高騰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골짜기가 곧고 길어서 곧은골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고등골은 풍양조씨 동추공파 선산으로 재실인 풍결사와 선대 묘, 절터가 있다. 현재 조경(趙儆)[1541~1609]의 묘가 이장되어 있다. 조경 장군 묘 아래쪽 절터에서는 많은 기와 조각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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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 있는 자연마을. 대부도의 중심지에 위치한 마을로 예부터 땅이 기름져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고유지라 불렀다. 행정동은 대부동 관할이며 동1리를 고유지라고 부른다. 고유지에 있는 자연지명 중 비선거리는 대부도가 남양부에 속하였을 때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와 감목관(監牧官) 등의 선정비를 세워 놓았던 곳인데, 도로 확장 공사로 대부동사무소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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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는 수도권 광역 지하철 과천-안산선의 역 1992년 3월 2일 고잔동 지역주민의 이용 편의를 위해 개통하였다. 역명은 곶안이 고잔으로 변음되어 내려오던 지명을 토대로 하여 제정되었다. 1988년 10월 안산선 금정~안산 간 개통 시 역세권이 미약하여 설치되지 않았다가, 1992년 3월에 지역주민의 교통 편리를 위해 설치되었다. 역무를 담당하는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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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에서 고정부리와 지당대감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과 1999년 안동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안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주민 이복영[69]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이정태가 채록하였다가 후에 이현우가 재정리하였다.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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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 있는 자연마을. 고주물은 밀양박씨가 처음 터를 잡은 마을로, 안산시 화정영어마을[옛 화정초등학교] 앞에 있는 우물이 풍수로 보아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梅花落地形]이고, 오랜 옛날 이곳에서 선화(仙花)라는 꽃이 피어서 꽃우물이라 했으며, 또한 매화꽃이 피었다 하여 꽃우물이라 했다고 한다. 그 후 마을 이름도 우물 이름을 따 꽃우물이라 하였는데, 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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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에서 공동묘지의 여우할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과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다. 『안산시사』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 부루지 주민 이정태[남, 76]가 구연한 것을 이한기·이현우가 안산문화원 사무실에서 채록하였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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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옛 지명. 서해안에는 곶(串)이 많은데, 곶은 바다 쪽으로 돌출한 육지를 말하며 규모가 더욱 크면 반도라 부른다. 육지가 침강하면 골짜기는 만이 되고, 산줄기는 반도나 곶이 된다. 사취(砂嘴)가 바다에 돌출하여 형성되기도 한다. 갑(岬) 또는 단(端)이라고도 하고, 흔히 관[串] 자를 빌려 ‘관’ 또는 ‘곶’으로 부르기도 한다. 반도의 말단 부분을 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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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자연마을. 원래의 산 이름은 갓모산인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갓 ‘관(冠)’자와 모자 ‘모(帽)’자를 써서 관모산이라고 하였다. 초지동에 있는 관산초등학교 뒷산이 관모산인데, 관모산 서쪽 기슭에 마을이 형성되자 이 산 이름을 딴 것이다. 관모산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던 대동우물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현 주공아파트 5단지]은 아랫말, 남쪽 지역[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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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서 관우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5월 27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 주민 김정애[여, 68]가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에 재수록하였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 능안에 가면 소릉(昭陵)이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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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과 상록구 월피동에 걸쳐 있는 산. 광덕산 할미골에 ‘부채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에 살고 있던 어진 할머니가 보리를 널어놓은 채 화전을 일구러 나간 후에 갑자기 비가 쏟아져 보리가 모두 떠내려갈 형편에 이르자 지나가던 선비가 보리를 걷어 들여 화를 면하게 해주었다. 황급히 암자로 돌아온 할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선비에게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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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광덕산과 부채보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5월 안산시청에서 김순봉[70]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0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이호성[74]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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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의 옛 지명. 구룡골은 본래 단성이씨 세거지였으나 조선시대 말에 이조판서를 지낸 김수근(金洙根)[1798~1854], 영의정을 지낸 김병학(金炳學)[1821~1879]과 김병국(金炳國)[1825~1905], 이조참판을 지낸 김정규(金貞圭)[1866~1895], 화가 김용진(金容鎭)[1878~1968] 등 안동김씨들의 세도에 밀려 안동김씨 세장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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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서 구석말 한예현 묘 동자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3년 10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주민 조희찬[남, 75]이 구연한 것을 이현우가 채록하여 2005년 안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반월동향리지』에 수록하였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마을 구석말 한예현 묘에 있는 동자석은 그 크기가 다른 묘의 것들보다 작은데, 이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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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과 시흥시 군자동에 걸쳐 있는 산. 본래의 산명은 군자산(君子山)인데 조선 말엽에 군자봉으로 바뀌었다. 서촌(西村)[옛 군자면]을 묵묵히 지켜 온 수호산으로 봉우리가 하나라 하여 일봉산(一峰山), 또는 산의 내령이 서쪽으로만 뻗었다 하여 서령산(西嶺山)이란 별칭이 붙었다. 산의 유래에 대하여는 설이 구구하다. 군자동 구지정 출신인 풍수지리 연구가 지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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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삼천리 마을에서는 무·배추·상추 등의 채소를 재배하여 안산 지역은 물론이고 인근 군포시와 의왕시에 공급하는 것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특히 봄부터 여름까지는 주로 토마토를 재배하여 인근 단위농협인 반월농업협동조합에 출하도 하며, 혹은 농가에서 직접 군포나 의왕시 인근의 아파트 단지에 가서 판매도 하고 있다. 농업협동조합에 출하하면 편하기는 하지만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 농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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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서 김양택 묘 회닺이 선소리꾼의 예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김양택(金陽澤)[1712~177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健庵)이다. 1743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홍문관대제학을 거쳐 1776년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할아버지 김만기(金萬基)[1633~1687]와 아버지 김진규(金鎭圭)[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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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에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영의정에까지 올랐던 김양택(金陽澤) 선생의 묘가 있다. 김양택[1712~1777] 선생의 본관은 광산(光山)으로,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健庵)이다. 광산김씨는 알다시피 조선시대의 명문 가문이다. 조선시대에는 ‘연리광김(延李光金)’이라고 해서 연안이씨와 광산김씨를 명문가문으로 사람들이 높이 추앙했는데, 광산김씨는 율곡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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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서 까치섬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7년 대부도에서 김동렬[남, 69]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수록하였다. 2001년 이현우가 다시 정리하여 2002년 안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대부도향리지』에 수록하였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의 대부도 고유지[동1리]에 있는 까치섬은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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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무인도. 고깔처럼 생겼다 하여 꼬깔섬이라 하였다. 꼬깔섬 갯골은 골이 깊고 좁으며 풍랑이 잘 인다고 한다. 섬 전체가 암석으로 되어 있으며, 해안선에는 모래펄이 펼쳐져 있다. 작은 섬으로 잡목과 풀이 서식하고 있다. 고깔섬은 동경 126° 25′, 북위 37° 14′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2,000㎡, 둘레 450m, 길이 200m, 폭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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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서 꾀꼴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3년 7월 5일 안산시청 민원실에서 김순봉[남, 67]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6년 이정태가 다시 정리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수록하였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은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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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있는 여섯 개 섬 가운데 하나. 육섬[육도]이 변음이 되어 눅섬이 되었으며, 북쪽 끝에 위치한다 하여 끝눅섬이 되었다.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도[끝눅섬·가운데눅섬·육섬·질마섬·정철이섬·물우녀] 가운데 물이 나지 않아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도이다. 동경 126° 28′ 북위 37° 7′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1만 5,000㎡, 둘레 5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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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있던 자연마을. 해적들이 대부도를 침범하여 약탈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해적선 망을 보던 곳이라 하여 망선리(望船里)라 하였고,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망생이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망선리의 어감이 좋지 않다고 하여 흥성리(興成里)로 이름을 바꾸었다. 대부도와 선재도를 잇는 선재대교가 시작되는 해변 마을로 대부남동 남5통 지역의 일부이다. 바닷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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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는 산. 나윤침의 아들 나급은 임진왜란 때 한산군수와 공주목사를 역임하였다. 난중에 흩어진 민심을 수습하고 강화 관계로 부산에 와 있던 명나라 유격(遊擊) 진운홍(陳雲鴻)의 접반관(接伴官)으로 차출되어 적진을 왕래하였다. 1597년(선조 30) 명나라에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다녀온 뒤 평산부사 등을 지냈고, 선조에게 나봉산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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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동쪽 연암사(延岩寺) 법당 뒤에 남사바위(南蛇바위)가 있는데, 남사바위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남사박이라 하였다. 6·25전쟁 후 황해도 해주 출신의 해주오씨(海州吳氏) 등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고, 1973년 취락 구조 개선 사업으로 마을이 말끔히 단장되었다. 1989년 시흥시 수암동의 일부가 되었다가,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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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에 있는 자연마을. 남산뜰[南山坪]은 좁은 계곡으로 이루어진 뒤쪽 상부와는 달리 남쪽으로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구전에 따르면, 삼국시대에 이곳을 도읍지로 삼으려 하자 갑자기 우뢰산(雨雷山)이 울면서 밀려와 지금의 위치[반월저수지 북쪽]에 머물러 도읍지 이전 계획을 멈추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광주군에 속하였다가 1906년 안산군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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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하산 아래[남쪽] 넓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넓은골[廣谷]이라 하였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변음이 되어 너빌이 되었다. 너빌은 김녕김씨(金寧金氏) 집성촌으로 김성동(金姓洞)이라고도 한다. 마을 중앙에서 보아 동남쪽 지역을 건넌말, 서쪽 지역을 아랫말, 동쪽 지역을 웃말, 서북쪽 지역을 뒷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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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에 있는 노리울[獐谷]이라는 골짜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노리울은 ‘느리다’, ‘완만하다’의 옛말인 ‘노루’에서 비롯된 지명이며, 한자로는 노루 ‘장(獐)’자를 써서 장곡(獐谷)이라고 한다. 또는 마을 뒤 고깔봉에서 마을에 이르는 산세가 풍수로 보아 노루의 입처럼 생겨[獐口穴] 노리울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고구려 때 장항구현(獐項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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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있는 산. 