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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양상동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인 강징의 묘와 신도비. 강징[1466~1536]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로, 자는 언심(彦深), 호는 소재(少齋)·심재(深齋)이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증이조판서(贈吏曹判書) 강이행(姜利行)의 아들이다. 글씨를 잘 써서 중종의 총애를 받았는데 중종은 그를 시켜 옛 명현들의 명언과 시문(詩文)을 쓰게 하여 홍문관에 걸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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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에 속하였던 석곡동과 거모포의 옛 지명. 거무개는 현재 경기도 시흥시 관할로 동쪽과 남쪽으로 안산시와 접하며, 북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난다. 교육기관으로는 군자초등학교와 군자중학교·군자공업고등학교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경기도 기념물 제163호 청주한씨 문익공파 묘역이 있다. 이곳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인조(仁祖)의 장인인 한준겸(韓浚謙)[1557~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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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에서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자치 조직. 계는 향촌 사회에서 자치적으로 시행된 것으로, 이를 통해 향촌 사회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하였다. 유사한 조직인 향약이 권선징악의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데 비해, 계는 향촌민들의 상부상조를 주목적으로 하였던 것이다. 계에는 동계(洞契)·이중계(里中契)·자치계(自治契)·통계(統契) 등 마을 단위의 계와 조세를 마련하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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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옛 건축물. 경기도 안산시의 고건축에는 주거건축, 종교건축, 근대건축물이 있다. 이 밖에 관아·객사·사직단·문묘·여단 등의 관아건축, 그리고 유교건축인 향교가 있었으나 임진왜란 등의 전란으로 모두 소실되었다. 주거건축으로는 청문당(淸聞堂)·경성당(竟成堂)이 있으며, 종교건축으로는 쌍계사 삼성각, 정려각 등이 전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모두 조선시대에 지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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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 기반을 두었던 문인이 쓴, 혹은 안산을 배경으로 창작한 문학작품. 고전문학은 세분화된 문학 분류보다 시(詩)·서(書)·화(畵) 등을 두루 섭렵했던 학자들의 종합적 예술 활동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활동을 했던 학자들로는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1424~1483]과 선조 말에서부터 광해군 및 인조 때까지 살았던 계곡(谿谷) 장유(張維)[15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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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의 옛 지명. 서해안에는 곶(串)이 많은데, 곶은 바다 쪽으로 돌출한 육지를 말하며 규모가 더욱 크면 반도라 부른다. 육지가 침강하면 골짜기는 만이 되고, 산줄기는 반도나 곶이 된다. 사취(砂嘴)가 바다에 돌출하여 형성되기도 한다. 갑(岬) 또는 단(端)이라고도 하고, 흔히 관[串] 자를 빌려 ‘관’ 또는 ‘곶’으로 부르기도 한다. 반도의 말단 부분을 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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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조선시대 수령이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 관아 안에는 수령이 집무하는 정청인 동헌과 그의 식솔이 거주하는 사적인 공간인 내아, 국왕의 위패를 모시고 공적 여행자를 맞이하는 객사, 고을의 징세에 관여한 향청, 아전의 집무처인 질청, 범죄자를 치죄하는 감옥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어느 고을을 막론하고 공해(公廨)로서의 기본 건물로 객사와 아사(衙舍)·관청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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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의 옛 지명. 구룡골은 본래 단성이씨 세거지였으나 조선시대 말에 이조판서를 지낸 김수근(金洙根)[1798~1854], 영의정을 지낸 김병학(金炳學)[1821~1879]과 김병국(金炳國)[1825~1905], 이조참판을 지낸 김정규(金貞圭)[1866~1895], 화가 김용진(金容鎭)[1878~1968] 등 안동김씨들의 세도에 밀려 안동김씨 세장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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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에서 구석말 한예현 묘 동자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3년 10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주민 조희찬[남, 75]이 구연한 것을 이현우가 채록하여 2005년 안산문화원에서 출간한 『반월동향리지』에 수록하였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건건동 삼천리마을 구석말 한예현 묘에 있는 동자석은 그 크기가 다른 묘의 것들보다 작은데, 이와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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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와 시흥시 경계에 위치한 군자봉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신당. 군자성황당은 마을을 지켜 주는 서낭신을 모셔 놓은 신당으로 매년 음력 10월 초 3일에 군자봉 정상에서 서낭신을 맞이하는 민간신앙유적이다. 서낭신을 맞이한 후 산 아래에 있는 당(堂)에서 김부대왕(金傅大王)[경순왕]을 비롯한 신격(神格)들을 위하는 굿을 벌인다. 군자성황제는 고려 초기부터 거행되기 시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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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금속이나 돌에 새겨진 명문(銘文). 안산의 금석문은 석비가 대부분이다. 석비는 묘비와 기념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묘비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 대부분이며, 묘표·묘갈이 가장 많고, 신도비는 강징·김여물·한응인·유석·윤강 등의 것이 있다. 특히 명안공주·오태주 부부합장묘에는 묘비와 함께 숙종이 지은 제문비가 있다. 그리고 기념비에는 선정비·공덕비와 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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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지역에서 거주하였던 효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군엽(君燁). 아버지는 중추부사를 지낸 김로(金輅)이다. 김귀만은 어릴 때부터 부친을 모시고 살았으나 집안이 빈곤하여 농사지을 땅이 한 평도 없는 처지였다. 이에 심산유곡으로 들어가 오두막집을 짓고 화전을 일구며 돗자리를 팔아 맛있는 음식으로 부친을 봉양하였다. 도롱이와 돗자리를 팔아 연명하였는데, 시장에 가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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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흥을 시조로 하고 김충주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안산의 세거 성씨. 안산에 살고 있는 김녕김씨(金寧金氏)는 단종 복위운동을 꾀하였던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후손들이 안산에 세거하면서 형성된 성씨이다. 김녕김씨의 연원은 계림김씨(鷄林金氏), 곧 경주김씨(慶州金氏)의 선원세계(璿原世系)로부터 시작된다. 시조 김시흥(金時興)은 김알지왕(金閼智王)으로부터 35세손이자 경순왕(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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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효자 김동은(金東殷)의 형이다. 김동려는 안산 지역 서쪽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여름에 아버지의 베개에 부채질을 한 한나라 황향(黃香)의 효행이 있었다. 성장하면서 농사에 힘쓰고 부모를 극진히 모셔 부모의 입에 맞는 음식으로 봉양하였다. 부모가 병환이 나자 하늘에 기도하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입에 흘려 넣어 목숨을 수십 일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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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효자 김동려(金東礪)의 동생이다. 김동은은 안산의 서쪽 두메산골에서 살았다. 형과 함께 천성적인 효자로 칭송을 들었다. 부모를 섬김에 있어 도리를 다하였고, 모친이 종기로 고생하자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었고, 안질이 나면 혀로 핥았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몸을 깨끗이 씻어드리고 눈을 감도록 하였고, 상례를 치름에 술과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형과 같이 정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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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안산(安山). 부사과(副司果) 김취현(金就礥)의 아들이나 큰아버지인 김취려(金就礪)에게 입양되었다. 김말은 음직으로 사헌부감찰을 거쳐 정읍현감을 역임하였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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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자 김여우(金汝遇)의 동생이다. 김여규는 형 김여우와 우애가 돈독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와 기개가 비범하였다. 부모가 병환이 나자 쉬지 않고 약시중을 들었다. 아버지가 가지나물을 먹고 싶어 하였는데, 때가 초여름이라 이제 겨우 싹이 돋아나는 때였다. 이에 김여규는 형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기도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다음날 가지 열매가 열려 이를 따다 아버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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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호는 계술당(繼述堂). 효자 김여규(金汝逵)의 형이다. 김여우는 동생 김여규와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삼강오륜을 존중하여 부모를 모시는 일과 제사 받드는 일에 정성을 다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이 나자 잠시도 쉬지 않으며 시중드는 일에 충실하였다. 아버지가 가지나물을 먹고 싶어 하였는데, 때가 초여름이라 이제 겨우 싹이 돋아나는 때였다. 그는 동생과 함께 밤새워 기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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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효자. 김정훈은 안산김씨(安山金氏)로 현재의 경기도 안산시에 살았다. 효성으로 주위의 칭송을 들었는데, 추운 겨울 병석에 있던 아버지가 물고기를 먹고 싶어 하자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다 드렸으며, 병환이 위중하자 변을 맛보며 정성으로 약을 지어 드려 효험을 보았다. 항상 저녁에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문안하였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 안부를 살폈다. 조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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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출신의 무신이자 효자. 본관은 안산(安山). 자는 후이(厚而)·중빈(仲賓). 초명은 김처관(金處觀)이다. 조선 전기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좌명공신에 오르고 연성군(蓮城君)에 봉해진 김정경(金定卿)의 후손이다. 김처곤(金處坤)은 오로지 효를 다하기 위하여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몸소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였다. 그러나 부모의 뜻이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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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물의 마을 회관에서 소목고개로 가다가 수은행나무에 다다르기 전 왼쪽으로 보면 자그마한 고개가 있는데, 이 고개가 달맞이고개이다. 달맞이고개는 옛날부터 마을에서 대보름날 달맞이 행사를 하던 장소이자 한 해 농사를 점치던 중요한 장소였다. 