노적봉은 1914년 일제가 전국의 지형도를 제작할 때 ‘산의 모양이 삿갓처럼 생겼다’고 하여 ‘가사미산(可使美山)’이라 개명된 뒤로 이 명칭이 그대로 고착되어 왔다. 가사미산이라고 불렀던 것은 순 우리말 ‘갓뫼’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 후 안산시 지명위원회·경기도 지명위원회·중앙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1994년 9월 14일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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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섬. 일명 햄섬[해미섬]이라고도 하며 누에처럼 생겼다 하여 누에섬이라 한다. 바위섬으로 섬 위에 약간의 소나무와 잡목, 풀이 자라고 썰물 때에는 탄도와 1㎞의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연결되어 있어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섬 주위에서 굴, 소라, 바지락, 낙지가 나며 연해에서는 새우, 게 등이 잡힌다. 수원이 풍부하여 식수 개발이 가능하다. 누에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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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에 있는 골짜기. 능이 있었다고 하여 능골이라 하였는데, 실제로 능이 있던 것을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농경지가 조금 있는 골짜기이었고, 주거지는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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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시대 초기 마을 서남쪽 봉화재산 정상에 봉화대(烽火臺)[무응고리봉수]를 설치했다 하여 적길리(赤吉里)라 하였다가,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묘를 목내동 능안에 쓴 후부터는 능(陵)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란 뜻의 ‘능길’이 되었다. 마을의 서쪽 지역은 바라지, 북쪽 지역은 골안, 마을 중앙은 큰말이라 불렀다. 능길은 곡부공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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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 있던 자연마을. 능안[陵內]은 조선 문종의 비이자 단종의 생모인 현덕왕후의 묘를 아랫말과 성곡동 무들 사이[안산시 목내동 산47]에 쓰면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 능은 세조 때에 파괴되었고, 중종 때 양주 현릉(顯陵)으로 천장하였다. 능안의 북쪽 지역은 웃말, 남쪽 지역은 아랫말이라 하였다. 능안은 현덕왕후의 묘를 쓴 후부터 널리 알려졌다. 이후 전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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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에 있던 자연마을. 본래의 이름은 월입피(月入陂)로 달이 지고 해가 뜨는 언덕바지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다리피가 되었다. 조선시대에 ‘1논줄[지금의 시흥시 논곡동 논줄] 2다리피’라고 할 만큼 안산에서는 명성이 높았던 마을이었고, 월입피주막이 유명하였다. 해마다 음력 10월 1일 마을 동북쪽에 있는 도당산에서 당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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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자연마을. 달미는 교통의 요충지로 동쪽은 시흥시 화정동, 서쪽은 시흥시 거모동, 남쪽은 안산시 와동, 북쪽은 시흥시 능곡동 등과 연결되는 사통팔달한 곳에 위치한 마을이므로 ‘달뫼[達山]’라 하였다가 음이 변하여 달미가 되었다. 달미에는 나주나씨, 진주강씨, 순흥안씨, 교하노씨 등이 세거하였으며, 마을의 동쪽 지역은 건넌말, 남쪽 지역은 아랫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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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이동에 있던 자연마을. 샛골 남쪽에 있던 마을로, 샛골에서 이곳으로 가자면 남쪽에 동서로 길게 늘어져 있는 쪽박산 능선을 넘어야 했으므로 담너머[澹園]라고 하였다. 현재 다세대 주택과 단독 주택이 들어서 옛 농촌 마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마을 경계도 알 수 없으며, 쪽박산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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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서쪽에 있는 섬. 대부도는 안산시청에서 서쪽으로 35.8㎞ 떨어져 있고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시흥시 정왕동[오이도]과 방조제로 연결되어 있다. 동경 126°33′~126°39′, 북위 37°12′~37°18′에 위치하며 면적 40.34㎢, 해안선 길이 61㎞이다. 부속 유인도로 탄도(炭島), 불도(佛島), 선감도(仙甘島), 풍도(豊島)와 육도(六島)가 있다. 삼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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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학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대부도의 학지」는 대부도와 선감도, 불도, 탄도, 화성군 화양진과 해저로 연결된 해저산맥을 학이 알려주었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1989년 옹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옹진군지』에 수록되었고[채록일자, 채록자, 제보자 미상], 2002년 안산문화원에서 발행한 『대부도향리지』에 수록되어 있다. 이는 1999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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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농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대원군과 와리농악」은 와동의 옛지명 와리에서 대원군의 덕택으로 와리농악대(瓦里農樂隊)가 매우 유명하게 되었다는 유래담이다. 농악은 풍물이라고 하여 징·꽹과리·북·장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상쇠를 선두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풍물을 치기도 하고, 마을의 고사굿이나 김매기 두레를 할 때 동원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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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자연마을. 새젓골과 태을 사이에 있던 마을로 논밭이 많아 대장(大壯)[많은 논밭]이라고 부르다가 대쟁이·대재이로 변음이 되었다. 대쟁이는 예전 군자면(君子面) 주민들이 서울·인천·안양 등지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므로 왕래하는 사람이 많아 주막이 번성하였다. 대쟁이가 있었던 선부동은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대월면(大月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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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던 골짜기. 분대 옆 골짜기 이름으로, 댕댕이풀[소쿠리 등을 엮는 풀]이 많아서 댕이골이라고 하였다. 한편으로는 골짜기가 댕기머리처럼 길어서 댕기머리에서 댕이골이 유래하였다는 설도 있다. 낮은 두 개의 산 사이에 있던 골짜기로, 댕이절이라는 사찰과 농경지만 있었으며 인가는 없었다. 1979년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음식점이 들어서 옛 모습은 사라지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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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도감사 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6월 2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조운학[남, 70]이 구연한 것을 최내옥·김용덕·신성원·안성진·박병제·조항심·김헌영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재수록하였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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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해안가에 있던 마을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이곳에 이르러 급히 돌아가므로 도란말[廻村]이라 불렀다고 한다. 성두리는 잿머리[城頭]라 하여 골우물·벌말·안말·도란말을 총칭하는데, 이는 도란말에 있는 성황당을 신성시하여 주변에 성(城)을 쌓고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안산에 전래되던 동제(洞祭) 대부분은 폐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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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던 자연마을. 고잔역 서남쪽 논 가운데에 마치 섬처럼 자리 잡고 있던 마을로, 1910년대 고잔동을 측량할 때 고잔동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비만 오면 질퍽해지므로 화성군 남양 지역을 측량할 때 함께 실시한다고 도로 환원하였다 하여 도리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한, 밀물 때는 섬이 되고 썰물 때는 육지처럼 되며 물이 돌아들었다 하여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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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던 옛 지명. 독수리는 안산읍성의 망해정(望海亭) 터가 있던 곳을 가리킨다. 망해정 터는 안산군 관아 서쪽에 있었으며, 안산군 군내면 서정리(西亭里)[독수리] 지역이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기와 조각 등이 수습되고 있다.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승지고적(勝地古跡)조의 “읍치서고유망해정구지관사후유토체형지차즉고연성군김정경지서식처야(邑治西皐有望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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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에 있는 동산. 구봉염전 저수지 서쪽에 있는 새 둥지 모양의 작은 동산으로, 밀물 때 갯고랑으로 물이 들어오면 섬처럼 보여 둥지섬이라 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돈지섬이 되었다. 구봉염전이 생기기 전에는 갯고랑을 통해 바닷물이 들어왔으나 지금은 잡목이 무성하며 주위에 인가나 다른 시설물은 없는 작은 동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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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에 있는 자연마을. 동막골은 고구려 때 안산군 관아가 있던 노리울 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회관 동쪽 지역은 웃말, 서쪽 지역은 아랫말, 고깔봉 아래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은 마을은 양단말이라 부른다. 안산김씨가 처음 세거한 마을로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군내면(郡內面) 동곡리(東谷里)였다. 2009년 3월 현재 안산김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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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동산(東山) 윤지완(尹趾完)[1635~1718]의 사당이 있었으므로 윤지완의 아호를 따서 동산골[東山谷]이라 불렀다. 윤지완의 묘는 본래 시흥시 산현동 안장바위에 있었는데, 그곳에 묘를 쓴 뒤 서해안의 조기가 잡히지 않자 어부들이 상소해 개성 천마산으로 옮겼다. 그 후 윤지완의 후손인 파평윤씨 문중에서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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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서 동산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동산골과 일각정승」은 윤지완(尹趾完)[1635~1718]이 한겨울에 동상에 걸려 한쪽 다리를 자르게 됨에 따라 일각정승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효행담이다. 윤지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682년(숙종 7)에 일본에 사신으로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일본에서는 조선의 사신 윤지완을 영접하기 위하여 정각을 지어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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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던 자연마을. 왜두둘기 북쪽에 있던 동장리는 본래 가자골과 새말을 통칭해 동작리라 불렀는데,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마을 동북쪽에 있던 봉황산이 풍수로 보아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하여 공작리(孔雀里)라 하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동작리(銅雀里)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마을이 길게 생겼으므로 동장리(洞長里)라 하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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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최초의 입향조를 살펴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아랫삼천리 장촌의 경우 입향조는 수군절도사 장익견의 부친인 장세현 공으로 약 300여 년 전에 입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윗삼천리 조촌의 입향조는 조선 숙종 대의 조일상 공으로, 장희빈을 몰아내는 데 일조한 인물이라고 한다. 윗삼천리에 처음 조씨들이 들어왔을 때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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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던 자연마을. 큰백중 동북쪽에 있던 마을로 군사상 요새지여서 고려 때부터 둔전(屯田)[군량 또는 관아의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국가가 지급한 토지]과 둔전병(屯田兵)[군사상 중요지이거나 또는 군대들이 오래 머무는 곳에서 농사를 짓는 병졸]이 경작하던 논배미가 있었으므로 둔배미라 불렀다고 한다. 또 초지동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원당(元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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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둔배미마을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속놀이. 둔배미놀이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출항할 때, 또는 만선으로 귀항할 때 부르던 「배치기 소리」와 신길동 농요를 접합시켜 연출한 민속놀이이다. 둔배미의 수호신은 뱀신인 긴대선왕님[도당 할아버지와 도당 할머니]으로, 이를 모신 당집에서 격년으로 도당굿을 벌여 왔다. 성어기를 맞은 마을 어부들은 출항하기 전날 밤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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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서 윤정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초지동의 둔배미마을에는 윤정승과 관련된 두 가지의 인물담이 전해진다. 하나는 「대전내시에게 혼난 윤정승과 안흥 관찰사」이고, 또 하나는 「다리 잘린 윤정승」이다. 둔배미는 현 초지동의 고려개발이 있던 자리에 위치했던 마을로서, 조선 시대에는 안산군 와리면 원당리였다. 이곳은 안산 제일의 포구이자 군사적 요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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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과 선부동에 걸쳐 있던 자연마을. 띠[모초(茅草). 벼과의 다년초로 보통 삘기라고 한다. 우장 만드는 데 많이 쓰인다]가 많이 자생하여 띠골[茅谷]이라 하였다가 후대로 내려오면서 변음이 되어 땟골이 되었다. 고려 말엽 왜구를 격파하여 큰 공을 세운 무신 오언(吳彦)의 묘를 현재의 원곡고등학교 뒤에 쓴 후 오언의 후손인 동복오씨(同福吳氏)가 묘 아래쪽에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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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삼천리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하얀 날개를 펼치며 마을 앞 논밭을 날아다니는 백로들이다. 