매년 새해 대보름날 저녁이면 나이 지긋한 어른들을 중심으로 달맞이고개에 모여든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 맞은편 산봉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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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 주민들은 전통 시대부터 시작된 대동계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계(契)는 마을 또는 동리의 복리증진과 상호부조를 위하여 공유 재산을 마련하고 관리하는 자치 조직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특정 목적을 위하여 여러 사람이 모여 공동으로 기금을 염출하고, 그 기금으로 식리(殖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결사체이기도 하다. 계(契)를 이르는 호칭도 다양하여 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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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에 있는 10여 기의 선정비. 고려시대부터 대부도는 남양도호부(南陽都護府)의 소속이었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남양군에 속하였다. 인조 때에는 방어사(防禦使)가 주재하였다. 대부도 선정비군은 관리들이 떠나고 난 후 선정을 베푼 관리들을 잊지 않기 위해 도민(島民)들이 세운 비석들이다. 홍남주·윤성구 등 부사나 군수들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와 애민선정비(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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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부동에서 화정8교를 지나 화정동으로 들어가자마자 왼쪽으로 들어가면 고주물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곳으로 계속 가다보면 오른쪽으로는 너른 논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는 낮은 산이 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금방 고주물이 보인다. 마을에 다다르면 제일 먼저 ‘꽃우물마을’이란 마을 표석이 보인다. 삼거리에 있는 이 표석에서 왼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고주물마을에서 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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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도감사 자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9년 6월 2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조운학[남, 70]이 구연한 것을 최내옥·김용덕·신성원·안성진·박병제·조항심·김헌영이 채록하여 1989년 한양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출간한 『한국학논집』에 수록하였다. 이후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한 『안산시사』 중권에 재수록하였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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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과 선부동의 경계 지점에 화정8교가 있다. 이곳은 화정동으로 들어오는 입구이다. 이곳에서 시화호가 있는 서해안까지는 아주 먼 거리지만 옛날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곳의 옛 지명은 ‘쑥께’라고 하는데, 이 지명에 대한 유래는 두 가지가 전한다. 먼저 ‘쑥께’라는 말은 고주물 초입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곳에 쑥이 많다고 해서 ‘쑥께’라고 불렸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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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한때 묵향(墨鄕)으로 불린 곳이 현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이다. 조선시대 안산군 군내면 부곡리(釜谷里)와 신리(新里)에 속해 있던 부곡동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시흥군 수암면 부곡리로 통합되고, 이어 1986년 1월 1일 법률 제3798호에 따라 안산시 부곡동이 되었다. 부곡동은 2009년 6월 30일 현재 총 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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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에 있던 시장.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1770]에 의하면 경기도 안산군 초산면 일대에 ‘방축두(防築頭)’라는 장(場)이 2일과 7일에 섰다는 기록이 있다. 정확한 위치를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경기도 시흥시 광석동 보통천 방죽이 있던 자리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본다. 옛 안산에는 산대장과 광석장이 있었는데 방축장도 그 일대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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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 너빌 마을 사람들에게 조선 성종 대 인물인 김경남(金景南)[1482~1595]은 효자 어른, 혹은 버섯 효자로 불린다. 김경남의 본관은 김녕(金寧). 자는 박여(博汝), 호는 한천(寒泉)으로 너빌 마을 출신이다. 아버지는 화정동의 김녕김씨 입향조인 김충주(一柱)이고, 어머니는 안정나씨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과묵하여 떠도는 소문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충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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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소식을 전하던 통신 수단. 조선시대 통신 수단의 하나였던 봉수는 불을 이용해 위급한 상황을 알리던 시설이었다. 평시에는 하나, 적이 나타나면 둘, 적이 국경에 가까이 오면 셋, 국경을 침범하면 넷, 교전 상태에 들어가면 다섯 개의 횃불이 피어올랐다. 봉수의 간선은 직봉(直烽)이라 하여 동북은 경흥, 동남은 동래, 서북 내륙 지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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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사옹원의 분원. 사옹원(司饔院)은 조선시대 임금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에 관한 일을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청이다.