마을의 앞뜰에 언제부터인가 백로가 다시 찾아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 어른들의 말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백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찾아오는 삼천리 마을의 귀한 손님이었다. 조희복 옹은, 예전 어른들이 마을에 백로가 들면 마을이 부유해진다고 믿어서 백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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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마귀할멈과 뒤웅박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최종설[남, 70]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수록하였다. 옛날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마귀할멈이 살고 있는데, 마귀할멈은 나쁜 사람을 골탕 먹이기 위하여 뒤웅박에 구멍을 뚫고 깍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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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갯고랑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마귀할멈이 만든 갯고랑」은 안산시 대부도의 탄도와 불도 사이에 있던 갯고랑이 생기게 된 지형 유래담이다. 마귀할멈이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손을 짚고 일어날 때 손가락으로 긁은 자리가 갯고랑이 되었다고 한다. 1997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의 탄도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홍기선[남, 56]으로부터 이현우가 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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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이동에서 마산뿌리의 백마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4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2동에서 최정자[여, 57]가 구연한 것을 이현우가 채록하여 2005년 안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반월동향리지』에 수록하였다. 옛날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2동 팔곡당산에 한 부잣집이 있었다. 그 부잣집에는 머슴이 하나 있었는데, 인물도 잘생기고 키도 큰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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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장씨와 창녕조씨 두 집안은 삼천리의 위아래에 마을을 이루고 수백 년을 함께 살아왔다. 두 집안사람들이 수백 년을 큰 다툼 없이 지내 오면서 피를 나눈 한 가족이라는 정서가 마을 전체에 스며들어, 마을 사람들의 우애는 외지인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매우 깊다. 이러한 우애는 각종 경조사를 함께 치르면서 기쁨은 서로 나누고 슬픔은 서로 덜면서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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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마을이 있는 건건동은 행정구역상 반월동에 속한다. 반월동은 조선시대에는 광주군(廣州郡) 북방면(北方面)과 월곡면(月谷面), 성곶면(聲串面) 등 3개 면에 속하였다. 1906년(광무 10) 칙령 제49호에 따라 이 3개 면은 안산군으로 이관되었고, 1914년 부령 제111호에 의거 위의 3개 면은 다시 수원군 반월면으로 통합되었다. 통합 이전의 법정리를 보면 북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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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양상동과 시흥시 산현동에 걸쳐 있는 산. 수리산의 줄기가 마하산으로 연결되어 광덕산까지 이른다. 동쪽으로는 수리산과 수암봉이 바라보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광덕산, 서쪽으로는 군자봉이 마주하고, 북쪽으로는 운흥산이 호종하고 있다. 높이는 246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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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막걸리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7월 4일 김한욱[남, 80]이 구연한 것을 최내옥·김용덕·유태용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재수록하였다. 옛날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막걸리 나오던 구멍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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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던 자연마을. 바다에 돌출된 땅 끝에 있는 마을이었므로 막고지[莫串]라 불렀다. 북쪽에는 산우물이 있었고, 남쪽에는 샘골이 있었다. 상록구 사동과 본오동 경계에 자리 잡았던 마을로, 신도시 개발 전 막고지는 사리[현 상록구 사동]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현재는 상록구 본오동 지역에 속한다. 막고지는 전주이씨와 풍양조씨 등의 오랜 세거지로, 마을 남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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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산. 산봉우리가 마치 매의 형상과 비슷하여 매봉이라 하고, 응봉(鷹峯) 또는 매봉재라고도 한다. 지장골[지장촌] 뒤에 있는 산으로, 수암봉[395m]과 연결되어 있다. 산봉우리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높이는 334.7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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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매실골과 노비 아들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5월 18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김순봉[남, 73]이 구연한 것을 최내옥·김용덕·강경희·이정임·송현정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이후 1988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과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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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서 최정걸 장군 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2년 11월 9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최현목[남, 60]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다시 최현목[남, 75]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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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에 들이 없어 무들[無坪]이라 불렀다. 마을의 남쪽 지역을 큰무들, 북쪽 지역을 작은무들이라 불렀고, 동쪽 지역은 목내동 능안 너머에 있으므로 능너머라 불렀다. 무들이 있던 성곡동은 조선시대에 안산군 와리면(瓦里面) 무곡리(茂谷里)와 성두리(城頭里)였다가 1914년 시흥군 군자면 성곡리(城谷里)가 되었고, 1986년 1월 1일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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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있는 여섯 개 섬 가운데 하나. 물우녀는 ‘배가 다니는 물길 위에 있는 여[물속바위: 썰물 때는 나타나고 밀물 때는 잠기는 바위]’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네 개의 작은 방위로 형성된 섬으로 키 큰 두 개의 바위가 솟아 있어 밀물 때는 물속에 잠긴다. 물우녀는 동경 126° 28′, 북위 37° 21′에 자리 잡고 있다. 유인도인 육도(六島)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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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에서 민대감과 소년 한명회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명회(韓明澮)[1415~1487]는 조선 세조(世祖)[1417~1468] 때의 문신으로 자는 자준(子濬), 호는 압구정(狎鷗亭)·사우당(四友堂)이다. 수양대군[세조]을 도와 김종서(金宗瑞)[1390~1453] 등을 제거한 후 군기녹사(軍器錄事)가 되었고, 세조가 즉위하자 좌부승지·도승지·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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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과 군포시 속달동 경계에 있는 고개. 가파르고 험준해 바람이 많이 불던 곳이라 하여 바람개비고개라 하였다. 풍현(風峴) 또는 풍령(風嶺)이라고도 한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군포시 속달동에서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의 오일장인 안산장(安山場)을 넘어 다닐 때 왕래하던 고개이었으나, 교통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잡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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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안산 지역은 공단 도시로 이름이 알려져 있지만 공단이 들어서기 전의 안산 지역은 해안을 낀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당시 안산 지역 중심지는 면사무소가 있던 군자면과 수암면, 그리고 화성군 반월면이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안산 지역에서 가장 발전이 더디고 낙후된 지역이 반월동과 수암동, 그리고 지금은 시흥시로 편입된 군자면이다. 이렇게 안산 지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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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자연마을. 구봉염전 쪽에 있는 서의산으로부터 바다로 길게 뻗어 나간 끝 지점으로 디딜방아의 방아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871년 제작된 대부도 지도에는 한문으로 방아찧을 ‘용(舂)’자를 써서 용두포(舂頭浦)로 표기되어 있다. 약 150년 전부터 배씨, 최씨, 강씨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였다. 대부도와 떨어진 섬이었으나 약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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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서 이익의 고조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방울대감」은 부곡동 진주유씨 집성촌인 개멸마을에서 전승되는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의 고조할아버지가 방울을 자기 반성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일종의 수신담(修身談)이다. 1988년 6월 26일 경기도 안산시 부곡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유해엽[남, 78]으로부터 최내옥·김용덕·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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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2동에서 고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배기고개는 팔곡2동의 담원마을에서 본오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배기고개 이야기」는 시도 때도 없이 자꾸 넘어지는 손자를 고쳐 주려는 할아버지의 염원을 담은 지명유래담이다. 2004년 8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2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최정자[여, 57]로부터 이현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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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목내동에 있던 자연마을. 능안 서쪽에 있던 마을로 돌배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배나무라 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배나물로 되었다고 한다. 남쪽 지역은 큰말, 북쪽 지역은 작은말이라 불렀다. 조선시대에 안산군 와리면 이목리(梨木里) 지역이었다. 전주이씨, 안동김씨 등의 세거지로 1979년 폐동 때 60여 호가 거주하였다. 지금은 반월공업단지가 조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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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시대에 바닷물이 큰뱅골[船谷]까지 이르러 배가 닿았다 하여 배 ‘선(船)’자를 따서 배골[船谷]이라 하였는데, 후대에 이르러 뱅골이 되었다. 『전의이씨족보』에는 이골[梨谷]로 기록되어 있다. 큰뱅골에서 마을 북쪽 지역은 웃말, 동남쪽 지역은 건넌말, 서쪽 지역은 아랫말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와리면 선곡리라 하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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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시대 중엽 마을 동쪽 연안으로 배[梨]가 들어왔다 하여 배옷[梨湖]이라 하였고, 포구는 이호포(梨湖浦)라 불렀다. 마을 북쪽 지역을 웃말, 서남쪽 지역을 아랫말, 동남쪽 지역을 동끝, 동북쪽 지역을 우중굴이라 불렀다. 본오동은 조선시대에 성곶면의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1리~4리는 쉽게 마을 명칭이 결정되었으나 배옷 주민들과 선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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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풍수로 보아 백 가지 성(姓)이 살 곳이라 하여 백성말[百姓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1979년 반월공업단지 조성과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폐동되면서 원주민을 위한 이주 단지가 조성되어 원주민이 가장 많이 살던 지역이었다. 현재 원주민은 다시 이주하였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국경없는마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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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하동에 있는 자연마을. 넓은 들판에 형성된 마을이므로 벌말[坪村]이라 하였다. 본래 벌말과 개다리 사이에 마을이 있었는데, 서해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아 넓은 벌판이 되자 조선 말엽 곤양배씨(昆陽裵氏), 풍양조씨(豊壤趙氏), 순흥안씨(順興安氏) 등이 차례로 정착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벌말이 있던 장하동은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군내면(郡內面) 장하리(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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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원래 들이 넓어 밭을 가는 농부가 소를 크게 꾸짖는다는 뜻으로 질우지(叱牛地) 또는 기로지(耆老地)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군내면(郡內面) 부곡리(釜谷里)와 신리(新里) 지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에 안양시 안양3동 후두미에 살던 유원형(柳元馨)이 농사를 짓기 위해 옮겨 정착한 뒤 개멸·시랑골 등에 살던 주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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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에 있던 자연마을. 초지동 하나골 서쪽에 있던 마을로 풍수로 보아 마을 뒤에 있는 안산(安山)이 범[虎]이 동쪽을 곧게 내려다보는 형상이라 하여 범직(凡直)이라 하였다. ‘범(凡)’은 ‘범 호(虎)’자의 뜻을 소리 나는 대로 음을 빌려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해김씨 참판공파 가전(家傳)에 따르면, 조선 현종 때 김해김씨 금녕군의 12세손인 김무승(金武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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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던 자연마을. 옛날에는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와 염벗을 만들어 소금을 굽는 곳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벗말이라 하였다. 특히, 현재의 북1리와 북5리 일대를 상동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이곳에 남양부사와 절도사 등이 주재한 데서 유래한다. 현재는 포도밭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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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서 별망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별망산과 어부의 아내」는 바다가 고잔동·성포동·월피동까지였던 옛날의 이야기로서 별망산의 지명유래담이다. 초지동 둔배미는 안산의 큰 포구로 봄부터 성시를 이루어 멀리는 충청남도 당진·태안·안흥 등지에서도 배가 드나들었다. 출어를 하는 배는 둔배미에서 떠나게 되어 있고, 초지동 별망뿌리를 거쳐야 뱃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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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서 별초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별망성과 별초무」는 대부별초군(大阜別抄軍)이 별망에서 전투 연습으로 추던 별초무(別抄舞)에 대한 유래담이다. 단원구 초지동 끝자락의 바닷가에는 별망산이 있고, 별망산에는 별망성(別望城)이 있다. 그 별망성이 있는 곳이 별망이라는 동네이다. 별망성은 조선 초기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해안으로 침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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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월피동에 있던 자연마을. 다리피 동남쪽에 있던 마을로 구전에 따르면,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 산세가 안정감을 주어 마치 노적을 쌓은 것처럼 생겼다 하여 노적봉(露積峯)이라 하였고, 뒷산[지금의 부원빌라 동쪽]은 말의 형상을 하고 있어 말미산이라 불렀다. 또 동북쪽에 있는 산[초계정씨의 선산으로 1989년 양궁경기장이 들어섰다]은 소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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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삼밭과 항가울 사이에 있던 마을로 골짜기 전체가 흙이 부드럽고 고와서 분대(粉垈)라고 하였다. 조선 연산군 때 사화(士禍)가 일어나자 통덕랑에 재임 중인 최혼(崔渾)이 낙향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후 최혼의 양주최씨 후손들이 긴곳·삼밭·초당·감자골 등지로 분가하면서 일가를 이루었다. 1979년 폐동 당시 19호의 민가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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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 있는 섬. 1864년에 간행된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처음으로 불도(佛島)의 기록이 보인다. 옛날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던 중 그물에 조그만 부처가 걸려 나와 그 부처를 자기 집으로 가져와 불당을 만들어 모셔 놓고 정성을 드렸는데, 당시 불당이 있던 곳을 불접리(佛接里), 섬 이름을 불도라 하였다 한다. 지금은 시화방조제의 완공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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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에 있던 자연마을. 풀이 자생할 수 없을 만큼 토질이 붉고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 뒷산이 마치 섬처럼 보여 붉은섬이라 불렀다 한다. 마을 앞에는 유명한 붉은섬 낚시터가 있었다. 붉은섬은 조구나리 서남쪽에 있던 마을로 1962년 이은구[김포 출신]·최구완[황해도 출신]·원충희[당진 출신] 등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붉은섬이 있었던 이동(二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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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칠보산 자락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로 토질이 운모[돌비늘]가 많이 섞여 반짝거리는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비늘치골짜기는 깊고 풍경이 아름다워 안산시민들이 많이 찾고 있다. 비늘치가 있던 사사동은 조선시대에 광주군(廣州郡) 월곡면(月谷面) 사사리(沙士里)였다가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따라 안산군 월곡면 사사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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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묻치배미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사동 묻치배미」는 상록구 사사동 산78번지에 있는 이흥상(李興商)[?~1465]의 묘와 연관된 지명유래담이다. 배미는 논배미를 지칭하므로 묻치배미는 ‘묘비를 묻은 논배미’를 의미한다. 2004년 10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배호순[남, 66]으로부터 이현우가 채록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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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사세충렬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사세충렬문 이야기」는 병자호란 때 4대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이 피난을 갔으나 오랑캐에게 욕을 당할 수 없다 하여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한 열녀투신담이다. 와동에는 사세충렬문이라는 정문(旌門)[충신·효자·열녀 등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집 앞이나 마을 앞에 세운 붉은 문]을 모신 건물이 있다. 1989년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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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사질이는 사사리(沙士里)의 옛 이름으로 지역에 반짝이는 모래[운모]가 많고,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질이는 1860년경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월곡면 사사리라 했다가,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따라 안산군 월곡면 사사리가 되었다.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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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던 자연마을.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마을 형상이 우물과 같다 하여 산우물[山井]이라 하였다. 본오동에 속하기 전에는 사동에 속한 마을로 막고지 북쪽에 있었다. 광산김씨, 전주이씨, 풍양조씨, 김해김씨, 의령남씨 등이 세거하였고 특히 전주이씨가 번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서당(書堂)이 있었을 만큼 교육열이 높은 곳이었다. 1987년 신도시 건설 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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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물고기 저장소가 있던 곳의 옛지명. 살막이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할 조기를 어부살[살막재에서 서쪽으로 약 3~4㎞ 지점]에서 잡아 이곳 빙고(氷庫)에 저장했던 곳이란 뜻으로, 마을에서는 보통 ‘핑고구뎅이[氷庫구뎅이]’라 하였는데, 본래의 이름은 사옹원 분원(司饔院分院)이다. 사옹원 분원 건물은 1910년대에 헐려 없어지고[당시 군자면사무소를 짓는 데 사옹원 분원의 목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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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산이 터미산이다. 간혹 테미산으로도 불리지만 마을 사람들은 주로 재밋산이라고 한다. 산 정상이 움푹 파여 마치 사람 머리의 둘레[테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런데 조희찬 옹에 따르면, 터의 끝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라고 해서 터미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터미산의 정상에 세워진 삼국시대 산성이 터미산성이다.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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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이리(二里)와 사리(四里) 사이에 있는 마을이므로 삼리(三里)라 하였다. 마을 북쪽은 아랫말, 남쪽은 웃말, 동쪽은 한우물이라 불렀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샘골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밀양박씨가 정착한 이래 양주최씨, 김해김씨 등이 세거하였다. 조선시대에 광주군(廣州郡) 성곶면(聲串面) 삼리(三里)라 하였고, 1906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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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주변으로 세 개의 골짜기[막골, 소[우]물골, 텃골]가 내 ‘천(川)’자 모양으로 뻗어 있어 삼천리(三川里)라 하였다고 한다. 막골, 텃골, 메골 등 세 개의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 하나의 하천으로 모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우물이 세 군데 있어 샘 ‘천(泉)’자를 써서 삼천리(三泉里)라는 설, 언젠가는 삼천 가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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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삼천리 에 사는 장동호 씨는 반월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장동호 씨의 아버지는 반월초등학교의 전신인 반월보통학교를 다녔다. 장동호 씨의 아들과 손자 손녀가 모두 반월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윗삼천리에 사는 조희복 옹도 반월초등학교를 졸업했고, 아들과 손자 손녀들도 모두 반월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예로 든 위의 두 사람뿐만 아니라 삼천리에 사는 사람들은 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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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건동 삼천리 마을은 전형적인 농촌 마을로 마을 사람 대부분이 농업을 생업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논농사보다는 밭농사의 비중이 커서, 논농사는 집에서 먹고 가까운 친척들에게 보낼 정도만 짓는다. 쌀농사를 열심히 지어도 실제로 들이는 비용과 노력에 비해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기울이는 농사는 밭농사, 특히 채소 재배에 집중되어 있다. 삼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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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의 「지경다지기 소리」는 집터를 다질 때 부르는 노동요이다. 지경다지기는 ‘지경닺이’라고도 하여 집을 지을 때 집터를 고르고 기둥을 세울 자리의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새 집을 지을 때 기초 공사로 시멘트를 사용하여 집의 바닥을 다지지만, 시멘트가 개발되어 들어오기 전에는 그런 방법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기에 집터를 단단히 다지기 위해 생각해 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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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다지 소리」는 사자(死者)를 장례지내는 장례 의식 중 분묘(墳墓)를 완성할 때에 부르는 노래로서 지방에 따라 「달구 소리」, 「달구질요」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회다지’는 땅 속에 매장한 시신에 물이 스며들지 않고, 장사를 지낸 후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분묘의 형태가 변하거나 뭉개지지 말라고 차곡차곡 다져주는 작업이다. 또는 산짐승에 의해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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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농사이다. 하지만 남부 지방처럼 대규모의 농업이 이루어질 만큼 농토가 넓지 않아 지역의 입지를 최대한 이용하는 근교농업이 발달했다. 삼천리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고추, 콩, 고구마 순을 많이 재배하였으나 1980년대 들어와 마을 주변에 대도시들이 하나 둘씩 건설되면서 이곳 시민들에게 필요한 채소를 공급하는 방향으로 농사가 이루어졌다.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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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는 원래부터 안산의 끝에 숨겨진 한적한 마을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마을 앞 장고개를 넘어 반월장터로 바로 갈 수 있었고, 학이 내려앉았다는 학좌고개를 넘으면 지금은 군포시에 포함된 둔대리를 지나 과천으로, 또 서울로도 갈 수 있었다. 수원으로 가는 길도 편해서 안산 지역에서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런데 지금은 왜 외부와의 교류가 활발하지 않고 안산의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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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에 있던 자연마을. 바닷가가 가까우면서도 샘이 많이 나고 물맛이 짜지 않고 아주 좋아서 샘골[泉谷]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화성군 반월면에서 수질 검사를 한 결과 이 마을 우물의 수질이 가장 뛰어났다고 한다. 조선 말엽 남양홍씨 문희공파(文僖公派) 23세손인 홍의경(洪義卿)이 처음으로 정착한 이래 후손이 대대로 살아 온 곳이다. 폐동 당시 남아 있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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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는 자연마을. 풍수로 보아 마을 형상이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하여 샛뿔[新角]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정길섭(丁吉燮)[정봉진 전 안산문화원장 조부]이 이곳에 신흥학교(新興學校)를 설립하면서 새 학문을 익혀 깨달아야 잘살 수 있다는 의미로 ‘깨달을 각(覺)’자를 써서 ‘샛뿔[新覺]’로 개명하였다고 한다. 샛뿔은 능길과 시흥시 거모동 도일 사이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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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창말에 있는 고개. 매년 정월 초이틀에 소를 잡아 놓고 당제를 지내던 서낭당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동장씨 종중 땅으로 서낭당 앞으로 반월동과 군포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확장되고 반월장에서 삼천리로 가는 길이 생기면서 지금은 삼거리 한쪽에 치우쳐 있게 되었다. 서낭당 당목은 엄나무이며 당제를 지낸 후에는 웃말, 가운뎃말, 아랫말의 우물에다 엄나무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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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에 있던 큰 돌 하나가 멀리서 보면 마치 세 개의 바위가 나란히 있는 것처럼 보여 석삼말[石三村]이라 하였다. 호동초등학교와 수인산업도로 사이에 있던 마을로, 1977년 폐동 때 모두 7가구가 있었는데 4가구는 일동에, 3가구는 이동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호동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4차선 도로와 성호공원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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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 태종 때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진 김정경(金定卿)[1345~1419]의 손자인 김맹전(金孟銓)의 묘를 만들면서 묘 앞에 세울 빗돌[碑石]을 배편으로 옮겨 와 이곳에서 직접 석수장이들이 돌을 깎아 세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미울 동쪽 마을로 안산김씨[또는 연성김씨]의 세거지이다. 