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과일이나 농산물을 신주를 모신 사당이나 제단에 올려 먼저 차례를 지내거나 지방 특산물을 왕에게 올리는 것을 관장하여 온 사옹방(司饔房)이 1467년(세조 13)에 사옹원으로 개편되어 비로소 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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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 너빌 지역의 입향조 김충주는 조선 전기 단종복위운동과 관련하여 죽음을 당한 김문기의 손자이다. 김충주가 안산 화정동 너빌 지역에 오게 된 사연도 단종복위운동과 깊은 연관이 있다. 김문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처음 이름은 효기(孝起)였으나 빙장, 곧 장인어른의 휘(諱)가 효정(孝貞)이므로 ‘효(孝)’자를 피하여 문기(文起)로 개명하였다.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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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있던 시장.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 의하면 대월면(大月面)에 산대장시(山垈場市)가 있으며 읍으로부터 서남쪽으로 8㎞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산대장은 안산·군자·소래로 갈라지는 세 갈래의 동쪽 산기슭으로 전해진다. 바다가 가까워 어류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 때문에 장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대장은 구석진 장소에 있어 특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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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 너빌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산제사를 올린다. 산제사는 일 년에 두 번 지내는데, 곧 정월 초3일 산제와 음력 7월 1일 제사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신제를 지내는 시기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지만 새해를 맞이해 초3일에서 보름 사이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너빌 마을 에서는 음력 7월 초하루에 산 중턱에 있는 샘에서 제(祭)를 지낸다.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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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물고기 저장소가 있던 곳의 옛지명. 살막이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진상할 조기를 어부살[살막재에서 서쪽으로 약 3~4㎞ 지점]에서 잡아 이곳 빙고(氷庫)에 저장했던 곳이란 뜻으로, 마을에서는 보통 ‘핑고구뎅이[氷庫구뎅이]’라 하였는데, 본래의 이름은 사옹원 분원(司饔院分院)이다. 사옹원 분원 건물은 1910년대에 헐려 없어지고[당시 군자면사무소를 짓는 데 사옹원 분원의 목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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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석곡역(石谷驛)은 원활한 공문서의 전달, 관리(官吏)와 외국 사신의 왕래 및 숙박, 말을 공급하여 관물(官物)의 수송 등을 돕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조선 중종 때 완성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육상 교통의 중요 기관으로 역과 원(院)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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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성곶면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하지만 이때는 안산군 관할이 아닌 광주군 관할이었다. 이후 1906년(고종 43) 반포된 칙령 제49호 「지방 구역 조정 건」에 따라 처음으로 안산군 소속으로 등장하였다. 『여지도서』에 따르면 성곶면의 호적에 편입된 호(戶)는 328호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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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속하였던 섬. 소홀도(召忽島)는 현재의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에 속한 자월도(紫月島)를 말한다. 자월도는 면적 7.06㎢, 해안선 길이 20.4㎞, 최고점 178m인 섬으로 약 170가구에 45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인천항에서 남서쪽으로 32㎞ 해상에 위치하며, 안산시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의 거리이다. 주변에 승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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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수암사의 절터. 수리산(修理山)의 산봉우리가 수암봉(修岩峯)으로 개칭되었는데, 이때 당시의 정수암을 수암사라 고쳐 부른 것이라 추측된다.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사찰조에 정수암이 읍치 뒤 수리산에 있었는데, 이미 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수암이 수암사의 전신인 것으로 추측된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서 수암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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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던 5일장. 지금의 수암동 지역은 조선시대 안산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군의 중심지로서 시장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으며, 포구가 있어 시장이 형성되었다 한다. 해안 간석지가 개발되면서 포구가 폐쇄되고 읍내에 새로운 장이 형성되었으나 활성화되지는 못하였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조사된 『조선지지자료(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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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안산향교의 터. 향교는 고려 때 설립되기 시작한 공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이 건국되면서 왕조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을 널리 보급하고자 1읍 1교의 원칙하에 전국의 모든 군현에 향교를 설치하였다. 중앙에서 교관 파견과 함께 노비·토지·서적 등을 지원하였으며, 생도에게는 군역 면제의 혜택을 주었다. 본래 향교는 선현에 대한 제향과 인재 양성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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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의 별칭. 