김맹전의 묘를 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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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초입에서 구라 사이에 있는 산에 흰 차돌[일명 쉰돌박이]이 많이 박혀 있고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이곳까지 들어왔다고 하여, 차돌에서 ‘석(石)’자를 취하고 바다에서 ‘호(湖)’자를 취하여 석호(石湖)라 불렀다고 한다. 뒷골 서쪽에 있던 마을로 양주최씨와 김해김씨 등의 세거지였다. 1979년 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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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석호마을 서낭님과 호랑이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11월 25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서 이덕봉[남]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7년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김완태[남, 70]가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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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사공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선감도 나룻배 사공」은 일제강점기에 선감도 나룻배 사공 박신태[곰보사공]와 관련된 민담이다. 즉 창씨개명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갈등을 김완수·윤기은·박신태 등의 의견을 중심으로 서사 형태로 진행하는 애국담이다. 1997년 이현우가 선감도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동열[남, 69]로부터 채록하였는데, 이는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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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자연마을. 옛날 선녀가 하강한 마을이라 하여 선녀마을이라고 하다가, 선부리[선부동]로 바뀌었다. 선부동은 달미(達美)라고도 하였는데, 선녀들이 목욕한 석수골 우물물에서 목욕을 하면 미인이 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대월면 선부리와 달산리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군자면 선부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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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서 선녀들이 놀다 간 선부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6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김순봉[남, 70]이 구연한 것을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내고장안산』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7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서 윤용현[남, 72]이 구연한 것을 이정태가 채록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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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에 있는 자연마을. 지형이 풍수지리상 선학혈(仙鶴穴)에 해당하고, 1940년대 말까지만 해도 마을 노송 지대에 백로 떼가 모여들어 신선과 학들의 서식처와 같았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선학골저수지가 낚시터로 바뀌고 전원 음식점이 몇 개 들어섰을 뿐 지금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마을 진입로도 여전히 농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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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에서 잿머리 성황제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성곡동 잿머리 성황제」는 단원구 성곡동의 잿머리에서 매년 행해지고 있는 성황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유래담이다. 경순왕에게 소박맞고 죽은 홍씨 부인과 안씨 부인의 혼령을 위로한 서희에게 무사히 송나라에 다녀올 수 있도록 했다는 보은담이기도 하다. 1988년 5월 25일 안산시 선부동으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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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있던 자연마을. 지금의 스타프라자에서 서남쪽으로 약 300m, 남쪽으로 약 400m에 이르는 곳이 마을의 나루터[성머리나루터]였는데, 풍수로 보아 성포리[지금의 성포동] 머리 부분에 해당하므로 성머리[聲頭]라고 하였다고 한다. 성포리는 어업의 전진 기지로, 만선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어부들의 소리가 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잔동 태봉과 독주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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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던 자연마을. 목내산성(木內山城) 안에 있는 마을이므로 성안[城內]이라 하였다. 본래 풍전에 속했던 마을로 처음 안동권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었다. 1979년 반월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폐동될 때에는 20여 호 남짓한 민가가 있었다. 현재 한국전력변전소 등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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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서 지네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성포동의 지네당터」는 성포동의 노적봉 성황당과 관련된 동물설화로 두꺼비가 자신을 돌봐준 주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지네를 퇴치한다는 보은담이다. 1988년 경기도 안산시 성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노희성[남, 54]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내고장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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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서 매년 5월 성호 이익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백일장. 성호백일장은 성호문화제 행사의 일환으로 초·중·고교생 및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글짓기대회이다. 1996년 5월 18일부터 23일까지 5일 동안 개최된 제1회 성호문화제에서 이익(李瀷)의 학덕을 기리고 애향심 고취와 청소년들의 문학적 소양을 향상시킬 것을 목적으로 제1회 성호백일장을 시작한 이래 매년 5월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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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마을이 속해 있는 건건동의 행정동은 반월동으로, 안산시에서 가장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다. 인천에서 수원으로 가는 국도 42호선을 타고 안산 외곽을 돌아 지나면 용담뿌리를 거쳐 반월동으로 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반월농업협동조합 건물 앞에서 옆으로 난 좁은 도로를 500m 정도 가다 보면 위로는 반월저수지로 가는 길, 오른쪽으로 삼천리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표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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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소금장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소금등거리 소금장수」는 날씨를 예견하는 능력을 지닌 소금장수가 호랑이에게 은혜를 베풀고, 그 보은의 대가로 천자의 병을 고쳐 부귀영화를 누렸다는 보은담이다. 1989년 5월 29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박영태[남, 89]로부터 최내옥·김용덕 등이 채록하였는데, 이는 1989년 한양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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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이웃이라 하였다. 한편으로는 마을 포구에 조깃배가 많이 들어왔고 조기가 많이 잡힌다 하여 조기나루, 또는 조구나리라고도 하였다. 송호(松湖)라는 이름도 있고, 1980년 취락 구조를 개선한 마을이라 하여 일명 ‘취락마을’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솔이웃은 성포동 성머리나루와 함께 어업의 전진 기지 구실을 하였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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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고목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송골매 우는 고목」은 수암동의 안산 관아 터[동헌 터] 고목에 얽힌 송골매의 울음소리로 인하여 범인을 잡았다는 신이담(神異談)이자 남편의 살인을 고발하는 악행담이다. 1989년 5월 16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당시 시흥군 수암면 수암리]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한욱[남, 80]으로부터 최내옥·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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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조기나루와 청룡두, 청룡미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5월 16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에서 최내옥, 김용덕, 강경화, 이정임, 송현정이 채록하여 1989년 한국학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한강[남, 당시 55세]이었다. 이후 1999년 이정태가 재정리하여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에 전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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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수암봉 장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7월 4일 경기도 안산시 수암동[당시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수암리]에서 이봉철[남, 72]이 구연한 것을 최내옥·김용덕·유태용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이후 이정태가 다시 정리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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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로 들어오는 수도권 전철 안산선에서 전원 풍경이 가장 살아 있는 역이 반월역이다. 반월역은 사람들의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고즈넉한 간이역과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오이도[안산]행 전철을 타고 반월역을 지나다 보면 지하철 안산선에서 가장 긴 안산터널을 지나게 된다. 그리고 터널을 지날 즈음 열차는 고즈넉한 농촌의 풍경을 보여준다. 4계절의 변화가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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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시동에 있던 자연마을. 예로부터 모내기 철만 되면 비가 와 연년세세 풍년이 든다고 하여 시꿀[時雨洞]이라 하였다고 한다. 시꿀 서북쪽은 웃말, 동북쪽은 서런말, 동쪽은 우덕골, 동남쪽은 사탯말, 서남쪽은 논말, 북쪽은 양지촌이라 불렀다. 범직이 동쪽에 있던 시꿀은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와리면(瓦里面) 시우리(時雨里) 지역이었다. 남양홍씨·밀양박씨·청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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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의 딸 정정옹주(貞正翁主)와 남편인 진안위(晋安尉) 유적의 합장묘가 부곡동 동쪽 산기슭[제일스포츠센터 앞]에 있는데, 유적이 생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역임했다 하여 시랑골[侍郞谷]이라 하였다. 시랑골은 신촌과 시랑운동장[전 양궁경기장] 사이에 있던 마을로 유시행(柳時行)의 후손인 진주유씨의 세거지이다.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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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 말기 육지에서 이주한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정자를 크게 짓고 신당(神塘)이라 명명한 뒤로 마을 이름도 신당리[新塘谷]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마을에 안방죽·새방죽 등으로 불리는 방죽이 있어 당(塘)자를 ‘연못’이 아닌 ‘방죽’의 의미로 풀이하면 ‘새 방죽을 쌓은 동네’, 즉 신당리가 된다는 설도 있다. 신당리에는 다음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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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던 자연마을. 초지동 둔배미 동남쪽에 있었던 마을로 둔배미에 딸린 마을이었다. 신촌은 6·25전쟁 직후 황해도 난민들이 정착하면서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80년대 초에 신도시 개발로 폐동되어 당시 살던 4가구가 모두 이주하였다.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고잔신도시 개발 때에 원당마을이라는 전원주택 단지가 조성되었고, 원당마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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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 사찰. 옛날 한 승려가 잠을 자고 있었는데 현몽하기를, 우물에서 용 다섯 마리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승려는 꿈에서 본 장소를 생생하게 기억하였는데, 큰 물 위에 산이 있고 그 산중에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 승려는 꿈속에서 본 장소를 찾으러 다니다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도에 이르러 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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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자연마을. 바닷물이 들어왔을 때 쑥 들어간 갯고랑 가장자리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쑥께라고 하였다. 달미와 화정동 사이에 있던 마을로, 조선 말엽 최참봉(崔參奉)이란 사람이 처음 옮겨 와 살았다고 한다. 최참봉이 살던 집은 일제강점기에 수암동·거모동 간 도로 확장 공사 때 헐렸고, 일제강점기 말엽 민가 5가구가 터를 잡았다. 6·25전쟁 전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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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있는 자연마을. 시흥시 장하동 원뒤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로 웃버대 아래에 있어 아랫버대[下楊垈]라고 한다. 웃버대는 마을 동남쪽에 있는 강징(姜澂)[1466~1536]의 묘가 풍수로 보아 꾀꼬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집을 짓고 사는 앵소유기(鶯巢柳技) 형국이므로 마을 하천 둑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은 뒤로 마을을 ‘버들촌’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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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던 자연마을. 웃말 동쪽 삼태기처럼 오목한 곳에 있다 하여 안골[內谷]이라 하였다. 안골은 단성이씨 누대의 세거지로 1989년 폐동 당시 20여 호가 있었으나 모두 이주하고 현재는 안산1대학이 들어서 있다. 조선 말엽 안동김씨 세도에 밀려 이조판서를 지낸 김수근(金洙根)[1798~1854]과 영의정을 지낸 김병국(金炳國)[1825~1905] 등의 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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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교 합창단. 