안산시가 별호(別號)인 연성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는 1463년(세조 9)부터였다. 조선 초기 강희맹(姜希孟)이 안산의 별서(別墅)에 중국에서 가지고 온 연꽃을 심은 뒤부터 연성(蓮城)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에 의하면, 좌찬성 강희맹이 1463년 중추원부사로서 진헌부사가 되어 중국의 난징[南京]을 다녀오는 길에 중국에서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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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속하였던 산. 신경준이 1769년 편찬한 『산경표(山經表)』에 따르면 한남정맥(漢南正脈)은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이 끝나는 안성 칠장산(七長山)에서 시작되어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에 이르는 경기도 한강 본류와 남한강의 남쪽 유역을 분수령으로 해발 100m 미만의 낮은 등성이를 연결한 산줄기를 말한다. 한남정맥은 인천광역시와 시흥시, 안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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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 너빌 마을에 들어서서 중간쯤 올라가면 마을 회관이 나오며, 다시 그곳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집들과 산이 만나는 야트막한 언덕이 나오는데, 그곳에 서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 옆에 오정각이 있다. 이 오정각(五旌閣)은 마을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정신적인 큰 힘이 되어 왔다. 화정동 29번지에 있는 오정각은 김녕김씨 가문의 충신과 효자를 기려 세워진 정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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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속하였던 섬. 조선시대 안산 지역의 오질애와 무응고리는 봉수 체계 가운데 제5거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제5거의 경로는 전라도 순천 방답진에서 출발하여 경기도에 들어와 양성·수원·남양의 해운산을 거처 안산에 이르며, 이는 다시 부평을 지나 양천 개화산에서 한양 목멱산[남산]에 전달되었다. 오질애(烏叱哀) 또는 오질이도(吾叱耳島)로 불리다가, 조선 말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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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설치된 행정구역. 와리면을 소개하는 가장 빠른 기록은 조선 후기 영조 때 완성된 『여지도서(輿地圖書)』이다. 이후 1842~1843년 간행된 『경기지(京畿誌)』나 1871년 간행된 『경기읍지(京畿邑誌)』에 수록된 「안산군읍지(安山郡邑誌)」 등에도 언급되어 있다. 조선시대 안산군의 관문에서 서쪽으로 약 12㎞ 떨어진 곳에 위치한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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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일대에서 유복자의 재산 찾기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8년 경기도청에서 발간한 『경기도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는 것을 1999년 안산시사편찬위원회에서 발간한 『안산시사』에 재수록하였다. “원참, 별일도 다 있네. 어린 새댁이 상제(喪制)가 된 신랑한테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증서를 써 달라 하니.” 이것은 신랑 부친의 장사 마당에서 뭇사람끼리 웃고 쑥덕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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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물에서 시흥시 능곡리의 능골마을로 넘어가는 곳에 있는 고개가 ‘소목고개’ 또는 ‘서모고개’라고 불리는 곳이다. 지금은 고개 너머로 시흥시 능곡지구에 대규모 택지개발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고 있어 사람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지만 옛날에는 제법 큰 길로 통했다. 소목고개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이 고개가 지금은 비록 시흥시로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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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안산 지역에서 활동한 열녀. 이원발의 아내 전주최씨는 경기도 안산에서 생활하였다. 이원발(李元發)에게 출가하여 시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남편을 대할 때에도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없었다. 영조 대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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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의 주요 육상 교통로에 설치하였던 숙소. 점막이란 점(店)과 주막(酒幕)을 통상적으로 합해서 부르는 명칭이다. 점막은 공용 여행자의 숙식을 제공하는 원(院)과는 다른 숙소로, 조선시대 여행자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사설로 설치하였다. 조선시대 안산 지역에는 육상 교통 시설로 역과 원이 설치되었으며, 이와는 별도로 점막이 설치되었다. 역은 군의 치소(治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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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을 소재로 하여 조선시대 문인·학자들이 지은 시(詩). 옛 사람들은 안산의 아름다운 형승(形勝)을 “바다 위에 떠 있는 한 떨기 갓 피어난 연꽃”에 비유했다. 서쪽 바닷가의 해빈(海濱)에 맞닿아 마치 쫙 펼쳐 놓은 부채꼴 속의 한 송이 연꽃 같은 모습이라는 얘기다. 이런 자연적 경관을 배경으로, 특히 조선시대에는 수많은 학자와 시인들이 안산에 기거하며 주옥같은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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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경기도 안산의 역사. 안산 지역은 고려 940년(태조 23) 이래 ‘안산’이라는 지명이 사용된 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이숙번 등에 의해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지역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반월신도시 개발과 반월공단, 고잔신도시 조성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고려 말 1390년(공양왕 2) 경기도가 좌·우도로 분리될 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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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사동에 있던 자연마을. 