안산불교연합 금강합창단은 부처님의 자비 및 자유평등 사상을 담은 음악을 전파하여 상실되고 있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일깨우고 윤리 도덕관을 재정립하는 불교 포교 활동과 적극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통한 복지 사회 구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2001년 3월 20일 안산시 불교연합회 소속 안산불교합창단으로 창단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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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관내 사찰들의 협의회 단체. 안산시 불교연합회는 불교 중흥과 포교 사업의 활성화를 기하기 위하여 안산시 관내 불교 사찰의 주지들로 구성된 단체이다. 안산시 불교연합회는 불교 사찰들이 종파를 초월한 단합을 통하여 안산시민들을 위해 봉사하고 불교 관련 행사를 주관하며 불교 포교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93년 창립되었으며, 고려선원 승려 영산이 초대 및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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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던 자연마을. 광덕산(廣德山) 앞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압술 또는 압실, 전촌(前村)이라 하였다. 압술의 북쪽 지역은 아랫말, 남쪽 지역은 웃말, 아랫말 남쪽 지역은 안터라 불렀다. 압술은 와동 지역에서 최초로 형성된 마을이다. 압술이 있던 와동은 조선시대에는 안산군 잉화면 와상리와 와하리이었다가, 1914년 3월 1일 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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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약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약바위」는 와동 약바위골에 전승되어 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30세가 넘은 가난한 농부의 지극한 백일기도에 감동한 산신령이 80세난 모친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신비한 약수를 주었다는 효행담이기도 하다. 1983년 경기도 안산시 와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순봉[남, 67]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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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신도시 개발 당시 안산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백성말 동쪽에 있던 마을이다. 남향받이 양지바른 곳에 있어 양지마을[陽谷, 陽地]이라 하였다. 동서로 길게 형성된 마을로 동쪽 지역인 중소기업연수원 입구 지역을 아랫말, 원곡1동사무소가 있는 서쪽 지역을 웃말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 안산군(安山郡) 와리면(瓦里面) 원상리(元上里)에 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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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는 자연마을. 칠보산 아래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므로 양짓말[陽村]이라 하였다. 마을 가장 위쪽에 있고 예전에는 양반들이 많이 살아서 상촌(上村)이라고도 하였다. 현재 양짓말은 수인산업도로로 양분되어 있으며 현대아파트와 연립 주택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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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뜰 은 윗삼천리 아래로 흐르는 삼천천의 주변에 형성된 논밭이다. 뜰을 가로 질러 개천이 흐르는데, 이 개천 주변에 여기풀[정식 명칭은 여뀌]이 많다고 하여 여기뜰이라 불린다. 여뀌는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키가 40~90㎝ 정도 자란다. 물고기를 기절시킬 정도의 독성분이 있어서 ‘어독초(魚毒草)’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지금은 한낱 잡초로밖에 취급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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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개구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와리와 개구리」는 와동의 명칭은 개구리에서 유래되었고, 와동의 와자가 원래는 개구리 와(蛙)자였다고 주장하는 지명유래담이다. 농부는 개구리를 살려 주는 은혜를 베풀고 그에 대한 보은으로 화수분 쌀바가지를 얻었다는 동물보은담이기도 하다. 1983년 경기도 안산시 와동에서 이한기가 채록하여 1990년 내고장안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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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서 왕주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왕주물」은 대부북동의 종현마을에서 가장 큰 우물에 얽힌 유래담이다. 현재 우물의 모습은 흔적도 없으며, 그 귀신 이야기만이 전승되고 있다. 1996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종현마을에서 이정태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실려 있다. 안산시 단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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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주민들이 힘을 합쳐 마을에 침입한 왜인(倭人)을 두들겨 물리쳤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왜두둘기는 본래 압술에 속했던 마을로 압술과 동작리 사이에 있었다. 왜두둘기에는 임씨가 정착한 이래 고성이씨, 안산김씨 등이 세거해 오다가 1987년 안산 신도시계획에 따라 당시 거주하던 28가구 대부분은 와동의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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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복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왜병에 복수한 왜독마을 어머니」는 자기 딸을 욕보인 왜병에게 복수한 처녀 어머니의 복수담과, ‘왜독’이란 지명이 ‘왜두들기’로 바뀌게 된 지명유래담이다. 1989년 5월 18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순봉[남, 73]으로부터 최내옥·김용덕·강경화·이정임·송현정 등이 채록하였는데,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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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서 용담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용담불과 산신제」는 용 모양 같은 연못을 용담불이라 하고, 용의 혀를 닮았다고 해서 용마갈이라 칭한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용과 자라가 자갈을 주워가면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암석재앙담이기도 하다. 1988년 6월 27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유진한[남, 51]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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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는 산자락. 뒷산 모양이 서쪽은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고 동쪽은 용의 꼬리처럼 생겼으므로 산 아래 깊은 못은 용담(龍潭), 산자락은 용담뿌리, 위쪽은 용아가리라 하였다. 용아가리에는 예전에 활을 쏘던 활터가 있고, 6·25전쟁 때 반월초등학교가 불에 탔을 때 야외 학습장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용담뿌리 아래로 반월동에서 화성시 비봉으로 이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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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는 자연마을. 동쪽은 오봉산, 남쪽은 안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우산처럼 둥근 지형 안에 자리 잡은 마을이므로 우산(于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산모퉁이에 있는 마을이어서 우산(隅山)이라 하였다고도 한다. 예전에는 대쟁이를 아랫말, 우산이를 웃말이라 부를 만큼 대쟁이와 한 마을로 불렸다. 우산이는 대쟁이 동북쪽에 있다. 안산신도시 개발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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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 앞바다에서 궁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우음도의 궁살」은 고기를 잡아 임금님께 진상하던 궁살의 내력담이다. 궁살이란 사동 앞바다에 쳐 놓은 그물[독살]을 일컫는다. 1988년 11월 14일 안산시 원곡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이제덕[남, 51]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내고장 안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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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있는 자연마을. 웃버대는 마을 동남쪽에 있는 강징(姜澂)[1466~1536]의 묘가 풍수로 보아 꾀꼬리가 버드나무 가지에 집을 짓고 사는 앵소유지(鶯巢柳枝) 형국이므로 마을 하천 둑에 버드나무를 많이 심은 뒤로 마을을 ‘버들촌’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버들촌의 위쪽에 해당하므로 웃버대라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엽까지만 해도 버드나무가 많았으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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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 마을에서는 약 50여 년 전까지도 터미산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마을 입구의 서낭당에서 서낭제를 지냈다. 터미산 산신제는 삼천리 마을 사람들이 모두 참여하는 중요한 마을 제사였다. 산신제는 매년 정월 대보름 안에 천문역법을 잘 아는 마을 어른이 정하는 길일을 택하여 터미산 정상 부근의 서낭[참나무]에서 지냈는데, 제관은 지난 1년간 집안에 좋은 일이 생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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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일대에서 유복자의 재산 찾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경기도청에서 발간한 『경기도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에 재수록하였다. “원참, 별일도 다 있네. 어린 새댁이 상제(喪制)가 된 신랑한테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증서를 써 달라 하니.” 이것은 신랑 부친의 장사 마당에서 뭇사람끼리 웃고 쑥덕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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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시흥 지역[조선시대 안산군]에서 유부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유부자」의 전승 지역이 시흥 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나 전해지는 지역이 불분명한 설화이다. 다만 호랑이에 대한 내용은 상록구 사동 지역에 전승되는 「소금등거리 소금장수」 설화와 흡사하다. 1988년 경기도청에서 발간한 『경기도 전설지』에서 발췌하여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 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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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마을에 있는 들. 뜰을 가로 질러 흐르는 삼천천[웃삼천이에서는 여기천이라 불렀다]에 여뀌가 많아 여기뜰 또는 으기뜰이라 하였다. 으기뜰은 웃삼천이 아래로 흐르는 삼천천 주변에 형성된 경작지로 전철 4호선 공사 때 금정역과 반월역 사이에 전철 둑을 만들면서 둘로 나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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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장상동에서 은우물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은우물」은 날이 가물어 농사짓기가 힘들 때에 고사를 올리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는 우물영험담이다. 1988년 경기도 안산시 장상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강희갑[남, 60]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88년 시흥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시흥군지』에 실려 있다.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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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에서 장유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은혜 갚은 장유신」은 부모가 없어 방랑하는 불쌍한 고아를 데려다가 길러준 장재상의 은혜를 갚고자 숙민의 아들[장재상의 손자]이 역적의 아들로 낙인 찍혀 죽을 고비에 이르자 자신의 아들과 바꿔치기 하여 장재상의 대를 이어 주었다는 유신 부부의 보은담이다. 1989년 6월 3일 경기도 안산시 이동으로 현지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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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에서 마을 풍속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이동의 독특한 풍속」은 이동에 있는 각 자연부락의 지역별 독특한 금기의 풍속을 소재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다. 즉 이동에 소속된 자연부락인 도관·움트기·양지편·조구나리·고잔마을 등에서 지역별 특성에 따라서 하면 안 되는 일을 알려주는 금기담이다. 1989년 6월 1일 경기도 안산시 이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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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의 중심에서 삼천리 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수인산업도로를 타고 가다 용담길을 지난 뒤 반월길에서 반월농업협동조합 건물 앞에서 옆으로 난 좁은 길을 타고 가야 한다. 아니면 반월장터에서 반월역을 지난 뒤 전철둑 아래를 거쳐 윗삼천리로 들어오는 길을 이용해야 한다. 안산 시내를 거쳐 반월동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는 일반버스 노선 3개와 좌석버스 노선 1개가 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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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과 군포시 둔대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 반월동 남산뜰에서 반월저수지 왼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둔터[둔터골]가 나오는데, 현재는 군포시에 속하지만 전에는 반월면 둔대리이었다. 이 마을에서 서쪽 산등성이 고개를 넘어가면 안산에 이르게 된다. 안산 지역에서 수원을 가려면 이천이고개를 넘어 둔터·대감·대야미를 거쳐야 하는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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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서 인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조 임금과 대부도 처녀」는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을 피하여 피난 온 인조 임금에 대한 대부도 처녀의 절의담이자 인조 임금의 보은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1989년 옹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옹진군지』에 수록되었다[채록일자, 채록자, 제보자 미상]. 1997년 경기도 안산시 대부북동 종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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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서 은행나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인조와 은행나무」는 인조(仁祖)가 이괄(李适)[1587~1624]의 난을 피해 풍도에 피난 온 기념으로 후망산 정상 부근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는 식물유래담이다. 1989년 옹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옹진군지』에 수록했다[채록일자, 채록자, 제보자 미상]. 1997년 경기도 안산시 풍도동으로 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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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리마을에 근대화된 고구마 재배법을 전파한 오오야마[大山]라는 일본인이 언제 안산 지역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의 처가가 육군 장성 집안이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상당한 권력을 배경으로 활동했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1933년 7월 27일자 『매일신보』의 “牛豚 1頭 鷄 30首 每戶마다 飼育 -漸滅하든 팔곡진흥기세 산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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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삼천리 마을의 고구마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거듭되는 전쟁으로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지자, 일제는 전쟁을 계속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후방에서 동원해 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이 식량의 약탈이었다. 부족한 식량과 물자를 한국에서 약탈한 결과 한국에서는 더욱 식량이 부족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마가 구황작물로 각광을 받았다. 고구마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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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에서 돌부처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작산 돌부처」는 현 강서고등학교 뒷산인 봉지산에 있는 중방모퉁이에 얽힌 돌부처[중의 모습을 닮은 바위]의 생성유래담이다. 폐사된 절 때문에 세속의 욕망에 빠진 스님을 신비한 여인이 등장하여 깨우쳐 주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86년 4월 9일 경기도 안산시 와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순봉[남,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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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성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잿머리는 성두리(城頭里)라고도 하였는데, 도란말, 안말, 골우물의 세 마을을 아울러 이르는 명칭이다. 성두리는 도란말에 있는 성황당을 신성시하여 주변에 성(城)을 쌓고 마을 주민들이 대대로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성곡동은 성두리[잿머리]의 ‘성(城)’자와 무곡리[무들]의 ‘곡(谷)’자에서 한 자씩 따 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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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던 자연마을. 아주 먼 옛날 이 마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살던 노파가 두 아들이 잘되게 해 달라고 집 앞 고갯마루에 있는 성황당에서 1년 동안 치성을 드렸다. 하루는 노파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 어느 곳의 땅을 파 보라고 하므로 일러 준 대로 하니 땅속에서 황금이 나왔다고 한다. 이후로 이 마을을 적금(積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뒤 수많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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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적금마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적금마을」은 고잔동의 자연부락인 적금마을의 지명유래담이다. 반재월 노파의 지극 정성에 대한 보답으로 서낭신은 금덩이를 주었고, 그 결과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노파가 죽자 금을 탐낸 동생이 형을 살해하고 자신도 형을 죽인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천벌을 받았다는 ‘권선징악’ 내용이다. 198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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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불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절골마을의 불사」는 문중의 대가 끊긴다는 말에 사찰을 짓고 백일기도를 드려서 자손 단절의 위기를 벗어났다는 노승의 예언담이자 일종의 사찰연기담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설화이다. 1986년 4월 9일 경기도 안산시 와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김순봉[남, 70]으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0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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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포동에 있던 자연마을. 성호 이익(李瀷)[1681~1763]이 이곳에서 별을 관측하였다 하여 첨성(瞻星)이라 하였다가 이익이 세상을 떠난 뒤 미신의 의미가 내포된 점성(占星)으로 바뀌었다. 이익이 살던 동쪽 지역은 탑이 있던 곳이라 하여 탑골[塔洞], 남쪽 지역은 아랫말, 서쪽 지역은 건넌말이라 불렀다. 조선 성종 때 병조판서를 지낸 이계손(李繼孫)[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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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서 정수암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정수암 창건 이야기」는 스님이 잠을 자고 있는데 우물에서 용 다섯 마리가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현몽하여 사찰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깨닫고 정수암(精水庵)을 지었다는 사찰연기담이다. 1989년 옹진군지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옹진군지』에 실려 있다[채록일자, 채록자, 제보자 미상]. 1999년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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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던 자연마을. 부곡동의 벌터와 신촌 사이에 있던 마을로, 조선 숙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유명현(柳命賢)[1643~1703]이 현 안산시 정수장 밑에 살았으므로 유명현의 아호를 따서 정재골[靜齋谷]이라 하였다. 유명현의 아들로 안동판관을 지낸 유래(柳徠)[1687~?]가 이곳에 사당을 지은 후[일제강점기 중엽에 폐사] 후손인 진주유씨들이 세거하면서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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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있는 여섯 개 섬 가운데 하나. 정초리섬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무인도로 동경 126° 28′, 북위 37° 24′에 자리 잡고 있다. 유인도인 육도(六島)에서 2㎞, 대부동사무소에서 22㎞ 거리에 있다. 면적은 18,000㎡, 둘레 200m, 높이 20m, 길이 300m, 폭 100m이다. 주변에서 굴, 소라, 민어, 새우 등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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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주교리·독선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주교리의 유래와 독선당」은 주교리의 지명유래담이자 독선당 현판의 유래담이다. 독선당 최혼(崔渾)은 통덕랑으로 학문과 덕행, 특히 예법에 명성이 높았다. 연산군 때 사화를 피해 감자골로 입향하여 벼슬을 하지 않고 독선당에서 자적자수(自適自修)한 인물이다. 1982년 11월 4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으로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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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주더리는 구슬 ‘주(珠)’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 주교(珠橋)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과 옛날 바닷가에 뱃줄을 매는 닻줄을 놓고 다녔다고 하여 주더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숙사 앞까지 배가 들어 왔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성곶면 삼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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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있는 자연마을. 대부도 남쪽 중앙부에서 남동쪽으로 반도처럼 돌출한 지역으로 1871년 작성된 대부도 지도에는 말부흥(末富興) 끝에 부항포(浮缸浦)라고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부항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겨진다. 부항포는 물 위에 떠 있는 항아리[또는 병] 모양의 포구라는 뜻이다. 『옹진군지』에는 산이 부엉이처럼 생겼다 하여 큰부엉이·작은부엉이라고 불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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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자연마을. 고려시대에 마을 뒷산 중턱에 있던 절에서 한 승려가 수도하다가 지장보살을 친견(親見)했다 하여 이 절을 지장사(地藏寺)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시대 안산여단 터 아래쪽으로 연암사(延岩寺) 동쪽 수암저수지 위에 있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약 30가구가 살았으나 수암저수지가 생기고 모 인사의 별장이 들어서면서 주위 땅을 매입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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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 있는 자연마을. 진두는 시화호가 형성되기 전 대부도에서 가장 큰 포구로 대부도의 관문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룻께라고도 한다. 대부도 동쪽 선감도를 마주보고 있었으나 시화호가 생기면서 대선방조제로 선감도와 이어졌고, 시화방조제로 대부도가 육지와 연결되면서 포구의 기능을 잃어버렸다. 배가 드나들던 바다는 간석지로 변모하였다. 2009년 3월 현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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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 있는 여섯 개 섬 가운데 하나. 잡목이 있는 임야와 초지가 형성되어 있다. 샘터 하나가 있다고 전해 온다. 질마섬은 동경 126° 19′, 북위 37° 15′에 자리 잡고 있다. 유인도인 육도에서 600m, 대부동사무소에서 22㎞ 거리에 있다. 면적은 150,000㎡, 둘레 2㎞, 높이 30m, 길이 700m, 폭 500m이다. 섬 일부가 채석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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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의 동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삼천리 마을은 그동안 마을의 대부분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어 주택을 새로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 최근 약 33,000㎡가 해제되기는 했으나 도로가 나지 않아 실제 개발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삼천리 마을이 안산의 도심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산시가 추진하는 도시발전계획의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하다는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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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시대 초부터 고을 일대의 양곡[또는 군량미]을 저장하던 창고가 설치되어 있어 창마을, 즉 창말[倉村]이라 하였다. 건건동 353번지의 농지는 지금도 창밭[倉田]이라고 한다. 땅을 파면 불에 탄 벼 알갱이가 발견되기도 한다. 창말에는 현재 대림아파트와 안산창촌초등학교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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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서 구라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천명을 먹여 살릴 구라」는 고잔신도시 개발 전에 있었던 사리포구에서 전승되던 지명유래담이다. 1989년 6월 5일 경기도 안산시 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박순배[남, 68]로부터 이한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내고장 안산』에 실려 있다. 그 후 1997년 사동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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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던 자연마을. 작은별망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 원초지(元草芝)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진(鎭)을 설치하고 이를 사곶영(沙串營) 또는 초지량영(草芝梁營)이라 불렀다. 1656년(효종 7) 강화도로 옮긴 뒤 원초지의 진을 1초지, 강화도의 진을 2초지라 하였다. 원초지는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형상이어서 남쪽 지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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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수암봉의 옛 이름. 봉우리의 생긴 모습이 독수리 머리 모양과 같다고 하여 독수리 ‘취(鷲)’자를 써 취암이라 하였다. 취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이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산천조에는 “(안산의) 진산은 취암(鷲岩)이다. 군(郡) 동쪽에 있으니, 동쪽은 과천(果川), 북쪽은 금천(衿川), 남쪽은 광주(廣州)의 경계가 된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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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 있는 산. 전각이나 문루 따위 전통 건물의 용마루 양쪽 끝머리에 얹은 매[鴟] 머리 모양의 장식 기와를 치미(鴟尾)라고 하는데, 산의 생김새가 이와 비슷하게 생겨서 치미산(鴟尾山)이라 부른다고 한다. 치미산 너머 삼천리에서는 건너치미라고 한다. 반월동사무소 뒤에서 창말까지 뻗어 있는 산으로, 반월동사무소 뒷산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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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는 한국불교태고종 소속 사찰. 칠보사는 경기도 수원시·안산시·화성시의 경계 지점에 걸쳐 있는 해발 232m의 칠보산(七寶山)에 위치해 있다. 칠보산은 예로부터 산삼·맷돌·잣나무·황금수탉·호랑이·사찰·장사·금 등 여덟 가지 보물이 있어 팔보산(八寶山)이라 하였으나, 황금수탉이 날아가고 없어졌으므로 칠보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1906년 이교설(李敎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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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석불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칠보사의 석불」은 사사동 칠보산에서 석조삼존불(石造三尊佛)을 발견하여 칠보사를 지었다는 석불유래담이자 사찰연기설화이다. 특히 이 설화의 후반부는 도리보살의 영험으로 소원성취한다는 기복담이다. 2004년 11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배호순[남, 66]으로부터 이현우가 채록하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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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가즌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가즌바위’란 사사동 칠보산 정상에 있는 바위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다 갖춘 바위를 의미한다. 