주더리는 구슬 ‘주(珠)’자와 다리 ‘교(橋)’자를 써 주교(珠橋)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과 옛날 바닷가에 뱃줄을 매는 닻줄을 놓고 다녔다고 하여 주더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 기숙사 앞까지 배가 들어 왔었을 때의 이야기이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관련 기록이 나온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성곶면 삼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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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수군만호가 주둔하였던 영. 초지량영은 조선시대 중요 해안 요충지의 방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이 실려 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까지는 초지량영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이후 자료에는 초지진으로 나타난다. 『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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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경기도 안산 지역에 수군만호가 주둔하였던 영. 초지진은 조선시대 중요 해안 요충지의 방어를 담당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에 기록이 실려 있다.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까지는 초지량영으로 기록되어 있다가, 이후 자료에는 초지진(草芝鎭)으로 나타난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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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에 있는 수암봉의 옛 이름. 봉우리의 생긴 모습이 독수리 머리 모양과 같다고 하여 독수리 ‘취(鷲)’자를 써 취암이라 하였다. 취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보이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산천조에는 “(안산의) 진산은 취암(鷲岩)이다. 군(郡) 동쪽에 있으니, 동쪽은 과천(果川), 북쪽은 금천(衿川), 남쪽은 광주(廣州)의 경계가 된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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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산 지역에서 특유하게 생산되는 물품. 안산의 토산물로는 소금, 수산물, 쑥을 들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물고기와 소금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밭이 2289결로서 논이 9분의 3이다. 땅은 오곡[쌀·보리·수수·콩·기장]과 조[粟], 팥[小豆] 등이 자라기 알맞다. 토공(土貢)으로는 지초(芝草), 약재, 연밥[蓮子]을 올린다. 소금 만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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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처음 생긴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화정동 너빌 마을에서는 조상들의 충효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평상시에는 시제를 지낼 때 후손들에게 선조들의 얼과 정신에 대해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고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해 작은 마을이지만 근대 이전에는 여러 개의 서당을 운영하면서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애썼다. 조선시대에 서당은 가르침과 배움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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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안산시 화정동 519번지에 설립된 화정간이학교는 해방 이후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일제의 압박에서 벗어나 잠시 공백기[1945~1947]를 거친 후, 일제의 잔재를 벗고 새롭게 우리 교육의 틀을 잡아가는 변혁기를 맞아 1947년 4월 30일 화정국민학교로 승격, 개교하게 된 것이다. 이후 화정국민학교는 지역의 초등교육기관으로 크고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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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동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김녕김씨와 밀양박씨 집안사람들이다. 두 집안은 비슷한 시기에 입향했는데, 먼저 뿌리 내리고 산 사람은 김녕김씨(金寧金氏) 가문의 김충주(金忠柱)로, 조선 전기의 일이다. 김충주의 자는 광보(狂甫), 호는 탄옹(炭翁)이다. 공조판서 김문기(金文起)의 손자로, 아버지는 거창현감을 지낸 김현석(金玄錫)이며, 어머니는 동복오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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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화정동도 마을 청년들이 도시로 떠나가면서 청년들의 수가 많이 줄었다. 그들 나름대로는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부모님과 고향에서의 추억은 오랜 타지 생활에도 잊히지 않는다. 오히려 타지에 살면서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고, 고향과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너빌이 고향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광곡청년회’라는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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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빌 마을 회관에서 북쪽 마하산 정상을 바라보며 작은 오솔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가면 가파른 산으로 올라가는 시작 지점, 곧 안산시 화정동 산58번지에 고송정(枯松亭)이 있다. 고송정은 세조 2년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다가 참화를 당한 김문기(金文起)의 손(孫)인 김충주(金忠柱)가 살던 자리이다. 김충주는 조부 김문기, 부친 김현석(金玄錫)이 참화를 당하자 밤중에...