「칠보산 가즌바위」는 분수 넘치는 욕심을 낸 석공이 가즌바위를 훼손했다가 죽게 되고, 팔보산에서 황금수탉이 사라져 칠보산으로 되었다는 과욕담이다. 2004년 11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으로 현지조사를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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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서 황금닭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칠보산 황금닭」은 우연히 황금닭을 얻은 장서방을 도적떼가 죽이고 황금닭을 빼앗자 황금닭마저 죽어 팔보산이 칠보산으로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또한 황금닭이 신의 노여움을 타서 없어졌기에 이를 위무하고자 지금도 매년 음력 시월 초순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칠보산 산신제의 유래담이기도 하다.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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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에 있던 자연마을. 조선시대에 초지진에 주둔하여 망을 보던 별망군들의 망루가 있던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삼국시대에 어부의 아내가 마을 산에 올라 바다로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으나 풍랑을 만난 남편은 불귀의 객이 되었는데, 이에 여인 또한 이곳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며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 뒤부터 이 산을 별망산(別望山)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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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이동에서 이무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큰우물의 이무기」는 팔곡이동의 샛골에 있었던 큰 우물에 얽힌 설화이다.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우물은 보통 풍수지리적으로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을 띠고 있다. 「큰우물의 이무기」는 이무기가 우물 속에서 승천하려다가 임신한 며느리가 쳐다보자 용이 되지 못했다는 동물민담이자 풍수설화이다.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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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에서 삼형제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탄도의 삼형제바위」는 법정동은 선감동, 행정동은 대부동의 탄도에서 전승되는 이야기로서, 부모를 기다리던 삼형제가 망부석처럼 바위로 변하였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암석유래담이다. 1997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탄도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장일수[남, 56]로부터 이현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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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 있던 자연마을. 마을 서북쪽 산 정상에 고려 때 왕자의 태(胎)를 묻었다 하여 이 산을 태봉(胎封, 胎峯)이라 하였는데, 그 후 산 아래 마을이 생기자 마을 이름도 태봉이라 하였다. 당골과 마실 사이에 있었으며 파평윤씨, 풍양조씨 등 모두 11가구가 살았다. 1979년 신도시 개발로 폐동되고 지금은 주공아파트 8단지가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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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태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태봉의 비석」은 고잔동 태봉의 비석과 관련이 있는 풍수담이다. 고잔동 태봉은 고려시대 문종 임금의 태함으로 알려져 있다. 안산신도시 건설로 지금은 주공 8단지 아파트가 들어섰으며, 태함은 안산문화원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1989년 5월 18일 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서 최내옥·김용덕·강경화·이정임·송현정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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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던 자연마을. 일제강점기에 조근호라는 사람이 능길과 터진목 사이의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들었는데, 토질이 모래 성분이 많아 큰비가 내리면 둑이 자주 터지므로 터진목이라 하였다고 한다. 능길 서쪽에 있던 마을로 광복 전에는 솥점으로 유명했을 뿐만 아니라 낚시터로 몰리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신길간이역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시화신도시로 진입하는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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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산 에 올라가면 삼천리 쪽으로는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내리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반월저수지 쪽으로는 경사가 매우 급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 하늘을 나는 새가 아니고는 오르내리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그 옛날 터미산성을 쌓을 때도 삼천리 쪽으로는 성벽을 높이 쌓으면서도 반월저수지 쪽으로는 성벽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성 쌓기는 천혜의 지형을 잘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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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 있는 무인도. 소나무 우거진 모양이 사람 머리털처럼 생겨서 털미섬이라고 하였다. 섬 전체에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져 있으며 샘터 하나가 있다. 고두메기 북쪽에 있는 작은 무인도로 진두에서 바라다 보인다. 면적은 3㎢, 둘레 1㎞, 높이 25m, 길이 300m, 폭 50m이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드나들 수 있던 섬이었으나 시화방조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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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과 팔곡일동에 걸쳐 있는 산. 삼천리마을 뒷산으로 북쪽으로 반월저수지와 접하여 있다. 산 정상이 움푹 파여 마치 사람의 머리 둘레[테미] 모양과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터의 끝에 있는 산이므로 터미산이라고도 한다. 테미산 정상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테미산성이 있다. 안산 지역의 삼국시대 유적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성터로 현재까지 일동, 반월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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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삼천리 마을은 현재의 군포시 대야미동과 같은 반월면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그 동안 대야미동은 개발이 진행되어 지가가 많이 높아졌으나 삼천리는 거의 변화가 없는 상태이니,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해도 마을 사람들의 상실감은 의외로 큰 듯하다. 원래 반월도시계획은 반월면이 행정구역상 화성군에 속해 있을 때 작성된 것이다. 그래서 삼천리마을은 물론이고 당시 반월면에 속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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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 재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묘상에서 좋은 싹을 길러내는 것이다. 좋은 싹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묘상에서 싹의 생육에 적합한 환경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또 그렇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육묘 방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삼천리마을의 고구마 재배법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고구마 싹을 키우는 데는 싹이 트기 전에는 30~33℃의 고온이, 싹이 튼 후에도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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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동에서 독갑이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풍도의 왕신 독갑이」는 법정동은 풍도동, 행정동은 대부동에 속하는 대부도 부속 유인도 풍도에 전해지는 왕신 독갑이에 대한 토착신담(土着神談)이다. 1997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풍도로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고상호[남, 60]로부터 이현우가 채록하였는데, 이는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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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신길동에 있던 자연마을. 본래의 마을 이름은 단풍나무가 많아 풍전(楓田)이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풍년 ‘풍(豊)’자로 기록하면서부터 풍전(豊田)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해주정씨족보(海州鄭氏族譜)』에도 이곳을 풍전(楓田)으로 기록하고 있다. 1955년에 세워진 국민학교 이름도 풍곡국민학교[지금의 안산원곡초등학교]이고, 해주정씨 후손 가운데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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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이동과 성포동 경계에 있는 고개. 예로부터 학이 많이 노닐던 고개라 하여 학고개라 하였고, 보통 화고개라 불렀다. 상록구 이동 꽃마을과 성포동 노적봉 사이에 있는 도로로,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왕복 8차선 도로가 되어 현재는 학고개라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안산시 중앙로에서 수인산업도로로 진입하는 IC가 되었으며, 현재는 지대가 많이 낮아져 고개의 모습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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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삼천리 조희복 씨 집 앞에는 말라 죽은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이 향나무 아래쪽에 이제는 사람들이 쓰지 않아 덮어 버렸지만 과거에는 우물이 있었단다. 이 향나무를 돌아 좁은 농로로 들어가면 나오는 터널을 지나면 감절대가 나온다. 그리하여 이 감절대를 지나 들어가면 안산시의 숨겨진 마을이라는 삼천리에서도 더욱 숨겨진 마을이 나오는데, 바로 구석말이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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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한학자로 알려진 한씨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5월 18일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에서 최내옥, 김경화, 이정임, 송현정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제보자는 김순봉[남, 당시 73세]이었다. 이후 1990년 내고장안산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내 고장 안산』에 수록되었고,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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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과 양상동 경계에 있는 고개. 옛날에는 와동과 양상동을 오갈 때 좁은 고갯길을 넘어가야 했는데, 산을 빙빙 돌아서 넘어가야 했으므로 항아리고개라 하였다. 와동 시립공동묘지 앞의 외곽순환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 안산IC를 연결하는 고개이다. 2차선 도로가 생겼다가, 현재는 4차선 도로로 확장되었다. 지대가 많이 낮아졌으며 안산 시내에서 와동 쪽으로 가는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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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동에 있는 세 개의 무인도. 해무(海霧)가 많이 끼어 해미섬이라고 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변음이 되어 햄섬이 되었다. 세 개의 섬 가운데 가장 큰 섬을 큰햄, 가운데 있는 섬을 가운데햄, 거북이처럼 생긴 섬을 거북햄이라고 부른다. 대부동동 남쪽 해안뿌리 밖에 있는 섬으로 경사도가 완만하고 토질이 비옥하다. 해무가 많이 낄 때면 섬 위의 소나무들만 겨우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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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서 효자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홍정희 선생의 효자문」은 안산시 향토유적 제19호로 지정된 흘곶동의 홍정희(洪貞羲) 효자문(孝子門)에 대한 이야기로 설화이기 보다는 실제 이야기인 효성담이다. 실제로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고종이 효자정문을 하사했다고 한다. 1985년 옹진군에서 옹진군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 홍범의로부터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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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 사찰. 화림선원은 수리산(修理山) 연봉(連峰)인 은룡산(隱龍山) 또는 계향산(桂香山)으로 불리는 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원래 「고지도(古地圖)」에 표시된 것처럼 ‘첨성’이라 하였으나 후에 ‘점성’으로 변하여 ‘점성(占星)의 약수암(藥水庵)’이라 불렀다. 한편 화림선원은 인근 산에서 나는 산골[한방에서 자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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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신기한 바가지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화수분 바가지」는 화수분처럼 쓰고 또 써도 줄지 않는 바가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세간에서는 쓰고 또 써도 줄지 않는 것을 화수분이라고 하는데, 그 단어의 유래는 이러하다. 옛날 중국의 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을 때의 일이다. 회를 개려면 굉장히 많은 물을 써야 하는데, 일일이 길어다 쓸 수가 없었으므로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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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에서 나무귀신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황금산의 나무귀신」은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는 황금산의 향나무는 가지를 꺾는 것 조차도 금기시 하는데, 아내는 오히려 나무를 완전히 베어서 화를 자초했다는 향나무귀신의 신령스런 식물신이담이다. 즉 마을 주민에게 교훈으로 삼고자 신성한 나무를 베는 것을 자기 자식의 목숨과 바꾸는 것으로 징벌하고 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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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남동에 있는 자연마을. 대부도 남쪽의 끝 뿌리이므로 흘곶(訖串)이라고 한다.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긴 고래뿌리, 쪽박솔섬뿌리, 메추리섬뿌리, 서근여, 강거래뿌리 등이 바다로 뻗어 나가 있다. 1871년 제작된 대부도 지도에도 흘곶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된 마을로 여겨진다. 흘곶동에는 주로 논과 밭이 많았고 굴 양식이 성행하였으나 지금은 주민 대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